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폴 스콜스(29, 잉글랜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라울 곤살레스(27, 스페인). 두 선수는 프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한팀에서 뛰고 있으며 지난 시즌 부진한 공격으로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력 약화는 모두 나름대로 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설령 예전같은 득점을 올리지 못해도 경기에 대한 이해 능력이 뛰어난 최근엔 보기 드문 장점을 지녔기 때문에 높은 팀공헌도를 보이는 훌륭한 선수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유로 2004를 끝으로 아직 30도 되지 않은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여 스벤 예란 에릭손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의 탄식과 소속팀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미소를 자아낸 스콜스는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공격수로 활약했던 과거에도 드러나듯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드필더 정상급의 공격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였다.
맨유 유스팀 소속이던 1992년 공격수로 뛰며 당시 중앙 미드필더로 뛰던 데이비드 베컴(현 레알 마드리드)과 함께 팀을 이끌며 잉글랜드 유스컵 우승을 차지한 스콜스는 2년 후 성인팀 승격 첫경기 상대인 입스위치 타운을 상대로 두 골을 넣으며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하며 1994/95시즌 리그 17경기 5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다.
1995/96시즌 맨유는 다년간 팀 공격을 이끌어온 프랑스 대표 미드필더/공격수 에릭 칸토나를 전방에서 미드필더로 내리고 대신 유스팀에서 공격수로 뛴 경험을 인정받은 스콜스를 최전방 투톱의 일원으로 전진 배치하는 변화를 꾀한다. 그해 1월 블랙번에서 합류한 앤디 콜과 함께 호흡을 맞춘 스콜스는 시즌 21골을 합작하며 합격점을 받았고 스콜스는 왕(King Cantona)로 불리던 칸토나의 뒤를 이었다는 뜻으로 생강 왕자(Ginger Prince)라는 별명을 얻으며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1996/97시즌을 끝으로 칸토나가 은퇴를 선언했고 스콜스는 유스팀 동료인 필립 네빌, 니키 버트 등을 대신하여 칸토나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선임된 아일랜드 대표 미드필더 로이 킨과 함께 팀 중원을 책임진다. 그러나 미드필더로 뛰어도 그의 득점력은 여전히 중요한 순간마다 빛이 났다. 2002/03시즌 리그 14골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리그에서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린 것도 좋았지만 특히 그는 유럽클럽대항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며 지금까지 개인통산 20골을 득점하고 있다.
그의 공격력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퇴 전까지 A매치에서 14골을 기록한 그는 데뷔전이었던 1997년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클럽과 대표팀 데뷔전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고 98년 월드컵과 유로 2000 본선에서 모두 득점을 올리며 한때 "스콜스는 득점한다."라는 응원문구가 있을 정도로 위력적으로 정확한 중거리 슛을 주무기로 한 스콜스는 팬들이 좋아할 만한 공격성향을 띄었다.
미드필더인 스콜스에 비해 라울의 득점력은 그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 10대 시절 세계적인 명문 레알에서 활약하며 얻은 명성으로 1998년 월드컵때부터 메이저대회마다 주목을 받아온 선수답게 그의 득점력은 천부적이었다. 스페인의 수도이자 라울의 출생지인 마드리드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는 유명팀이 경쟁하고 있는데 13살이 되던 해 라울이 택한 것은 현 소속팀인 레알이 아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스팀이었다. 입단 후 빼어난 활약을 보인 라울은 그러나 소속팀의 재정난으로 당장 급하지 않은 유스팀이 해체되자 동도시 라이벌 레알로 팀을 옮길 수밖에 없었고 이는 오히려 라울의 프로 데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1994/95시즌 레알 마드리드 C팀에 이름을 올리며 성인 무대에 데뷔한 그는 리그 7경기에서 13골을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였고 이에 주목한 당시 레알 마드리드 1군의 감독 호르헤 발다노는 B팀으로 승격시켜 1경기를 뛰게한 후 바로 A팀으로 승격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이때 라울은 불과 만 17세 4개월에 불과했으며 이는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팀의 특성상 당분간은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말 그대로 골든보이였던 라울은 첫시즌 리그 28경기에서 9골을 넣는 활약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같은 시기 10대의 패기를 앞세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아약스가 유럽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유소년 육성에 있어 체계적인 단계를 중요시하여 실력 있는 어린 선수라 하여도 2군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레알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스페인의 주요 팀들은 이러한 육성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2군 이하 팀들을 B팀과 C팀 같은 이름을 붙여 성인 리그에 참가시키고 있다. 1군과의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팀들은 2부리그까지로 승격을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어린 유망주들이 1군에 미처 들지 못한 후보선수들과 함께 성인팀들과 경기를 하는 것은 기량향상에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유소년 리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잉글랜드와는 다른 방법인데 유소년 축구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잉글랜드와 능력있는 선수의 경우 어려서부터 성인 축구를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는 스페인의 방법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만큼 굳이 여기서 우열을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17세의 라울이 레알 마드리드 C팀이나 B팀에서 성인들을 상대로 다득점을 기록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이를 넘어 1군에서 쟁쟁한 세계적인 스타들과 호흡을 맞추며 10골에 가까운 득점을 했다는 것은 실로 경악할만한 일이었고 이를 충분히 알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그때까지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의 간판 공격수였던 부트라게뇨보다 라울에게 더 환호를 보내게 된다.
이후 라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지난 시즌까지 무려 9시즌동안 프리메라리가에서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여러차례 경험했으며 팀 사정에 따라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뛰며 10개 이상의 도움을 한 시즌도 있었다. 그는 네덜란드의 베르캄프,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와 델피에로와 함께 세컨드 어태커라는 포지션을 대중화시킨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클럽에선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라울도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
94년부터 리그에서 정상급의 기량을 보여준 라울에 대한 대표팀 발탁 여론이 드셌지만 그가 대표팀에서 첫경기를 치른 것은 프로데뷔 후 세시즌을 보내고 있던 1996년 10월이었다. 유로 96 준준결승에서 잉글랜드와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스페인 대표팀은 98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라울에게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는 지역예선에서 한 골에 그치긴 했지만 당시 절정의 기량을 자랑했던 알폰소 페레스(현 레알 베티스)를 필두로 피치, 키코, 모리엔테스 같은 유능한 공격수들과 미드필드와 공격의 전 포지션을 뛸 수 있는 루이스 엔리케로 구성된 스페인의 호화 공격진을 무난히 살려주며 본선에서 활약을 기대받았다. 본선에서 그가 단 배번이 에이스의 상징과도 같은 10번이었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레알에서 보여준 활약상으로 98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회의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라울은 그러나 단 한 경기만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 골을 넣으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고 팀은 조별리그 1라운드에서 나이지리아와 명승부 끝에 2-3으로 패하며 아프리카 돌풍의 희생양이 되더니 결국 조 1승 1무 1패로 조 3위에 그치며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치욕을 맛본다. 유능한 선수들은 많았지만 타 선수를 압도할 만큼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공격수가 본선에서 보이지 않았던 스페인은 여러 공격수를 돌려 기용해봤지만 결국 이미 16강 진출이 어려웠던 불가리아를 상대로 조별리그 3라운드에서 6-1의 대승을 거두는 것으로 분풀이하는 걸로 16강 진출 실패의 아픔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98년 월드컵에서 실패한 스페인은 유로 2000을 준비하며 대대적인 팀 개편을 단행했고 레알의 에이스인 라울은 새로이 구성된 대표팀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고 지역예선에서 11골로 유럽 득점왕을 차지하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자신의 몫을 다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본선 준준결승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1-2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을 만들 수 있던 귀중한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패배의 원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역예선 8경기에서 11골을 퍼부었던 라울은 본선 4경기에서 한 골에 그치며 결국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라울의 이러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보이는 상반된 활약상과 고비때마다 보인 기복은 유로 2000 이후 축구 전문가들의 주된 화두 중 하나였다. 라울이 레알의 숙명의 라이벌 바르셀로나에서 팀을 옮겨 리그 우승을 차지한 팀 동료이자 포르투갈의 스타인 루이스 피구에게 2001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내주고 3위에 그친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를 의식한 라울은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며 절치부심한다. 메이저대회에서 2연속 부진한 그에 대해 일부에서는 등번호 10번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고 본인 역시 이에 긍정하기도 했다. 월드컵 지역예선 초반 3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친 라울은 클럽에서 달고 있는 7번으로 대표팀 배번을 변경하는데 그 첫 경기였던 리히헨슈타인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탄 라울은 3골을 추가하며 지역예선 8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스페인의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수비진의 노쇠화가 맘에 걸리긴 했지만 유럽 정상급의 공격수인 라울, 모리엔테스, 트리스탄 등이 포진하고 이를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이 받쳐주는 스페인은 한일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고 그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본선 첫경기와 아프리카팀에 대한 징크스도 조별리그에서 모두 떨쳐버린 스페인은 3승으로 16강에 오른 후 접전 끝에 난적 아일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8강에 안착하며 이번에야 말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본선 4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고 10개의 슛 중 7개가 골문에 향하는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7번 라울은 부상으로 한국과의 준준결승에 결장하고 스페인은 이 때문인지 결국 득점에 실패하며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다시 한번 메이저 대회에서 좌절해야 했다.
스콜스와 라울 두 선수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장점을 두루 갖춘 선수들이다. 득점력에 대한 문제를 지적받기 전 스콜스에 대해 잉글랜드 언론은 이탈리아의 스타로 미드필더 정상급의 득점력을 지닌 토티와 견주기도 했으며 무려 일곱 시즌이나 리그 15골 이상을 기록한 라울의 득점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여기에 두 선수 모두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하고 정확도가 높은 패스를 구사한다. 패스에 대한 재능이 없다면 98년 월드컵 당시 앨런 시어러와 마이클 오웬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한 스콜스나 레알에서 두 자리 수의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대표팀에서도 4-2-3-1 전술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라울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득점력의 약화로 비난받고 있는 두 선수는 공격에 난조를 겪은 이유도 비슷하다. 감독과의 불화로 팀의 중심 수비수였던 네덜란드 대표 야프 스탐이 2001/02시즌 초반 갑자기 팀을 떠난 맨유는 이 공백을 프랑스 대표로 98년 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을 경험한 노장 수비수 로랑 블랑으로 메우려 했지만 팀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제공권을 지녔던 선수를 은퇴를 앞둔 기술형 수비수의 대명사로 대신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이를 모를 퍼거슨 감독이 아니겠지만 이미 이적시한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블랑 이상의 선수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맨유는 네덜란드를 유로 88 우승으로 이끌었던 마르코 반바스텐의 후계자로 주목받던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PSV 에인트호벤의 공격수 뤼트 반니스텔로이와 아르헨티나 대표로 98년 월드컵 이후 세계적인 선수로 부상한 이탈리아 세리에 A 라치오의 미드필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영입하면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번번이 고비 때마다 유럽무대에서 좌절을 겪은 맨유는 경기 진행이 빠른 프리미어리그와는 달리 완급 조절이 필요한 챔피언스리그에서 통할만한 정상급의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찾고 있었고 베론과 반니스텔로이는 그 해답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야프 스탐과 퍼거슨이 애지중지하던 신예 웨스 브라운으로 이뤄진 맨유가 자랑하던 신구조화가 잘된 이상적인 중앙 수비진은 스탐의 갑작스러운 이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감독으로부터 과거의 전공을 되살려 미드필더에서 반니스텔로이의 뒤를 받치는 세컨드 어태커로 전진배치를 명받은 스콜스 역시 허전한 팀의 후방을 그대로 볼 수 없었다. 세컨드 어태커의 수비가담 횟수가 늘며 늘수록 원톱의 고립은 심화할 수밖에 없었고 스콜스는 이에 대한 비난에 직면했지만 실상을 안다면 마냥 그에게 책임을 묻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 그때는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에릭손 감독이 대륙축구와 동떨어져 있던 잉글랜드 축구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던 시점이었다. 수비와 공격을 가리지 않고 전 포지션에 걸친 압박 축구가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을 때 잉글랜드는 유로 2000에서 수세 때 전진하지 않고 뒤로 후진만 하여 상대에게 공간만 내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8강 진출에 실패한다. 98년 월드컵의 선전으로 희망을 가졌던 잉글랜드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고 그는 리그 활약과 선수의 특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수 선발 및 기용과 개인방어와 지역방어를 적절히 혼용한 공간적인 감각을 가미한 수비전술의 도입을 취임일성으로 밝혔다.
소속팀의 수비 불안과 국가대표팀의 변화는 그동안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처지는 선수로 인식된 스콜스가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방송을 통해 한국 대표 김남일과 비교될 정도로 그는 웬만한 수비형 미드필더 못지 않은 수비 가담 능력을 보여준다. 2001년을 기점으로 맨유의 주장 로이 킨의 체력이 떨어지는 소속팀의 상황도 그와 중원에서 짝을 이룬 스콜스의 수비력 강화가 필요했던 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스콜스의 득점력이 감퇴됐고 반니스텔로이와의 공격에서의 투톱 실험도 여러 차례 시도에도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수비력에서 진일보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라울도 할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2000년 피구를 시작으로 지단, 호날두, 베컴 등 스타들을 차례로 영입하며 초호화 구단을 구축한 레알이지만 유독 수비에 대한 투자는 인색했다. 이반 캄포, 아이토르 카랑카, 페르난도 이에로, 클로드 마켈렐, 제레미 은지탑 같은 수비수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모두 팀을 떠난다. 수비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가 최적의 포지션으로 여겨지는 스페인 대표 이반 엘게라나 레알 유스팀 출신으로 이탈리아 대표 수비수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비견될 재능을 지녔다는 스페인 대표 수비수 프란시스코 파본 등이 분전했지만 공격에 비해 취약한 중앙 수비를 다 감당하기엔 벅찼다. 이로 인해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레알에서 팀의 상징과도 같은 라울은 한해 두 해를 거쳐가며 어느덧 팀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보다 어쩌면 더 뛰어난 선수일지도 모르는 지단이나 호날두, 피구 같은 선수 대신 여전히 라울이 레알의 심장으로 불리는 것은 화려한 위치에 서있던 선수답지 않은 그의 변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몇달전 그리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유로 2004에서 두 선수는 나란히 부진을 면치 못했다. 에릭손 감독의 옹호에도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급성장한 프랭크 램파드가 중원에서 스콜스의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회 준비과정에서 상당한 힘을 얻기도 했으며 본선에서 잉글랜드는 좋은 경기 내용에도 뒷심부족으로 이길 수 있던 경기를 놓치며 개최국 포르투갈에 막혀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스페인과 라울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2년 전 한일 월드컵에 비해 수비와 중원에서 한층 보강된 전력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번에야 말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에 머물며 8강 진출에도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지역예선에서 5골을 넣으며 제 몫을 해낸 라울은 본선에서 다리 부상 등의 이유로 2년 전과 같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프리메라리가 데포르티보의 간판 스타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과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야만 했다.
대표팀에서 장기간 무득점에 시달리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클럽에서는 미드필더로서는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 스콜스는 유로 2004 후 대표팀을 떠나 일단 이러한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맨유 입단 후 새바람을 몰고 있는 포르투갈 대표 신예 크리스타누 호날두가 미드필드와 공격을 오가며 인기를 얻고 있고 리그 최고의 공격수인 반니스텔로이를 비롯하여 유로 2004를 계기로 스타덤에 오른 잉글랜드 대표 웨인 루니와 역시 잉글랜드의 기대주로 꼽히는 앨런 스미스가 이번 여름 합류했고 지난 시즌 전반기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프랑스 대표 루이 사아까지 보유한 화려한 맨유의 공격진에서 굳이 스콜스까지 득점에 가담할 필요는 적어 보인다. 여기에 중원에서 로이 킨의 노쇠화가 점차 두드러지는 것에 비해 에릭 젬바젬바, 조제 클레베르손, 리암 밀러처럼 그 뒤를 이어야할 선수들의 활약이 미흡함에 따라 중원에서 스콜스의 수비적인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예전과 다른 관점에서 스콜스를 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시즌 초반 여러 이유로 반니스텔로이, 루니, 사아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던 팀 사정상 공격수로 몇 차례 기용되기도 했지만 주전들이 모두 돌아올 경우 스콜스의 자리는 분명 공격이 아닌 미드필더가 될 것이다.
아직 만 27세에 불과한 라울은 최소한 2006년 월드컵, 사실상 유로 2008까지는 대표팀 생활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소속팀 레알도 아르헨티나 대표 수비수 사무엘과 잉글랜드 대표 수비수 조나단 우드게이트의 영입 효과를 아직 보지 못한 채 수비에 여전히 문제를 보이고 있어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상대에 따라 최전방 원톱으로 기용도 가능하며 기본기가 탄탄하여 어느 공격수와 호흡을 맞춰도 무난한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대표팀에서 여전히 중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가진 전력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는 스페인이 앞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팀의 간판스타인 라울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부진에 빠진 라울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번 여름 팀에 가세한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 오웬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호날두, 피구, 지단 같은 스타 선수들의 수비 가담 부족의 문제시 되고 있는 현상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팀 공격의 최종 해결사로 자리 매김 한 오웬에게 당장 수준급의 수비력을 기대하긴 어렵고 팀 수비와 미드필드가 안정되지 않는 한 오웬의 기용은 많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그 포지션의 생경함에도 불구하고 오웬을 중앙이 아닌 측면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모든 구기 종목이 그러하듯 축구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팀에 득점을 안겨주는 골이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지단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이전에 비해 도움에 대한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도움을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 리그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외 태클 같은 수비에 대한 통계는 전문적인 통계 회사를 통해서나 얻을 수 있을 뿐 대중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에서 수시로 열리는 각종 이벤트성 올스타전에서도 공격수만으로 구성된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축구가 수비수 없이 모두가 다 공격수인 스포츠라고 한다면 우리는 화끈한 공격 축구를 감상할 수 있을까? 상대의 공격을 차단해줄 수비수나 골키퍼도 동료 공격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미드필더도 없이 공격수만 뛴다면 그 경기의 짜임새는 실로 엉망일 것이다. 스콜스와 라울이 예전만큼 골을 넣지 못하고 시원스러운 면을 보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형편없는 선수라 할 수 있을까?
잉글랜드의 에릭손 감독은 스콜스를 가리켜 "패스 한번만으로, 그의 발에 공이 한번 지나치는 것만으로 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선수"라 평했고 라울은 흔히 가장 뛰어난 부분은 없지만 축구의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춘 선수로 평가된다. 비단 축구뿐 아니라 농구 같은 구기종목들이 최근 운동능력을 중요시하면서 이에 반비례하여 머리를 쓰는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단순히 상대를 돌파하거나 골을 넣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동료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한 패스로 연결해주는 것도 팀의 점유율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덩크만을 중요시하는 농구나 공격 전개의 속도만을 추구하는 축구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느낄 수 있을지언정 진정으로 상대를 경탄하게 하는 우아함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이클 조던을 그리워하고 은퇴를 앞둔 지네딘 지단에게 아쉬움을 갖는 것도 결국 현재 그들을 대신하고 있는 스타들의 플레이가 무언가 하나가 빠진 것 같기 때문이다. 개인보다는 팀을 생각하고 축구를 정말 알면서 하는 선수들이 점차 희귀해져 가는 이때, 스콜스와 라울의 존재가 새삼 귀해 보인다.
1966년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앨런 볼은 98년 월드컵 후 스콜스의 경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성실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성실한 마음가짐과 기량이 함께 어우러지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비록 너무 일찍 대표팀을 떠난 스콜스이지만 그가 선수생활을 마칠때까지 마음속에 세워둔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 누구보다 더 많이 뛰어다니는 라울이 부진에서 벗어나 다시금 반지에 키스하며 홈 관중의 팬들의 환호에 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폴 스콜스 (Paul Scholes)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생년월일: 1974년 11월 16일 잉글랜드 샐퍼드에서 출생.
신체조건: 170cm 69kg
국가대표팀: 66경기 14골. 1997년 5월 24일 데뷔, 유로 2004을 끝으로 은퇴.
클럽 경력 - 425경기 115골
1993~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293경기 78골 FA컵 26경기 9골 리그컵 14경기 8골 유럽클럽대항전 92경기 20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