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나는 방학을 기다리지 않는 아이였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방학이 되면 나는 늘 서울 외삼촌댁으로 보내졌다. 많은 식구에 한 입이라도 덜어보자는 어머니의 뜻이었다. 내 덩치만한 가방을 끌어안고 차창밖에 서 있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가방이 닿는 배 부위가 뜨뜻했다. 아직 식지 않은 주먹밥 때문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어머니는 주먹밥을 싸 주셨다.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속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천천히 먹어라.” 또 한 입 먹으면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하는 음성이.
언뜻 보면 밥만 뭉쳐놓은 것 같지만 어머니의 주먹밥에는 많은 것이 잘게 다져진 채 들어가 있었다. 어린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잘 지내다 오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어미로서의 미안한 마음까지 꼭꼭 다져 넣으셨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먹밥은 반나절이 지나도 부서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 이렇게 단단한 주먹밥이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나는 눈으로 보면서 주먹밥을 먹었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나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가족’이라고 하면 수직 수평으로 엮어진 관계가 먼저 떠오르지만 ‘식구’라고 하면 둥근 밥상에 빙 들러 앉아있는 닮은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밥그릇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밥상에 둘러앉았을 때 우리는 밥만 먹는 게 아니다. 밥상 위에 올라온 걱정거리와 불만, 그리고 사소한 투정까지 서로 나눠 먹는다. 그런 것까지 너끈히 소화시켜 낼 수 있어야 진짜 ‘식구’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기억은 밥상을 배경으로 한 게 많다. 밥을 먹으며 식구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울었던 일, 철없이 반찬 투정을 하다 방 밖으로 쫓겨났던 일, 손가락으로 꽁치를 떼어먹다가 어머니의 젓가락에 손등을 맞았던 일 등. 그래서 기억의 소품도 주방용품이 많다. 방 안까지 들어온 동태국 냄비, 그을음이 묻은 양은 밥솥, 포개어진 국그릇 등. 으슬으슬 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날이면 예전에 우리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먹던 동탯국을 떠올린다. 동탯국 냄비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뽀얀 김을 생각한다. 그러면 어느새 속이 뜨뜻해져 온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 지는 음식, 그런 게 바로 소올 푸드가 아닌가 싶다.
사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들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 주던 음식이었다고 한다.지난 날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 앞에 다시 앉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머니의 착하고 반듯한 자식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게 아닐까. 죽음을 앞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마지막 위로,그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소울 푸드다.
우리가 가장 정성껏 만드는 음식이라면 아무래도 제사 음식일 것이다.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먹는 밥이면서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과 친척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우는 밥이다. 제사를 마치고 우리가 다 같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아마 고인(故人)도 흐뭇한 표정을 지르며 같이 드시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원하게 지내던 영혼까지 다시 이어주는 제사 음식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소울 푸드라 하겠다.
시어머니의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후라이팬 위에 전(煎)거리를 하나씩 올려놓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도 같이 올린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정성껏 도토리묵을 쑤시던 모습과 이른 새벽 어둑어둑한 대청마루에 앉아 자식에게 들려 보낼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싸고 계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함께 회한도 밀려온다. 어머니를 외롭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나의 박정함이 명태전 속에 숨어있는 가시처럼 나를 찔러댄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음식들은 우리들의 지난 기억을 돕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들의 영혼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디 음식뿐이랴. 일상 속에서 만나는 좋은 음악이나 그림, 풍경, 그리고 좋은 인연들도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잘 발효시키기만 하면 분명 ‘소올 푸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람도 이 세상을 살리는 ‘소올 푸드’가 아닐까.
나는 과연 어떤 ‘푸드’일까. 들여다보니 내 안에는 걸러낼 수 없는 불순물이 너무나 많다. 이다음 내가 땅에 묻혔을 때 나로 인해 땅의 뱃속이 더부룩해질 것 같은데 이를 어쩐다?
(정성화 님의 수필중에서...,)
첫댓글 마음 찡한 감동입니다.
어린 시절 외가댁으로 고모댁으로
방학에 다녀오는 형제는 언니였습니다.
방학이 끝날 무렵 언니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돌아옵니다.
그것이 부러워 다음 방학땐 나도 고모댁으로 놀러 가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숫기 없는 나는 한 번도 친척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친척 집에 가는 것이 그런 의미였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먹밥을 먹으며 울먹이며 차를 타고 가는 작가의 글에서 언니의 모습을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