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 坤) 33-1
제 33장 파몽(破夢)
햇볕이 제법 따가운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늘을 찾아 할 일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약왕전의 환자들 몇 명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한 사람이 며칠 전부터 약왕전에 살게 된 꼬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얘기 들었나? 며칠 전 정각 대사가 대리고 온 꼬마 말이야."
"자네도 들었나?"
"그 꼬마의 피와 살이 바로 보약이라고 하더군."
대화를 듣고 있던 그들 중의 하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다 헛소문이야. 내가 정각 대사를 찾아가서 다 물어 보았다구. 그 꼬마가 아주 어릴 때 실수로 아주 독성이 강한 약초를 먹어서, 그 꼬마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것이라고 하더군."
"그래?"
"하여튼 그 아이가 살아 있는 것만도 천운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정각 대사는 그 아이의 피를 뽑고 있지?"
"그건 또 왜?"
"독도 약이 될 수 있다고 그러더군. 그 아이의 피를 뽑아서 다른 약과 섞으면 우리를 치료할 약을 만들 수 있다나?"
거기 모여 있는 환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환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이, 모두 거기 모여 있었군!"
오른팔은 붕대로 감아서 가슴에 고정시키고, 멀쩡한 왼팔은 허공을 향해 흔들며 말하는 그 사람은 화산파가 배출한 젊은 고수 검룡 악종진이었다. 정파 연합맹인 구환맹의 척살대 암천혈혼대의 대장직을 맡고 있는 그 젊은 도사가 다가오자, 거기 모여 있던 몇 명의 환자들이 분분히 일어서며 그에게 인사했다.
"이제 팔은 다 나은 겁니까, 대장님?"
"그럭저럭 팔은 자르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더군. 그보다 자네들 여기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어나?"
"독초를 먹고 잠꾸러기가 된 꼬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 꼬마? 조금 전에 저기 기둥 아래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
소림사의 환자들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자고 있는 소구의 의식 속에 머무르고 있는 또 다른 소구는 무척 만족한 미소를 흘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이제 미래는 내가 슬퍼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구나. 날 잡아먹으려는 인간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니---. 이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좋겠는데----.'
소구가 원하는 대로 일은 진행되고 있었다. 치료받기 위해 소림사로 왔다가, 무림인들에게 잡혀 먹힐 뻔한 끔찍한 경험을 겪어야 되는 미래가 사라진 것이다.
미소를 지으며 잠들어 있는 소구의 옆으로 어딘지 심술 맞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한 사람이 다가왔다.
"이 꼬마가 그 꼬마인가? 젠장 내가 왜?"
투덜거리면서 꼬마를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청년은 정각 대사의 속가제자 양평이었다. 사부인 정각 대사가 양평에게 아이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탓이었다.
정각은 좌선을 하면서 복잡한 심사를 달래고 있었다.
'제가 왜 알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피를 뽑아야 돼요?!'
자신의 피를 뽑아서 다른 사람들의 치료를 한다는 말을 들은 아이가 잔뜩 골이 나서 외치던 말이 정각의 귀를 아직도 어지럽혔다. 정각은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그 아이의 피는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피를 약으로 쓴다는 것부터 뭔가 잘못된 상황이었고, 그 아이 역시 분명히 몸이 고장나서 정각의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였고 피를 뽑는 만큼 그 아이의 몸 상태 또한 안 좋아질 것이다. 다른 환자들에게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아이가 먹은 것은 영약이 아니라 독초라고 했지만 금방 들킬 일이었다. 정각은 아이의 몸에 엄청난 양의 양기(陽氣)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아낸 상태였다.
정각이 그렇게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사님, 정각 대사님."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린 정각이 물었다.
"누구요?"
"화산의 악종진입니다."
"악 소협, 무슨 일인가?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들어오게나."
잠시 후 선방으로 들어선 악종진은 바로 조금 전 일단의 환자들이 모여서 하던 말을 들려주면서 물었다.
"정말 그 아이가 먹은 것이 독초입니까?"
"그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말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 아이가 먹은 것은 독초가 아니라 영약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악종진의 대답에 정각은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그럼?!"
"죽기 일보직전의 사람들입니다. 살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아이의 피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허허, 소림사가 왜 이런 모양이 되었을꼬--------."
허탈한 웃음을 흘리면서 정각이 다시 주저앉고 있을 때, 자고 있던 소구는 벌떡 일어섰다.
'이건 아니야. 왜 원래대로 흘러가려고 그러는 거야?!'
바꾸고자 하는 일이 바뀌지 않고 원래대로 흐르려고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일곱 살 꼬마의 두 눈은, 더 이상 일곱 살 꼬마의 눈이 아니었다. 깊고 무한한 지혜와 힘을 간직하고 있는 눈이었다. 의식의 깊은 곳에만 머물러 있으려 했던 혼천경에 이르러 있는 소구의 영혼은 완전히 깨어나 있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의 낮이었다.
"난 오늘밤에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동굴 아래로 떨어지고, 금강동 안의 금강존자들을 만나게 될 거야. 만나야 할 운명이라면 지금 만나는 것도 상관없겠지?"
소구는 혼천독보를 이용해서 바로 금강동 안으로 가고 싶었지만, 현재의 육신은 혼천독보를 감당할 수 있는 단련된 육신이 아니었다. 만약 시전 한다면 바로 몸이 소멸하고 지금 머무르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있게 될 것이다. 몸 속에 막대한 양의 양기가 잠자고 있지만, 그것을 꺼내 쓸 수 없는 일곱 살 방소구의 육신은 어떤 무공도 사용할 수 없었다. 소구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금강동으로 떨어지는 동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늘 아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소구의 눈에 들어왔다.
"저 잠꾸러기가 웬 일이지?"
"꼬마야! 어딜 그렇게 뛰어가니?!"
소구의 귓가에 환자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대답하지 않고 소구는 계속 뛰어가기 시작했다. 늦기 전에 그 동굴로 들어가서 금강동으로 떨어져야 했다.
'괜찮겠지? 이렇게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진 것이니---.'
달리고 있는 소구의 머리 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독한 만남의 인연은 어떻게든 소구가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하고 있었다.
금강동과 연결되어 있는 동굴 앞에 선 소구는 광기에 찬 눈을 하고 있는 화산파의 풍진자와 마주 서게 되었다. 심마(心魔)의 벽에 부딪쳐 있는 늙은 도장의 몸에서는 살기(殺氣)가 넘실거리고, 그의 손에 든 한 자루의 검에는 검강(劍綱)이 이장이나 뻗쳐 있었다.
'이분이 소림에서 죽지 않는다면 미래는 좀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를지 몰라.'
생각은 짧게 끝났고, 소구는 소리쳤다.
"도장께서는 무엇을 위해 검을 든 것입니까?!"
광기에 찬 번들거리는 두 눈이 소리친 소구를 노려보고 소리쳤다.
"내 앞에 선 모든 것을 베어버리기 위해서다!"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너다!"
"내가 당신의 적입니까?!"
"그렇다! 내 앞에 선 것은 모두가 적이다!"
소리치는 풍진자를 바라보며 소구는 생각했다.
'단단히 미쳤군.'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풍진자가 공격을 하기 전에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풍진자의 검이 현재의 연약한 자신의 몸을 베어버릴 테니. 생각은 짧게 끝나고 소구는 다시 소리쳤다.
"당신의 앞에는 나만 보입니까? 내 뒤의 바위와 나무는 당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뿐입니까? 땅은 보이지 않나요? 하늘은 보이지 않아요?!"
소년의 외침을 들으면서 바로 앞만을 보던 풍진자의 눈은 세상 전체를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의 광기에 찼던 눈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소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풍진자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이다.
"아이야, 너는 누구냐?"
들고 있던 검을 땅바닥에 꽃아 세우고 바위에 걸터앉으면서 풍진자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저는 소구라고 합니다."
"누가 너에게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쳤느냐?"
풍진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질문에 소구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전에 아주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도장과 만나야만 하는 인연을 가지고 있기에 여기에서 만난 것이고 저는 도장에게 해줘야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자연과 하나가 되고 베려거든 먼저 자신을 베세요. 대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도장을 괴롭히는 심마가 물러나고 생명을 갉아먹는 독도 자연히 소멸할 것입니다."
불과 일곱 살 밖에 안 되는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가 할 말이 절대로 아니었다. 풍진자는 정말로 놀라서 물었다.
"너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그러나 소구는 대답하지 않고 풍진자의 등뒤에 있는 동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명의 흐름에 따라 저는 도장의 등뒤에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야 할 인연이 있기에 이곳에 온 것입니다."
말을 끝내고 소년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풍진자는 불과 일곱 살의 어린아이의 몸에서 대자연의 기도를 느끼고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가 사라진 동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꼼짝 않고 서 있던 풍진자는 다시 동굴 앞의 바위에 걸터앉고, 붉게 물든 해가 산너머로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소년이 준 깨달음은 잠시 뒤 풍진자를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동굴의 안쪽에는 깊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고, 계속 걸음을 옮기던 소구는 발이 허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으 아 아 악!"
떨어지는 순간 일곱 살의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소구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동굴 속의 절벽 아래에 머무르고 있는 열 여덟의 금빛 몸을 하고 있는 승인들은 시선을 머리 위로 던졌다.
잠시 뒤, 금강나한이라 불리는 열 여덟의 전대의 고승들은 그들 사이에 떨어진 소구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합장했다. 불법을 깊이 터득하고 있는 그들 열 여덟의 고승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소년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크기를 느낀 것이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소년에게서 말이되 말이 아닌 것이, 그들 열 여덟의 고승들의 마음에 전해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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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