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JohQr6kQ0s?si=Ton0mxLMdfMPRD4L
Borodin, Steppes of Central Asia and Polovtsian Dances - Ankara Kent Filarmoni Orkestrası/James Ross
작품해설
러시아의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 민족적 색채를 극히 농후하게 나타내고 있는 보로딘은 발라키레프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처럼 직업 음악가는 아니며 화학을 전공했다. 그 때문에 작품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관현악곡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1880년)을 축하하기 위해, 러시아의 민족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활인화(活人畵)의 반주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 곡의 악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황량한 중앙 아시아 초원의 고요속에서 한가로운 러시아 노래가 들려온다. 아득히 멀리서 말과 낙타의 말굽소리에 섞여 이국적인 노래가 들려온다. 이윽고 이 지방 사람들에 의해 편성된 대상(隊商)이 다가온다. 그들은 러시아 병사들에 호위되어 끝없는 황야를 아무런 불안도 없이 걸어간다. 일행은 눈앞을 통과하여 다시 멀리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러시아의 노래와 이국적인 동양의 노래가 섞여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그 메아리는 점점 작아져서 초원? ?조용한 공기 속에 꺼져 간다.”
곡은 알레그레토 콘 모토. 2/4박자. 우선 제1 바이얼린 두 사람의 솔로에 의한 높은 지속음으로 시작된다. 이 시작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광활한 초원의 기분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윽고 클라리넷에 의해 소박한 러시아 노래가 나타난 후 호른에 연결된다. 첼로와 비올라에 의한 단조로운 피치카토는 아마도 대상들의 발소리를 그린 듯 싶다. 잠시 후에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터키 스타일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타난다. 대상들의 발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러시아의 노래가 힘찬 행진곡으로 바뀌고, 이어 동양의 노래가 바이얼린으로 부드럽게 연주된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노래와 동양의 노래가 섞이면서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러시아의 노래가 플룻으로 낮게 연주되면서 꺼질 듯 끝난다. 레코드는 로제스트벤스키와 소비에트 국립 교향악단의 협연이 본토의 연주로서는 의외로 개운하고 담백한 표현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선율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강한 러시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즉 단색적인 연주인데 마무리가 아주 훌륭하다. 또한 이 곡은 동양풍의 무드를 교묘히 재현하고 있어 탄복할 만하다.
앙세르메와 스위스 로망드의 협연은 러시아 음악으로는 다소 색채가 화려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저항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앙세르메는 러시아 음악을 특히 잘 다루는 그 묘사력의 교묘함에 압도된다. 그의 이러한 표제적인 음악의 연주는 천하일품이며 오케스트라도 대단히 좋다. 클뤼탕스와 필하모니아의 협연은 그의 레퍼토리의 풍부함을 나타낸 호연이지만 러시아적인 체취는 과히 느껴지지 않으나 음악을 연주해 가는데 독특한 풍격이 있어 좋다.
Alrxander Porfir'yevich Borodin (1833.11.12~1887.2.27)
러시아 작곡가 . 화학자. 페테르부르크 출생. 그루지아의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농노(農奴)였던 프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하여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어린시절 피아노와 첼로를 비롯하여 여러 악기를 배우고 9세 때에는폴카를, 13세 때에는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850~56년 페테르부르크의과대학 에서 화학과 약학을 전공하고 졸업후 병리학 교수 조수로 근무하며 1858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59년에는 화학연구를 위해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하여, 서유럽 각지의 음악 특히 낭만파음악을 접했다.
1862년 귀국하여 1864년부터 모교의 화학담당교수로 재직하면서 발라키레프를 알게 되어 작곡을 틈틈히 배우고 과학자로서의 연구활동으로 인하여 휴가 때나 병으로 누웠을 때에 틈틈히 작곡을 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발라키레프와 C.A. 큐이 , 무소르그스키 , 림스키코르사코프 등과 함께 러시아 5인조 멤바가 되어 국민음악 창조에 진력하였고, 학계에서는 여성의학교육 제도의 확립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1877년 리스트로 부터 작품에 대한 격찬을 받았으며 1880년 이후 교육계에 파급됐던 반동(反動)화 정책과 아내의 병으로 창작 활동이 줄어들고 1887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29세 때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법을 배워 음악인으로서 보다 많은 소양을 쌓았는데 그의 권고에 따라 러시아 국민음악 건설에 적극 노력할 방침을 세웠지만 과학자로서의 교수와 연구, 여성 의학을 위한 많은 사회 활동에 분망했기 때문에 작곡은 휴가나 병으로 누웠을 때에 주로 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44세 때 그의 교향곡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제2교향곡을 발표하였다. 오페라 [이고르공]도 그 당시의 작품이지만 그가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카프카즈의 에메레티아(Emeretia) 국왕의 후예인 게디아노프라고 하는 구르지아의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농노였던 포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시켜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므로 그의 음악에 있어서의 동양적 요소는 이 같은 혈통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중앙 아시아적인 동양적인 이성과 정취가 농후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지만, 그의 국민주의로 인해 서구 음악 형식이 다분히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보로딘은 러시아 역사의 민족적 영웅으로 제재를 구하고, 러시아와의 일체감을 위하여 동방 여러 민족의 음악을 연구하여 동방 음악의 특이한 음계, 리듬, 화성, 선율의 요소를 도입한 동방적 시정이 넘치는 음악을 창출하였다. 또한 그는 국민악파의 작곡가로서는 특이하게 실내악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고전적 구성을 나타내는 서정적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18년간 작업하였지만 미완으로 그친 오페라 《이고르공(公)》과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3곡의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 등이 있으며, 그의 유작은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에 의해 완성되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GnHBdKEiTrk?si=sexFfWgj_xfSnDkV
Borodin - 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 Arthur Fiedler - Boston Pops Orchestra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