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제가 2004년도에 원곡동으로 이사왔으때에 벽산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때에는 아파트근처에 재래시장이 있었고 대부분이 연립이었다
벽산아파트는 2개의 구역이 있었고
다른곳은 여러개의 연립이 한구역이었다
원곡동에서 10년이상을 지내다가 그곳을 떠났다
아파트에서는 5년간 그나머지는 연립에 살았는데 구역모임이 연립이 잘 되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민만이 들어가도록 카드키를 대어야 했다
그래서 외부인이 그 아파트안으로 들어가기 어렵기에
아파트단지에 살더라도 다른단지로 가기가 어렵거니와 잘 가지않게 되지만
연립은 골목안에 있고 근처에는 넓은평상과 같은 것이 있어서 걸터앉아 쉴수가 있기에
퇴근길에서 마주칠수가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와 달리 구역모임을 한달에 한번정도 하게되는데
이것도 한번 빠지게되면 적어도 3달동안 마주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저는 간혹 주일미사를 원곡동에서 드리지 않을때가 있는데
서울이나 전주등지에서주일에 모임이 있을때에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기 떄문이다
지금은 재개발되어서 어떤 형체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17.8구역에서 살았고 단원구청을 걸어서 출퇴근하는 바람에 16구역도 지나가게되었다
긴혹 시민시장근처로 해서 올때도 있었는데
그때에는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이다
18구역에 살때에는 구역관할지역에 복합거주지 1층에 식당이 있고
교우가 하시기에 간혹 구청동료들과 와서 식사도 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아내가 다른곳에 가서 혼자 식사를 할때에 그 식당에서 국물요리를 시켜서
몇끼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골목안에는 이전의 성당이 있었고 마당에는 자판기가 있고 유달리 싸게 팔기에
저녁에 성당에서 다들 돌아간후에 조용한 시간에 나와서 음료수를애용하기도 하였다
간혹 외부에서 택배가 올때에도 집가까이에 있는 점방에 맡기기도 하였다
연립양쪽에 구멍가게 있었기에 너무나도 편리했다
그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전철역이 있었고 서울에서 볼일을 보다가
막차전차를 타고 와서 버스가 끊어져서 신경쓰지 않고 걸어올수가 있었다
여러곳에 있는 연립들이 다 재개발해서 대단지 아파트로 변했다고 한다
좁은땅에서 재개발하는바람인지 고층아파트로 인해서 점차 다른동사람들이
접근하기도 어려웠는지 세대수는 분명히 늘었지만 성당에 나오는 신자수는
늘 그대로 라고 한다
성당에서 주일미사외에는 단체모임을 하지 않고
교중미사가 끝나고 저녁 청년미사사이에는 본당은 아주 조용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평일날 저녁미사가 있는날이면 단체모임도 그날에 하게되는데
그외에는 한가하다고 한다
처음 벽산아파트에 와서 살때에 무리하게 구입하는 바람인지
은행빚이 많아서 이를 갚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지금 재개발로인해서 새집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자가 비싼 요즈음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려울때일수록 서로 만나서 위로해주고 토닥거리며 술을벚삼으면
하루의 고단도 풀릴것 같고 구역모임에도수월해지는데 말이다...
벽산에는 3년간 살았고 빚때문에 집을팔고 대우에서 2년간 전세로 살았다
처음 벽산에 살때에는 그곳 자매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아내가일하러 늦어들어와도
내집에서 구역모임을 할수가 있었고 자매님들이 우리집으로 중국요리를시켜가지고
오시는바람에 푸짐한 구역모임을 가질수가 있었지만
대우에 와서는 이런일이 뜸했다.
사는곳이 땅에서 올라갈수록 구역사람들이 모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전에 서울의가난한 동네 살때나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고 한다
다행한것은 과거 같이 18구역에 같이 사셨던 몇분이 재개발아파트에 남아있어서
그런대로 그들끼리 친교를 유지한다고 한다.
아파트에 살던지간에 그들의친교는 가까워지고 성당안에서나 세상속에서나
화목하게 기쁘게 살기를 희망해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