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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합니다) - Joan Baez/ Mercedes Sosa

http://v.youku.com/v_show/id_XNTA1MjcxMjEy.html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는
두 개의 샛별을 내게 주신... 그리고 저 높이에 떠있는 별들과
많은 이웃과 사랑하는 사람...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밤낮으로 귀뚜라미와 카나리아들 소리,
망치소리, 터빈소리,
개 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를 녹음할 수 있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도 담을 수 있는..
넓은 귀를 주셨습니다.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내가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주었습니다. 어머니, 친구들, 형제들과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습니다.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내 지친 발걸음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도시들과 물고인 웅덩이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그리고 당신의 집과 거리와 뜰 안을 걷게 해주었습니다.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내게 그 틀을 뒤흔들 심장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정신의 산물을 볼 때... 악함에서 멀리에 있는 선함을 볼 때... 당신의 맑은 눈 속의 깊은 곳을 바라볼 때...
삶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걸 주신... 나에게 웃음과 눈물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슬픔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두 가지는 내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모든 이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모든 이의 노래가 내 본연의 노래이듯....
감사합니다.
내 삶을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two beams of light, that when opened, Can perfectly distinguish black from white And in the sky above, her starry backdrop, And from within the multitude The one that I love.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an ear that, in all of its width Records— night and day—crickets and canaries, Hammers and turbines and bricks and storms, And the tender voice of my beloved.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sound and the alphabet. With them the words that I think and declare: "Mother," "Friend," "Brother" and the light shining. The route of the soul from which comes love.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the ability to walk with my tired feet. With them I have traversed cities and puddles Valleys and deserts, mountains and plains. And your house, your street and your patio.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a heart, that causes my frame to shudder, When I see the fruit of the human brain, When I see good so far from bad, When I see within the clarity of your eyes...
Thanks to life, which has given me so much. It gave me laughter and it gave me longing. With them I distinguish happiness and pain— The two materials from which my songs are formed, And your song, as well, which is the same song. And everyone's song, which is my very song.
Thanks to life Thanks to life Thanks to life Thanks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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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민중의 사랑, 메르세데스 소사
'고난 받는 이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녀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뚜꾸만의 산 미구엘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는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982년 12월 민주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근 170년간 잦은 군사쿠데타로 시달려 온 나라다. 국민의 10%가 인디오이고 나머지는 유럽계 백인이다. 인디오들은 16세기의 스페인 침략을 겪으면서 이후 백인 농장주인들의 착취와 그 사람들을 지원하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정 아래에 있었다.
1976년 초 쿠테타를 거쳐 정권이 비델라 군부로 넘어가면서 여느 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정치·사회적으로 탄압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1977년부터 군사독재가 종식되기까지 약 3년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리는 군부의 인권탄압으로 3만여명의 민중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기도 했다. 소사는 '인간애'가 넘치는 노래를 통해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물론, 똑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노래하면서 군부에 맞서 저항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1960년 ~1970년에 미국의 대중가요가 남미 대륙으로 무분별하게 유입되자 남미의 가수들은 전통가요에 민중의 삶과 미래를 담은 누에바 깐시온(새노래라는 뜻) 운동을 벌인다. 아르헨티나의 알따우알빠 유빵끼, 메르세데스 소사, 칠레의 빅토르 하라 등 많은 가수들이 앞장 섰다.
그녀의 노래는 라디오나 TV에서 방송될 수 없었다. 군사정권 아래서 체포와 석방을 되풀이하던 소사는 1979년 1월, 아르헨티나에서 영구 추방됐다. 그녀의 망명 생활은 소사의 아티스트적 면모를 새롭게 여는 계기가 되어 안데스의 전통음악에 뿌리를 둔 '포크로리카'(Folklorica)에 음악적 뿌리를 두면서 록과 재즈의 요소까지 넓혔다.
1982년, 마침내 소사는 망명생활을 끝내고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정권은 몰락했다. 귀국 후 한 오페라 극장에서 가진 그의 공연은 그야말로 감동의 무대였다. Gracias A La Vida는 비올레따 빠라의 원곡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노래로 홀을 가득 메운 극장 안에서 민중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부른다.
"나는 전 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건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는 변합니다. 투쟁과 단결의 노래도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있습니다.
내가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국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왜냐고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게 투쟁이거든요. 아니,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는 게 그렇지요. 나는 국민들에게 무슨 문제제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메르세데스 소사
그녀의 노래: Kyrie(불쌍히 여기소서),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합니다), Todo Cambia(모든 것은 변하네), Vengo a ofrecer mi corazon(내 마음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

자유와 인권을 노래한 포크의 여왕, 존 바에즈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961년 4월, 밥 딜런과 처음 만난 이후 두 사람은 미국 포크 음악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떠오른다. 이해에 그녀는 처음으로 전미 콘서트 투어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이 콘서트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와 흑인의 공민권 확보를 위한 주장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1955년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발생한 흑인들의 버스승차거부운동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앞장 선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존 바에즈는 1963년 3월 25만 명의 민중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확대를 요구하며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거리 행진에 참여했고, 이들 앞에서 <우리 승리 하리라(We Shall Overcome)>을 노래했다.
이 해 8월엔 노예해방 선언 백주년을 기념하는 워싱턴 대행진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너무도 유명한 연설의 서두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을 말했다.
이 행진엔 존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매리, 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 등의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
베트남전이 격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막대한 전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존 바에즈는 자신의 수입 중 60%가 베트남 민중을 죽이는 총탄과 포탄이 되는 세금으로 원천징수된다는 사실에 분개하여세금 징수에 불복했고, 존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반전,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68운동의 한가운데에도 그녀는 있었다. 1969년 그녀의 남편 데이빗 해리스가 징병 기피 혐의로 3년형을 선고 받았고, 20개월을 복역한다. 존 바에즈는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남편에게 바치는 <David's Album>을 발표했고, 8월에는 역사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The Woodstock Festival)에 참가했다.
존 바에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베트남의 하노이,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에서 노래했고, 억울하게 구금당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서 노래했다.
레이건 집권 이후 더한층 강화된 미국의 보수주의 물결 속에서도 1981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5주간의 콘서트와 인권 실태조사 여행을 강행한다. 여행 도중 그녀는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이 모든 일을 끝까지 해냈다. 또한 그녀는 핵무기 제조 및 사용 중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 유럽을 순회공연했고,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파리의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12만 명의 군중 속에서 노래했다. 그녀의 이런 활동들은 가장 최근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멈춘 적이 없다.
"당신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존 바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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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음악 정말 잘 들었습니다 귀한 자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