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7일 장흥위씨도문회 동헌 위도열 감사님에게서 연락이 왔고 동학농민혁명군으로 참전하고 기록이 있는 장흥위씨의 명단을 보내면서 문중과 종파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선 18번 위홍량은 남면 계산마을이면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로 추정되어 족보 6권 81페이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했고 사월문중 오은 위승복 도문회 부회장에게도 연락해서 확인을 쉽게 마쳤습니다.
이후에 바쁜날을 보내고 찾는 일에 매달릴 여력이 없어서 잠시 손을 놓았더니 날마다 시간은 흘러갔고 8번 위승국의 경우 사망한 곳이 강원도 홍천으로 장흥과는 연결고리가 없지만 인근 춘천에 세거지가 있는 능주문중 유사공파 또는 정선 영월 평창 등지에 연고가 있는 장천문중 곡성현감공파의 자료 찾기를 여러날이 되도록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다가 곡성현감공파의 한 집안이 '承 이을 승'을 비슷한 시기에 돌림자로 사용한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위도열감사님이 준 자료에는 '勝 이길 승'으로 되어 있었지만 여러 경로로 확인하니 '承 이을 승'으로 대부분 확인되어서 보내주신 자료가 오타로 추정되었지만 위승국이라는 이름은 족보에서 끝내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족보에서 이름 찾기가 힘들었지만 다시 호산 위신복 족보편찬연구위원과 인명과 행장을 일일이 대조해 가면서 찾다가 아쉽게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여러분은 족보에서 확인이 불가능했고 또 여러분은 족보에서 다행히 인명을 확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름을 명(名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했지만 몇분은 성인이 되면 받는 자(字)로 표기되기도 하여서 중복으로 기록된 분들을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6번 위대원의 경우 행원문중 직장공파로 추정하고 족보를 확인하였지만 졸년이 조금 이상했는데 족보를 보는중에 후손중에 손자 위오환(재경종친회장)이 보여서 익일 확인을 하였는데 우선 조부님에 대해서 여쭸더니 사실은 아버님이 동학운동이 있을 때에 집을 나서서 생사여부도 모르고 행방불명되신 큰조부님의 양자로 입적되었다면서 아직 가족들은 큰조부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고 여기저기 동학과 관련하여 조사해도 아직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먼저했습니다...
아마도 위계명이라는 성명으로만 조사하신듯 했고 족보에 자(字)가 대원(大元)인데 처형자 명단에는 위대원으로 기록되어 있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또한 처형된곳은 벽사역(장흥읍 원도리, 옛 장흥교도소 자리)이며 처형된 날짜는 을미년 정월 초7일(1895년 1월 7일)임을 같이 알려드리고 근거는 당시 진압군을 이끌고 장흥에 들어온 대표적인 친일파 이두황이 남긴 진중기록 '양호우선봉일기'도 보내드렸습니다...
위오환 재경종친회장의 조모님은 해남윤씨로 남편이 행방불명되어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대하며 몇년을 기다리다 결국 군동 친정으로 돌아가 평생을 수절하다 돌아가셨고 이 후에 양자로 입적된 위오환회장의 아버지가 강진 군동과 병영을 잊는 고갯마루에 열녀비를 세워 넋을 위로해 드렸다고 합니다.
한 분 한 분을 추적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일이 대단히 고단하고 답답하기만 하지만 간혹 발견된 자료를 갖고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일은 아드레날린이 뿜뿜거릴정도로 쾌감이 있습니다...
이번일도 집중 추적했던 위승국과 위대원선조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어서 가슴 뿌듯했습니다...
또한 조부님의 행적과 돌아가신 곳과 때를 알게된 덕영 위오환회장님이 어찌나 고마워하시는지...^^
답답했던 속이 뻥~~~뚤리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장흥위씨도문회 부회장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