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아주 뻔뻔합니다.
암 수술을 하고서 정말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나는 아주 미련한 사람이라서 어려서부터 아픈 것을 잘 참는 편이라서 진통제 없이도 그냥 견딜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가래가 들끓어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도 할 수 없고, 물도 마실 수 없고, 아픈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숨도 쉬게 되고, 코 줄로 물도 주사기로 마실 수 있게 되고, 소형 칠판을 놓고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되니까 여러 가지 소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낫게 해 주신다면 정말 잘 살겠다고 철석같이 약속도 하고, 통증을 이기려고 묵상도 하게 되고, 책도 쓰게 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좋아지자 그 때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결심들은 다 눈 녹듯 사라지고 아주 내가 잘나서 나은 것처럼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것처럼, 언제 그런 기적을 베풀어 주셨느냐는 것처럼 그렇게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논어의 술이 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도,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子曰 ;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徒,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배움을 익히지 못하는 것과 의로움을 듣고도 옮아가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이다.”
공자는 덕을 닦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덕을 닦는 것은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덕을 닦는 것을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덕을 닦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친절하게 인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덕을 닦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봉사하고 사는 것이 덕을 닦는 것입니다.
공자는 배움을 익히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갖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며 아는 것은 배운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을 익히는 것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이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면허시험을 볼 때는 잘 지키면서 운전면허를 따면 곧 난폭운전을 하는 것이 배움을 익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이 배움을 익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걱정 꺼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그 의로움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의롭게 살지 못합니다. 이제는 정의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무조건 대세에 따라서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혼란스럽습니다. 정의로워야 하는 기관에서 부당하고 부정하게 활동하기도 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정치가들이 의로움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의롭게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걱정거리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걱정거리입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잘못합니다. 그래서 죄가 더 무겁습니다. 예수님도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뉘우칠 줄 모르고 더 뻔뻔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질책하십니다. 기적을 보고도 조금 있으면 까맣게 망각한 채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회개할 줄도 모르고 제 잘난 멋에 기고만장(氣高萬丈)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또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