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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4-1
제 34 장 변운(變運)
개봉의 약초상인 방종대는 우울한 얼굴로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여보, 당신은 걱정도 안되오? 다 큰 딸내미가 둘이나 있는데 큰 년은 술주정뱅이, 작은 년은 사치가 저리도 심하니---. 도대체 누가 데려 갈려고 하는지 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두 명의 딸을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 방종대와는 달리 어머니 장봉화는 우아하고 기품 어린 동작으로 차를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둘 다 인연이 있으면 어느 녀석인가 데리고 갈 테지요."
"그 인연 타령은 그만하구려! 벌써 둘 다 스물이 넘었단 말이오!"
방종대는 골치 썩히는 두 딸을 한시라도 빨리 집에서 쫓아내고 싶었지만, 이미 개봉에서는 딸들에 대한 소문이 나서 시집갈 집이 없었다. 아무리 예쁘면 뭐하겠는가?
날마다 술 주정이나 부리고, 사치와 도박으로 수천냥을 단 하루만에 날려버리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남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종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남인 방종구는 상술에 눈을 떠서 믿고 백초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과년한 딸들에게 들어오는 청혼은 없고, 이재와 상술에 밝아서 개봉 제일의 아니 천하제일의 부를 이룰지도 모른다고 소문난 장남에게 들어오는 청혼은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러나 이놈도 장사에 푹 빠져서 들어오는 청혼을 모두 거절하고 일에 파묻혀 사는 중이었다.
"끄응---."
이런 저런 일로 심사가 복잡한 방종대는 찻잔을 내려놓고 뚱뚱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요, 여보?"
"이제 숭산으로 가 보아야겠소. 소구 녀석도 이제 데리고 올 때가 되지 않았소?"
"나라가 혼란해지니 곳곳에 도적 때가 들끓고 있다고 하던데, 괜찮겠어요?"
"걱정 말구려. 며칠 전에 이 개봉에 개업한 북풍 표국의 국주인 백철군이 나와 함께 소림으로 갈 것이오. 혼자서 마교(魔敎)를 멸망시킨 고수가 경호하는데 무슨 일이 있겠소?"
남편의 말에 장봉화는 안심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황산에 있는 마교 총단을 쑥밭으로 만들었다는 북풍표국의 백철군에 대한 소문이 중원 천하를 진동하고 있을 때였다. 그 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백철군이 시작한 일은 표국업이었고, 소문에 힘입어 북풍표국이라는 백철군의 표국은 점점 번창하고 있었다. 게다가 황산에 잠입해서 마교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구파일방의 고수들이, 칠호가 자신들을 구해 주었다면서 그와 의형제를 맺고 그의 표국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소문도 심심지 않게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백철군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게 된 장봉화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려는 남편을 붙잡았다.
"그 사람 나이가 몇이나 되요?"
갑작스런 아내에 질문에 방 밖으로 나가던 방종대는 몸을 뒤로 돌려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것이오?"
"우리는 치워야 할 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소문을 듣자하니 그 사람 나이가 꽤나 젊은 것 같던데--?"
"내가 듣기로는 한 서른 넷이나 다섯 정도라고 알고 있소."
"아직 미혼이지요?"
"아내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아마 그럴 거요."
"그렇다면---, 여보 잠시 이리와 앉아 봐요."
그래서 방종대는 밖으로 나가다 말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탁자에 앉아야 했다. 아내의 말을 들어가면서 방종대의 얼굴 위로는 음흉한 미소가 감돌고, 그의 고개는 계속 끄덕여졌다. 마침내 아내의 말이 모두 끝나자마자, 방종대는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백초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집 앞에 대기하고 있는 표사들과,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국주인 칠호 백철군 그리고 총관 천궁 옥형진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 참 일찍 와 달라고 하고는---, 벌써 반시진이 넘게 기다리게만 하다니---."
천궁은 산 속에서 만나 의형제를 맺게 된 칠호를 바라보다, 하늘로 시선을 던져 원망스러운 듯 쨍쨍 내려 쬐는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님, 이건 아주 큰 거래입니다. 중원 천하의 약초 시장을 절반 넘게 석권한 백초당의 당주를 호위하는 일을 무사히 끝마치면, 우리 표국이 지금보다 몇 배는 커질 거라고 형님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래도 이런 땡볕 아래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구먼."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표사와 표두들 모두 땀에 절어 있는 상태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지고, 마침내 백초당의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한 뚱뚱한 남자가 말을 타고 나오고, 두 대의 가마가 뒤를 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려."
말 위에 앉아 있는 상태로 방종대가 칠호인 백철군과 천궁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인, 뒤의 가마는---?"
불안한 얼굴로 천궁이 황급히 질문했다.
"아, 내 딸들이요. 너무 집안에만 쳐 박혀 있게 해서---, 이번에 바람이라도 쏘일 겸 같이 숭산으로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천연스러운 방종대의 말에 칠호와 옥형진의 얼굴은 한순간 찌푸려졌다. 본래 그들이 경호할 사람은 방종대 하나뿐이었는데 갑자기 둘이나 늘어난 것이다.
"대인, 따님들이 같이 간다는 말씀은 없으셨지 않습니까?"
천궁이 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말 위의 방종대를 향해 말했다.
"아아, 내 딸들에 대한 경비도 따로 지급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별일 아니라는 듯 방종대의 입에서는 흘러나오는 말은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사람의 가슴속에서는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을 경호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애초에 그들은 방종대 한 사람만을 경호할 준비를 한 상태였다. 거기에 둘이나 더 늘어나고 거기다 하필 경호하기가 남자보다 몇 배는 힘든 여자였다. 늘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하겠지만, 뒷간에 갈 때나 옷을 갈아입을 때도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옆에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객점도 없는 산 속 같은 데서는 또 어쩌란 말인가?
백철군이란 이름으로 표국을 개업한 칠호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잡념을 털어 내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부르르 흔들더니 물었다.
"대인, 바로 출발하실 생각입니까?"
"이제, 여기 일은 모두 정리가 끝난 상태이니 출발하세."
방종대의 그 말을 끝으로 백초당 앞에 모여 있는 무리들은 모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총관 옥형진이 한 표사를 개봉에 있는 북풍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발견한 칠호가 황급히 천궁의 곁으로 다가갔다.
"형님, 왜 사람을 돌려보내는 겁니까?"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칠호가 물었다.
"아무래도 여자들을 경호하는 일에는 여자가 필요한 법일세. 그래서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양려군에게 오라고 소식을 전하라고--."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여자는 묘강(苗岡)의 여자인데다 항상 뱀을 데리고 다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꺼릴 거라며 될 수 있으면 사람을 호송하는 일은 시키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 것은 형님입니다."
"그럼 어쩌는가? 이번 경호의 일은 우리 표국이 중원에 자리를 잡을 아주 좋은 기회라구. 우리 표국의 여자 중에서 쓸만한 무공을 지닌 여자가 양려군 말고 또 있나?"
"하긴 그도 그렇군요."
이해했다는 듯 칠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선두로 내 몰았다.
숭산까지 가는 동안 일행은 어떤 일도 겪지 않고 무사히 등봉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혼자서 마교를 멸망시켰다는 백철군에 대한 소문이 중원 천하를 뒤흔들고 있는 때였다. 그 백철군이 있는 방종대의 숭산 행을 방해하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숭산에 도착해서는 개울가에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하루저녁을 머물게 된 일행이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술판이 벌어지고 요란한 웃음소리가 천막 사이사이에서 그치지 않고 터져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닥불은 하나 둘 꺼져가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도 사라져갔다.
시간이 흘러 대지는 고요 속에 머물고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던 새벽에,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한 천막에서 터져 나왔다.
"꺄 아 악!"
잔뜩 술에 취해서 잠들었던 칠호는 여자의 비명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웬 벌거벗은 여자가 바로 자신의 옆에 누워서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호 역시 벌거벗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명 소리에 놀라 사람들이 우르르 천막 주위로 몰려와 있고----.
"당신은?"
칠호가 여자를 향해 물었지만 그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흐느껴 울고, 천막 안으로 들어온 것은 북풍표국의 총관인 천궁 옥형진과 백초당의 당주인 방종대였다.
"어허 , 이런 일이--? 내 자네를 믿었거늘---. 어쩔 텐가?"
"예? 어쩌다니요?"
방종대의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칠호가 물었다.
"저기 울고 있는 내 딸 화련이가 보이지 않는가?!"
방종대는 잔뜩 화가 나서 칠호를 향해 소리치고, 칠호는 울상을 지은 채 이불로 몸을 가리고 울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자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렇지----. 경호하는 여자를----."
천궁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를 내뱉고, 칠호는 억울해서 소리쳤다.
"난 술 밖에 마신 기억이 없다구요! 이 여자하고 나하고는 아무런 일이 없었어요!"
칠호는 지금의 황당한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소리쳤지만 일은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에잉, 못난 것. 그렇게 술을 조금만 마시라고 말려고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칠호로부터 화련이를 책임지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천막 밖으로 나가는 방종대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도 이만----."
표국의 총관인 천궁 옥형진도 방종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오고, 그의 고함이 칠호의 귀를 때렸다.
"여긴 아무 일도 없으니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구경났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잘 녀석은 자고, 보초 설 녀석은 보초 서고 있어!"
신경질에 찬 천궁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칠호는 홀린 듯이 자신의 옆에서 계속 울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칠호도 백초당의 첫째 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상태였다.
'크헉! 내가 어쩌다가 저 여자를 건드려서----, 이게 바로 코가 꿰인다는 것이로구나! 술이 아무리 잘 받아도 조금만 마실걸!'
소리 없이 칠호는 비명을 내질렀다. 살수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무공도 강해졌겠다, 누구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직업도 가지고 있겠다--, 착하고 예쁜 여자 얻어서 혼인만 하면 자신도 이제 즐겁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칠호였다. 얼굴이 예쁘긴 하지만 칠호가 생각하는 아내감은 결코 아니었다. 날마다 술 마시고 집안의 하인들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거리를 오가는 애꿎은 사람들도 두들겨 패는 것이 일상사라고 알려진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칠호였다. 그러나 속으로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끝난 일이었다.
소리 없이 그렇게 칠호가 절규하고 있을 때, 방화련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집에 틀어박혀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 걸 하면서 후회하고 있는 방화련은, 이제 자신의 남편이 되버린 남자의 모습을 울면서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야?! 왜 내 신랑이 될 사람이 저렇게 나이가 많아?!'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신랑감은 결코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학식도 있고 기품이 넘쳐흐르는 그런 남자여야 했지만, 나이도 많아 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에서 기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식하게 생긴 남자였다.
"시끄러! 그만 울어!"
남자가 잔뜩 화가 나서 여자에게 소리쳤다. 찔끔하면서 방화련은 눈물을 멈추었다. 그녀도 귀가 있어서 이미 소문을 들은 상태였다.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마교 총단에 혼자 뛰어들어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무공이 아주 높은 남자였다. 그녀 역시 무공이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지만, 옆에 남자와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은 그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힘만 된다면 마구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을 판이지만,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였다.
"도대체 아가씨는 밤에 뭐 한 겁니까?"
상황도 정리되었고,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칠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전 그냥 내 천막에서 계속 술만 마시고 있었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칠호는 한숨을 흘러내렸다. 이래서야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무사히 숭산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어제저녁 벌어진 술판에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실수였다. 그 역시 너무 취해서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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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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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