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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임금과 신하 또는 부부 사이처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이르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水 : 물 수(水/0)
魚 : 물고기 어(魚/0)
之 : 갈 지(丿/3)
交 : 사귈 교(亠/4)
(유의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군신수어(君臣水魚)
삼고초려(三顧草廬)
수어(水魚)
수어지친(水魚之親)
어수지교(魚水之交)
어수지친(魚水之親)
어수친(魚水親)
유어유수(猶魚有水)
이 성어는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데서 비롯된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던 삼고초려(三顧草廬) 때의 이야기다.
두번이나 허탕치고 세번째에야 비로소 가까스로 만났는데 사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는 처음부터 유비가 친히 찾아가는 것에 대해 내심 못 마땅해 했다. “일개 촌부(村夫)에 불과한 것 같은데 사람을 보내 불러 오게 합시다.”
장비의 말이었다. 결국 두번째도 허탕치자 이번에는 관우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했다. “두번이나 찾았다면 예(禮)를 다한 셈입니다. 보아하니 제갈량은 유명무실한 인물이라 일부러 피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자 장비도 이때다 싶어 크게 말했다. “이젠 정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이 안 오겠다면 제가 밧줄로 꽁꽁 묶어서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결국 유비의 정성에 감복한 제갈량은 하산해 그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다. 후에 유비는 제갈량을 사부로 모시면서 침식을 같이 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날이 갈수록 유비가 제갈량을 신뢰하고 교분이 더욱 두터워 지니 결의형제(結義兄弟)한 관우와 장비가 몹시 불만스러워 했다.
어느 날 유비가 그것을 알고 그들을 불러 선왕이 말하기를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원컨데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라고 말하고 또한 관우와 장비를 위로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 源勿復言.
고지유공명 유어지유수 원물복언.
이렇듯이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돈독한 관계를 맺을 때를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한다. 이때 유비의 나이는 마흔 일곱살이고 제갈량은 스물 일곱 살이었다.
이처럼 수어지교는 본디 군신간의 관계가 친밀한 것을 비유했던 것이 후에는 친구나 심지어 부부간의 관계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극도로 가까운 사이를 뜻한다.
우정(友情)이란 단어는 어감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사람이 처세의 이치를 가장 빨리 배워서 마음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 친구간의 사귐일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친구간의 사귐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이란 계속 여일(如一)하기가 어렵기에 순수한 우정을 지켜내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 백아절현(伯牙絶絃),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포지교(管鮑之交),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문경지교(刎頸之交),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水魚之交) 외에 단금지교(斷金之交), 망년지교(忘年之交) 등등 아름다운 우정이 천고(千古)에 향기를 뿜고, 우리는 이에 대해 찬탄하고 동경하는 것이다.
이백(李白)의 경우를 보면, 그의 호방(豪放)하고 낭만적인 성격으로 인해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가 참으로 어려운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그러나 한평생 천하를 떠돌며 생활한 그가 친구를 사귀는 특출난 점이 없었다면 그러한 생활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물론 그에게는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은 시를 짓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유했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린(李璘)의 난(亂)으로 인해 옥(獄)에 갇혔을 때, 곽자의(郭子儀) 등이 성심껏 그를 구원하여 살려낸 것이나, 오균(吳筠), 하지장(賀知章)이 그를 조정에 천거한 것이나, 공소부(孔巢父), 한준(韓準),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 등과 함께 조래산(徂徠山)의 육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던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백(李白)과 함께 어울렸던 조래산(徂徠山)의 죽계육일(竹溪六逸)이 우정을 거론할만한 모임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지만 음주하며 시를 짓고 읊조리는 일종의 문인 모임인 죽계육일(竹溪六逸)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즐겼다는 것 자체가 문인은 서로를 경시한다(文人相輕)는 문인 특유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백의 재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거니와 그의 친교 또한 과히 상식 이하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의 첫 장에서 군자의 덕목 중 두번째로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사의 친교가 즐거움만으로 되던가? 오랜 세월을 지나다보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정이 조금씩 삐걱거리며 소원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곤 자책하거나 혹은 친구를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귐에 있어, “사귀기 전에는 마땅히 잘 살펴봐야 하고, 사귄 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交友之先宜察, 交友之後宜信)”고 했지만, 어디 이것 또한 쉬운 일이던가?
이백도 화려했던 장안(長安) 생활을 청산하고 천하를 떠돌 때 인간의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경험했을 것이다.
동문을 나선 뒤 아쉬운 정을 가지고 한림원(翰林院)의 여러 공(公)들게 부침이란 부제(副題)가 붙은 동무음(東武吟)에서, 황제에게 인정받아, 궁정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언급하고 난 뒤, “하루 아침에 금마문(金馬門)을 떠나니, 정처없이 날리는 쑥대의 신세가 되었어라, 찾아오는 빈객들은 날로 적어지고, 옥술독도 이미 다 비었구나(一朝去金馬, 飄落成飛蓬. 賓客日疏散, 玉樽亦已空.)”라고 하고서, 마지막에 자신은 한(漢)나라 때의 신선 황기옹(黃綺翁)을 찾아 떠난다고 밝혔다.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컸을 것이지만 문인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인해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의 하루 일과나 창작생활이 일반인의 일상과 상반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이백은 염량세태나 우정에 대해 다시금 통감하게 된 듯 하다.
箜篌謠(공후요) - 이백(李白)
攀天莫登龍(반천막등룡)
走山莫騎虎(주산막기호)
하늘에 올라도 용(龍)에 오르지 말고, 산을 달려도 호랑이는 타지 마라.
貴賤結交心不移(귀천결교심불이)
唯有嚴陵及光武(유유엄릉급광무)
귀하고 천한 이가 서로 친구되어 마음변치 않는 예는, 오직 엄릉과 광무제 뿐이라네.
周公稱大聖(주공칭대성)
管蔡寧相容(관채녕상용)
주공이 비록 큰 성인으로 칭송될지라도, 관숙선과 채숙도를 어찌 용납할 수 있었던가?
漢謠一斗粟(한요일두속)
不與淮南舂(불여회남용)
한나라 노래에 문제는 한말의 곡식이라도, 회남왕과는 찧지 않는다 하였네.
兄弟尚路人(형제상로인)
吾心安所從(오심안소종)
형제도 오히려 남이 되는 세상, 내 마음 어찌 따를 곳이 있겠는가?
他人方寸間(타인방촌간)
山海幾千重(산해기천중)
남의 작은 속마음은, 산과 바다처럼 몇 천 겹이던가?
輕言托朋友(경언탁붕우)
對面九疑峰(대면구의봉)
친구에게 속마음 경솔히 말했다가, 구의봉 같은 것과 마주했노라.
開花必早落(개화필조락)
桃李不如松(도리불여송)
일찍 핀 꽃은 반드시 일찍 지나니, 복사꽃과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다.
管鲍久已死(관포구이사)
何人繼其踪(하인계기종)
관중과 포숙아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 어느 누가 그들의 발자취를 이어 가리오.
어떠한 사유로 마음에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지만 첫 구절을 보면 황제의 총애를 받고서 무례하게 행동한 사실로 인하여 내침을 당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여간에 진정한 우정에 대해 회의를 지녔음에도 이백은 천성적으로 친구를 좋아하고 또한 한번 사귄 친구는 진정으로 믿었던 것 같다. 친구간의 우정은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오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한 마음으로는 만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두 마음으로는 한명의 친구조차 사귈 수 없는 것(一心可以交萬友, 二心不可以交一友)”(醉古堂劍掃/ 취고당검소)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백의 친구 사귀는 모습이 이러한 듯 하다.
증맹호연(贈孟浩然)을 보면, “높은 산을 어찌 우러러 볼까, 다만 맑은 향기나는 절개에 절할 뿐이리(高山安可仰, 徒此揖淸芬.)”라고 하여, 맹호연(孟浩然)이란 인물에 대해 과찬이라고 할 정도로 칭송하였다.
그런데 맹호연(孟浩然)을 전송(餞送)하며 지은 송맹호연지광릉(送孟浩然之廣陵)을 보면,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친구는 서쪽으로 황학루와 작별하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3월에 양주로 내려가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외로운 돛단배의 아득한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오직 장강만이 하늘 끝으로 흐르네.
라고 하였는데, 시의 이면에는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는 이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로써 이백이 말로만 친구를 과찬하지 않았으며, 얼마나 친구를 진정으로 대하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 뿐만 아니라 사귀는 친구도 가졌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듯 하는데, 증왕륜(贈汪倫)이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李白乘舟將欲行(이백승주장욕행)
忽聞岸上踏歌聲(홀문안상답가성)
이백이 배에 올라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언덕 위에서 송별의 노랫소리 들리네
桃花潭水深千尺(도화담수심천척)
不及汪倫送我情(불급왕륜송아정)
도화담의 물이 천척이나 깊다해도, 나를 전송하는 왕륜의 마음에 미치랴
바로 이백(李白)은 자신이 친구를 진정으로 대했듯이 친구의 진정을 충분히 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사귄 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는 사귐의 철칙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백은 평생 천하를 떠돌면서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그렇기에 증별시(贈別詩)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여사량보유경천릉암사(與謝良輔游涇川陵巖寺), 연도가정자(宴陶家亭子), 재수군연위사마루선관기(在水軍宴韋司馬樓船觀妓), 억구유기초군원참군(憶舊遊寄譙郡元參軍), 회해대설증부애(淮海對雪贈傅靄), 증서안의(贈徐安宜), 증임성로주부(贈任城盧主簿), 조추증배십칠중감(早秋贈裴十七仲堪), 증범김경(贈范金卿 其一,其二), 증하구왕소부(贈瑕丘王少府), 증단양횡산주처사유장(贈丹陽橫山周處士惟長), 옥진공주별관고우증위위장경이수(玉眞公主別館苦雨贈衛尉張卿二首), 증위비서자춘(贈韋秘書子春), 증위시어황상(贈韋侍御黃裳 其一,其二), 증설교서(贈薛校書), 증하칠판관창호(贈何七判官昌浩), 독제갈무후전서회증장안최소부숙봉곤계(讀諸葛武侯傳書懷贈長安崔少府叔封昆季), 증곽장군(贈郭將軍), 하거온천후증양산인(賀去溫泉後贈楊山人), 금릉백하정류별(金陵白下亭留別), 별동림사승(別東林寺僧), 찬야랑어오강유별종십육(竄夜郞於烏江留別宗十六), 유별공처사(留別龔處士), 증별정판관(贈別鄭判官), 장유형악우한양쌍송정유별족제부도담호(將游衡岳迂漢陽雙松亭留別族弟浮屠談皓), 유별가사인지이수(留別賈舍人至二首), 별위소부(別韋少府), 별산승(別山僧), 증별왕산인귀포산(贈別王山人歸布山), 강하별송지제(江夏別宋之悌), 남양송객(南陽送客), 송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 송당도조소부부장로(送當塗趙少府赴長蘆), 송우인심월중산수(送友人尋越中山水), 송우인유매호(送友人游梅湖), 송최십이유천축사(送崔十二游天竺寺) 등등이 있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모두 진정으로 사귀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렇게 각종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백이 생각 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점을 지녔을 것으로 사료된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에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괜찮은 인생인데, 자신의 주변에 늘 사람이 끓게 되는 것은 얼마나 괜찮은 삶인가!
그의 증별시(贈別詩)를 보면 많은 연회에 참석하는 모습, 이별의 아쉬움, 친구가 보낸 선물로 통해 친구를 더욱 간절하게 생각하는 모습, 명승지에 도착하여 그 지역과 관련된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 지역과 얽힌 옛날의 고사 등의 내용이 나타난다.
이백(李白)이 술마시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이 갑자기 느끼는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유감이다.
어느날 문득 귀밑머리가 하얀 것을 발견하거나 추운 날 양치질할 때 이가 시린 것을 느끼게 될 때, 세월의 빠름과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해 근심하게 된다.
그의 추포가(秋浦歌) 17수를 보면, 시름으로 추포(秋浦)의 나그네가 되어(愁作秋浦客), 청계(淸溪)의 물소리가 창자를 끊는데, 떠나려고 하나 떠나지 못하고, 잠시 논다는 것이 이토록 오래 되었다(青溪非隴水, 翻作斷腸流. 欲去不得去, 薄游成久游)는 상황이 되었으니, 나이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그의 가슴을 짓눌렀겠는가?
그중 15수를 보면,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緣愁似個長(연수사개장)
백발은 길이가 삼천 발, 근심 때문에 이렇게 자랐다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알 수 없구나 맑은 거울 속 나의 백발은, 어느 곳에서 서리를 얻어왔나.
라고 했으니, 어찌 술없이 이러한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대주(對酒)에서,
勸君莫拒杯(권군막거배)
春風笑人来(춘풍소인래)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잔을 거절하지 마소, 봄바람이 비웃는다오.
桃李如舊識(도리여구식)
傾花向我開(경화향아개)
복숭아와 살구나무는 친구처럼, 꽃을 기울어 나를 향해 피네.
流鶯啼碧樹(유앵제벽수)
明月窺金罍(명월규금뢰)
떠돌던 앵무새는 푸른 나무 위에서 울고, 밝은 달은 황금 술잔을 비춘다.
昨日朱顔子(작일주안자)
今日白髮催(금일백발최)
어제는 붉은 빛의 젊은 얼굴이, 오늘은 백발을 재촉한다.
棘生石虎殿(극생석호전)
鹿走姑蘇臺(녹주고소대)
대추나무 황폐해진 석호전에 자라고, 사슴은 황폐해진 고소대를 뛰논다.
自古帝王宅(자고제왕택)
城闕閉黃埃(성궐폐황애)
예로부터 제왕의 집, 궁궐이 누런 티끌로 뒤덮혔다.
君若不飮酒(군약불음주)
昔人安在哉(석인안재재)
그대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옛 사람이 어찌 살아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술을 권하는 핑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생무상함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더 바랄 것이 없던 황제의 궁궐조차 지금은 대추나무같은 잡초가 자라고, 사슴이 뛰어노는 황폐한 곳으로 변한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가릴 것이 뭐가 있더란 말인가? 이백(李白)이야 술을 한번 마시면 연거푸 술 백병을 마셔야 하고 하루에 삼백잔씩 마셔야 했는데,...
중국의 속담에 ‘술이 친구를 만나게 되면 천잔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는 말이 있다. 그 넓은 중국의 땅덩어리에서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영영 이별할 지도 모를 일이니, 그동안에 쌓였던 가슴 속의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 몇날 며칠을 밤새워 부족할 것이다.
그의 대주행(對酒行)과 금릉봉황대치주(金陵鳳凰臺置酒)를 보자.
대주행(對酒行)
松子栖金華(송자서금화)
安期入蓬海(안기입봉해)
적송자는 금화산으로 들어갔고, 안기는 동해 바다 속 봉래산으로 들어갔네.
此人古之仙(차인고지선)
羽化竟何在(우화경하재)
이 사람들은 옛날의 신선이지만, 신선되어 결국 어디에 있는가.
浮生速流電(부생속유전)
倏忽變光彩(숙홀변광채)
뜬구름같은 인생 번개처럼 빨라, 갑자기 광채로 변하네.
天地无凋換(천지무조환)
容顔有遷改(용안유천개)
천지는 시들어서 바뀌지 않지만, 얼굴은 바뀌는구나.
對酒不肯飮(대주불긍음)
含情欲誰待(함정욕수대)
술을 대하고 마시지 않고자 하면서, 정을 품고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금릉봉황대치주(金陵鳳凰臺置酒)
置酒延落景(치주연락경)
金陵鳳凰臺(금릉봉황대)
해거름 경치에 술자리를 펼치니, 금릉의 봉황대라.
長波寫萬古(장파사만고)
心與雲俱開(심여운구개)
긴긴 파도는 옛 일을 써내고, 마음과 구름이 모두 활짝 펴진다.
借問往昔時(차문왕석시)
鳳凰爲誰來(봉황위수래)
옛날을 물어보노니, 봉황은 누굴 위해 왔는고.
鳳凰去已久(봉황거이구)
正當今日回(정당금일회)
봉황은 떠난 지 이미 오래인데, 바로 오늘 돌아왔구나.
明君越羲軒(명군월희헌)
天老坐三臺(천로좌삼대)
밝은 임군은 복희씨와 헌원씨보다 뛰어나고, 천제가 삼대에 앉았어도
豪士無所用(호사무소용)
彈弦醉金罍(탄현취금뢰)
호걸은 쓰이지 않더라. 거문고를 연주하고 금술잔에 취하네
東風吹山花(동풍취산화)
安可不盡杯(안가부진배)
동풍이 산위의 꽃에 부니,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소냐.
六帝没幽草(육제몰유초)
深宫冥綠苔(심궁명록태)
여섯 황제는 그윽한 풀에 묻혔고, 깊은 궁궐은 푸른 이끼로 어둡네.
置酒勿復道(치주물부도)
歌鍾但相催(가종단상최)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마시라고 재촉하니
이 두편을 읽고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술을 권하는 핑계가 지극히 마땅하고 애절한 가운데서도, 술자리의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술 친구든지 기녀든지, 혹은 이미 술에 취했든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든지, 술을 권하는 모습이 이백답다.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마시라고 재촉하니.”
하긴 백거이(白居易)도 “서로 만났으니 다시 술을 사양하지 말고 취합시다, 양관의 이별가 중 네 번째 구절을 읊을테니 귀기울여 듣기나 하소.(相逢且莫推辭醉 聽唱陽關第四聲/對酒 其三)”라고 하긴 했지만...
이백(李白)은 장안을 떠날 때 현종(玄宗)으로 부터 받은 만냥의 전별금(餞別金)을 10년만에 모두 다 써버렸다. “천금을 다 써버리면 또 다시 생기는 것(千金散盡還復來/將進酒)”이라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그의 전별시(餞別詩)에는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 예를들면, 증추포류소부(贈秋浦柳少府)의
而我愛夫子,
淹留未忍歸.
내가 사랑하는 그대, 오래도록 만류하니 차마 돌아가지 못하네
별산증(別山僧)의
此度别離何日見,
相思一夜暝猿啼.
이번에 이별하면 어느 날에 만날까? 그리운 마음 하루 저녁 원숭이 울음에 깊어만 가고
別東林寺僧의
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
동림사 손님을 전송하는 곳에, 달이 뜨니 하얀 잔나비가 운다. 웃으면서 이별하자니 여산은 먼데, 왜 반드시 호계를 건너야 하나
贈任城盧主簿의
鍾鼓不爲樂 烟霜誰與同.
歸飛未忍去 流淚謝鴛鴻.
종고로는 즐겁지 않고, 안개와 서리내리면 누구와 함께 할꼬. 날아 돌아와선 차만 떠나지 못하네, 눈물흘리며 원앙과 홍곡과 이별하네.
등등이 있다. 여기서 그의 송우인(送友人)를 보자.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白水遼東城(백수요동성)
푸른 산은 북쪽 성곽으로 가로 지르고, 하얀 강물은 성 동쪽을 싸고 흐른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
여기서 한번 이별하면, 외로운 쑥대처럼 만리까지 날려 가리.
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뜬구름은 나그네의 마음이고, 석양은 친구의 마음이로다.
揮手自玆去(휘수자자거)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
손 흔들며 이제 떠나가니, 쓸쓸하게 떠나는 말도 우는구나.
다시 금릉주사류별(金陵酒肆留別)을 보자.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吳姬壓酒勸客嘗(오희압주권객상)
바람이 솜버들에 부니 주막에 향기 가득하고, 오땅의 미희 술을 걸러 손님에게 맛보라 권하네.
金陵子弟來相送(금릉자제래상송)
欲行不行各盡觴(욕행불행각진상)
금릉의 자제들이 배웅하려 찾아왔네, 떠나려 해도 떠나지 못하고 각각 술잔만 비운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그대에게 묻노니 동쪽으로 흐르는 장강의 강물, 석별의 정과 어느 것이 길고 짧은가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모두 아쉬운 것이 진정한 우정이리라. 그런데 친구간의 사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 의기 투합하든지, 절대적으로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이 기반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옛사람은 “먼저 처음엔 담담하다가 나중에 열렬하게, 처음엔 낯설다가 나중에 친하게, 처음엔 멀었다가 나중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도리다”라고 하였다.
先淡後濃 先疎後親
先遠後近 交友道也
(醉古堂劍掃)
이백(李白)은 어떠한 우정을 염원했을까? 물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우정이겠지만, 그가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 것은 왕휘지(王徽之)와 대규(戴逵)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감(乘興訪友) 혹은 눈이 내린 저녁 대규를 찾아가다(雪夜訪戴)라는 고사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의 동로문범주(東魯門泛舟) 중 기일(其一)에서 “가벼운 배를 달밤에 띄워서 계곡을 찾아 돌고도니, 왕휘지(王徽之)가 산음에 눈 내린 뒤 대규(戴逵)를 찾은 것 같구나(輕舟泛月尋溪轉 疑是山隱雪後来)”고 하였고, 기이(其二)에서 “만약 달빛 아래 배를 타고 떠나게 한다면, 어찌 바람에 흘러 섬계(剡溪)에만 이르게 될까(若教月下乘舟去 何啻風流到剡溪)”라 하였다
또한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에서 “어제 저녁 오중 땅에 눈이 왔는데, 왕휘지(王徽之)는 흥에 겨워 섬계(剡溪)로 떠났었지(昨夜吳中雪 子猷佳興發)”라고 하였다.
잠시 그 고사를 소개하면,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있을 때, 저녁에 눈이 왔다가 개이니, 달빛이 더욱 밝아서 사방이 온통 하얗다. 그래서 홀로 술을 마시면서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났다. 당시 대규(戴逵)는 섬(剡)땅에 있었다.
그래서 그 밤에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친구를 찾아갔다. 밤을 새워 친구가 기거하던 집을 찾아갔는데, 그 집 문앞에서 그냥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王徽之)가 대답하기를 “본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갔는데, 흥이 다 되어 돌아오는데 구태여 친구 대규(戴逵)를 만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참 멋지다. 옛 사람의 흥취가 바로 이런 것이다. 친구간의 우정에는 말이 혹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서 친구가 알지 못하면 어떻고 안다면 또 어쩔텐가? 그게 자신이 친구에게 베푼 우정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나아가 이백은 친구가 보내 준 선물에도 몹시 감격하였다. 그의 은십일증률강연(殷十一贈栗岡硯)에서,
殷侯三玄士(은후삼현사)
贈我栗岡硯(증아율강연)
은십일이, 나에게 율강연을 보냈네.
洒染中山毫(주염중산호)
光映吳門練(광영오문련)
중산의 붓을 찍으니, 오문의 비단처럼 빛난다.
天寒水不凍(천한수불동)
日用心不倦(일용심불권)
날이 추워도 먹물이 얼지 않고, 날마다 사용해도 싫증나지 않네.
携此臨墨池(휴차임묵지)
還如對君面(환여대군면)
이 벼루를 가지고 묵지에 이르니, 역시 그대의 얼굴을 대하고 있는 듯하네.
라고 하였다. 일찍이 유명한 벼루인 율강연이 마음에 들었기도 했겠지만, 특히 왕희지의 묵지를 보고 그를 떠올리는 면에서, 이백이 맺은 우정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백이 네 번의 결혼을 하였고, 자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기는 했지만 부인과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천하를 떠돌며 친구를 사귄 점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유가의 근본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이백이란 인물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들다. 그런데 다양성을 존중하고, 특히나 이백이 문인이란 특별한 계층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력을 도저히 용납못할 일도 아니다.
주식형제(酒食兄第)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라. 술과 음식을 먹을 때는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수없이 많으나 위급하고 어려울 때는 함께 고통을 나누거나 대신할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 즉 진정한 마음을 드러 내놓고 지낼 친구를 사귀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참다운 친구를 사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려움이 없을 때는 그렇게 다정하고 분신처럼 친했던 사람도 이해관계가 생기면 금이 가기 시작하여 어려움이 다가오면 매정하게 돌아서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로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헤어질 때 알 수 있고 사람의 본심은 술 마실 때 알아본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알기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아무리 많은 친구를 사귈지언정 진정으로 자신을 대신하여 줄 참다운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다.
장자(莊子)는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술맛과 같이 달콤하다. 덕이 있고 교양이 있는 친구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맑은 물과 같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소인은 친구를 사귈 때 돈이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이득이 있을 때는 감주처럼 달게 굴지만 이득이 없어진다고 느낄 때는 귀찮아하며 서슴없이 돌아서 버린다고 했다. 즉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가며 살기로 맹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곰을 만났는데 재빠른 친구는 함께 있던 친구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무위로 올라가 버렸다.
혼자 남은 친구는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곰은 죽은 시늉을 하고 있으면 되돌아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곰이 다가오자 죽은 시늉을 하니 쿵쿵거리며 얼굴의 냄새를 맡다가 죽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되돌아갔다.
이것을 바라보던 친구가 한참 후에 나무 위에서 내려와 친구에게 묻는다. “여보게 아까 곰이 자네 귀에다 대고 무어라 하던가.”
그러자 친구는 곰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음부터는 친구를 버리고 도망가는 의리없는 사람과 다시는 함께 하지 마라 하였다네” 하고서 헤어졌다 한다.
불결자화(不結子花)는 휴요종(休要種)이요. 무의지붕(無義之朋)은 불가교(不可交)니라. 즉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를 말고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는다. “너에게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있느냐” “예 친구가 너무 많아 일일이 세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친구 중에 믿을 만한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 어디 시험을 한번 해보자”
하고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피가 묻은 큰 자루를 지게에 올려놓고 이 지게를 지고서 네가 가장 친하다는 친구를 찾아가서 여차여차 하거라.
아들은 지게를 지고서 친구를 찾아갔다. “아니 자네가 이 밤중에 어쩐 일인가?” “여보게 친구! 내가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이게 되었네. 빨리 지게위의 시체와 나를 좀 숨겨 주게나”
그러나 그렇게 믿었던 친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문을 닫아 버린다. 아들은 온종일 그렇게 친구 집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가 쫓김을 당해 아버지 보기가 민망스럽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지게를 벗어 나를 다오! 아비의 친구 집에 가보자”하며 아버지는 지게를 메고 앞장을 선다.
어느 길가에 있는 집에 가서 급하게 대문을 두드리니 친구가 나오자 아버지는 “여보게 지금 내 아들이 실수를 하여 사람을 죽였네. 이 시체와 우리 부자를 좀 숨겨 주게나” 그랬다.
그러자 아버지 친구는 선뜻 승낙하고 피 묻은 자루는 다락에 숨겨둔 뒤 술상을 내온다. “여보게! 어쩌다가 그랬나. 우선 내 집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뒷일을 생각해 봄세 자! 안주가 변변치 못하니 이해하고 술이나 한잔 마시세 이제 몇 잔 들고나면 마음이 편해 질 걸세! 걱정 말고 한잔 들고 이야기 하세” 그랬다.
그러자 아버지는 “여보게 친구! 안주는 필요 없다네 사실은 저기 피 묻은 자루 속에는 삶은 돼지가 들어있네 친구를 사귈 줄 모르는 내 아들에게 우리의 우정을 보여 교훈을 삼을까 해서 자네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고 실례를 범했네 그려! 미안하네. 너그러이 용서하게나” 그랬다.
이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님! 친구 분께서 이렇게 기꺼히 받아 주시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으셨습니까” 하고 묻자 아버니와 아버지 친구가 동시에 입을 연다.
노요지 마력(路遙知 馬力)이요 일구견 인심(日久見 人心)이라. 말은 달리는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가 있고 사람은 오직 오래 사귀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즉 말은 오래 달려봐야 그 힘을 알 수 있고 진솔하고 참다운 친구를 사귀려면 오랜 세월을 두고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며 진정한 친구와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이야기와 같은 말로서 통속편(通俗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가 어려울 때 진정으로 대신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진정한 친구는 나에 분신이요 재산이기에 한사람의 친구를 사귀어도 진정하고 진솔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수어지친(水魚之親)
물과 물고기처럼 친밀한 관계
1972년 3월 21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비서가 쪽지 하나를 건네주자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종합평가회로 대통령이 없이는 진행될 수 없었다. 경호원들이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대통령은 화장실 바닥에 퍼져 앉아 “내가 임자를 죽였어”라고 탄식을 섞어가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있다가 지난 1월 몸이 안 좋아 사임한 김학렬(金鶴烈) 장관이 겨우 49세로 일생을 마친 것이었다.
김학렬은 1923년 고성(固城)에서 태어났다. 고성초등학교, 부산상업중학교를 거쳐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했다.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외교과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952년 미국 유학을 떠나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1955년에 돌아와 재무부 공무원으로 복귀하여, 제2공화국 때 재무부 세제국장 등으로 있었다.
박정희 소장이 1960년 김학렬의 실력을 알아보고 찾아와 “어떻게 하면 장면 정권의 부진한 경제상황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라며 그 대책을 물은 적이 있었다.
1961년 이후 박정희의 주도로 경제개발에 전력을 쏟을 때,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을 출범시켰다. 김학렬은 경제기획원 출범 때부터 참여하여 1963년 경제기획원 차관, 대통령 경제수석 등을 역임한 뒤, 1969년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되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판단력과 탁월한 추진력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확실히 얻었고, 대통령도 무슨 일이든지 생각만 말하면 척척 해내는 그를 매우 신임했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였다. 1967년 경제기획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하였는데, 그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다.
아침에 청와대 들어간 장관이 돌아오지 않아 장관 비서가 전화를 해 보면, “각하하고 식사하고 계십니다”라고 답을 했다. 오후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하면, “아직 대담 중이십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대통령과 생각이 같았고, 의견 교환할 것이 많았다.
대통령과 술도 자주 했는데, 대통령이 가끔 그의 집을 방문하여 같이 마셨다. 장관 부인이 대통령을 내려다보면서 “몇 잔 하고 말 것이지, 왜 자꾸 술이냐?”고 핀잔을 주면, “당신 부군은 내 경제 과외선생이오. 학생이 선생님 집에 오는 것이 뭐 잘못됐소?” 하며 가벼운 시비가 붙곤 했다.
유비(劉備)가 떠돌아다니다가 제갈량(諸葛亮)을 얻었다. 그 이후 매일 제갈량과만 이야기하니 의형제인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을 널어놓았다. 유비가 두 사람에게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불평을 하지 못했다.
오늘날 김학렬 장관처럼 대통령과 마음이 통하는 장관이 몇 명이나 될까?
▶️ 水(물 수)는 ❶상형문자로 氵(수)는 동자(同字)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 수(水)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水자는 ‘물’이나 ‘강물’, ‘액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水자는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水자의 갑골문을 보면 시냇물 주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액체’나 ‘헤엄치다’, ‘범람하다’와 같이 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氵자나 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水(수)는 (1)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빛깔로는 검정을 나타냄 (2)수요일(水曜日)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물 ②강물 ③액체(液體), 물과 관련된 일 ④홍수(洪水), 수재(水災),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⑤수성(水星: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⑥별자리의 이름 ⑦물을 적시다, 축이다 ⑧물을 긷다, 푸다 ⑨헤엄치다 ⑩물로써 공격하다 ⑪평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바다 명(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뭍 륙/육(陸), 불 화(火),빌 공(空)이다. 용례로는 물 속에서 몸을 뜨게 하고 손발을 놀리며 다니는 짓을 수영(水泳), 축축한 물의 기운을 수분(水分),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물의 겉을 이루는 면을 수면(水面), 홍수로 인한 해를 수해(水害), 물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수력(水力), 물의 깊이를 수심(水深), 저수지에 설치하여 수량을 조절하는 문을 수문(水門), 물의 양을 수량(水量), 물 속에서 자라는 풀을 수초(水草),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깊고 넓은 물에는 큰 고기가 깃듦을 수관어대(水寬魚大),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을 이룬다는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고기가 다닌다는 수도어행(水到魚行),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수류운공(水流雲空),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수락석출(水落石出),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불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수화불통(水火不通),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등에 쓰인다.
▶️ 魚(고기 어)는 ❶상형문자로 漁(어)의 고자(古字), 鱼(어)는 통자(通字)이다. 물고기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부수로서는 물고기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글자이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魚자를 보면 물고기의 주둥이와 지느러미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 해서에서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를 田(밭 전)자와 灬(불 화)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魚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활용될 때는 주로 어류의 종류나 부위, 특성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魚(어)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고기 ②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通稱) ③바다 짐승의 이름 ④어대(魚袋: 관리가 차는 고기 모양의 패물) ⑤말의 이름 ⑥별의 이름 ⑦나(인칭대명사) ⑧고기잡이하다 ⑨물에 빠져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생선을 가공해서 말린 것을 어물(魚物), 물고기 잡는 그물을 어망(魚網),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데 쓰이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어항(魚缸), 물고기의 알을 어란(魚卵), 물고기와 조개를 어패(魚貝), 생선 파는 시장을 어시장(魚市場), 물고기의 종류를 어종(魚種), 낚시로 고기잡이하는 데 쓰는 배를 어선(魚船), 물고기를 기름 또는 기른 물고기를 양어(養魚), 말린 물고기를 건어(乾魚),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를 추어(鰍魚),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청어(靑魚), 멸치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행어(行魚), 퉁가리과의 민물고기를 탁어(馲魚), 은어과의 물고기를 은어(銀魚), 가오리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홍어(洪魚), 가물치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흑어(黑魚), 학꽁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침어(針魚),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약어(鰯魚), 동자개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종어(宗魚), 잉어과의 민물고기를 타어(鮀魚),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심어(鱘魚), 제사 상을 차릴 때에 어찬은 동쪽에 육찬은 서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무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로불변(魚魯不辨), 물고기와 물처럼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친밀한 사이 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친(魚水之親),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이 매우 친근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교(魚水之交), 고기 대가리에 귀신 상판때기라는 뜻으로 괴상 망측하게 생긴 얼굴을 형용하는 말을 어두귀면(魚頭鬼面),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물고기는 대가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을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 떼나 새 때가 흩어져 달아난다는 뜻으로 크게 패망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어궤조산(魚潰鳥散),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으로 어릴 적에는 신통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란 뒤에 훌륭하게 되거나 아주 곤궁하던 사람이 부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어변성룡(魚變成龍),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交(사귈 교)는 ❶상형문자로 䢒(교)는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종아리가 교차해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이 글자에서 咬(교; 씹다), 絞(교; 묶다), 校(교; 학교) 등의 글자가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交자는 ‘사귀다’나 ‘교제하다’, ‘엇갈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交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交자는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交자의 갑골문을 보면 양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交자는 이렇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사람을 그려 ‘엇갈리다’나 ‘교차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交(교)는 ①사귀다, 교제하다 ②오고 가다 ③주고 받다, 바꾸다 ④인접(隣接)하다, 서로 맞대다 ⑤엇걸리다 ⑥맡기다 7넘기다, 건네다 ⑧내다, 제출하다 ⑨섞이다, 교차하다 ⑩성교하다, 교배하다 ⑪되다, 도래하다 ⑫임무를 마치고 보고하다 ⑬교제(交際), 우정(友情) ⑭벗, 친구(親舊), 동무 ⑮무역(貿易), 거래(去來), 흥정 ⑯서로, 상호(相互) ⑰곤두박질, 공중제비 ⑱옷깃 ⑲일제히, 동시에, 함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서로 번갈아 드는 사람 또는 그 일을 교대(交代), 통신을 주고 받음을 교신(交信), 2개 이상의 선상의 것이 한 곳에서 마주치는 것을 교차(交叉), 암수 양성의 교접을 교미(交尾), 다른 종류의 암수의 배합을 교배(交配), 벗을 사귐 또는 친구와 교제함을 교우(交友), 섞어 합함을 교합(交合), 서로 맞붙어 싸움을 교전(交戰), 서로 바꿈을 교환(交換),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 바꿈을 교역(交易), 자리나 역할 따위를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과 바꿈을 교체(交替), 서로 주고 받음을 교류(交流),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의논함을 교섭(交涉), 막힘이 없이 서로 오가는 일을 교통(交通), 서로 사귀어 왕래함을 교유(交遊), 서로서로 어우러져서 뒤섞임을 교잡(交雜), 사귀어 담박하기가 물과 같다는 교담여수(交淡如水), 벗을 사귐에 신의로써 사귐을 교우이신(交友以信), 벗을 사귀는 도리를 교우지도(交友之道), 벗을 사귈 때에는 서로가 분에 맞는 사람끼리 사귀어야 함을 교우투분(交友投分), 사귄 지는 오래지 않으나 서로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 한다는 교천언심(交淺言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