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9월 (15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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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정유) 맑다. [양력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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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도독 진린(陳璘)과 함께 일제히 항해하여 나로도에 이르러서야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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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무술) 맑다. [양력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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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도에 머물었다. 도독과 함께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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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기해) 맑다. [양력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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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도에 머물었다. 진(陳)과 함께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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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경자) 맑다. [양력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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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두 시에 행군하여 방답진(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이르러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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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신축) 맑다. [양력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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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좌수영 앞바다에 옮겨 대니, 눈앞의 전경이 참담하다. 한 밤에 달빛을 타고 하개도(何介島:남해군 남면 대정리 목도?)로 옮겨 대었다가, 채 밝기도 전에 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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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임인) 맑다. [양력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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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여덟 시쯤에 유도(여천군 율촌면 여흥리 송도)에 이르니, 명나라 제독 유정(劉綎)이 벌써 진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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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으로 모두 조여드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많이 겁내는 빛이다. 수군이 드나들며 대포를 쏘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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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계묘) 맑다. [양력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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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진군하여 화살을 쏘기도 하고 화포를 쏘기도 하여 종일 싸웠으나, 물이 밀려나가 매우 얕아 진격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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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적이 가벼운 배를 타고서 들어와 정탐하려 할즈음 허사인(許思仁) 등이 추격하니, 왜적들은 뭍으로 올라가 산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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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왜놈들의 배와 여러 잡된 물건을 빼앗아 도독(유정)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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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갑진) 맑다. [양력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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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진군하여 나갔다 들어갔다 하면서 싸웠는데, 유격(마귀)이 어깨에 적탄을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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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 열한 명이 적탄에 맞아 죽고, 지세포만호 ∙ 옥포만호가 적탄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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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을사) 맑다. [양력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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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이 화를 냈다. 서천만호 및 홍주대장 ∙ 한산대장 등에게 각각 곤장 일곱 대를 쳤다. 금갑도만호 ∙ 제포만호 ∙ 회령포만호에게도 아울러 곤장 열다섯 대씩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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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병오) 맑다. [양력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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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강(陳大綱)이 돌아갔다. 원수 군관이 공문을 가지고 왔다. 충 청병사의 군관 김정현(金鼎鉉)이 왔다. 남해 사람 김득유(金得酉) 등 다섯 사람이 다녀 와서, 그 고을 적정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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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정미) 맑다. [양력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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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강(陳大綱)이 도로 와서 제독 유정(劉綎)의 편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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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육군은 비록 공격을 하려고 하나 기구가 완전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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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金鼎鉉)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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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무신) 맑다. [양력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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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기구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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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정응룡(鄭應龍)이 와서 북도의 일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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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기유) 아침에 잠시 비를 뿌리더니 히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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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명나라 군문 형개(邢 )가 글을 보내어 수군이 재빨리 진군한 것을 가상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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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도독 진린(陳璘)을 보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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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에 신호의(愼好義)가 와서 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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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경술) 맑다. [양력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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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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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신해) 맑다. [양력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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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임자) 맑다. [양력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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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명나라 유격 왕원주(王元周) ∙ 유격 복승(福昇) ∙ 파총 이천상(李天常)이 백 여 척을 거느리고 진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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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밤 등불을 밝히니, 휘황찬란하여 적도들은 간담이 써늘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