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뵌 적도 얘기를 나눈 적도 없는 분이지만 님의 근황에 대한 기나긴 글을 읽고 나니 사촌 오빠 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네여. ^^
부디 건강하세여.
--------------------- [원본 메세지] ---------------------
요새 이상하게 제가 답글을 늦게 한다고 느끼신 분이 있을지도..
그냥 지난 몇 주간 짧은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 저를 오래 앉아 글을 쓰게 하지 못하게 하는군요.. 그냥 두서없이 좀 늘어놓고 싶어서 그러니 양해를 해주시길..
V와 헤어지고.. 아름다운 라티나인 V와는 쉬운 관계가 아닌 듯.. 주저하는 나와 그것때문에 가슴아파하는 V.. 결국 같이 스윙을 춘 수요일 밤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 후 우리의 관계는 미래가 없다고 합의를 봤습니다. 가슴이 아팠냐고요.. 아뇨 그냥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일에 이동네에서 최초의 탱고 파티를 열었죠. V는 늦게 온다고 했죠. 그래도 즐겁게 즐겼습니다. 특히 그냥 연습만 하던 사람들이 연습이 아닌 춤을 추면서 탱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한듯했죠. 그때 기억나는 말은 저의 가장 오래된 학생인 벤이랑, 공대 대학원에 다니는 한국 여자분.
벤이 춤을 추지 않고 앉아 있길래, 오늘은 무슨 스텝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아니. 그냥 여기 앉아서 네가 탱고 추는것을 계속 보고 싶어. 그냥 걷는 것 말야.. " 그리고 그 한국여자분과 한곡을 추고 나서 (이분은 이제 3번정도 배우셨음), 그 분이 그러더군요. "전에 수업시간에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남자가 춤을 출때는 여자를 아름답게 보이게 해야한다고 한말..."
파티가 끝나고 빈방에서 30분을 넘게 기다렸지만 V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수업에 활달하게 생긴 미국 여학생이 등장했습니다. 이태리에서 3-4달간 계속 탱고를 배웠다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여자였는데 샌들을 신고 와서 처음에는 탱고를 춰본적이 없는 여자인줄 알았었죠. 멜리사라는 이 여학생은 금새 우리 클래스의 가장 열심인 학생이 되었고 덕분에 평소에 써보지 않은 스텝들도 연습해 볼 수 있게 되었죠.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려는 노력이 계속 좌절되는 가운데, 8월 말까지 한국가는 표가 없다는 소리를 여행사에서 들었습니다. V와의 관계로 답답해진 마음에 한국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집에까지 말해 놨는데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가까운 도시인 인디아나폴리스 공항에 가보기로 결정했죠. 그러나 그곳에서도 표가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심지어 유럽으로 돌아가는 표도 없다고요... 인천 공항을 국제허브 공항으로 연 후에 아시아를 가는 승객들을 상당수 인천공항을 통해가도록 노선을 바꾸는 바람에 그쪽으로 가는 표가 하나도 안남았다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습니다.
현재 관리중인 동문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정년 퇴임한 원로 교수님이 돌아가신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다혈질이시고 일본서 교육을 받으셔서 영어 발음이 특이하기때문에 학생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하셨지만 무척 젊잖으신 분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대학 교수가 된 전 학생에게도 반말을 하는 교수들이 많은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하고 작은 심부름을 시키고도 칠순의 명예교수님이 젊은 대학원생에게 고개숙여 감사를 표하시는, 그래서 오히려 학생들을 민망하게 하던, 그런 교수님이었습니다. 빈소라도 찾아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다음 학기 우리 그룹 세미나 준비를 위해서 다른 연구소의 교수들에게 우리학교에서 세미나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는데 아무도 답장을 주지 않는군요.. 적어도 10개이상의 세미나를 주최해야하는 세미나 담당자 입장에서는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낯익은 목소리가 방앞서 들려 나가보니 V가 있더군요. 우연히도 다음학기에 방앞에 새로 들어온 전임강사의 새조교가 V였습니다. 같이 휴계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나랑 헤어지기로 한 후 잘생긴 남자 하나와 데이트를 했는데 (사진도 봤는데, 잘생겼더군요) 뒤끝이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이 지나치게 종교적인 사람이라.. V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연구실을 옮기려고 신청을 했는데 과에서 승인이 빨리 안나와서 새로 학생증을 못만들어 비자가 만료되었는데도 연장을 하지 못했다고. 잘못하면 브라질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된거죠. 4년만에 박사를 받는 조건으로 교수직을 휴직하고 유학온 입장에 3년지나서 전공을 바꾸려는 상황도 좋지 않은데 그쪽에서 승인도 빨리 나지 않으니.. 사실 그런 곤란한 입장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V는 나에게 탱고를 배우러 온것이었습니다.
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께서 너무 실망하시더군요. 전화속으로는 그렇게 실망한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이메일에는 가슴이 찢어지시는 듯한 느낌이..
그 주에는 라틴아메리칸 파티를 주최해야 하는데 공동 주최자인 국제센터의 관리자인 독일 여자 레나테가 안나타나는군요.. 바로 탱고파티날부터 보이지를 않았는데.. 우연인지.. 그여자와 친했던 터키출신의 어학연수생 메메달리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죠. 메메달리는 터키서 왔지만 터키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는 소수민족 라지족이었습니다. 라지의 유일한 록밴드의 리드보칼이었고 음반도 라지어로 냈다고.. 지금은 거기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탱고를 배우다가 훌쩍 떠났습니다.
CD-writer도 하나 사고, 니카라과 여학생 아나에게 연락해서 인기있는 라틴 음악들 목록을 받아 다운로드 받고 씨디도 구우면서 열심히 라틴파티 준비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화요일에는 시내의 60년넘은 홀에 갔습니다. 던컨홀은 겉은 낡았지만 안에는 높은 천장과 마루바닥 샨들리에도 있는 멋진 댄스홀겸 공연용 홀인데요. 이곳 기념일에 빅재즈밴드라고 동네의 아마추어 재즈밴드가 공연을 하는데 리허설 하는동안 우리 스윙클럽 멤버들이 와서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와서 저를 비롯해서 6명의 멤버가 가서 춤을 췄는데, 마루의 왁스가 다 닳아서 추기가 조금 안 좋았고 밴드가 연주중에 자꾸 음악을 멈춰서 추기 힘들었습니다.
V도 춤추러 와서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근데 중간에 밴드가 멈추더니 모두 턱시도 정장으로 갈아입는겁니다. 뭔 일인가 보고 있자니 홍보용 사진을 찍는 것이더군요. 그런데 한참 찍더니 우리보고 나와서 춤추는 자세를 잡아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와 닉키 (현재 가장 스윙 잘추는 여학생, 엄청나게 에너지가 넘치죠)가 가운데서 포즈 잡고 다른 두쌍이 옆에서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는 모두 그냥 적당히 옷입고 나와서 아마 홍보용 팜플렛에는 못들어 갈지도.
그날 미시간에사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란틀리라고 트리디나드 토바고라는 카리비아의 작은 섬나라 출신인데 플로리다에서 탁구치면서 만나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죠. 한국에서 30년간 살다가 갑자기 나와 살게된 외국서 그것도 인종도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연히 둘이 취미도 같고 서로 죽이 맞아 같이 탁구도 치고, 영화도 보고, 각자 나라의 요리도 하고.. 보통 슈퍼마켓에서는 흑인 음식재료가 없어서 (닭발, 염소고기 등등) 그걸 사기위해서 동양인이나 백인은 잘 안들어가는 흑인 동네 슈퍼도 같이 갔었죠. 풍족한 백인동네 가게와 가난에 찌든 흑인 동네 가게의 차이를 보면서 잘사는 미국의 그림자속을 들여다 볼 기회도 있었고요. 그러다 그 친구는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간에 취직해서 떠나고 저는 일본으로 가면서 3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주말에 나를 보러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오겠다고 연락을 한것입니다. 마침 오는날이 파티날이라고.. 바로 국제센터 파티장으로 오라고 얘기를 해놓고 수요일 정기 스윙 잼에 갔습니다.
스윙 잼은 별게 아니고 우리 스윙클럽이 대학교 야외극장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음악틀고 춤추는 그런겁니다. 마침 올해 졸업하고 떠나는 나탈리의 22번째 생일이고 아까 말한 닉키의 20번째 생일 (얘가 알고보니 여직 10대였더군요)이라서 소위 생일빵 댄스도 추고 11시가 넘어 철거하고 떠나려는데 덩치가 크고 착한 독일인 올라프와 거구이지만 귀여운 베아트 둘이 일요일에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하더군요. 부랴부랴 스피커 다시 설치하고 작별댄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좀 썰렁하더군요. 로저는 나보고 올라프랑도 추라고 (여자역..) 자꾸 찌르는데 그건 사양했습니다. 올라프는 최근에 제 탱고 클래스에도 왔기때문에 금요일에 다시 보자고 했죠.
교수가 저를 불러 어떤 논문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좀 읽어보고 대답해 주겠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친구가 다음날 오는겁니다. 거기에 파티 준비도 해야죠... 뭐라 말을 못하겠더군요.
그 와중에 같은 과의 유일한 한국 여자 대학원생이 자꾸 점심시간에 찾아와 조언을 구하더군요. 갑자기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가 생기고 하기가 싫어졌다고, 어쩌면 좋겠냐는 거죠. 전들 어떡하겠습니까. 같이 학교 피자집에가서 피자를 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 예쁜 여학생 하나와 잘생긴 (릭키 마틴 닮은) 남자가 하나 있는데, 남자가 낯이 익더군요. 생각해보니 지난 탱고 수업과 파티에 왔던 친구였습니다. 이번에 졸업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국 여학생이 그 학생을 알아보더군요.. 전에 자기가 일반물리 조교를 했다고. 근데 그 친구가 나이 몇살 더 먹더니 아주 잘생기게 변했다고 놀라더군요.
오후에 분수대 앞을 지나다가 어떤 여학생이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요새는 흔한 광경) 무척 덩치가 크고 안경을 쓴 모습이 낯이 익어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베아트였습니다. 마지막 일광욕이냐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독일은 일조량이 무척 적죠) 웃으면서 대답하길래 밤에 파티에 오라고 초대했습니다.
집에 빨리 돌아가 열심히 청소도하고 이거저거 정리도 하고 소란을 벌이다 유리 그릇을 깨뜨렸습니다. 치우고 난리치다가 손도 조금 다치고. 씨디와 오디오 정리해서 차에 싣는데 허리가 삐끗하더군요. 오래전에 다친 허리지만 이렇게 통증을 느끼기는 몇년만이었습니다.
수업에 10분가까이 늦게 가서 사과하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계속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계속 서있기가 힘들더군요. 스윙 추러 나오는 리사라는 키가 큰 금발머리 아가씨도 지난 주 부터 나오고 있었죠. 원래 다른 도시의 대학에 다니는데 방학이라 집에 와있는 중이었습니다. 계속 스윙만 추러 나왔는데 탱고도 배우러 나오라고 초대했었죠. 청바지에 티셔츠 바람으로 나오는 이곳 여학생들과 달리 예쁜 스커트에 멋있게 차리고 와서 남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여자였죠. 그런데 선약이 있어서 파티에는 못온다고 하더군요.
중급반은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냥 초급반 사람들에게 한스텝 더 가르쳐주고 그냥 음악만 틀었는데 끝내기 15분전쯤에 멜리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파티에 올거냐니까 바로 가야된다고요. 알고보니 다음주에 제가 한국으로 가는 줄로 알고 딴 약속이 있는데도 나를 보러 왔다는겁니다. 왜 그랬냐니까 "그냥 고마워서" 방긋 웃더니 휙 사라져버렸습니다.
파티 직전에 레나테와 V가 나타났고 올라프와 베아트도 오고 좀있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찾아와 거실이 꽉 차더군요. 아나와 아나의 수줍은 미국인 남자친구도 오고, 중남미 각국과 아시아인들 유럽인들 순식간에 인종전시장이 된듯 했습니다. 아나가 추천한 메렝게, 살사 그리고 라틴팝등을 연속으로 틀면서 파티 분위기를 띄웠지만 스스로는 아픈 허리때문에 춤을 자제하려는 마음이 있었죠.
잠시 후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찾는겁니다. 나가보니 그란틀리, 반가운 마음에 점프 하이 화이브를 하고 거기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줬습니다. 이동네보다 더 재미없는 공장동네에서 온 그란틀리는 이렇게 여러나라 사람들과 담화를 나누는것도 재미있는 듯, (사실 그란틀리는 카리비안이라도 춤을 못추는 카리비안이거든요). 그런데 잠시후 그란틀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 또 다른 트리디나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죠. 팀이란 이 친구는 인도인과 흑인 혼혈인데 정말 춤을 잘추더군요. 그런데 길거리님과 많이 닮았어요.. 메렝게 잘추는 것도 비슷하고.
춤 안추려고 했던 결심은 음악이 좀 돌면서 그냥 사라지고 나가서 미친듯이 추게 되었습니다. Crazy Latina인 아나와 출때는 그냥 바닥까지 치고 내려갔다가 무릎에 멍까지 들고. 살사추다가 안하던 8회전도 하고... 내가 팀보고 "너 정말 잘춘다" "네가 더 잘춘다" "아니 네가 더 잘 춘다.." 그러고 농담했는데 거기있든 스웨덴 여자가 팀이 정말 잘춘다고 하더군요. 그 여자는 팀에게 반한듯, 근데 그란틀리는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지 같이 얘기를 계속 나누더군요. 이메일 주소도 받아가고, 상담 치료사던가.. 그런거 하는 여자인데 그거말고 극장을 돌며 코메디언을 한다고 한다는데 대화를 좋아하는 그란틀리가 좋아할만한 상대죠.
한국 여자대학원생은 라틴파티는 처음이라는데 그냥 대충 춤을 흉내내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었고. 거기 온 손님들 중에 아름다운 라티나 여자친구와 같이 온 남자가 한국사람처럼 생겨서 물어보니 역시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남미에가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살았었다고요. 메렝게를 잘추는데 너무 와일드해서 옆에서 사람 다칠까봐 걱정이 되더군요. 저한테 춤배우러 오고싶다고 했으니 다음주에는 보겠죠. 다음에도 아이디가 있다고 해서 이곳에 가보라고 얘기했습니다.
밤 12시 반이 지나서 간신히 정리하고 그란틀리와 집에 가서 새벽 두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주제를 모르고 춘 덕에 허리의 통증이 견디기 어려운 정도에 이른데다가 파티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물어보니 그란틀리도 마찬가지였다는군요.
토요일에 그란틀리와 일본있을때 녹화한 국제 탁구대회 비디오도 같이 보고 지난 얘기들을 나누며 시간도 보내고 오랜만에 같이 탁구를 치기로 했는데. 그만 학교 체육관이 그날부터 문을 닫는 바람에 그냥 야외 극장에 가서 나무 그늘에 누워 일광욕하는 여학생들도 보고 경치도 보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죠. 사실 허리때문에 탁구를 칠 상황도 아니었고, 미시간 주에서 탁구를 제일 잘치는 그란틀리에게 상대가 될 제 실력도 아니었으니 안친게 다행이었죠.
그렇게 유유자적하다가 집에 가면서 장을보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신문을 보니 퍼듀대학원 아파트에서 한국인 여자대학원생이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불길한 예감에 인생상담을 하러왔던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여학생도 바로 그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었느데 밤까지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저녁은 그란틀리가 항상 좋아하던 제가 만든 갈비구이를 해먹이고 (무척 좋아하더군요 3년반만에 먹는 불갈비라고..) 시내 구경 잠시하고 집에 와서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그제야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여학생 말이 자기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여자 대학원생과 그 여자를 방문중인 동생 이렇게 두 여자가 죽었는데 목요일 밤에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다가 금요일에 시체들이 발견되었다고. 그런데 아주 끔찍한 광경이었다고 하더군요. 경찰은 아무 말도 안하는데 소문은 동생의 이혼한 전남편을 의심한다 뭐 그런 정도의 얘기였습니다.
일요일날은 친구 그란틀리가 떠났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그냥 조용히 떠났죠.. 나보고 너도 한번 올라와야한다 그러면서.. 5시간 반 운전하고 내려와서 여기 와있던 동안 둘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빈둥거리다 다시 그렇게 올라갔지만. 그냥 친구랑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 내려왔던 그란틀리.. 우린 그런 친구였습니다.
허리 통증이 좀 가라 앉아서 멕시코 친구와 인도 친구에게 쿠반살사도 조금 가르쳐주고 죽은 여학생들에 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갈때까지 허리 통증을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니 새롱누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번학기에 대학원에 새로 입학한 두 학생들이 나타난거죠. 92학번과 93학번이라고 하는데 보니까 낯이 익더군요. 92학번 학생은 저를 알아보는데 자기가 신입생일때 내가 조교를 했었다고. 정말 세월이 빠르더군요.
집에 오니까 V가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 죽은 한국 여학생과 자기가 같이 수업을 들었었고 상당히 친했었다고 하더군요. 무척 아름답고 착한 여학생이었는데 너무 불쌍하다고, 남편이 있는데 사건이 일어났을때 한국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너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비자문제와 과 옮기는 문제는 너무 얽혀서 어쩌면 이달 안에 미국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더군요. 게다가 다음주에는 이사를 가야하는데 어쩌면 이사가자마자 미국서 쫓겨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었죠. 저도 우울해지더군요.
V가 짐싸는 것도 도와주고 불안해하는 것도 달래주러 집에가서 짐을 싸는데 그만 무거운 것을 들었다가 허리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그냥 누워 있었죠. V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그만 물컵을 업질렀죠. 분위기가 깨진것을 빌미로 또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일어나서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은 허리가 조금 나은 듯 해서 잠시 학교를 갔다가 왔는데 그사이 용의자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용의자는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으로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사는 사람인데 그 대학원생 (중국인)의 부인이 경찰에 신고했답니다.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어떻게 죽였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척 고통스럽고 끔찍하게 살해되었다고만 알려졌습니다. 이웃집에 사는 같은 연구실 동료가 범인이라니.. 다들 충격을 받은것 같았습니다.
오후에 집에서 또 V가 전화를 하더군요. 어제 괜히 도와달라고 해서 허리 아프게 한것 미안하다고. 또 서로 관계를 정리하기로 하고 나에게 다시 다가선 것 미안하다고.. 미안해 할 것 없다고 했죠. 그리고 그 죽은 여학생얘기, 벌써 사람들이 나쁜 소문을 낸다고 그 용의자 학생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둥 (둘다 결혼한 사람인데) 그래서 역시 같은 수업을 들었던 일본인 여학생이 무척 분개해하고 있답니다. 그 일본 여학생이 앞으로 두달간 그 아파트에 계속 꽃을 갖다 놓겠다고 했다는군요.
V에게 내가 빌려준 비디오 테이프가 있어서 저녁에 우리집에 와서 그거 돌려주겠다고 해서 스윙과 재즈에 관한 비디오를 같이 보고 피자 하나 같이 먹고 조용히 돌려 보냈습니다. 무척 얽힌 관계.. 어쩌면 이제야 정리가 되었는지도.. 아니면 제 착각일지도..
여기까지 다 읽은 분이라면.. 왜 제 지나 2-3주일 마치 2-3달이 넘도록 느껴졌는지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달일 전혀 기억이 안날 정도로 피고하군요.
추신 조금전 뉴스에서 용의자가 캐나다 국경에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이국에서 자매가 죽었고 그들의 남편들과 부모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