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더위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제 선들바람이 불어오는 처서(處暑)가 닦아옵니다.
처서 하면 옛 속담에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일손이 한가로워 호미를 깨끗이 씻는 ‘호미씻이’도 하고 풀이 더 자라지 않으니 논 밭둑에
풀을 깎는 일을 하루 정도로 한가롭게 시간 때우는 것을 이른 말입니다.
즉 칠월은 바쁘게 김매기를 하느라 정신없이 어정거리는 사이에 지나고, 팔월에는 곡식을
익히는 건들바람이 분다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처서와 관련지어 남도 지방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물었습니다.
‘미친놈, 미친년이 날 잡는답시고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젔다네’ 그리고 모기가 귀뚜라미에 묻습니다. ‘어디에 쓰려고 톱은 가져가느냐’고.
귀뚜라미 왈(曰) ‘추야장(秋夜長) 독수공방에 님 기다리는 처자 낭군 애끊으려 가져가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애끓는 톱 소리로 듣는다는 것은 극도로 세련된 우리만의
전통적인 정서입니다.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처량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곧 처서와
관련지어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힘든 농사를 유머와 윗트로 넘기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농업을 장려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처서 기간 중 긴 장마에 젖고 곰팡이 핀 물건들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리며, 선비는 책을 말렸습니다.
어디 옛 분들 틀린 일 하는 것 봤습니까? 특히 사내들이 이때가 되면 산에 올라가 정상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장마 통에 습해진 주요 부위를 햇볕에 노출하고 바람에 말렸다고 합니다.
이 풍습을 거풍(擧風)이라 합니다.
나는 나름대로 샤워를 자주 하고 드라이로 몸을 말려 보지만 아무리 말려도 몸이 끈끈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나도 산에 올라가 암석 위에 우뚝 서서 거풍 한번 해볼거나!?
어, 어-- 이 사람 봐라, 아니 그 나이에, 그 나이에 거풍을 꿈꾼다니 언감생심도 분수가 있지,
아직도 장란기가 남아있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 – 그 짓 말라 하는 소리 청각장애가 심한 나에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