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국가의 지름길, 약자 중심으로 움직여라
해외탐방/일본 복지기관
김포공항에서 두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도쿄 하네다 공항. 고령의 직원이 공항 입국자들을 입국심사대로 안내해 주고 있다. 공항 밖에선 중년의 운전기사가 버스를 대기시키고 일행을 맞았다. 일하는 노인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본, 이러한 장면들은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했다.
지난해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간 사회복지 100년의 역사를 맞은 일본의 도쿄, 오사카, 히라카타 지역의 사회복지협의회를 방문하고 그들의 선진 복지문화를 엿봤다.
100년 역사의 ‘전국사회복지협의회’
▲ 1층 현관앞에 자리잡은 카페는 장애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도쿄 치요다구 가스미가세키 3가. 번화한 도쿄시내 한복판에 20층짜리 전국사회복지협의회(이하 전사협) 빌딩이 들어서 있다. 깨끗하고 정갈한 건물 내부의 모습은 들어선 사람을 숨죽이게 했다. 전사협 직원인 호시노씨의 안내에 따라 ‘아시아지역 사회복지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장소로 이동했다.
아시아지역 사회복지 연수 프로그램은 전사협이 25년째 운영해 온 사업으로, 아시아의 민간사회복지 종사자를 연수생으로 받아 일본어를 가르친 뒤 사회복지현장에서 실습 등을 실시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한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타이, 대만, 방글라데시, 필리핀, 말레이시아로부터 180명 이상의 연수생이 다녀갔다. 올해도 4명의 연수생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우리말이 들렸다. 연수생 중 한국대표로 참가한 어린이재단 소속 이효정 사회복지사였다. 이씨는 “2008년 3월 일본에 도착해 9개월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며 “더 많은 한국의 사회복지사들이 이 프로그램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사협은 전국의 도도부현(시·도) 및 시구정촌(시·군·구)사회복지협의회의 활동을 지원하며 전국의 복지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개선, 정책 제언, 조사ㆍ연구, 홍보, 인재양성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복지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지역복지 권리 옹호사업, 불평 해결 사업, 제3자 평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전국자원봉사활동진흥센터는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정보제공 및 조사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1995년에는 사회복지 연수원 기능을 갖춘 로포스 쇼난 중앙복지학원을 건립, 각종 자격에 관한 연수과정, 경영자연수과정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건물임대, 사회복지관련 도서출판, 국제복지 기기전 개최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모든 사업은 116명의 전사협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전사협의 연간 사업비 규모는 약 63억엔(944억원, 2008년 12월 기준)으로 건물임대료와 도서출판 수입이 예산의 50%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 사이또 사무국장은 “정부의 지원은 얼마나 받고 있냐”는 질문에 “확인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잠시 서류를 뒤적이더니 “정부로부터는 3억 3천만엔(사업비의 5%)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그 밖의 사업비 절반은 도도부현사회복지협의회의 분담금, 연수 참가비, 사회복지시설 회비로 구성 된다”고 덧붙였다.
사이또 사무국장은 “전사협의 전신인 중앙자선협회가 100주년을 맞아 2008년 10월 6일 ‘100주년 기념 감사의 모임’을 가졌다”며 “천황부부를 비롯해 전국 500명의 복지관계자가 참석한 큰 행사로 열렸다”고 전했다.
사무실에서 눈에 띈 것은 모금함과 붉은 깃털포스터였다. 그러고 보니 몇몇 직원들의 가슴에 붉은 깃털이 붙어있다. 일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심볼이었던 것. 공동모금회 사무실도 전사협 빌딩 내에 위치해 있다. 다른 방문한 기관들에서도 곳곳에 설치된 모금함과 붉은 깃털을 볼 수 있었다.
절경 속에서 ‘휴식’과 ‘연수’를 동시에
▲ 전국사회복지협의회가 운영하는 중앙복지학원 '로포스쇼난'. 심신이 지친 사회복지사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도쿄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카나가와현에 위치한 로포스 쇼난(중앙복지학원)을 방문했다.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로포스 쇼난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멀리에는 눈덮인 후지산이 보이고 산 아래로는 넓게 펼쳐진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로포스 쇼난은 전사협이 설치ㆍ운영하는 사회복지연수의 거점으로 정부지원과 장기융자로 최신첨단시설을 완비해 1995년 설립됐다. 오기와라 부원장은 “‘로포스’란 그리스어로 ‘언덕’을 의미하며 언덕으로부터 전국 각지에 내일의 사회복지사를 양성ㆍ배출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곳은 ‘휴식과 배움(연수)을 모두 얻어가는 곳’을 컨셉으로 잡아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연수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자랑했다.
로포스 쇼난은 대강당, 회의실 4개, 강의실 6개, 객실 100실,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곳에서 고령자나 장애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문턱은 전혀 없었고 복도는 2m의 폭을 확보해 휠체어가 엇갈려 다녀도 충분하도록 만들었다. 메인 연수실인 다사이홀의 무대는 휠체어 강연자나 패널리스트가 무대에 잘 오르내릴 수 있도록 승강장치도 갖췄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난청장애인을 위해 무선 보청설비도 갖춰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최고의 복지시설을 갖췄다고 자랑할 만 했다.
이러한 시설 덕분에 이곳은 연수기관으로 인기가 많아 1년 중 360일 이상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2007년 수강자는 총 1만1600명이었으며 2009년 3월까지의 연수 과정은 모두 마감된 상태라고.
로포스 쇼난의 연수 과정은 행정기관 직원, 사회복지법인 경영자, 사회복지시설장, 사회복지사, 사회복지교육기관 교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크게 국가자격을 위한 통신과정과 단기연수과정으로 나눠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각 강좌의 수강료는 2만엔부터 20만엔까지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었다. (통신과정은 가정에서 교재를 받아보며 학습하는 강좌.)
오기와라 부원장은 연수과정 중 개호복지사 과정을 소개하면서 “개호복지사가 부족한 것이 최근 가장 큰 문제”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TV에서 개호복지사를 홍보하겠다며 개호복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다루는데 이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온다며 개호복지사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남자가 개호복지사를 하면 결혼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NHK에서 개호복지사를 꿈꾸는 여주인공의 밝고 희망찬 모습을 그려낸 ‘단단’이라는 아침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이런 드라마에 일본의 인기배우인 ‘기무라타쿠야’ 같은 배우가 개호복지사로 나오면 개호복지사의 인기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연수교재는 모두 전사협 출판부에서 만들고 있는데 이는 전사협의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교재개발은 각 사회복지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맡고 있다. 연수원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마친 후 로포스 쇼난의 홍보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시청을 위해 직원이 스위치를 조작하자 “지~잉”하고 울리는 기계소리와 함께 강의실 창문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닫혀져 영상을 보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냈다. 말로만 듣던 최신 설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연수원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자연스럽게 연수원을 둘러봤다. 바깥 경치가 한 눈에 보이는 통유리 창과 넓은 복도, 여유가 절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사회복지사들도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과다한 업무로 번-아웃되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사들도 이런 시설에서 교육받을 수는 기회가 생기길 기대해 봐도 될까.
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고충까지 해결
▲ 오사카부협의회 건물외벽에 사회복지공동모금 캠페인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오사카부사회복지협의회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건물에 걸린 공동모금회 플래카드였다. 일본 전 지역의 공동모금은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역복지관 역할을 하는 오사카부협의회는 오사카부 내 41개의 시정촌 협의회, 민생위원·아동위원, 1500개의 사회복지시설 및 단체, 자원봉사 등 공사의 관계자가 참여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소
학교(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업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했고 지역주민들이 직접 지역복지범위(걸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지역복지사업을 조직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아오끼 사무국차장 겸 총무기획부장이 설명했다.
또한 오사카부협의회는 약 22가지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특히 새로운 복지과제인 한센병 환자 지원, 노숙자 지원, 중국 귀국자·외국인 지원, 아동학대 문제, 지역주민 의견 조합, 주민 교류장소 제공, 정신장애인의 범죄예방 지원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자원봉사센터는 13년 전에 설치됐다. 계기는 고베대지진이었다. 때문에 재해 중심의 자원봉사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매년 7~8월에는 2달간 자원봉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500개 시설에서 약 3일간 봉사하는 프로그램으로 이 기간에 30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오사카부협의회는 우리나라 보호작업장 격인 ‘세르프(Selp)’를 운영, 장애인들이 만드는 물건을 판매해 연간 약 1억엔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세르프(Selp)는 셀프(Self)와 헬프(Help)의 합성어다. 그밖에 저소득층 및 장애인 세대에 돈을 빌려주는 복지대부제도(생활복지자금), 사회복지 인재육성을 위한 복지취업지원센터, 일상생활자립지원, 복지서비스질 평가(제3자평가), 개호서비스정보공표사업, 사회공헌사업, 복지서비스이용자 고충해결 등 지역주민과 밀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었다.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통합교육
히라카타시로부터 히라카타사회복지협의회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라포르 종합복지센터. 면적이 2867㎡로 규모의 이 기관은 지하1층에서 지상4층까지 5층짜리 건물로 총 건축비만 52억엔을 들여 1998년 준공됐다.
라포르는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의 지역주민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건축됐으며, 히라카타사회복지협의회를 비롯해 개호보호시설, 장애인시설, 자원봉사센터 등 여러 단체가 한 건물 안에 있어 히라카타시의 복지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 2층까지 연결된 휠체어 승강기
장애인과 노인이 주로 이용하는 이 곳의 복도 폭은 2m 60cm로, 계단 폭은 1m 70cm, 계단 높이를 15cm로 해 다니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복도의 손잡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2중 손잡이를 설치하고 신장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장비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을 갖췄다.
건물 1층에는 상점과 커피숍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 곳은 모두 장애인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1층에 쉴만한 공간이 마련돼 있어 그런지 기관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라포르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커피숍 반대편 1층에는 데이서비스센터가 설치돼 독거노인, 치매노인 등 낮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송영서비스, 식사, 운동, 재활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용을 원하는 경우 케어매니저가 가족과 상담하고 필요한 서비스와 기간을 맞춰 준다고 한다. 데이서비스센터 직원은 이러한 맞춤형 서비스 때문에 이용자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2층에는 노인 및 장애인의 재활치료를 위한 온수수영장도 설치돼 있다. 각 대상자에 맞도록 레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왼쪽 레인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로로 돼 있었다. 수영장 이용료는 2시간에 500엔이며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수영교실도 마련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요리, 요가, 음악치료, 물리치료, 꽃꽂이, 공작 등 노인과 장애인의 재활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작업실, 조리실 치료실 등 각 프로그램에 적합한 시설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 장애인 ·노인의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온수 수영장을 설치했다.
시민들에게 복지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사회복지도서관에는 약 4500권의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지역복지, 아동복지, 의료, 심리학, 수화 등의 도서와 히라카타시·오사카부의 복지안내서 및 각종 백서, 약 700개의 사회복지 비디오·DVD 자료를 보유해 무료로 대출해 주고 있다. 도서관의 직원은 7명으로 모두 장애인(청각장애 1명, 지체장애 1명, 지적장애 2명, 시각장애 1명, 정신장애 2명)이다.
“직원들은 각자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예: 청각장애인 대신 시각장애인이 전화 받기) 근무하고 있어 전혀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이곳에서 11년간 근무하고 있다는 나까무라(정신장애)씨가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생활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양보와 배려가 몸에 베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장애인, 노인, 아동 등에게 편리한 것은 일반인에게도 편리하다는 자세가 기본이 되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나란히 서있고 겉모습까지 닮은꼴인 일본. 겉은 닮았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일본의 복지문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출처 복지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