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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삼상1:19-28)
2023, 6/18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1:19-28절 말씀으로“참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제가 지난주에 내 인생 최고로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예수 믿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여러분들도 공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그냥 우연히 전도 받고 교회 나오다보니 그리된 게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셨고, 때가 되매 우리가 복음을 듣게 하여 예수를 믿어 영접하게 함으로 구원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면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위대하고 값진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배는 우리 신앙과 삶의 기본입니다.(21절)
둘째로, 새벽을 깨우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19절)
셋째로, 온전한 신앙으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19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참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는 어떤 사람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배는 우리 신앙과 삶의 기본입니다.(21절)
본문 2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아멘.
본문의 말씀은 한나가 온 가족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정말 간절하게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사무엘이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을 얻습니다.
사무엘을 출산하고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每年祭)와 서원제(誓願察)를 드리러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매년제란 매년 절기에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하고, 서원제는 하나님께 서원을 하거나 갚을 때 제사지내는 것인데, 본문에 매년제와 서원제를 구별해서 기록한 것은 한나가 아이를 달라고 기도할 때 11절에 아이를 주시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서원기도를 했고, 남편 엘가나는 아내의 서원기도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민30:6-8) 아내의 서원을 존중하여 세원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엘가나의 가정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엘가나의 집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실로까지는 직선으로 약 28㎞, 꼬불꼬불 실제 거리를 감안하면 50㎞가 넘을 겁니다. 더구나 이 지역이 산악지대라서 길이 오르락내리락 험했을 것임에도 그 먼 길을 온 가족을 데리고 예배드리러 다녔던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엘가나의 가정은 다른 건 몰라도 예배만큼은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챙기는 진실한 예배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가나의 이 예배가 더 위대한 것은 당시 이스라엘은 타락이 극심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어색해 했고, 예배드리는 자들도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억지로 드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엘리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제사지내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보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엘가나의 예배는 더욱 빛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이 타락하자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인정해도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피했는데, 이로 인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예배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아무런 감정도 열정도 기쁨도 없이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드리다가 결국은 그것마저도 드리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당시 사사시대의 모습인데, 지금 사무엘이 태어난 때가 사사시대 말기니 그 타락의 정도가 어떻겠습니까? 이런 시대에서도 엘기나의 가정은 예배를 위해 그 멀리까지 찾아가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이 세상이 좋거나, 죄를 짓거나, 신앙이 식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뭘까요? 먼저 하나님이 불편해지고, 불편해지면 교회를 찾는 횟수가 적어져 예배참석이 줄어들다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데, 이 책임은 분명 교회나 목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여러분들이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는 실감이 날 것이고, 죽으면 그야말로 현실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내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생명의 은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의 주인이시고, 내 생사화복은 물론 내세의 삶까지 결정하시는 분을 보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거짓말이거나 가짜일 것입니다.
때문에 예배는 신앙인이라면 무조건 드려야하는 의무이자, 또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복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믿는 자의 권리인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예배의 타락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싫고, 지겹고, 설교를 들어도 잡생각이 들고, 졸음이 쏟아지고, 시간은 왜 그리 안 가는지? 그러다 점점 예배를 멀리하게 되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의 실패고, 신앙의 실패인 것입니다.
가인이 저지른 인류최초의 살인사건도 예배가 실패하면서 생긴 것입니다.(창4:5) 또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하고, 보복에 나선 야곱의 두 아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다시 세겜 사람들의 보복으로 야곱의 식솔들이 전부 몰살위기에 처하는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만난 것은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고향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창28:21-22, 창31:13) 그래서 야곱이 급히 보복을 피해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의 약속을 지키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35:9)
이걸 볼 때도 우리는 예배가 성도에게 생명이고 축복이란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예배를 떠난 성도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사장나라’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출19: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 또한‘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벧전2:9) 우리에게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부른 것입니다.
때문에 예배보다 세상일을 우선해 예배를 무시하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 예배를 회복하셔야합니다. 엘리제사장의 가정이 몰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여러 일과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것만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와 그래서 예배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날 때 우리영혼도 살고, 가정도 교회도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부디 예배를 최우선으로 삼아 예배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새벽을 깨우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19절)
본문 19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아멘.
엘가나가정 식솔들이 성전에 올라와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마친 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집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여 절기를 지킨 후 자기의 터전이 있고 형제자매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니 기뻤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며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가슴에 안고 다시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일을 하여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 엘가나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저 여호와께 경배를 드립니다. 아마도 집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니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깨닫는데,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고 기도함으로 시작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를 시작하면서 먼저 그날 하루 동안 내 가정과 직장, 일터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복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시작하면 너무 좋습니다.
한나가 전날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인데, 이걸 우리말로‘새벽기도를 했다.’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했던 때가 새벽이었고, 이 새벽에 먼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루를 시작했으니 참 은혜로웠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루 일을 시작하면 참 은혜로울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로 항상 바쁘셨지만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시고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막1:35)
잠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기서‘간절히’란 말은‘새벽에’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즉 "새벽에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다시 말해 이른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그런 자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물론 새벽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사회가 복잡하고 직업군이 다양한 현대에서 새벽을 깨워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지요. 때문에 억지로라도 새벽기도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새벽이든 아침이든 일어나면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루를 시작해야합니다. 시5:3절에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새벽에 주의 전에 나와 함께 경배하고 기도한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다면 일어날 때 먼저 하나님께 하루를 선하게 인도해달라고 경배하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시라는 겁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가 새벽기도까지 나가는 신실한 신앙인이란 말을 들으면 그 바쁜 와중에도 새벽을 깨우니 정말 신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내일부터라도 새벽에 교회로 나오시든, 집에서 일어나면 하시든 반드시 하나님께 경배하는 습관을 세워보십시오. 새벽을 깨우기가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만큼 나를 만나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에 주님께 얼굴을 보이고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온전한 신앙으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19절)
본문 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아멘.
집으로 돌아온 한나를 하나님이 생각하사 아이를 잉태케 해주셨는데, 여기서‘생각하다.’는 이 단어를 KJV(King James Version)은 기억했었다.(remembered) 과거형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실로에서부터 한나가 간절히 기도한 것을 보시고 당신 마음속에 담아두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고 신앙생활 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응답할 준비를 하신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이것은 만왕의 왕이시고, 천하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하셨다가 적절한 때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그중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를 도와주고 싶고,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헤어지면 보고 싶고, 그리워지고, 다른 것도 궁금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한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한나에게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아들을 주셨는데, 그만큼 한나는 하나님께 오래 기억되고, 더 많이 챙겨주고 싶고, 더 많이 주고 싶은 매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나는 어떤 매력이 하나님께 오래 기억되었을까요?
그녀의 매력은 브닌나에게 그토록 멸시와 수모를 당하면서도 세상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내가 열 아들보다 못하냐? 내가 더 잘할게.’이렇게 위로를 했지만 한나는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 기도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도 병들었을 때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통곡하며 기도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선하게 살아온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기억하는 성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선하게 살아온 것을 기억하셨고, 결국 이것 때문에 그는 생명을 15년간 더 연장 받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이 기억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 한번 점검해 보셨으면 합니다. 살다보면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전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하나님도 오늘 나를 한나처럼, 히스기야처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마7:23절에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주님이 나를 기억하시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대답해주시고 복을 주시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