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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3-4
이미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칠호는 이 미치광이 노인이 괜히 정파와 마교의 싸움에 휘말려들어 죽을 것을 걱정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노인의 말대로 정말 노인이 고금제일의 고수라면 지금 하는 말은 전혀 쓸데없는 말이 되겠지만, 칠호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사실 누가 어떤 일을 당하든 전혀 관계하지 않던 칠호였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착한 일 하나는 하고 죽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호, 네가 날 생각해 준거냐? 정파 놈들이든 마교 놈들이든 몽땅 저기 숭산 아래서 지금 한바탕 난리를 피는 중이야. 그건 걱정하지 말아, 그리고 그놈들 실력으로 내 곁에 오지도 못하고---."
"노인장, 정말이오? "
"내가 너 같이 어린 녀석한테 거짓말해서 뭐 떨어지는 것 있냐? 근데 그 사탕 봉지는 뭐냐?"
"이 건물에 머물고 있는 꼬마한테 갖다 줄 물건이죠."
"그 꼬마도 저기 싸움터에 있는데---, 조금 있으면 그 꼬마도 죽겠군."
"노인장, 그게 보이세요?"
"이놈아, 눈으로 보는 것만 보는 것이냐? 무술을 조금 배운 것 같은데 네놈은 마음으로 보는 법도 몰라?!"
노인의 말을 들으면서 칠호의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랐다. 무공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보는 그런 경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다고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고개를 흔들며 놀란 정신을 추스른 칠호는 노인의 말속에 이곳에 그 꼬마가 없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칠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사탕봉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날이 창창한 놈이 웬 한숨이냐?"
칠호는 다시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다음 힐끗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려 지붕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사탕은 마교가 보낸 사탕이었다. 이미 이곳에 정파의 암천혈혼대라는 살인기계들도 마교가 보낸 자들도 모두 없다는 것은 저 노인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이 사탕을 먹는다 해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방해할 존재가 없을 때 이것을 먹어치우고 싶은 생각뿐인 칠호였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복수의 한계였다.
칠호는 마치 독약을 먹는 표정으로 사탕을 하나씩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야, 이놈아!"
고개를 숙인 채 사탕을 먹고 있던 칠호는 갑자기 들려오는 고함에 고개를 들려 다시 지붕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 괘씸한 녀석, 한번 먹어보라고 하지도 않네?"
"노인장, 이 사탕은 결코 먹을만한 게 아닙니다. 이건 마교가 보낸 사탕이라구요."
"마교가 어쨌다고?"
"지금 내 몸속엔 마교의 고독이 들어 있어서 얼마 못 살고, 이 사탕은 세상에 남아 있으면 크나큰 해독을 끼칠 물건이라구요."
"그냥 사탕일 뿐이잖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사탕을 내 등뒤에 건물에 살던 아이에게 먹이라는 한 것이 마교라구요."
"흠, 그러고 보니 네 몸 속에 벌레가 있긴 있구나? 그 벌레 내가 없애주면 사탕 좀 나도 나눠줄래?"
잘게 몸을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고개를 위로 돌린 칠호의 눈에, 지붕 아래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노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한가득 들어왔다.
"저--정말인가요?"
"그래, 네 녀석 몸에 숨어 있는 벌레 정도 잡아죽이는 일이야 나한텐 아주 쉬운 일이지."
구정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노인은 귀한 사탕을 먹는 다는 생각에 입가에 침이 고였다.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려온 노인은 가만히 장삼의 가슴에 주름진 손을 갖다대고 말했다.
"너 사탕 나한테 주어야 한다."
"이 봉지 속에 사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탕이 아닌 것이 끼어 있는데 그건 제가 가질 것입니다."
"마음대로 해, 난 오랜만에 사탕 맛 좀 보려는 것이니---."
잠시 후 칠호는 엄청나게 뜨거운 기운이 온 몸을 타고 도는 것을 느꼈다. 너무 뜨거워서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칠호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손에 들고 있던 사탕 봉지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풀썩'
의식을 잃은 채 칠호는 계단 아래 쓰러져 넘어지고 노인은 사탕봉지를 집어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녀석과 나의 만남은 이루어졌구나. 네 녀석이 미래에 벌일 일을 생각하면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다만---, 앞으로의 일은 나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한다?"
사탕 봉지를 집어들고 한 알의 붉은 사탕을 꺼내 쥐면서 구정문은 고민에 찬 표정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칠호를 바라보았다.
"너의 운명은 내가 아무리 방해한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 마교 고수의 원정내단을 먹게 하겠지?"
중얼거리던 구정문은 숭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들 대부분이 오늘 그의 손에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기절해 쓰러져 있던 칠호가 다시 의식이 깨어난 곳은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서였다. 살수로서의 훈련을 받을 때 칠호가 있던 곳은 지금 있는 곳처럼 어둠만이 있던 곳이었다. 칠호로서는 이렇게 어두운 곳이 보통사람과는 달리 아늑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깨어났느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어둠뿐인 그곳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칠호는 황급히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네가 먹으려던 그것은 마교의 고수가 죽은 후 남긴 원정내단이다. 그것을 먹으면 넌 미치게 될 거야. 거기다 파괴와 살인만을 하면서 미친 듯이 세상을 떠돌게 되겠지."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암흑에 대고 칠호는 소리쳤다.
"네가 마기(魔氣)에서 벗어나면 이곳에서 자동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거다. 그럼 안녕!"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칠호는 황당했다. 이렇게 제멋 대로인 노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자신의 생각은 들어보지 않고도 사람을 이런 곳에 가둔 것이다.
"근데 사탕인지 원정내단인지 그건 어디 있지?"
그는 땅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손바닥으로 둥근 알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사탕의 껍질을 벗은 원정내단은 은은한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칠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걸 먹으면---, 정말로 미치게 되는 걸까? 그러나 이것을 먹으면---, 마교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건가----?"
칠호가 중얼거릴 때, 갑자기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참, 깜빡 잊고 말을 안 했는데 말이다. 네가 그것을 먹이려던 아이는 내가 제자로 점찍은 아이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잘 대해야 한다. 네가 나쁜 짓을 하면 내 제자가 널 지옥으로 데려갈 테니. 그럼 정말로 안녕!"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적막과 어둠 속에서 칠호는 입안에 원정내단을 삼키기 전에 중얼거렸다.
"그 꼬마가 노인의 제자가 된다고? 왜 난 제자로 삼아주지 않는 거야? 이 따위 사람을 미치게 하는 원정내단 보다는 그 노인의 제자가 되는게 훨씬 나을텐데---. 이왕 도와주는 거 확실히 도와주실 것이지."
자신이 만난 노인이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칠호였다. 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온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하는 마교도 멸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칠호였다. 칠호가 하고 싶은 일은 그가 죽더라도 그의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살막의 막주를 죽인 마교의 염혼을 죽이는 일이었고, 노인이라면 그 일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쉬웠다.
"후--우, 어쩔 수 없지. 내가 이것을 먹고 마기(魔氣)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이곳을 벗어날 힘이 생긴다고 했으니---. 그 노인의 말이 맞겠지."
중얼거리면서 칠호는 손에 쥐고 있던 한 알의 은은히 붉은 빛이 감도는 구슬을 꿀꺽 삼켰다.
양평은 죽어라 도망치고, 그 뒤를 쫓아 암천혈혼대의 인물들이 추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악종진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부하였던 자들에게 죽기 일보직전의 상태로 몰리고, 그 때 암흑전사단이라 불리는 마도의 무리들이 등장하면서 그는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향해 겨누어졌던 칼날이 새로이 등장한 적들을 향해 돌려졌기에, 그는 양평의 뒤를 추적하는 암천혈혼대와 암흑전사단의 뒤를 쫓았다.
'펑! 펑!'
하는 요란한 폭음 소리가 터지고 쇠로 된 무기들이 정신없이 부딪치는 숭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소림에서 모를 수가 없었다. 요란한 전투는 벌써 한시 진 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소림에서도 사대금강과 일단의 무승들이 폭음이 터져 나오는 숭산 아래의 한 지역으로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고 있었다.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수신호다! 모두 철수하라!"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난 것은 마교의 인물들이었다. 바로 다음에 철수한 것은 암천혈혼대의 인물들이었다.
사대금강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양평과 악종진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일각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양평의 눈은 안도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파의 암천혈혼대와 마교의 암흑전사단이라는 단체는 무림에서 최강의 무력조직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두 무리가 모두 자신이 등에 매달고 있는 아이를 노리고 있었다. 한쪽은 죽이기 위해서였고 한쪽은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교로 대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양평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그 두 무리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쌓은 무공이 있으니 싸울 수도 있었겠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무조건 피하고 도망치는 사이 몸에 상처들은 하나씩 늘어나고 이제 상황이 종결되고 보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악종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평과 등을 맞대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에서 악종진이 물었다.
"양형, 우리 산 거요?"
"아마도 산 것 같소. 악형 덕분에 우리는 살았는데--, 맹에서 명령을 위반했다고 양형을 가만 놔두려 하지 않을 것이오."
"흥! 난 화산파의 장문을 이을 대 제자요. 게다가 풍진자 사숙께서 살아 계시는데 누가 감히 화산을 건드리려 하겠소?"
"하긴 천하제일검의 분노를 사고 싶은 문파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놈들이 내게 벌을 주려면 먼저 양형과 그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들이 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악종진의 말에 양평은 모처럼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바로 악종진의 입에서도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 무림의 젊은 용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소를 향해 소림의 사대금강이 찾아오고, 숭산에 잠입했던 암천혈혼대와 암흑전사단의 인물들은 모두 구정문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미래에 소구의 적이 될 운명을 안고 있던 악종진이었지만, 이 날의 선택으로 전혀 다른 미래를 살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가 알고 있고, 만났던 인물들의 미래 또한 변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소구 또한 끼어 있었다.
소구의 바램대로 미래는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살이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를 하고 소림사로 들어온 양평과 악종진 그리고 방소구의 온 몸은 붕대로 칭칭 감긴 상태로 침상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방소구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반짝반짝 하는 대머리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없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몸 속에 숨어 있던 엄청난 내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기가 통하는 혈이 막혀 있습니다."
"근맥이 손상되어 다시는 무거운 것을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상태로 보아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방소구의 주위를 둘러싼 늙은 중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정각은 눈을 감았다. 방소구는 눈만 내 놓은 채 얼굴마저도 붕대로 감긴 상태였다. 그리고 정신없이 들려오는 말속에 담긴 말을 종합해보면 자신이 병신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잠시 뒤, 약을 바르고 상처를 치료하던 의승(醫僧)들이 모두 떠나고, 방안에는 이제 누워 있는 세 사람뿐이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감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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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