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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4-3
숭산에서 코 꿰이고, 꼼짝없이 술주정뱅이 마누라를 얻게 된 칠호 백철군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개봉으로 도착하기가 무섭게 혼인식을 치르자고 하는 것을 사정사정해서 겨우 한달 뒤로 미루기는 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백초당과 북풍표국이었다. 그래서 방화련은 날마다 북풍표국으로 놀러와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처갓집은 멀면 멀수록 좋다고 하더니만----."
마당에서 의형제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아내가 될 여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던 칠호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칠호가 있는 방으로 북풍표국의 총관 옥형진이 들어오고 있었다.
"국주, 걱정 마시게. 혼인하고 나면 두들겨 패서라도 술을 끊게 만들면 되지 않나?"
"형님은 저런 마누라를 반드시 내가 가져야 한다는 거요?"
"잘 먹고 잘 살자며? 그럼 백초당의 힘을 등에 업어야지. 무림인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북풍에 표물을 맡기려는 상인이 몇이나 있겠나? 신용을 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자네도 알 텐데? 다른 건 몰라도 백초당의 신용은 천하제일이야."
"끄--응."
그저 앓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칠호를 바라보며 천궁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건 자네도 원하던 일이 아니던가? 어떻게든 백초당과 한 집안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나?"
"근데 왜 하필 둘째인 방화련이죠? 보니까 셋째가 훨씬 예쁘더만---."
"표국을 말아먹을 생각인가? 방수련이 표국의 안방 마님이 되면 거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세. 그녀는 너무 사치가 심해. 설마 질악이를 따라 개방에 가입할 생각은 아니겠지?"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 도끼눈을 하고 칠호가 천궁을 노려보았다.
"형님,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바로 그 때 방안으로 왕질악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개방이 뭐 어때서 그래요?!"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왕질악의 모습을 보면서 칠호와 천궁은 조금은 성이 난 표정으로 동시에 소리쳤다.
"그만 마셔!"
"그만 마셔야지!"
황산에서 의형제를 맺은 일곱명 중 넷째가 된 흑룡 왕질악은 천궁과 칠호를 번갈아 바라보다 다시 한 손에 든 호로의 술을 한모금 들이킨 후 말했다.
"나보고 죽으라고 그래요! 이게 없으면 전 못 살아요!"
"어이구! 잘 낫다! 미래의 개방 방주가 이 꼴이라니---."
칠호는 빈정거리면서 말하고, 다시 한 모금을 들이키고 왕질악이 말했다.
"체, 형님들은 모르세요! 제가 왜 날마다 술을 마시는 지--."
"네 원래의 사부였던 협개(俠 )에 대한 일 때문에 그런 다는 것 모르는 줄 알았냐?"
천궁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오고, 왕질악은 놀란 눈으로 첫째 형인 천궁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셋째가 그때의 일을 아주 자세하게 조사했다. 네가 그 일로 계속 고민하는 것을 보고 화산파의 천하제일검 풍진자에게 배울 기회도 뒤로 미루고---. 이게 바로 그 때의 일을 조사한 내용이다."
마침 잘 됐다는 표정으로 칠호는 자신의 서랍에서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서류를 꺼내어 왕질악에게 내밀었다.
"잘 읽어보고 판단해라. 넷째야 너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창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술판에서 방화련의 취한 음성이 방안으로 흘러들었다.
"넷째 동생, 어서 이리와 같이 마시자구! 모두들 기다리고 있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왕질악이 소리쳤다.
"먼저들 마시고 있어요! 전 볼게 좀 있어서 지금은 안돼요!"
그렇게 소리치고 나서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한장한장 들쳐보는 왕질악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게 정말입니까? 취문설개 방주님이 저를 살리기 위해 일갑자의 공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것이?"
"이놈아, 그분은 네 원수가 아니라 생명의 은인이야. 거기다 널 제자로 삼고 다음대의 개방 방주가 되라고 후개(後 )로 정해 주었잖아?"
천궁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넷째인 왕질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칠호 백철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 적혀 있는 것은 모두 사실이야. 이제 어떻게 할래?"
둘째형인 칠호의 말에 왕질악은 고민에 찬 표정이 되어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사실은---, 며칠 뒤에 일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뭐?"
"조금만 늦었으면 큰 잘못을 저지를 뻔 했네요."
그렇게 해서 왕질악은 두 번째 사부이자 개방의 방주인 취문설개를 암습 하는 일을 벌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운명 또한 바뀌었다.
만상금쇄진은 지독했다.
근 한 달이 걸려서야 지독한 환상과 악몽을 안겨주는 진법(陣法)에서 벗어나 밖으로 몸을 빼낼 수 있게 된 방소구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쿵 쿵 하는 도끼질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고, 푸르름이 가득한 한 여름의 숲속에 서 있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게 되면서 방소구의 입에서는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그런 것인가?"
지독한 환상이 끝없이 그를 괴롭히던 만상금쇄진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를 회한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소구였다.
"미래는 바뀌었다. 갈라진 시간 속에 이곳은 새로이 생겨난 세상--. 저쪽 세상의 내가 본다면 여기 있는 내가 환상이고,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환상---. 정말로 모든 것이 바뀌었을 테니 이제부터 내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혼천경에 머물러 있는 사부와 나의 시간은 갈라졌고, 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부는 나로 인해 고민하고 있겠지? 현재의 내 모습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곳에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던 소구는 만상금쇄진을 통과하면서, 방황을 모두 끝내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집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모두 무사할까?"
심각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고 뒤돌아서 서서 걸음을 옮기려던 소구는 자신의 발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풀썩'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소구는 황당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꾸르륵'
소구의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비명이 터졌다.
'배고파!'
생각해보니 근 한 달을 굶은 상태의 소구였다. 여기 있는 소구는 먹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을 능력이 있는 소구가 아니라,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 소구였다. 더위와 추위를 느끼고 고통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상태의 소구였다.
소구의 귓가로 여전히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소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떻게든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바로 지워졌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미래는 바뀌고--, 내가 나무꾼을 만나 그의 마을로 가면서 그 마을 전부가 죽었다. 지금 나무꾼을 향해 가면 안돼!'
그렇게 속으로 자기자신을 향해 소리친 소구는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였지만 숲 깊숙한 곳을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가의 물은 이빨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 물을 꿀꺽 꿀꺽 들이키며 물배를 채우고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은 소구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내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었고--. 어디로 먼저 가 보아야 할까?"
물로 가득 차 출렁이는 배를 쓰다듬으며 소구는 멀리 보이는 소실봉의 중턱을 향했다.
힘겹게 몸을 세우고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방소구는 울상을 지은 채 뒤로 돌아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는 하도 배가 고파서 극악봉을 땅바닥에 버려놓고 개울가로 기어갔지만 이제 움직일 힘이 생겼으니 그것을 챙겨야 했다.
"흐이구, 내가 어쩌다 이런 운명을 가지게 되었지? 말 그대로 극악한 극악봉을 어떻게 검으로 만들고 환혼경을 깨냐구?"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소구는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수백년의 세월동안 절대란 이름을 유지하던 혼천문의 조사들이 모두 달려들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일이 극악봉을 검으로 깎는 일이었다. 그것을 자신이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소구는 잔뜩 풀이 죽어서 봉을 버려 둔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나무꾼은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는 개울가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마주치고---.
"으악! 미친놈이잖아! 죽어!"
소구를 발견하자마자 나무꾼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한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마구 휘둘러대고, 아무리 배가 고파서 힘없는 상태라지만 한낮 나무꾼의 도끼의 맞아 죽을 소구가 아니었다.
"누구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야?! 나무꾼이 나무나 할 것이지, 사람을 죽이려들어?!"
어느새 나무꾼의 도끼를 뺏어들고 잔뜩 화가 나서 소구가 소리치는 순간, 나무꾼은 이미 뒤로 내빼고 있었다.
"두고 보자!"
도망치면서도 소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나무꾼이었다. 소구는 황당한 얼굴로 그런 나무꾼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땅바닥에 버려 두고 극악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풀 사이에 넘어져 있는 검은 몽둥이를 집어들고, 걸음을 옮기려던 소구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세우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몇 채의 초가집 지붕이 보이고, 그 사이로 뛰어들어가는 나무꾼의 모습과 함께 그의 고함도 들리고 있었다.
"미친놈이 또 나타났다! 미친놈이 또 나타났다!"
요란하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는 나무꾼의 고함소리를 들으면서 소구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미친놈---, 미치기는 제 놈이 미치고 누구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는 무거운 극악봉을 어깨에 걸치고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소림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소구였지만, 얼마가지도 못하고 소구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낮과 괭이 삽과 도끼 같은 것을 든 한 무리의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소구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그들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소구를 노려보고 있었고, 소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요?!"
소구의 입에서 성난 고함이 터지자, 몰려든 사람들은 움찔거리면서 모두가 한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몰려든 소화촌의 마을 사람들 중 그래도 가장 침착한 촌장 영감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소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 날 기억하겠는가?"
부들부들 떨면서 물어보는 노인의 얼굴을 소구는 기억하고 있지만, 또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했다. 이 앞의 삶에서는 물론 만났고 대화도 나누게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노인장, 보아하니 노인장이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표인 모양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요? 왜 저 인간이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도끼를 휘두르는 겁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작당을 해서 날 죽이려는 모양인데 내가 당신들의 수가 많다고 해서 죽을 사람처럼 보이오?!"
잔뜩 성질 나서 소리치고 있는 소구의 모습을 보면서 소화촌의 촌장은 안도의 한숨을 흘리고, 뒤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나서 소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화는 났지만 그들에게 찾아온 안도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두들 무기를 내리게! 이 사람은 미치지 않았어! 지금은 제 정신이야!"
촌장이 뒤돌아 서서 소리치고, 은근히 가슴을 졸이고 있던 소화촌의 마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들고 있던 무기를 땅으로 내려놓았다.
소구는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황당한 일에 입만 딱 벌리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황당한가 보구먼?"
노인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오고, 소구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젊은이 때문에 우리가 겪은 황당한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세."
노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사람들 약 이십여명의 고개가 일제히 끄덕여지고, 소구는 더욱 황당해졌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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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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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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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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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