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에 이 게시판을 통해 소개드린 책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우리는 미국을 모르고 있구나.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만 미국을 대했지,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을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감자였던 지소미아(GSOMIA)건이 그러합니다. 문재인 정권때 위안부 문제를 빌미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했었습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공유 협정이었던 지소미아의 종료를 선언했고, 몇달 뒤에 조건부 유예하였습니다(이번 정권들어 원상복구).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그런 큰 조치를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였을때 지소미아는 건들지 말아야 할 영역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1개 국가가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세계 전략을 경영하며 정보의 생산도 세계단위로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소미아가 없어짐에 따라 미국 정보당국은 한국과 일본에게 각각 정보를 매개하느라 더욱 큰 부하에 시달렸던 겁니다.
부담분담(Burden Sharing)의 측면에서 우리는 동맹국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짐이 된 셈이었던 겁니다.
또한 지소미아를 떠올릴때 우리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관한 사안만 공유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지소미아 조항으로는 정보공유의 대상과 범위가 '북한'과 '미사일'에 한정되어있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상호간이 입수한 모든 범주의 군사기밀이 공유대상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에게 지소미아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사안까지도 한미일이 공유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내 공동 방위체제의 핵심부분중 하나였던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이런 시각으로 외교안보에 관한 사안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 포인트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이라는 키워드입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 테러리스트까지)을 동시에 상대해야하는 상황속에서, 미국은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도 자기 몫을 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미국인, 미국 대통령, 미 국방부, 그리고 무엇보다 미 의회를 이해하는대 중요한 지점이었던 겁니다.
한미관계를 묘사할때 가장많이 나올 단어가 바로 '혈맹'일 겁니다. 하지만 이 혈맹이라는 표현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일방적으로 헌신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혈맹이란 미국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었듯이 이제는 우리도 미국을 위해 피를 흘려야만 하는 그런 쌍무적인 무서운 단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혈맹'이란 표현의 진정한 무게를 모른채 너무 가볍게 남발하고 있습니다. 좌파건 우파건 누구건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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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놀라운 관점과 사실들이 가득한 책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권당시 '한국형 3축체계'의 각 요소들의 이름을 완곡어법으로 바꿨으나(지금은 다시 이름을 원상복구) 실제 해당지출은 6베로 늘렸다던지, 북한이 트럼프와 신경전을 벌이며 탄도미사일을 쏠때마다 한미연합군도 현무2와 에이타킴스를 동해상에 쏘았는데 발사거리가 정확히 김정은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한 지점의 거리와 같았다던지...
사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도에 비해서 매우 떨어지며 실제론 중국에 대한 초당파적인 관심이 공유되고 있다던지 등등.
우뭏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를 읽기 위해선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 같습니다.
첫댓글 저 또한 한국도 분명 한 부분의 부담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역량이 안 되니 자꾸 책임은 안 지려 피하기만 해왔엇다면 이젠 달라져야하죠
부담을 하되 내 목소리를 내는게 맞죠. 누가 책임을 맡으려 하지않는 국가와 파트너하고 싶겠습니까
지소미아를 건든건 문 정권기라는 예외적인 시기로 봐야겠죠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 테러리스트까지)을 동시에 상대해야하는 상황속에서, 미국은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도 자기 몫을 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미국인, 미국 대통령, 미 국방부, 그리고 무엇보다 미 의회를 이해하는대 중요한 지점이었던 겁니다."
이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적어요. ㅠㅠ 길가다 아무나 붙잡고 외교 이야기하면 이런 관점을 아예 이해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무작정 뭣만 하면 패권주의네 좀만 조용히 있음 뒷돈받았네 소리밖에 못함.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만사가 잘되진 않음 또한 직시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류의 담론은 아닙니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야 우리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이 가능하다는 논지에 가깝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군요.
예전에 자주 오시던 판찬님도 여러차례 언급하셨던 부분이죠. 과거에는 명백히 한국보다 일본이 부담분담을 더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이라고 해도 전 정권때입니다만) 한국의 정치/경제/외교적 역량 상승으로 더 많은 부담을 나눠가고 있어 미국이 만족해하고 있다는 거.
사실 '미국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나 '미국은 자신의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은 좌우 막론하고 정치외교에 관심많은 이들이 옛부터 많이 하던 말입니다. 제가 고딩시절인 2000년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왔으니 그보다도 더 일찍 시작된 말이겠죠. 그러나 이 말은 그동안 객관적인 시각이라기보다 자기들의 정치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습니다. 가령, NL계는 '미국은 자기들 국익만 생각해서 한민족의 국익을 침해하려 든다, 그러므로 한미동맹은 파기하고 한민족의 민족자주를 이루어야 한다' 라는 식이고, 수구계는 '미국의 국익이 곧 한국의 국익과 직결되니 한국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식이었죠. 어느 쪽이든 사실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그나마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만 해도 큰 변화일 겁니다. 그동안 한국의 시민들은 한미동맹의 의미,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그에 따르는 주변국의 기대 같은 것에 좀 많이 무지했습니다. 심지어 정계나 외교계에 몸담은 사람들도 인식이 부족했었고요.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건 그동안의 우리의 부족한 식견에 대한 반성과 변화가 시작되려는 것이겠지요.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소미아 종료 선언도 단순 일본과의 협력중단을 넘어 미국에게 자립하는 대한민국으로서의 실력을 증명하는 수단이었겠군요. 또 실제로 군사력 강화, 신남방정책, 빨갱이 미사일 발사수 맞추기 한일전, 아프간 난민 구출 군사작전 성공 등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종속국이 아닌 동맹국으로서 실력을 증명했으니요.
지소미아의 조건부 유예는 한미간 일종의 배려의 완충지대였을테고.
그나저나 Burden Sharing을 보니 낙지독일과 낑탈리아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제가 생각하기엔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그러한 해석도 이 책에 자주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한반도 천동설'에 가까울 거 같습니다. 상대방인 미국의 입장과 상황을 보지 못하고 우리 중심으로 세상과 현상을 보고 이해하는 그런 시각이랄까요.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건에 대한 시각은 시쳇말로 트롤짓 혹은 "자기 발에 총쏘기"에 가깝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될 게 없었다는 겁니다.
미사일 탐지를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미사일을 탐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건 미사일과 탐지수단 사이의 각도라고 합니다. 미사일이 탐지수단을 향해 똑바로 날아올 때 얻을 수 있는 데이터와 각도가 직교가 이루어졌을때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다르다고 말입니다. 또한 탄착지점과의 거리에 따라서도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동해방향으로 미사일을 쏜다면 우리나라가 더 잘 탐지할 수 있지만, 서해방향으로 쏠 경우엔 일본이 더 잘 탐지할 수 있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소미아는 북한에만 한정된 정보공유 협정이 아닙니다. 중국의 미사일에 대한 데이터도 공유할 수 있고, 러시아의 미사일에 대한 데이터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의 등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대응가능한 시간이 짧아지고, 여차하면 발사이전 단계(이른바 '발사의 왼편')에서의 조치가 중요해진 현시점에서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조기경보는 중요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이러한 상황배경으로 인해 한미일간의 실시간 정보공유는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더 이상은 한국과 일본 사이를 미국이 중계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조차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한국정부가 무언가의 이유로 갑자기 이러한 조기경보체제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하였으니 미국의 입장에서는 가벼이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소미아를 둘러싼 행간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 책은 우리가 외교안보 사안을 바라볼때 어떠한 지점들도 같이 봐야 진정한 행간을 읽을 수 있는지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미국과 관련된 우리의 시각에 대해서 주로 다루었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 정확히 어떤 행간을 읽어야하는지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책이기도 해서 저 자신도 그동안 어떠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