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의 어원은 분명하지가 않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맹자의 ‘이루 하(離婁 下)’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를 바꾸어본다고 해도 모두 그럴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의미인데 비해 역지사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두 성어(成語)는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고 얘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 동네 유선방송이 채널의 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영 불편합니다. 제가 즐겨 보는 채널은 '아웃도어(ONT)'와 '스카이트래블', '내셔날지오그래픽채널(NGC)'와 '내셔날지오그래픽와일드' 정도인데 이번 개편에서 내셔날지오그래픽와일드 채널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며칠 불편한 것을 참고 있다가 어제는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갔길래 서대문유선방송에 전화를 해서 그 채녈이 빠졌다고 다시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쪽 전화를 받은 안내원이 채널을 내보내면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으로 편성한 것이라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채널을 다 내보낼 수가 없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누구 원하는 채널 위주로 편성한 것이냐?' 고 물었더니 일일이 다 물을 수가 없어서 다수가 원하는 채널을 내보낸 것이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갑자기 열이 나서, '그럼 소비자는 유선방송이 주는대로 처먹으면 된다는 말이냐?'고 언성을 높혔고, 돈을 받으면서 유선을 운영하는 것인데 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도 당황스러웠는지 개편이 되기 전에 몇 번 채널이었느냐고 물으면서 자기네는 그런 채널을 내보낸 적이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아니, 며칠 전에 제가 늘 즐겨 보던 채널이었고 내셔날지오그래픽채널과 바로 옆 번호였는데 그게 자기네가 안 내보낸 것이라면 내거 어떻게 봤겠냐고 화를 냈는데 문제는 며칠 전에 바뀐 그 채널번호가 기억이 안 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실갱이를 하고는 끊었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습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 상담하는 사람들이 가장 피곤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또 제가 책임자도 아닌 상담원에게 괜한 화를 낸 것이 아닌가 반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자기들이 얼마 전까지 내보낸 채널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괘씸한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오늘 집에 와서 다시 채널을 돌리다보니 238번 채널에 '내셔날지오그래팩와일드'가 나오고 있습니다. '내셔날지오그래픽채널'은 148번인데 너무 멀리 있어서 제가 찾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한 편으로는 멀쩡이 내보내고 있는 채널을 내보낸 적이 없다고 답변을 한 그쪽 상담원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은 쉽게 해도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오늘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별로 명예롭지도 못하게 퇴임한 예전 대통령의 아들이 엊그제 물러난 파면된 대통령을 보고 '인간 말종'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제 앞가림이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집도 아들들 때문에 욕 깨나 먹은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