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 마리
1부에서 계속
난민들의 아버지인양 그들의 요구를 다 줄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한두 개 난민캠프라면 몰라도 삼십여 개의 캠프를 다 지원하기에는 내 몸을 팔고 남은 시간을 다 쏟아 부어도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듣고 냉담하게 침묵할 수가 없어서 거꾸로 호소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요구가 탐욕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기본 조건입니다. 당연히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 것도 아닌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서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고난에 빠진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권리와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녀인 여러분들을 굶주리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인도교회와 동족인 마라족들과 NGO단체를 동원해서 여러분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께 희망을 두고 간구합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만나와 메추라기를 구합시다.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의 기적이 계속 일어나게 만듭시다. 제가 여기 있는 것도 여러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사람을 움직입니다. 세상을 바꿉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지금 당장에 악한 원수 마귀의 전쟁은 우리 손으로 당장 끝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룁시다. 고통을 아룁시다. 평화를 구합시다. 서로 도우며 사탄의 전쟁을 이깁시다. 서로 나누며 우리의 고난을 축복으로 만듭시다.”
호소를 마친 내 몸은 눈물주머니가 되었다. 아이들을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고 어른들을 바라봐도 눈물이 나고 하늘을 봐도 눈물이 나고 땅을 바라봐도 눈물이 났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아침을 거르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줄을 서서 짜이를 받고 있었다. 물동이보다 더 큰 커다란 양은 솥단지에 끓인 짜이(우유와 설탕을 넣고 끓인 홍차)가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탁자 위에 한 컵 정도 남아 있을까 싶어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한 어르신이 짜이를 내밀었다. 거친 손이 갈고리처럼 휘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런데 그 초라한 노인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굶주림으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조상들로 보였다. 가난한 60년대 우리 시골마을의 구걸하는 할아버지였다. 70년대 살길 찾아 공장으로 몰려간 우리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세상을 떠도는 초라한 나였으며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아버지 하나님이었다. 눈물을 삼키느라 짜이를 마시지 못하는데 그는 슬픈 눈빛으로 인사하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아! 아! 그는 주님이고 나이며 우리 아버지이고 형제였다.
짜이는 짜이가 아니었다. 전쟁에 부대끼는 그의 상한 마음이었으며 하나님의 상한 심령이었다. 전쟁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그의 감사였으며 하나님의 감사였다. 전쟁 속에서 새 날을 기다리는 그의 희망이었으며 하나님의 희망이었다. 나는 짜이 한 잔에 사로잡혀 두 손을 높이 들게 되었다.
그 동안 구호활동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숱하게 목격하였다. 그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감격과 감동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갈등 또한 컸다. 난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것을 보내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에도 모금을 할 때 마다 위축되는 마음, 거지같은 기분, 구걸하는 비참한 심정,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면의 갈등,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로 시험에 빠지는 일로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죄의식에 빠졌다. 또한 난민구호 때문에 발목을 잡혀서 정말로 하고싶은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시험에 들었다.
마음이 여리고 약해서 난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사실을 아는 한 후원을 멈추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난민캠프가 자립할 수 있도록 ‘자립 프로젝트’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속으로 금번 여행을 마치고 '염소 프로젝트’나 ‘돼지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고 구호 일선에서 물러나면 모금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캠프를 방문한 첫날 난민캠프에서 염소, 돼지, 소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가 탁 막혀 버렸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충분하다는 마음과 자세로 기고만장한 나를 처음부터 케이오 패로 무장해제 시키고 겸손히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귀로 듣고 주님의 마음으로 품게 하시더니 끝내는 생각을 원점으로 돌려놓으셨다.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 마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메시지다. 초라한 나를 사용하여서 별 볼 일 없는 작은 것으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 것이라는 메시지다.
난민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고 우리 친구들이며 나 자신이며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난민으로 오시는 하나님! 난민으로 오신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이 오체투지를 한다. 알파요 오메가인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의 경계, 역사와 이념의 경계, 성속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한다. 사람을 구분하지마라고 한다. 한국과 미얀마, 후원자와 수혜자,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가르지 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되 그들이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고향으로 떠날 때 까지 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마리를 주신 것은 그것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칠천여 명의 난민들을 친히 먹이시겠다는 뜻이다. 한 어린이의 하루 양식도 되지 못하는 것으로 칠천여 무리를 먹이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뜻을 믿는다. 하나님의 기적의 통로로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난민들을 위하여 행하실 기적을 기다린다.
보라! 하나님의 은총이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상을 치유하신다.
보라! 전쟁으로 굶주린 난민들을 친히 먹이신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아동 성탄기념잔치를 위하여 모금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에게 보낼 성탄 선물비용이 채워질 때까지 손가락 끝이 닳도록 카톡을 보낼 것이다.
감사와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서 보낼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식지 않은 성도들의 따스한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자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