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를 찾지못해 직접 올립니다. 출처 아시는분 있으시면 말씀좀 해주십시오.
이명박씨의 비리뿐 아니라 능력이란측면도 알고싶으시다면 조금만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시간을 투자하시면 비일비재하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때당시로 10억달러면 지금으로 따지면 1조원이
된다고 하더군요. 부실기업을 회생시키기위해 들어간 국민의 혈세는 천문학적입니다.
전 보통 사람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좋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분한테서는 도저히 그런면을 찾아볼수가 없다는게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H는 무엇입니까?" 고소영의 ´힐스테이트´ 광고로 상징되듯이 지금은 건설업계의 名家로 부활한 현대건설이 지난 2001년 부도 위기에 몰렸고, 그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의 ´묻지마 공사수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2000년 3월 14일,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경질로 촉발된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가뜩이나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현대건설을 부도 위기로 몰아넣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왕자의 난이 아니더라도 현대건설은 이라크 공사대금 미수금, 국내외 공사대금 미수금, 유가증권 평가손 등 누적 부실이 이미 2조원을 넘어선 데다 부채도 5조원을 넘어 매달 돌아오는 사채와 어음을 막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몽구·정몽헌 두 공동회장의 경영권 다툼은 현대건설을 비롯한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대외신인도를 크게 떨어뜨렸고 외국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채권 회수조치가 잇따르고 현대건설은 자금난에 몰리기 시작했다. 2000년 한 해 내내 월말만 되면 금융시장에는 ‘현대건설 부도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동성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몽헌을 비롯한 현대건설 경영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과감한 자구계획을 세우지 않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채권단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뒤 현대건설은 그해 연말까지 4차례 자구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현대건설에 들어온 자금은 1000억원에 불과했다. 급기야 2000년 10월 1차 부도가 나자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의 법정관리와 퇴출을 경고하며 정몽헌 회장을 비롯해 현대그룹 경영진을 압박하고 나섰고 그제야 정몽헌 회장은 사재 출연을 포함해 1조2000억원의 자구책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2000년 말 회계 감사결과 현대건설은 2조9800억원의 막대한 부실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정몽헌 회장은 2001년 3월 5일 현대건설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출자전환 동의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윽고 정부와 채권단도 현대건설 퇴출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출자전환을 결정하고 2001년 5월 18일 감자에 이은 출자전환을 단행함으로써 54년 역사를 자랑하던 현대건설은 정씨 일가 품에서 벗어나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가게 됐다. 2001년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현대건설은 2조9000억원의 적자와 4조4000억원의 부실을 안고 있어 완전한 자본잠식 상태였다.
´워크아웃´이라는 것은 사실상 부도 상태에 처한 기업에 대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파산선고 및 청산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채권단 관리 하에 구조조정 및 경영개선 작업을 벌임으로써 기업을 회생시키도록 고안된 제도이다. 결국, 이는 ´공적 자금´이라는 국민들의 혈세를 동원한 일종의 ´특혜´에 해당되며, ´워크아웃´에 돌입한 기업들은 사실상 파산한 기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에서 채권단에 의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임명된 심현영 사장(2001년 5월~2003년 3월 재직)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당시 현대건설은 욕심이 지나쳤어요. 열심히 해외 건설사업을 해왔지만 공사대금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엄청난 부채들이 누적되어 있었죠. 이라크의 철도공사만 해도 10억 달러에 달하는 공사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죠. 마구잡이 수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익성 있는 기술집약형 공사만을 선별 수주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이명박의 무리한 이라크 공사 수주, 현대건설 파산의 직접적 원인
공교롭게도 현대건설이 이라크에 처음 진출한 것은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1978년부터다. 그러나, 그 후 이라크는 1980년부터 88년까지 무려 8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기간 쿠르드족을 화학무기까지 써가며 대량 학살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걸프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이라크 경제는 완전 초토화되었을 뿐아니라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원유 판매에 제동이 걸려 대외지불능력에 결정적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이것이 현대건설 이라크 미수금으로 이어졌으며, 바로 이것이 현대건설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대건설의 미수금이 당시 이라크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미수금 총액의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라크 진출 전세계 민간기업 채권액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라크 건설시장에서 현대건설의 시장점유율이 40%였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80년대에 지속된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인해 외국기업들은 1차 탈출 행렬일 이루었고, 90년대 초의 걸프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만 꿋꿋이 이라크에 버티고 앉아서 무리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공사를 강행해나갔던 것이다. 현대건설 여동진 해외사업본부장은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건을 계기로 아무리 규모가 큰 공사라고 하더라도 공사비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공사를 수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얼마나 뼈저린 반성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80년대 이라크에서 진행된 공사를 큰 것으로 몇개만 뽑아보면 알무사이브 화력발전소 공사, 이라크 국립메시병원 공사, 북부철도 공사, 하이파 하우징 공사, 400kv 변전소 공사, 키르쿠크 상수도 공사, 바스라 항만 공사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저가 출혈경쟁´으로 인한 적자 공사이며 그나마도 거의 모두가 현대건설 이라크 미수금 형태로 남아있다.
물론, 이명박 측은 현대건설 부도가 2001년에 일어난 일이고 자신은 1992년까지만 현대건설 CEO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재임기간 중 수주한 공사에 대해 재임기간 중 끝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고 미수금으로 남긴 채 회사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CEO로서는 중대한 결격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현대건설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은 ´안 중에도 없었던´ 이명박 회장
더욱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마쳤던 1990년대 초까지 직원들에 대해 이라크 잔류를 지시하며 공사를 강행하도록 한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묻지마 수주´와 ´묻지마 시공´이 기업의 재무구조에 치명타를 입혔을 뿐아니라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한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건설 부도 문제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을 이유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CEO 재직기간 중 벌어진 걸프전쟁 당시의 무모함에 대해서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 현장에 남아있던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발발된 걸프전쟁은 이라크에 있던 모든 외국인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이라크는 화학무기로 위협하고, 미국은 화학무기를 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떼니 이라크에 있던 외국인들은 모두 철수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 직원들은 본사의 이명박 회장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며 영국의 단파방송인 BBC라디오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지나게 되었다.
결국에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91년 1월 14일가지 이라크의 북부 키르쿠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총격적을 천장 속에 숨어서 기도를 하며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라크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라크 북부 슐레마니아를 거쳐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귀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인 1월 13일 바그다드에서 택시로 약 1,000km를 달려 요르단 암만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저 위에 근로자 철수 문제 저번에 경선 토론때 박근혜가 1991년 2월 이라크 전쟁 때 다른 나라들은 위험해서 다 철수시켰는데 현대는 왜 철수시키지 안았냐는 질문에 자기가 들어가서 다철수시키고 마지막까지 진두지휘했다고 답했는데 거짓말이였죠 그러고 하는 변명이 잘못들어서 1980년의 이란 이라크 전쟁인줄 알았다고 말하신분이죠 걸프전 때무네 귀국한 사람들을 사우디 건설현장에 복귀하라고 종용해서 물의를 빚기도 한분이시죠...
첫댓글 출처 월간조선인 거 같은데, 저도 본 지 오래되서 확실치는 않네요. 대선하고 전혀 상관없는 시기에 나온 기사에요.
출저 감사합니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요. 저는 근래에 보게된 글이라 언제 나왔는지도 확인이 안됬었거든요.
저 위에 근로자 철수 문제 저번에 경선 토론때 박근혜가 1991년 2월 이라크 전쟁 때 다른 나라들은 위험해서 다 철수시켰는데 현대는 왜 철수시키지 안았냐는 질문에 자기가 들어가서 다철수시키고 마지막까지 진두지휘했다고 답했는데 거짓말이였죠 그러고 하는 변명이 잘못들어서 1980년의 이란 이라크 전쟁인줄 알았다고 말하신분이죠 걸프전 때무네 귀국한 사람들을 사우디 건설현장에 복귀하라고 종용해서 물의를 빚기도 한분이시죠...
이거 가지고 청문회 했을때 어찌 그러셨는지...
그러나, 청계천을 했다는거-.-;;; 작은걸로 큰것이 가려지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