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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을 대하는 법
21: 1-11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7.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찌며
8.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9.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접할 것이요
10.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 들찌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
11.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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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까지 배운 십계명은 하나님나라의 헌법 전문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21장부터는 헌법의 세부적 내용인데, 오늘은 종을 대하는 법입니다.
당시에 사람이 남의 종이 되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방세계는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에는 그런 타고난 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빚을 지는 등의 이유로 돈에 팔려가는 경우가 있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포로가 되는 경우에도 종이 되었습니다(왕하5:2, 25:18-21, 신15:15).
사람이 어떻게 해서 되었든지 일단 노예가 되면 노예시장에서 팔리게 되는데, 누가 와서 노예가 진 빚을 갚고는 자기 노예로 사갑니다. 그러면 노예는 자기를 산 주인을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했습니다. 대개는 하루 일을 하면 얼마 씩 쳐서, 빚이 얼마니까 얼마동안 일하면 빚이 다 갚아질 수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예가 된 사람은 주인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으므로, 주인은 그가 일한 품값보다 먹고 자는 것을 더 비싸게 계산해서, 결국 노예는 빚이 점점 더 늘어날 뿐이지 빚을 다 갚고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요즘도 여자가 사창가에 팔려 가면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옷값이니 화장품값이니 밥값이니 해서 빚을 더 뒤집어 씌워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1. 6년만 종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6년 이상은 종이 되게 할 수 없다고 명하십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2)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복되고 잘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그 어디에서라도 성공하도록 그들을 책임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게으르고 불성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면 살림이 망하고 빚도 질 수 있으며, 종으로 팔려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도 살림을 잘못하면 종으로 팔려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종으로 팔려 가면 6년 동안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7년째가 되면 주인은 값없이 그 사람을 놓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같은 이스라엘 사람을 영구히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히브리인을 노예로 부리는 법의 첫째 조항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규정해 주셨을까요?
첫째는, 동족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예가 된 사람은 이유가 어떻든 불행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덕을 보려고 합니다. 망한 사람을 노예로 사서 값싸게 일을 시켜 먹고 빚을 더 늘어나게 해서 영원히 부려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회사가 망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회사의를 싼값에 사서 되팔아서 돈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M&A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처럼 너도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6년 뒤에는 반드시 풀어주라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둘째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몇 년간 지속되면, 그동안은 빚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러고 나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 사람이 빚을 지면 사우디아라비아에 갔습니다. 그 더운데서 몇 년을 고생하면서 돈을 모아서 그동안 진 빚을 청산하고 다시 새 출발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기회마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예제도가 바로 그런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빚을 짊어진 사람은 6년 동안 남의 종이 되어 빚을 청산하고 다시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자비가 겸비한 법입니다. 자기가 진 빚을 공짜로 탕감 받는 법은 부지런한 사람만 희생되게 하는 불의한 법입니다. 한번 노예가 되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소망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6년의 고생을 통해서 값을 치르고,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하신 법은 참으로 공의롭고 자비가 가득한 법입니다.
남의 종이 되는 상황이 영구히 지속되면 사람이 천해집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계급이 생깁니다. 당시는 노예와 자유라는 계급이 존재하던 시대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계급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한 인간을 따로 지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잘못해서 빚을 지고 종이 되면 6년 정도는 고생을 해서 책임도 지고 정신도 차리도록, 임시적으로 종살이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7년째가 되면 반드시 해방시켜 주게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빚을 진 경우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언젠가는 인간이 자기 죄 값을 갚지 못해도 값없이 구원을 받을 때가 올 것임을 암시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값을 갚아주심으로 죄와 사망의 얽매임에서 자유를 얻게 될 날이 올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페이지마다 하나님의 긍휼의 복음이 숨어 있습니다.
셋째, 이것은 오늘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의 성격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연단이요 징계이지 영원한 형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을 주시고 연단을 하시지만, 그 고난이 절망이 되게 하시는 분은 결코 아닙니다. 고난 중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서면 하나님은 다시 자비를 베푸십니다. 성도가 아무리 고난 중에 있다 할지라도 그가 영원히 천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 노예를 6년간만 종이 되게 하시어 그를 영구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지 않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지금 너무 힘드십니까?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종이 6년이 차서 이제 종이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빚을 다 갚은 것도 아니고, 품삯을 받을 자격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15:13에 “그를 놓아 자유케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 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종살이 한 사람이므로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은혜를 주셨으니 너도 종을 후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도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것이 공평하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람은 부부관계, 부자관계 노사관계 등,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 모든 관계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파탄 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노조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현대자동차가 연초부터 또 파업을 해서 온 국민을 걱정스럽게 했는데, 회사는 이번에는 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고 강하게 나왔고, 국민들과 울산 시민들은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결국 다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민들이 현대 자동차를 불매운동하자고 나서는 판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을 사서 부리는 사장이 노동자에게 횡포를 부리고 착취 했는데 요즘에는 노동자가 사장을 힘들게 합니다.
현대자동차와 경쟁관계인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는 1950년에 파업을 하고는 그 후 50년이 넘도록 파업하지 않고 노사화합을 하고 있고, 2000년 이후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도요다 직원들은 회사에 자기들의 임금을 동결해 달라고 요구했고, 남은 돈으로 더 좋은 차를 만드는 연구에 써서 우리 회사가 계속 세계 1등 하게 해달라고 한답니다. 걸핏하면 공장을 중단하면서 파업이나 일삼으면서 도요다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현대가 이 도요다와 경쟁이 되겠습니까? 참 한심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회사는 성경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사를 합니다. 믿지 않는 회사는 직원들이 술을 마셔야 하고, 때로는 주일에도 근무를 하라고 하고, 양심에 꺼리는 일을 시키는 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실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 회사도 회사이니까 이윤을 내야 하는데, 회사를 교회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고 남만 헌신하기를 요청합니다. 직원들은 사장이 목회자처럼 해주기를 바라고, 사장은 직원들이 선교사처럼 몸으로 헌신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됩니까? 그러니 결국은 서로가 상처와 배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기업을 경영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실례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할 때에나 남의 회사에 직원으로 취직해서 일 할 때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고용증대와 세금납부와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것만으로 사업하는 보람을 삼을 수 있어야 하며, 직원을 종으로가 아닌, 살피고 책임져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직원을 돈 버는 수단으로 삼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기 보다, 그 사람들을 보살펴 직장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기독교적 사업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서 직원을 고용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직원을 대하여야 하고, 혹시 내가 잘못되어 남의 직원이 될 경우까지를 생각해서 직원을 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회사에 직원이 된 사람은 사장을 형으로 생각하되, 형네 사업이니까 나는 슬슬 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형님의 사업이 잘되도록 내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자기 일처럼 해주어야 합니다.
신약의 바울서신에는 주인과 고용인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6:5-9) 하나님은 사장과 직원의 하나님이십니다.
2. 귀를 뚫은 노예
요즘 남자들 중에서도 귀를 뚫어서 귀걸이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원래 구약시대에 귀걸이를 하는 남자들은 대개 이스마엘 대상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장사하기 위해서 사막을 가로질러 다니는 사람들인데, 몸에 많은 것을 걸치고 달면 좋은 줄 알고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귀를 뚫은 사람은 당연히 노예였습니다. 어떤 노예가 귀를 뚫었느냐?
3절에, “그가 홀몸으로 왔으면 홀몸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종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을 보장하라는 것이고, 가족 관계는 영구한 관계이지만, 종 된 것은 임시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 홀몸으로 들어왔는데 주인이 아내를 주어서 그 아내가 자식을 낳았을 경우에는, 아내와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하고 남자 종만 혼자 나가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장가갈 때에 여자의 부모에게 모할 이라는 결혼비용을 내야 했습니다. 종인 남자는 장가갈 때 돈이 없어서 주인이 그것을 대신 내 주었는데, 그것을 갚을 수가 없으므로 자기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법적으로 아내와 자식을 포기하고 나가서 얼마든지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자식을 놔두고 가야 하게 된 종이, 가만히 생각하니 차마 가족을 놔두고 떠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찾아가서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다."(5)고 말 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주인은 그를 재판장에게 데려가고, 재판장이 종의 의사를 확인한 뒤에, 그를 데리고 와서 집의 문설주 기둥에 대고 귀를 뚫게 했습니다. 주인의 집 문설주에 핏자국을 남게 하고, 자기의 귀에도 구멍을 내서 나는 영구히 주인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 사람은 종류가 다른 종이 됩니다. 이 사람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사랑의 노예였습니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된 사람이 귀를 뚫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식은 비천한 노예라기보다 귀한 노예라는 표식이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노예였지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헌신의 삶을 사는 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귀를 뚫는 고통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요즘 남자들이 그런 것을 알고나 귀고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남편 되신 그리스도께서, 종으로 세상에 남게 된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셔서,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하늘의 영광 보좌를 내어 버리시고 낮고 천한 종의 자리에 오셔서 나무에 못을 박히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히2:13, 요11:51- 52, 히2:7, 9:28)
그 노예의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땠겠습니까? 기한이 다 차서 남편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이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을 다시는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자식이 있다면 그도 잘은 모르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자기를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불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빠가 귀에 상처가 나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내와 자식은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당신 남편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아마 틀림없이 “귀의흉터”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서 가장 귀한 부분이 어디입니까?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입니다. 그 손의 상처는 주님이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약속의 상처인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람이 젊었을 때는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똑똑하면 똑똑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출세를 원하며 높은 자리를 쫓아갑니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너무 귀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너무 귀해서 얼마든지 더 크게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맹세하고 주님의 종이 되기로 작정합니다. 부자 되는 것, 성공하는 것, 유명해 지는 것을 다 포기하고 자기 자유의사로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귀를 뚫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교회도 많고 훌륭한 교인들도 많은데, 은혜가 말라갑니다. 교회가 퇴보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도 귀를 뚫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기 권리와 편의만 추구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우리교회에 귀를 뚫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그 교회가 좋은 교회,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누가 한가람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귀를 뚫으렵니까?
싸르트르의 ‘자유의길’ 이라는 작품 속에는 철저하게 매이기를 싫어하는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매이기 싫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떤 여자와 동거합니다. 어느 날 여자가 임신을 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계속 유산하라고 권유합니다. 이유는 결혼이나 아이에게 매이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이 원하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가치가 있을까요? 자랑스러울까요? 귀에는 뭔가를 주렁주렁 달았지만 아무것에도 매이기 싫어하는 것이 오늘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다릅니다. 자기의 자유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반납하고, 사랑하는 일을 위하여 귀를 뚫고 헌신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입니다.
3. 여종의 경우
7-11은 여종에 관한 규례입니다. 사람이 빚에 쪼들리다가 할 수없이 자기 딸을 종으로 파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의 종이 되었다면, 여종은 남종처럼 7년 만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여종을 일을 하게 하려고 판 것이 아니라 그 집의 아내로 팔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아내가 된 여자가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중국에서는 탈북 여성들이 나이 많은 중국 한족들에게 백만원에 아내겸 종으로 팔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를 기뻐하지 않아서 상관치 아니하면, 즉 아내 대우를 하지 않고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녀를 돈을 받고 다시 팔수가 있으나, 본국인에게만 팔고 이방인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서 인권을 유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유대인이 종이 된 경우를 말씀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지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이웃에게 복을 나누어주고 칭찬과 존경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하시지 남들에게 업신여기고 짓밟히는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존경 받으며 복을 나누어주며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삶은 실패와 고난이 예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만일 주인이 그녀를 자기 아들에게 아내로 주었다면, 그녀를 자기의 딸 같이 대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비록 돈에 팔려 종으로 와서 살고 있지만 남의 여자를 데려와서 자기 아들에게 주었으면 자부 대우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를 사온 주인이 그녀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었다면 그녀를 버려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것들은 공급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주지 않으려면 몸값을 받지 말고 석방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말씀들은 종을 대하는 법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도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귀히 여기시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인권을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당신이 만드신 당신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닮았고, 당신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잘 못해서 빚으로 남에게 팔려가 종이 될 경우가 생길지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서 영원히 망할 우리를 살리려고 당신이 직접 인간 세상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내신 것이 아닙니까? 인간의 존엄성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이 비록 죄 아래 있는 존재이고, 무능해서 빚을 질수 있고 동료에게 팔려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주님은 그들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셨고, 도리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부요, 자기의 권력, 자기의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을 이용하지만, 주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권력, 자기의 지위, 행복을 포기하시고 우리대신에 죽어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종으로 팔려온 사람이 나중에 종을 부릴 수도 있고, 돈이 있어서 남을 종으로 부리는 사람이 나중에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빚져서 남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꼭 담당해 주라는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법은 종을 어떻게 사용하고 대우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르치는 법인데, 바탕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귀하게 여기시는가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자기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서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고, 우리에게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당신의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본분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구원과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의 법을 즐거움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어디에 가도 형통하고 무슨 일을 해도 대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대우하시는 사람답게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