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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군(梁山郡) ‘징심헌(澄心軒)‘ 한문학 3.> 총7편 中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건물 터. 징심헌은 양산읍 객사의 서편에 있었다(양산호텔 터). 오랫동안 퇴락하여 방치되었던 것을 1680년(숙종 6)에 양산군수 조헌경(曺憲卿)이 중건하고 서헌을 지었으나 1687년에 객사와 함께 화재로 소실되었다. 1689년(숙종 15)에 양산군수 유정휘(柳挺輝)가 다시 영건(營建)했으나 1697년(숙종 23) 겨울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양산의 옛 누각인 '징심헌(澄心軒)'과 '쌍벽루(雙碧樓)'와 관련한 박제상 흠모 시에 박제상 공의 출신지에 대한 시구가 기록돼 있다. 이들은 당시 삽량주(현 양산)의 옛 목조누각에서 박 공을 고향인 양산에서 기리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탁영 김일손의 〈탁영집〉에 실린 징심헌 차운(次韻)에는 '한줄기 긴 강물은 만고에 흐르는데, 쓸쓸한 대나무 잎은 몇 번이나 가을을 넘겼을까. 효충동 마을에 이제 주인이 없으니(孝忠洞裏今無主). 푸른 풀은 해마다 저어기 시름 자아내구나'라고 기록돼 있다. 이 시의 원제는 <양산군징심헌근차점필선생운(梁山郡澄心軒謹次점畢先生韻)〉으로 시제 말미에 '양산군은 신라 삽량주이다. 박제상이 주간(州干)으로 눌지왕의 아우 미사흔을 보호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적(賊)에게 해(害)를 당하였다'하고 시문 말미에 '효충동은 군 서쪽 5리에 있으며 박제상과 그의 아들이 살던 곳이다'고 부기해 두었다. 다음 여러 문인들이 징심헌을 노래하거나 징심헌과 관련하여 남긴 시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양산 징심헌[梁山澄心軒] / 서거정(徐居正 1420∼1488)蒼翠玲瓏萬竹林 일만 대숲에 비취빛이 영롱하여
一軒雲物更澄心 온 누각 풍물이 다시금 마음 맑히네.
風吹細浪鱗鱗玉 바람이 가는 물결 일으켜 비늘마다 옥이요
月透疎簾徒徒金 달빛이 성근 발에 비쳐 부서진 금가루로다.
欲喚仙曺騎鶴去 신선을 부르자니 학을 타고 가버리고
已將佳句動龍吟 좋은 시를 가지고서 용의 소리로 읊조린다.
憑欄有思無人識 난간에 기대 가진 시름 아는 이가 없고
段段離愁夜向深 마디마디 이별의 근심 밤은 깊어만 가네.
(2) 양산 징심헌의 운을 따라 2수[次梁山澄心軒韻 二首] / 홍귀달(洪貴達 1438∼1504)
絃歌太守此風流 현악과 노래 소리 태수의 이런 풍류
滿地黃雲歲有秋 땅에 가득 누른 구름 풍년이 들었네.
坐對江山詩又酒 강산을 마주하여 시 읊고 술 마시니
不知身世有窮愁 몸에 가진 무궁한 시름 모두 잊었네.樓下彎彎碧玉流 누각 아래 둥그렇게 벽옥이 흘러가고
一尊賓主正澄秋 손님과 주인의 한 두루미 술, 정녕 맑은 가을일세.
欄干徙倚欲明月 난간에 옮겨 기대니 달이 밝으려는데
漁笛一聲吹客愁 고깃배 피리 한 소리 객의 시름 일으키네.
(3) 양산 징심헌에서[題梁山澄心軒] / 성현(成俔 1439∼1504)
澄心軒下水平堤 징심헌 아래 강물이 강둑과 평평한데
雲捲輪山日脚低 구름 걷힌 운산에 햇발이 낮네.
推枕西窓飛雨細 베개 밀고 일어나니 서창에 가는 비 날리고
竹林深處鷓鴣啼 죽림 깊은 곳에 자고새가 우지지네.
(4) 양산 징심헌, 점필재선생 운을 따라[梁山郡澄心軒 謹次佔畢先生韻] 양산군은 신라 삽량주 박제상이 주간(태수)으로써 보호했고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 때문에 왜적에게 해를 입었다(梁山郡 新羅歃良州 朴堤上以州干 保護訥祇王弟未斯欣 因此爲賊所害). / 김일손(金馹孫 1464~1498)
一帶長江萬古流 한 구비 긴 강은 만고에 흐르고
蕭蕭竹葉幾經秋 쓸쓸한 대 잎은 몇 년이나 겪었나.
孝忠洞裏今無主 효충동 안에는 이제 주인이 없어
綠草年年暗喚愁 푸른 풀만 해마다 몰래 근심 자아낸다.
충효동은 군(郡)에서 서쪽 5리에 있고 박제상 및 그의 아들 누랑(婁琅 백결百潔)이 거처한 곳이라고 전한다.(忠孝洞 在郡西五里 堤上及其子婁琅所居處云)
원운(原韻)
人物當時第一流 당시에 제일가는 인물인 박제상,
貞忠空想割鷄秋 닭 잡는 때에 절개 충성이 헛된 생각인가.
分明冤血蒹葭上 분명 원통한 피 갈대위에 뿌렸어라
猶帶滄溟萬古愁 여전히 저 바다가 만고의 시름일세.
(5) 양산 징심헌의 운을 따라[次梁山澄心軒韻] / 김안국(金安國 1478∼1543)
鉤簾河漢近人流 발 걷으니 은하수가 사람 가까이 흘러들고
爽氣常留九月秋 상쾌한 기운 항상 늦가을처럼 머무르네.
半夜魂淸不成夢 한 밤중 정신이 서늘하여 꿈을 이루지 못하고
憑欄獨詠反牢愁 난간에 기대 홀로 읊으니 근심만 도로 깊어지네.撲撲年光逐水流 터벅터벅 세월이 물을 따라 흘러가
頭顱不覺颯成秋 서늘한 가을이 머리 앞에 닥친 줄 몰랐네.
南來勝地知多少 남방에 와서 명승지가 몇몇 곳이더냐.
不遣皇華暫解愁 황화 사신 근심을 잠시도 풀어주지 아니하네.
(6) 양산의 징심헌에서 밤에 앉아서 소견을 기록하다[梁山澄心軒夜坐記所見]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風聲碎竹塢 바람 소리는 대밭을 부순 듯하고
月影晃蘭皐 달빛은 난초 언덕에 빛나는데
客子少秋睡 이 나그네는 가을 잠이 적어서
開窓披縕袍 창문 열고 솜옷을 걸치고 나가니
昏花落遙野 시야는 먼 들판에 어른거리고
灝氣如波濤 천상의 맑은 기운은 파도와 같네
魚跳乍撥剌 고기는 뛰며 활발하게 노닐고
鸛駭鳴聲豪 황새는 놀라 큰 소리로 울어대며
星河蘸澄碧 은하는 맑고 푸른 강에 잠겼는데
橫泛一雙舠 한 쌍의 거룻배가 강을 횡단하누나
循除瞰樓閣 섬돌을 돌며 누각을 쳐다보니
岑寂攙天高 하늘을 찌를 높고도 조용해라
朝來敲榜地 아침마다 매질하던 마당에는
只有絡緯繰 여치의 실 잣는 소리만 들리네
忽覺夜氣勝 문득 깨닫건대 밤기운 상쾌하여
散髮情陶陶 머리 풀어헤치니 기분이 흐뭇해라
還恐鷄早叫 도리어 닭이 울고 날이 새면은
冠帶走塵勞 관복 입고 직무에 임할게 염려로세
(7) 양산의 징심헌에서 차운하다[梁山澄心軒次韻] 김종직(金宗直 1431~1492)
人物當時第一流 인물이 그 당시에 제일류였으니
精忠空想割雞秋 할계하던 날에 이미 충성 공상했었지
分明怨血蒹葭上 분명히 갈대 위에 뿌려진 원통한 피는
留得滄溟萬古愁 큰 바다에 만고의 시름을 남기었도다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양산군(郡)의 태수(太守)가 되었다가 뒤에 일본(日本)에서 순절하였다.
煙景迢迢望欲流 봄 경치 아득하여 시야가 끝이 없는데
客情寥落却如秋 나그네 정은 쓸쓸해라 도리어 가을 같구려
世間堅白悠悠事 세간의 시비 분쟁 부질없는 일에 대해선
坐對澄江莫說愁 맑은 강 마주해 앉아 시름을 말하지 말아야지
[주] 할계 : 지방관이 된 것을 이름.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재(武城宰)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사를 펴자, 공자가 그 곳을 지나다가 자유에게 장난삼아 이르기를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割雞焉用牛刀]” 하는 데서 온 말이다.
(8) 양산의 징심헌 아래서 배를 띄우고 노닐면서 사렴에게 바치다[梁山澄心軒下泛舟呈士廉]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剩水綠鱗鱗 황량한 푸른 물에 잔물결 이니
江湖興轉新 강호의 흥이 한층 새로워지네
斷崖堪蠟屐 높은 절벽엔 납극을 신을 만하고
落日且垂綸 석양에는 또 낚시줄을 드리우도다
折竹礙黃帽 끊어진 대는 노란 모자에 걸리고
跳魚開白蘋 뛰는 고기는 마름꽃을 헤치누나
莫嫌無粉黛 미인이 없음을 싫어하지 말라
官道有行人 관도에는 행인들이 있다오
幽賞須臨水 조용한 감상은 의당 물가가 좋은데
高樓未析酲 높은 누각에서 술을 깨지 못하네
柳邊橕畫艇 버드나무 가엔 그림배 대여 있고
竹下響紋枰 대나무 밑엔 바둑판 소리 울리누나
群吏參鷗鷺 아전들은 갈매기 백로와 어울리고
遙燈替月星 먼 등불은 달과 별처럼 빤짝이네
更深仍信棹 더 깊이 바람 따라 노질해가니
巾屨露華淸 두건과 신에 이슬빛 맑기도 해라
[주] 납극 : 밀을 칠하여 반들반들하게 한 나막신을 말한다.
(9) 양산 징심헌의 운을 따라 2수[次梁山澄心軒韻] 二首 / 송순(宋純 1493∼1582)
千疊晴巒蘸碧流 천첩 맑은 봉우리 푸른 물에 담기고
一林脩竹貯寒秋 한 숲의 대나무는 찬 가을을 모았네.
長敎爽氣穿簾入 상쾌한 기운 항상 발을 뚫고 들어오니
高枕今宵謝客愁 오늘밤엔 베개 높이 베고 객수를 사양하노라.
繞郭淸江日夜流 성곽 둘러 맑은 강은 밤낮으로 흐르고
漾風涵月幾經秋 바람 일렁이고 달빛 담아 세월을 얼마나 겪었더냐.
坐來添得瀟湘韻 앉아보니 소상강의 운치 더해지는데
誰向澄心更着愁그 누가 징심헌에서 다시 근심을 붙이리.
(10) 양산 징심헌 운을 따라[次梁山澄心軒韻] / 이제신(李濟臣 1536∼1583)
山光雲影俯淸流 산 빛과 구름 그림자 속에 맑은 물을 굽어보니
六月危欄爽欲秋 유월의 높은 난간 가을처럼 상쾌하네.
白鳥相飜晞竹露 흰 새는 뒤척이며 대 이슬을 말리는데
羨他元自不知愁 부럽다 스스로 근심을 모르는고야.
(11) 양산 징심헌의 운을 따라 2수[次梁山澄心軒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陳跡難尋水急流 물은 급히 흘러 묵은 자취 찾기 어려운데
邇來二十四回秋 그 동안 스물네 번 가을이 돌아왔네.
逢人說到當時事 사람 만나 당시 일을 얘기하자니
無賴風烟暗起愁 무뢰한 풍경이 몰래 근심을 자아내네.
檻外長江空自流 난간 밖엔 긴 강이 괜히 절로 흘러가고
鏡中霜髮不禁秋 거울 속엔 흰머리에 가을을 금치 못하네.
把盃更覺吾衰甚 잔 잡고 다시금 나의 노쇠함을 깨닫나니
不作歡悰只作愁 기쁜 마음 짓지 않고 근심만 자아내는구나.
(12) 양산 징심헌 운을 따라 3수[次梁山澄心軒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檻外春江深不流 난간 밖의 봄 강물 깊어서 흐르지 않고
綠蘋風縷慾生秋 푸른 마름 흔드는 실바람 가을처럼 서늘하네.
晩雲冪洞平林失 저물녘 구름이 골짝을 덮어 숲이 사라지니
三疊山形摠作愁세 첩 산 모습이 모두 근심을 자아내네.
路從南去水東流 길은 남쪽으로 가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데
春氣念人倍却秋 봄기운이 사람 붙드는 게 가을보다 더하네.
飛絮落花飄蕩盡 버들개지 지는 꽃은 모조리 날려 사라지고
鬢添霜雪骨縈愁 귀밑머리 서리 눈 내려 뼈까지 근심에 휩싸이네.
三面山圍一水流 삼면으로 산이 두르고 한쪽에 강물이 흐르는데
桃含春意竹含秋 복사꽃 봄빛을 머금고 대는 가을을 머금었네.
滿堂風露仙區是 당에 가득한 바람 이슬, 이곳이 신선 사는 곳,
願借瓊漿洗客愁 경장을 빌어다가 객수를 씻고자 하네.
(13) 양산 징심헌 운을 따라 2수[梁山澄心軒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少時曾泝此江流 젊은 시절 일찍이 이 강물 거슬러서
一棹頻披蘋白秋 마름풀 하얀 가을을 배 하나로 자주 헤치고 다녔지.
遼鶴歸來人事改 요동 학이 돌아오자 사람 일이 바뀌어서
滿城寒月也增愁 성에 가득 차가운 달이 근심을 더하네.
朝宗遙向海門流 조종하는 강물은 멀리 해문으로 흘러들고
歸雁頻驚漢北秋 돌아온 기러기는 한양의 가을에 자주 놀라네.
日日王程詩作課 날마다 왕국의 노정에 시로 일과 삼으니
裁愁未了轉生愁근심을 잘라내지 못하고 도리어 근심 생기네.
(14) 선위사 이덕형 명보의 양산 징심헌 운을 따라[次宣慰使李明甫(德馨) 梁山澄心軒韻]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客裏淸愁强自寬 나그네 맑은 시름을 억지로 삭이려고
一樓聊與講餘歡 누각에서 애오라지 남은 기쁨 나누었네.
張騫仗節方窮漢 장건이 왕명 받고 은하수 끝까지 간 때요
王粲辭家政倚欄 왕찬이 집을 떠나 난간에 기댈 때로다.
落日歸鴉金背閃 지는 해에 돌아가는 갈까마귀 금빛이 등에 번득이고
晩汀春水鏡光寒 저무는 물가 봄 강물은 거울 빛이 차갑다.
釣舟忽繫層城下 문득 낚싯배를 층층 성 아래 매더니
白白江魚上玉盤 희디 흰 물고기가 옥 소반에 올랐구나.
(15) 양산징심헌 하 범주 정사렴[梁山澄心軒下泛舟呈士廉]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幽賞須臨水 그윽한 감상은 물에 가야 하나니
高樓未析酲 높은 다락에는 아직 술이 덜 깨었도다.
柳邊撑畫艇 버드나무 곁에는 그림배 매여 있고
竹下響紋枰 대나무 밑에서는 바둑판이 울리네.
群吏參鷗鷺 뭇 아전으로 구로가 참여하고
遙燈替月星 먼 등불은 달과 별 대신했구려.
更深仍信棹 밤이 깊어 이내 노를 젓나니
巾屨露華淸 수건과 신에는 이슬빛이 맑아라.
(16) 선위사(宣慰使) 이명보(李明甫) 덕형(德馨) 의 ‘양산징심헌(梁山澄心軒)’의 운을 차운하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客裏淸愁强自寬나그네의 맑은 시름 애써서 억누르고
一樓聊與講餘歡 누에 올라 애오라지 남은 즐검 구하누나
張騫仗節方窮漢 장건은 절월 잡고 은하수의 근원 찾고
王粲辭家政倚欄 왕찬은 집 하직하고 난간에 막 기대었네.
落日歸鴉金背閃 석양빛에 돌아가는 까마귀 등 번쩍이고
晚汀春水鏡光寒 저물녘에 봄 못물은 거울처럼 차가웁네
釣舟忽繫層城下 낚싯배 문득 와서 성 아래다 대더니만
白白江魚上玉盤 희디 흰 강물 고기 옥소반에 오르누나.
[주1] 장건(張騫)은 …… 찾고 : 장건이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은 것을 말한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무제(武帝)가 장건으로 하여금 대하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槎]을 타고 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 하였다.
[주2] 왕찬(王粲)은 …… 기대었네 : 한(漢) 나라 말에 왕찬(王粲)이 난을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해 있으면서 뜻을 얻지 못함에 누각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읊어 시름을 달랬다. 《三國志 魏志 卷21 王粲傳》
(17) 선위사(宣慰使)가 지은 ‘징심헌(澄心軒)’ 시의 운을 차운하다. 2수. 징심헌은 양산(梁山)에 있다. 1수는 원집에 들어 있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陡覺登臨眼界寬 올라 보니 눈앞이 툭 트인 걸 알겠거니
江山爲我助淸歡 강과 산이 나를 위해 맑은 기쁨 선사하네
湖光靜繞淸羅帶 호수 빛은 고요하게 비단 띠를 둘러 있고
岳色斜侵白玉欄 산 빛은 비스듬히 옥난간에 스며드네
淇竹已供新賞好 물가의 대숲 이미 감상하기 좋거니와
海鷗寧許舊盟寒 갈매기가 그 어찌 옛 맹세를 저버리리
歸程更擬尋眞境 돌아올 때 다시 이곳 경치를 찾아와서
一笑應須十日盤 한 웃음에 모름지기 열흘 동안 노닐리라
[주] 옛 맹세(白鷗) : 전원(田園)으로 돌아가 살리라는 백구(白鷗)의 맹세를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갈매기와 몹시 친하게 지냈는데, 갈매기를 잡을 마음을 가지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위에서 날면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마음을 툭 터놓고 상대를 대하거나, 세상을 피하여 은둔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8) 선위사(宣慰使)의 징심헌(澄心軒) 운에 차운하다. 양산(梁山)에 있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客裏淸愁强自寬 객지의 맑은 시름을 애써서 억누르고
一樓聊與講餘歡 누상에서 애오라지 남은 즐거움으로 노니네
張騫杖節方窮漢 장건이 절월 잡고 은하수의 근원을 찾으려는 듯
王粲辭家政倚欄 왕찬이 집을 떠나 난간에 막 기대인 듯
落日歸鴉金背閃 석양에 돌아가는 갈까마귀 등에 금빛 번쩍이고
晩汀春水鏡光寒 저문 강 봄물은 거울 빛처럼 맑고 차갑네
釣舟忽繫層城下 낚싯배가 문득 와서 성 아래다 대더니만
白白江魚上玉盤 하얀 강물고기가 옥소반에 오르더라
[주1] 해사록(海槎錄) : 박물지(博物志)에, 근세에 해변에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해마다 8월이 되면 매우 큰 뗏목[槎]이 떠서 지나가는데 왕복하는 것이 시기를 잃지 않으므로 그 사람이 양식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그 뗏목을 타고 갔더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 성곽(城郭)과 인가가 있었다. 바라본즉 집안에는 직녀(織女)가 많고 한 남자가 소를 이끌고 물가에서 물을 마시게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이곳이 어디요?’ 하고 물었더니, ‘성도(成都)에 사는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으시오.’ 하였다. 그 사람이 뒤에 엄군평에 물은즉 ‘어느날 어느날에 객성(客星)이 두우성(斗牛星)에 범하였다.’ 하더라고 적혀 있다. 또 그 사람이 직녀(織女)의 베틀을 바친 돌[支機石]을 가져 왔다는 말과 또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다가 뗏목을 타고 은하수에 다녀왔다는 전설도 있다.
[주2] 왕찬이 집을 떠나 난간에 막 기대인 듯 : 한(漢) 나라 말기에 왕찬이 난을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있을 때 뜻을 펴지 못하여 누각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읊어 시름을 달랬다 한다.
<경남 양산군(梁山郡) ‘용당(龍堂)‘ 한문학 4.> 총7편 中
낙동강 삼랑진과 원동사이 강폭(江幅)이 가장 좁은 용당나루를 옛날에는 가야진(伽倻津) 혹은 옥룡연(玉龍淵)이라 했다. 이곳이 용당(龍塘)이며 건너편 산이름은 용산(龍山)이다. 신라시대 이래 조선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에서 강신제(江神祭)를 지내던 곳으로 문헌에만 기록돼 있는 가야진(伽倻津)이 4대강 살리기 사업구간에 포함된 경남 양산 낙동강변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전통시대 강을 신(神)으로 여겨 제사한 곳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물연구원(원장 정의도)은 4대강(낙동강) 살리기 사업구간 중 제10ㆍ11공구로, 준설에 따른 토양 절취가 예정된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613번지 일원 강변 충적지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와 함께 제사에 사용했음이 분명한 15~16세기 조선 초기 무렵 각종 분청자를 다량으로 수습했다고 17일 밝혔다. 이곳에 신라시대 이래 낙동강의 신을 제사한 가야진(伽倻津), 혹은 가야진사(伽倻津祀)가 있었다는 각종 문헌 기록들을 종합하면, 이번 발굴을 통해 드러난 건물터가 바로 이 시설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양산의 낙동강변에는 남황산하(南黃山河)라는 국가 시설이 있어 대(大)ㆍ중(中)ㆍ소사(小祀)의 3등급으로 나뉜 국가 제사 체계에서 중사에 속했다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가야진 혹은 가야진사가 있었으며, 역시 중사에 속했다고 한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는 운항의 안전이나 홍수 방지 등을 기원하며 주요한 강을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네 강은 사독(四瀆)이라 불러 국가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세종(世宗)때 황룡(黃龍)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물 때 비를 빌면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3년(1421) 4월13일 왕조실록에 “용(龍)이 경상도 가야진(伽倻津)에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15년(1433)에 병조에서 사복시 제조와 함께 논의하여 아뢰기를,“경상도 양산군 가야진의 옥룡연과 안강현 형제포의 온지연과 전라도 나주의 현도등지에는 전설에 용이 있는 곳이라고 하오니, 그 도 감사에게 적당히 목장을 쌓아 여러 목장의 순 백색 암말을 골라서 그곳에 들여보내어 시험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고 기록되어있다.
(1) 양산(梁山)의 용당(龍堂)을 지나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蓮峯玉立擁江湄 연봉이 우뚝 솟아 강가를 둘렀는데
龍所潛兮地亦奇 용이 사는 곳이라서 지세 역시 기이하네.
王國年年降香幣 나라에서 해마다 향폐 내려 제사하니
茫乎利澤天南陲 하늘 남쪽 끝 지역에 은택 널리 퍼지네.
爲問洛東大江水 내 묻노라 낙동강을 흐르는 저 강물아
幾時過我靑霞城 어느 때 나의 고향 안동 청하성을 지나왔나
我今與汝同歸海 내 지금 너와 함께 바다로 나가면서
千里相隨應有情 천릿길을 함께 가니 더욱 정이 드누나.
--청하성(靑霞城)은 안동(安東)에 있다.--
(2) 용당 위에서[上龍堂] (梁山地) / 정사룡(鄭士龍 1491∼1570)
朝曦呑吐掣金蛇 아침 햇볕이 가려있다 비치니 온통 금빛으로 번쩍이는데
鋪簟磨銅萬頃遐 드넓고 먼 곳에 펼쳐진 자리에서 연마한 둥근 구리거울이 솟아났다.
百丈牽船催上峽 밧줄로 배를 끌며 위쪽 골짜기로 재촉하구나.
茲遊不愧向人誇 이 유람 부끄럽지 않으니 남에게 자랑하리.
芬苾時修按舊經 향기가 때마다 번져 옛 경전이 생각나는데
功孚廣利殿南溟 넓은 남쪽바다 수중궁전의 광리왕(廣利王)이 빛나네.
喬松巢鶴認祠屋 높은 소나무 학의 둥지를 사당집으로 아는지,
來往舟人盡乞靈 오고가는 뱃사람 모두가 영험을 빌구나.
[주] 광리(廣利) 남명(南溟) : 소식(蘇軾)의 《동파집(東坡集)》 광리왕소(廣利王召)에, “내 일찍이 취하여 누워있는데 꿈에 어두귀신(魚頭鬼身)으로 생긴 자가 해중(海中)으로부터 와서 광리왕(廣利王)이 부른다고 말하여 내가 따라서 수정궁전(水精宮殿)에 나아갔었다. 광리는 패검관복(佩劍冠服)으로 나오고 뒤이어 동화진인(東華眞人) 및 남명부인(南溟夫人)이 나와 한 발 남짓한 교초(鮫綃)를 내놓으면서 나에게 명하여 시를 쓰라고 하기에 나는 부(賦)하기를 ‘天地雖虛廓 惟海最爲大 聖王皆祀事 位尊河伯拜 祝融爲異號 怳惚聚百怪 …… 若得明月珠 可償逐客債’라 하여 써서 올리니 광리 제선(廣利諸仙)이 보고 모두 묘(妙)를 칭(稱)하는데, 옆에 한관 잠자(冠簪者)가 있어 별상공(鼈相公)이라 이르며 진언(進言)하기를 ‘객(客)이 기휘(忌諱)를 피할 줄 모릅니다. 축융(祝融)이란 글자가 왕(王)의 휘(諱)를 범했습니다.’ 하자, 왕이 대로(大怒)하였다. 나는 물러나와 탄식하기를 ‘가는 곳마다 상공(相公)의 시괴(廝壞)를 당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3) 용당 아래에서[下龍堂] 梁山地 / 정사룡(鄭士龍 1491∼1570)
登臨搖落九秋風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바람 맞고 오르며
一覽天光襯海中 한번 바라본 맑은 하늘빛이 바다에도 드리웠네.
七點若供殽案飣 칠점산(七點山)에 공양하듯 책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아도
三叉直作鏡奩空 곧게 만든 상자 같은 삼차수(三叉水) 나루터는 공허할 뿐.
已從芻飯連朝闕 거친 밥을 쫓아 살다보니 조정까지 이어졌으나
豈意杯觴五馬同 어찌 알았으랴 술잔을 들고 외직으로 나갈 줄,
欲趁潮肥催解纜 조수 뒤 따라 갈려고 닻줄 풀기를 재촉하는데
蓬山猶隔晩雲東 봉래산은 저문 구름 동편 이득한 곳이라네.
[주1] 칠점산(七點山) : 경남 김해(金海) 남쪽 포구(浦口)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산. 7개의 수려한 봉우리를 갖고 있다고 하여 `七點山'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주2] 삼차수(三叉水) : 낙동강 하류 삼각주는 세 갈래(동·서낙동강과 평강천) 물줄기로 갈라놓았다. 이에 삼차강(三叉江) 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주3] 오마(五馬) :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 보통 지방 장관의 상징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外職으로 나가는 사람의 比喩로 사용하였다.
(4) 양산 용당[梁山龍堂]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최기(崔沂)가 따라왔다가 이별함에 이에 현판 시운에 차운하여(舊知崔沂追來以別 仍次板上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故人追我到龍堂 옛 친구가 나를 따라 용당에 이르렀는데
別意臨江誰短長 강변에서 이별의 슬픔 그대와 나 누가 더할꼬.
一棹移來分去住 노 한번 저어 옮겨가니 가고 머물 사람 나뉘었구나.
眼回煙樹限微茫 눈 돌려 바라보니 뽀얀 안개 덮여 어슴푸레하네.
行裝一劍意堂堂 행장 속에 칼 하나 품은 뜻 당당한데
坐拂三千白髮長 편치 못한 자리에 백발이 삼천장(三千丈) 길어지네.
海曲煙霞衣盡濕 후미진 바닷가의 안개와 노을에 옷이 흠뻑 젖어
臨江獨立更蒼茫 강변에 홀로 서니 다시 아득하기만 하여라.
[주] 최기(崔沂)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쌍벽당(雙碧堂). 고려의 문신 문정공 최승로(崔承老)의 후손이다. 최기는 양산품관 시절 울산의 서생포, 기장의 두모포 및 임랑포 왜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정세를 탐지하여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조카 최흥국(崔興國)과 함께 흥해(興海)에서 양산으로 이주해 살았는데, 임진왜란 당시 최흥국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왜적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대구판관을 제수 받았다. 이어 경주부윤으로 승진하고 서악서원(西岳書院)을 중건하였다. 벼슬은 호조참의(戶曹參議)까지 올랐다.
(5) 양산 도중에 느끼는 바가 있어[梁山途中有所思] / 오횡묵(吳宖默,1834~?)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총쇄록(叢瑣錄).
山欲靑時草欲綻 산이 푸를 때 풀은 꽃을 피우려하고
白鷗片片等閑回 갈매기는 조각조각 한가히 돌아오네.
回憶哺飢年已久 돌이켜 생각하니 궁핍한 생활, 해를 넘긴지 오래되었는데
居人誰識此重來 식구들이 여기 다시 돌아옴을 누가 알랴.
(6) 양산의 용당에서[梁山龍堂] 세종조(世宗朝)에 황룡(黃龍)이 여기에서 나타났으므로, 제사 때에는 반드시 향(香)을 내렸다.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野外神龍樹竹居 들 밖의 신룡이 수죽 사이에 살았으니
數間茅屋是齋廬 두어 칸의 초막집 이것이 그 재려로세
秩齊四瀆靈無比 등급은 사독같이 영험함이 비할 데 없고
功在三龍報不虛 공은 삼룡에 있어 보답이 헛되지 않네.
滿洞腥雲來冪冪 골짝 가득히 검은 구름 내려와 덮이어라
渾江怪雨響疎疎 온 강 가득 세찬 비가 자락자락 내리누나.
我行正値黃梅節 나의 행차가 정히 황매 시절을 만났기에
未見琴高跨鯉魚 금고가 잉어 타는 것은 볼 수가 없구려.
[주1] 사독 : 중국에 있는 네 개의 큰 강. 즉 양자강(揚子江)·황하강(黃河江)·회수(淮水)·제수(濟水)를 말한다.
[주2] 삼룡 : 파지국(波知國)의 삼지전(三池傳)에 의하면, 큰 못에 용왕(龍王)과 용부(龍婦)와 용자(龍子)가 있는데, 행인(行人)들이 제사를 지내면 편히 그 곳을 지날 수가 있으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반드시 풍우(風雨)를 만나게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인 듯하다.
[주3] 금고가 잉어 타는 것 : 금고는 옛날 선인(仙人)의 이름인데, 그는 일찍이 선술(仙術)을 닦아 잉어를 타고 물로 들어갔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