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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12:1~5
2014년 1월 5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설교: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다들 인사를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수없이 인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복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주는 복인지도 모르고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하고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시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인사를 바꾸어야죠?
“새해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 많이 받으세요.”옆 사람에게 축복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복이 뭐냐고 물으면 복이 뭐냐고 물으면 다 다르게 답을 합니다.
건강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 다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복,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런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마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에 팔복을 보세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온유한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말씀 듣기 전에 아주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정의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1)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이것을 믿습니까?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복은 그분에게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을 온전히 누리려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람들이 원하는 복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은 뭡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복은 그것은 복이라 생각도 안합니다. 그저 현세적이고 시각적인 것만을 복이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복은 복일수도 있으나 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건강”이 복일 수도 있으나 반드시 건강한 것만이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질병이 복일 수도 있습니다. 중병에 걸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게는 중병이 복일 수 있습니다.
만약 건강한 것만이 복이라면 몸이 약한 것은 저주인가요? 아닙니다.
약함도 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육체에 가시를 갖고 있으면서 말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오히려 육체의 질병이 복이 된 것입니다.
“재물”이 많은 것이 복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복이 아니라 때로는 “가난”도 복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부요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짓는다면 재물이 복이 아니라 독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의 복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하고 그 복을 간절히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2014년도 새해, 저와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2014년도 표어를 “너는 복이 될지라” 라고 정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복이 되고, 우리 교회가 세상에 복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 첫 주일인 오늘,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약속입니다. “너는 복 자체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쉽게 말하는 “너는 복덩어리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 자체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복 자체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은 누구든지 아브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복을 누리려면 어떤 것을 알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직접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의 아브라함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창세기11:27~32절을 보면 그는 원래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백년 또는 이백년을 훨씬 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브람의 집안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3형제를 두었는데 막내 ‘하란’은 아버지 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과 나훌은 장가를 들었는데 아브람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복은커녕 저주받은 집안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데라는 두 아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출발을 했는데 도중에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눌러앉아 정착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원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는데 중간에 주저앉고 만 것입니다. 이유가 뭔지는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원래 우상을 만들어 팔아서 먹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란에서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아버지 ‘데라’가 병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에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니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 살 때 75세에 아브라함을 낳았고 그 후 나훌과 하란을 낳았습니다.(11:26)
데라는 그 후 아들 하란이 죽자 가족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려고 출발하다가 다가 하란에 머물러 살았다는 것입니다. (11:31)
그러다가 창11장 32절에 의하면 데라가 하란에서 205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는 아브라함이 75세였기에 그 아버지 데라는 150세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떠난 때는 아버지 데라는 아직 죽지 않고 하란에 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와 함께 하란에 눌러 앉아 살고 있던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명령하십니다. 오늘 말씀 1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하란에 눌러 앉은 아브람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하란은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가나안 땅에도 우상숭배 문화는 가득했습니다. 이 세상은 그 어디에도 죄없이 살기 좋고 편한 생활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뉴질랜드 다녀온 분이 말합니다. 너무 좋아서 천국같답니다. 유럽을 다녀온 분들은 스위스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지상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렇지 그 어느 곳이나 다 문제 있습니다. 유럽은 지금 동성애로 성적 타락이 심각합니다. 그러기에 장소 문제 때문에 떠나라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옛 사람으로 살기에 익숙한 땅입니다. 그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들어 팔아먹고 살던 환경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회개할 수도 없는 환경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아버지와 친척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다 의지하고 살게 되기에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뭡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입니까? 그런 것도 문제겠지만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인간관계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과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주일에 교회에 오는 문제와 결혼식장에 가는 문제로 힘들어 하나요?
인간관계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관계도 무시 못 하고 하나님관계도 무시 못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떠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기 위해서는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복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요즘 한국교회의 공통적인 현상 중에 하나가 청년부와 중고등부 주일학교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청년들은 토요일을 불토라고 한답니다. 친구들과 불타는 토요일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정열을 불태우며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그러다가 새벽에 잠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들은 청년회 예배가 대부분 주일 오후에 드립니다. 그런데도 못나오는 것입니다. 밤새 컴퓨터 게임하고 밤새 놀다가 새벽에 들어와 오후까지 뻗어 자는 것입니다.
중고등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요일도 학원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밤늦게 와서스마트폰과 놀고 컴퓨터 게임하다 새벽에 잠이 듭니다. 그러니 모처럼 쉬는 주일에 오전에는 자느라 정신없습니다. 부모들은 그것이 불쌍해서 깨우지 않고 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예배를 못 드린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 것에 꽉 붙들려 있습니다. 텔레비전,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자면 시간이 없다고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붙잡고 있는 세상 것을 떠날 때 하나님이 찾아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오셔서 떠나라 하십니다. 어디서요? 고향 친척, 아비집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뭡니까? 내가 즐기는 삶, 내가 평안하다고 여기는 환경입니다.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 덩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2. 나를 복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본문 2절을 약속하십니다. 다같이 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 이루고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러분! 누가하신다고요? “내가”입니다. 여기 “내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람의 현실과 전혀 안 맞습니다.
왜죠?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아브람에게는 이때까지 자식 하나 없습니다. 그러니 75살이나 먹은 사람이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룹니까? 어떻게 이름을 창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좀 황당한 약속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거기다 “너는 복이 될지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찌 되었나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그 아브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아브람의 믿음을 배우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누가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따릅니다. 아브라함 링컨, 들어보셨지요?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심히 많습니다. 육신의 후손뿐만 아니라 영적인 후손도 엄청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영적인 후손입니다. 그러니 가장 큰 민족을 이루었다고 해야 합니다.
누가하셨다고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2절 끝부분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너는 복이 되어라” 가 아닙니다. “내가 너를 복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편안한 삶, 건강, 돈, 자식들 형통……. 물론 이런 것도 복입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것은 복의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뭐가 복일까요? 복은 사람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자체를 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사람다우면 그게 복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을 믿는 것도 복이지만 예수님 자체가 복입니다. 아멘?
우리가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체를 하나님이 복으로 만드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라는 존재가 복이 되어야 합니다. 왜죠? 내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복을 누려야 합니다. 왜냐? 하나님이 나를 복덩어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왜 우리가 남에게 복이 못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속에 예수님이 없으면 내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내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을 보세요. 여러분 때문에 복 받은 사람이 있나요?
그러면 여러분이 복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 주변 사람이 여러분을 통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 신앙을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는 “국민행복의 시대”는 영원히 이루지 못하는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런 구호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의 행복은 경제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살아도 만족함이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보아도 사람은 절대로 만족해하지 않고 항상 원망불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진국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복지제도가 사람을 행복하게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사람차제가 복이 되지 않으면 복된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복이 될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셔야 그게 진짜 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에게 오셔서 “너는 복이 될지어다” 하시는 그것이 복입니다.
따라서 하세요. 나는 복입니다. 나는 복덩어리입니다.
3. 현재의 환경과 현실만 보면 안 됩니다.
창세기 12장 후반부를 보세요.
아브라함은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10절을 보세요.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래서 살기 위해 애굽으로 갔다가 거기서 아내를 빼앗긴 적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부인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부인의 권유로 첩을 보았는데 그사이에 자식이 생기자 본부인과 첩이 갈등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첩과 자식을 쫓아 내보냈겠습니까? 눈앞에 전개되는 환경과 현실은 복이라곤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아브라함은 점점 더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애굽에 다녀온 후 조카에게 땅을 양보합니다. 그리고 그 조카가 포로로 잡혀가자 목숨 걸고 전쟁터에 뛰어 들어가 구해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정성으로 대접하였는데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소돔성에 롯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도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아브람의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시고 그를 성장시키고 변화시켜 주시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누가 만드셨나요?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오해하기는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부터 믿음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저 약속만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니 애굽에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부인을 동생이라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건 저사건 통해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결국 복덩어리가 되게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도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환경과 형편만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약속은 아브람에게만 주신 약속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덩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이 되면 가족들이 복을 누립니다.
내가 복이 되면 자녀들도 복이 됩니다. 내가 복이 되면 우리 교회도, 그리고 우리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복덩어리 만들기 위해 많은 훈련과 연단을 시킵니다.
하나님은 여기 최목사를 먼저 불러주셔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더니 저를 도구로 쓰셔서 저의 집안 식구들을 다 구원 얻게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어머님도 다 예수 믿고 6남매 형제자매들이 다 예수님을 믿어 모이면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현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새해를 맞아하신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을 하나님이 여러분과 우리 교회에 주신 약속인 것을 믿고 나가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복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여 나아갈 때 누구나 복이 됩니다.
따라서 합시다. “당신은 네게 복입니다.” “나도 당신에게 복이 되길 바랍니다.”
이 말을 믿고 아브라함을 말씀을 따라갑니다.
4절을 보십시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말씀 따라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환경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주신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 붙잡고 2014년도 한해를 복이 되는 한해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http://cafe.daum.net/ilhwan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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