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82/200531]대문없는 시골집과 동네형님
예전 같으면 어림짝도 없는 일이지만, 요즘 시골집들은 대문大門이 유명무실有名無實한 편이다. 아예 대문이 없는 집들도 많다. 어디 오랫동안 집을 비우지 않는 이상, 날마다 대문을 꽁꽁 닫는 집은 거의 없다. 나도 멋지게 만든 나무대문을 닫아놓을 필요가 전혀 없어 24시간내내 활짝 열어두고 있다. 유제들(이웃들)과 소통의 지름길인 셈이다. 그만큼 도둑이 없어진 때문이기도 할 것이나, 바쁜 농사철에 대문을 열고닫는 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예전엔 집을 빙 둘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담을 높게 쳤고, 거기다가 철조망이나 아니면 병들을 깨 유리조각를 담장 위에 꽂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구시대 유물이 된 지 오래. 그때는 도둑들과 거지들이 득시글득시글한 보릿고개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자기의 배와 딸린 식구들의 배를 채워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릴 적 나도 보았다. 우리집 부엌 뒤주에서 쌀을 퍼가다 아버지에게 걸려 마당에서 내동댕이쳐졌던 ‘새끼 도둑’을. 한밤에 깨어 그 도둑이 불쌍해 ‘용서해주자’며 울었던 기억까지 있다.
며칠 전 유튜브를 우연히 보는데, ‘미스터 트롯’에서 히트를 친 ‘정동원’이라는 친구가 예전에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보릿고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는 비교적 젊었던 사회자 송해(94세) 선생이 보릿고개를 아느냐고 묻자 모른다면서도 가수 진성 못지않게 구성지게 불러대던 ‘보릿고개’. 그 시절엔 꽁보리밥만 먹고 방구도 억수로 뀌어댔고, 찬물에 쉰밥 말아서 풋고추 된장에 푹 찍어 먹으면 그만인 시절이었다. ‘무밥’을 아시리라. 밥은 조금이고 채처럼 썬 무가 70-80%쯤 되던 무밥, 역겨운 트름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나오던지, 왜 그리 먹기 싫었던지. 할머니가 콩고물 듬뿍 찍어주던 찬밥 한 덩이가 어찌 그리 맛있었던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농촌에서 대문을 꽁꽁 닫고 살던 그 시절. 생각만 해도 왠지 서러운, 그러다가도 또 왜 그런지 그리운 그 시절, 우리의 농촌. 가수 진성은 진짜로 그 시절을 겪었을까? 배고픈 서러움을 온몸으로 느껴보았을까? ‘배 꺼질까봐 뛰지 말라’던 할머니의 당부도 들어보았을까. 아마도 그런 것같다. 그러니 저렇게 오장五臟을 긁어내는 듯, 절절하게 노래를 불러 히트를 쳤을 것이다.
아무튼, 지난해 집을 고치면서 맨먼저 한 것이 흙과 돌로 쌓은 앞담장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포클레인이 몇 번만 힘을 주니 와르르 무너지는 게 우리집 ‘과거過去’가 없어져버리는 것같았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반대하고 주저하셨을 터이지만, 헐어놓고 보니 전망이 툭 트여, 막말로 ‘뷰view’가 장난이 아니었다. 궁금하시면 500원, 한번 와 보시라. 하루종일 아무 생각없이 툇마루에 앉아 앞에 펼쳐진 들판과 제법 멀리 떨어진 듯한 앞산만 바라봐도 하루가 짧다. 내 이제 무엇을 바라고 꿈꾸리오? 안분지족安分知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한 세상 소풍逍風의 끝자락을 이렇게 끝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일진저!
문제는 뒷담장이 두 곳이나 허물어졌는데, 여지껏 보강을 못한 게 내내 신경이 쓰였었다. 앞 담장을 칼라블록으로 쌓을 때, 왕년 젊을 때 미장일을 하신 동네형님(70세)이 나흘 동안 도와주셨다. 일당을 주어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형님에게 드리니 기분이 좋았다. 형님이 보기에도 무너진 뒷담이 흉했던지, 고맙게도 나중에 ‘그냥’ 쌓아주겠다고 했다. 불감청고소원은 바로 이런 경우. 그런데 하필이면, 바쁜 농사철에 조금 시간이 나셨나보다. 어제 판교집에 올라왔는데 전화가 왔다. 나도 없는데, 뒷담을 쌓아주시겠단다. 내가 내려가 잔심부름도 해야 하고, 작업이 제법 큰 편인데, 동네 귀농선배 ‘덕재형’과 함께 할테니 걱정을 붙들어매라는데, 솔직히 감동했다.
시멘트도 두 푸대는 사와야 하고, 모래를 버물리는 일도 만만찮다. 데모도(조수)의 일도 많은데, 두 분이 집주인도 없는데, 그 일을 하겠다기에 차라리 레미탈(세멘과 모래가 섞어있어 물만 부으면 되는)을 사서 하시라해도 걱정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것 참, 이 고마움을 어찌 할 것일까? 물론 세멘 값은 드려야지만, 내려가는 즉시 ‘갈비파티’라도 해야겠다. 고향인심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에 종일 뿌듯했다. 아니, 나의 일이니까 해주시는 거겠지. 남의일이면 어림반푼어치도 없었을 거야. 내가 요즘 사람 답지 않게 '인간미人間美'가 넘치고, 보기 드물게 ‘인덕人德’과 ‘인복人福’이 덕지덕지 있지 아니한가. 흐흐.
모처럼 네 밤을 서울에서 자고 내려가 맨먼저 이어진 뒷담장을 보면 흐뭇하리라. 이제 마당에 꽃밭만 만들면 집단장은 99% 완성. 지난번 합배미밭 로타리도 공짜로 쳐주려해 악착같이 수고비를 드렸건만, 어제 작업은 절대로 돈을 받지 않을 터이니, 저녁이나 ‘쇠괴기’로 거하게 사드려야겠다. 올해 몇 년 동안 묵힌 우리집 감나무밭 농약도 '찰떡호흡'인 두 양반이 쳐준다고 했으니, 올 가을엔 대봉시 꼴도 좀 보게 될 터. 기대하시라. 많은 또래 친구들과 이런 동네형님, 해결사인 이장님 덕분에 내가 산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맛나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 고맙습니다. 두 분, 곧 뵙시당.
첫댓글 대문도 허물고
닫힌 마음도 허물고 살아가니 이웃간에 마음도 소통이되어
살기좋은 동네가 되었구려
얼마전부터 담장허물기운동을 벌여 관공서 학교등 담장. 정문이 많이 없어졌는데
대신 더 무서운 CCTV가 등장하여 조심조심 지나다닙니다 ㅎ
멋지네.
세상을 참 잘사시느만. 엄지 척! ^(^
대문을 허무니 열린세상이 열리고,냉천부락 이웃들도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 채감하리라.아예,이번 참에 사랑방 문도 오픈하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