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영화 사도가 흥행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이덕일식 사관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이덕일의 대척점에 있는 정병설 교수나 박시백 화백의 영향을 받은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겁니다. 이준익 감독의 두번째 천만관객 작품이 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이덕일의 핵심 주장인 사도세자 당쟁 희생설에 반대되는 영화가 흥행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이덕일이 한국일보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는데요. 명불허전입니다. 한 번 대충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상략)평민 나경언의 고변서를 처음 접수한 당사자가 형조참의 이해중이었다. ‘영조실록’은 “이해중이 영의정 홍봉한에게 달려가 고하니 홍봉한이, ‘청대(請對)하여 계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고, 이해중이 세 차례나 청대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해중은 홍봉한의 부인 한산 이씨의 동생으로서 사도세자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외삼촌이다. 이해중은 고변서를 받자마자 보고 계통을 무시하고 자형(?兄) 홍봉한에게 달려갔고 홍봉한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빨리 임금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정조가 이해중을 꾸짖은 것은 대사헌으로서 홍봉한ㆍ홍인한 형제같은 거악(巨惡) 탄핵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였다. ‘나경언’을 비유한 것은 네가 홍봉한과 함께 내 부친을 죽이는데 가담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야유였다.(하략)
요 부분의 경우 일단 제가 알기로도 이해중이 홍봉한의 인척이라는 것은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보고 계통 무시라... 이덕일이 알고 있는 조선왕조의 보고 계통이 뭔지 궁금해지는 군요. 일단 나경언 고변 사건 당시 형조참의인 그가 영의정에게 이 사실을 의논하고, 영의정이 후딱 보고하라고 한 것 자체는 크게 이상할 게 없습니다. 관료제 국가인 조선에서 기본적으로 역모 고변이 왕에게 들어가는 것에도 어느정도 절차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딱히 하자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가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상략)노론 영수 홍봉한은 세자가 뒤주에 갇혀 신음하던 영조 38년(1762) 윤 5월 17일 소론 영수였던 전 우의정 조재호(趙載浩)를 죽음으로 몰았다. 조재호가 “한쪽 사람들(노론)이 모두 소조(小朝ㆍ세자)에 불충하였으나 나는 동궁(東宮ㆍ세자)을 보호하고 있다”(‘영조실록’ 28년 6월 22일)고 말했다는 이유였다. 야당 영수 조재호가 “나는 동궁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사형 당한 이 사건이 사도세자 살해 사건의 근본적 프레임을 잘 보여준다.
거대 수구집권세력의 개혁세력 제거작전의 희생양이 사도세자였다. 홍봉한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쏟아지자 정조는 ‘홍봉한에게 극률(極律ㆍ사형)을 내리면 자궁(慈宮ㆍ혜경궁)께서 불안해하시고 자궁께서 불안해하시면 나도 불안하다(‘정조실록’, 즉위년 3월 30일)’는 논리로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동생인 좌의정 홍인한을 죽이고 홍씨 집안을 조정에서 축출하는 것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부친의 영혼을 위로했다. 혜경궁 홍씨가 나중에 ‘한중록’에서 ‘사도세자 사건은 정신병자인 사도세자와 정신병자에 가까운 영조가 충돌한 결과이지 우리 친정은 책임이 없다’고 구구절절 변명했던 것은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친정을 신원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재호의 죽음이 사도세자와 연관이 있다는 건 솔직히 부정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홍봉한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소론의 정치 공세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편입니다. 문제는 이게 거대 수구집권세력의 개혁 세력 제거 작전이라고 한 것인데... 실록이나 그런 걸 좀 제대로 보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홍인한을 죽이고 홍씨 집안을 작살낸 건 사실이지만 이는 영조 말년에 힘이 커진 척신 가문에 대한 숙청작업이자, 영조 말년에 세손인 자신을 몰아내고 그의 동생을 앉히려던 시도때문이었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뭐 홍씨가문과 정조의 대립에 사도세자 문제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만... 홍씨 일가가 세손의 보호자네 하며 나서지만 사도세자가 죽을 때 어찌됬든 방관자일 수 밖에 없었던 문제가 있으니 말입니다.
아. 그리고 한중록. 이건 좀 언급을 해야겠는데 사실 한중록에 집안 변명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분명 그런 목적이 강한게 한중록입니다. 그리고 분명 그 과정에서 왜곡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덕일이 말하는 것처럼 완전 왜곡투성이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전근대에서 저렇게 일관적으로 정신병을 암시하는 기록들을 썼다는 점을 볼 때 한중록의 기록들은 진실성이 높다는 정신과 의사의 논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자면 영조 51년인 1775년에 딸이 신문고를 쳤다는 이유 하나로 영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조재호가 신원되고 딸이 상을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노론은 입도 벙끗 못 했습니다. 이거 좀 생각해볼만한 문제 아닌가요?
소설이든 드라마든 실제 생존했던 인물들을 그릴 때는 실제 행적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우리처럼 시대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살아갔을 선인들의 인생과 역사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사도’는 놀랄 정도로 사실과 너무 다르다. 수구세력에게 살해당한 사도세자를 아무나 마구 죽이는 미친 살인마로 둔갑시켰고, 세자 살해의 주범 홍봉한은 세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장인으로 변개시켰고, 나경언은 사도세자가 여동생인 궁녀를 죽여서 고변하는 인물로 창작했다. 심지어 영조가 생명의 은인이었던 대비 인원황후 김씨와도 대립하는 것으로 거꾸로 묘사했다.
실제 행적에 제한을 받는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뭐 예의도 맞는 말이고. 근데 이덕일이야말로 예의를 어기고 있다는게 문제죠. 일단 사도세자가 아무나 마구 죽이는 미친 살인마란건 유감스럽게도 맞는 말입니다. 당장 실록은 물론이고, 남인 시파에서 만든 대천록에서조차도 사도세자가 사람을 여럿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정조의 인정을 받은 대천록에서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이 100명이나 된다는 말이 있을 지경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100명은 일종의 과장, 수사적 표현이 아닌가 싶지만 기록들을 봤을 때 사람 많이 죽인 건 틀림이 없습니다. 당장 사도세자가 궁녀들과 관계를 하는데 궁녀들을 막 대하고 해서 궁녀들이 피했다는 한중록의 기록을 봤을때부터 사도세자는 비정상일 공산이 컸습니다. 왜냐고요? 세자의 성은을 입는 걸 궁녀들이 피한다는 것부터가 단단히 비정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를 제가 안 봐서 함부로 뭐라고 하긴 힘든데 홍봉한이 세자를 살리려 했다라... 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사실 당시 조정에서 영조와 세자가 갈등을 일으키면 신하들이 중간에 끼어서 이도저도 못하거나 나름 중재를 시도하고, 영조에게 너무 사도세자를 다그치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많이 보입니다. 아니.. 애당초 이간질을 한 정황이 전혀 안 보이는게 관서 유람에 대한 보고도 너무 늦었고, 나경언의 고변 당시 영조가 나경언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거의 다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라 조선의 신하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던 판이니까요.
다만 이덕일의 말대로라면 나경언은 창작 맞네요. 나경언의 고변 등에 대한 기록을 봤을 때 전 나경언이 한탕 해보려고 고변했다고 보는 축이거든요. 다만 영화적 허용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인원왕후 김씨와의 대립은 영화를 보지 않아서 함부로 뭐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사실 이건 이덕일 말대로 두 사람 사이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으니까요. 다만 정병설 교수가 한중록을 해석하면서 영조의 후궁인 문씨 관련 문제로 두 사람이 대립한 적이 있다고 추측하는데 저도 그 해석이 맞다고 보는 편입니다. 영화를 안 봐서 뭐라 하긴 힘든데 아마 문씨 문제로 잠깐 대립했던 게 영화에 묘사되쓴ㄴ데 이덕일이 과장한 게 아닌가 싶군요.
자극적 장면의 연속이지만 영화 ‘암살’같은 감동을 느꼈다는 사람이 드문 것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없거나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을 팔아 넘긴 마지막 노론 당수 이완용이 고종에게 사도세자 살해에 가담한 정후겸의 신원을 여러 차례 요청한 데서도 이 사건의 본질은 명확하다.
정후겸이 세자 살해에 가담했다니 원. 이는 을파소님이 언급을 하셨던 거긴 합니다만.. 여기에 보충을 더 하자면 현재 기록등을 볼 때 정후겸이 양자로 들어간 건 1764년의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때 나이 16살이었습니다. 임오화변이 있던 1762년에 정후겸은 옹주의 양자도 아니고 인천의 생선장수집 아들내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개 생선장수집 아들내미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한다라.... 믿기가 힘들군요. 뭐 설령 그 때 화완옹주의 양자였다고 해도 임오화변 당시 나이가 14살인데 14살짜리가 파벌을 만든다던지, 뭘 주도적으로 한다는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완용이 신원을 요청해 신원된 사람 중에는 영조를 몰아내려고 하다 죽은 정사효나 준소의 영수 김일경, 나주벽서 관계자들, 윤원형, 이징옥, 윤휴 등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 봐서 노론인지 참 궁금하군요. 제 눈에는 그냥 조선왕조에서 역적으로 규정된 사람 전부 신원시켜버린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지금의 국정 국사교과서 논쟁처럼 역사 왜곡이나 조작에는 반드시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득이 있는데 이 영화는 무엇을 위해 역사왜곡의 길을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때마침 ‘300년 전 죽은 세자를 위한 진혼곡’이란 머리말과 함께 1차 사료를 토대로 사도세자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김수지의 ‘영조와 사도’라는 책이 나왔다. 사실 자체를 조작하려는 거대한 구조에 맞서 한 사람이 외롭게 진실을 외쳐야 하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도 묻고 있는 듯 하다.
국정교과서 논쟁은 제 경우 다시 국정교과서화 하는 데 반대입니다만 이 문제는 언급하고 싶지 않군요. 정치적이라서요. 다만 사실 자체를 조작하려는 거대한 구조에 맞서 한 사람이 외롭게 진실을 외쳐야하는 비정상적 사회구조라... 지금 왜곡하는게 암만 봐도 그 말을 하는 이덕일 자신으로 보입니다만. 오항녕 교수나 정병설 교수한테 그렇게 깨지고, 박시백 화백에게 뒤통수 얻어맞았으면서 말이죠.
뭐 일단 결론은 간단합니다. 이덕일은 그 비정상적 사회구조를 운운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주장을 되돌아보고 사료해석 능력을 다시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사도세자 주제와 관련은 없지만 동한과 서한도 헷갈리고 삼국지연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틀렸다는데 말이죠.
첫댓글 이덕일은 명예훼손 고소당해서 단죄당한 인간 아닌가요. 여전하군요.
학문의 자유의 선을 넘은 자라 솔직하게 말하면 변희재처럼 자유를 차단시켜 버리면 좋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