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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4-4
간신히 소구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흘러나오고 소구는 노인에게서 꾀나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 일년쯤 전이었을 거야. 자네가 들고 있는 그 검은 몽둥이를 들고 우리 마을로 찾아온 적이 있었지. 그 때에---."
그렇게 시작된 노인의 말을 들어가면서 소구의 얼굴은 기괴하게 변해갔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저기 있는 나무꾼을 미워하지 말게나. 자네가 겨울을 날 식량을 모두 먹어 치운 데다 집까지 무너뜨렸는데 화가 안 나면 그게 사람인가? 자네 사부라는 노인이 오지 않았다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을 뻔했지. 거기다 우리 마을의 우물을 자네가 막아버려서, 십리나 떨어진 개울로 가서 물을 떠와야 했지. 그것도 우물에 다시 물이 올라올 때까지 일년 동안이나---. 이 정도면 우리가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된 것인지 이해 할 수 있겠지?"
소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어디로 갈 생각인가?"
"소림사요."
"소림사? 자네 사부는 소림사 사람이 아닌데?"
"정각 사부님이 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전 사부가 한 명이 아니거든요."
"그럼 소림사로 가서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면 되는가?"
노인의 말에 소구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전 소림사의 정식 제자가 아니라 속가제자인데요?"
소구의 말에 소화촌 마을 사람들은 울상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구로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잠시 동안 품고 있었던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소화촌의 마을 사람들은 너덜너덜하고 때가 새카맣게 낀 옷을 입고 있는 소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 할 모양새를 하고 있는 소구였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될만한 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검은 쇠몽둥이 하나뿐이었다.
"그럼 어서 가보게. 나중에 돈이 생기면 우리 마을로 찾아와서 손해를 배상해 주었으면 하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찾아가죠."
촌장과 소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일제히 소리쳤다.
"안 찾아와도 돼!"
"손해는 잊어버릴 테니 찾아오지마!"
미쳐 있던 소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화촌 사람들 중, 가장 피해가 컸던 소화촌의 나무꾼 이엄의 고함이 유달리 크게 소구의 귀를 파고들었다. 멀뚱멀뚱한 얼굴로 그런 마을 사람들과 촌장을 번갈아 바라보는 소구를 향해, 소화촌의 촌장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내 말은 잊게. 우리도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니 자네도 갈 길을 가게나."
길을 가로막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길을 비켜주었고, 소구는 소림사를 향해 계속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내참, 내가 미쳐 있긴 미쳐 있었던 모양이군. 미친놈 취급받으니까 기분이 더럽긴 더럽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소구가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화촌 마을 사람들의 대화가 소구의 기분을 더욱 더럽게 만들었다.
"촌장님! 미쳤어요! 저 징그러운 놈을 또 마을로 들어오게 하려 하다니!"
그 뒤의 말을 듣게 되면 더욱 기분이 더러워질 것이라는 걸 느낀 소구는 그대로 경공을 전개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획'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쏘아져 나아가는 소구의 몸은 순식간에 까만 점이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소화촌 마을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갔군."
"무시무시하네요."
아무 생각 없이 이엄이 촌장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한마디를 내뱉었고, 이엄은 바로 다음 순간 촌장의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밟아!"
촌장의 그 한마디에 나무꾼 이엄은 같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밟혀야 했다.
"미친놈, 하마터면 네 녀석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들 전부가 죽을 뻔했잖아!"
온몸이 멍이 생기고 얼굴과 옷 위로 발자국이 가득히 새겨진 상태로 비틀거리며 일어선 이엄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촌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예요?"
"저자는 엄청난 무공의 고수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단숨에 죽일 능력을 가진 자란 말이다! 네 녀석 때문에 하마터면 온 마을 사람들이 죽을 뻔 했단 말이다! 다행히 제 정신을 차린 데다 악한 자도 아니라서 우리가 무사했다만--, 네가 그자를 죽이려 들던 일에 앙심을 품었다면 어쩔 뻔했단 말이냐?!"
촌장의 그 말에 이엄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가 미친놈이라고 부르던 자가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무림인이라는 사실이 이엄의 머리 속을 강타했고,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모두 마을로 돌아가자! 그자에 대한 일은 모두 잊고 하던 일이나 해!"
소화촌의 촌장은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
댕댕 하는 산사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소림사의 산문 앞으로 다가가는 검은 쇠몽둥이를 들고 들어서는 소구는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다.
'식사시간 전에 어떻게든 소림사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어이구 배고파!'
무려 한달을 굶은 상태인 소구였다. 거기다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혼천문의 몽둥이 극악봉을 어깨에 메고 걷는 소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소림사의 산문에 서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지객당 소속의 한 뚱뚱한 스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건들거리며 산문 앞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때가 시꺼멓게 끼고 너무 찢어져서 간신히 치부를 가리고 있는 너덜너덜 거리는 옷에, 어깨 위에는 무식하게 생긴 검은 쇠몽둥이를 걸치고 다가오는 인간은, 건들거리면서 오는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미친놈 내지는 건달이라는 인상이었다.
배가 고파서 비틀거리는 소구의 걸음이 누구의 눈에는 아무래도 시정잡배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비쳐지는 모양이었다.
쓰윽 그대로 산문 안으로 들어서는 소구의 앞을 한명의 뚱뚱한 중이 가로막았다.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본사에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합장하면서 그렇게 물어보는 뚱뚱한 중을 바라보면서 소구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서 본 중이더라? 분명히 본 기억이 있는데---?'
소구가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을 더듬고 있는 사이, 산문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그 지객당 소속의 승려 또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날 건달의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더듬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지? 본사에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한 명의 중과 한명의 거지가 마주 서서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소구 소사숙!"
"아! 나한테 식사를 뺏기던 혜원이로구나!"
둘은 거의 동시에 소리쳤고, 서로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시 시선을 돌려 말문을 연 것은 소구였다.
"그 때도 뚱뚱하더니 지금도 뚱뚱하네."
"살이 쪄서 그런 게 아니라 부어서 그래요."
소구의 입에서는 사람의 신경을 빡빡 긁어대는 말이 흘러나오고, 혜원은 볼멘 소리로 대답했다.
"그보다---, 나 벌써 한 달이나 굶었다고. 아직 식사시간 전이지?"
십년 전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인간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식사라는 것이 혜원을 어이없게 했지만, 혜원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저녁 공양을 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 방장 스님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십년 전에 사라졌다 그 꼴로 돌아와서 밥부터 찾다니---."
혜원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지만 사람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무슨 인사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소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극악봉을 든 채 소림사의 주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사숙 어디 가는 거예요?!"
"한달이나 굶었어!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는데, 일단 이놈의 배부터 채우고 보자구!"
뒤도 안 돌아보고 소리치고 걸음을 옮기는 소구의 모습에서 혜원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어릴 적 소사숙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멍하니 소구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던 혜원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참!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방장 스님에게 알려야지."
산문 앞을 지키고 있던 혜원이 지키던 장소를 떠나 황급히 방장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다시 거지꼴을 한 두 사람이 산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거봐요, 사부님. 무슨 동영에 소구의 병을 고칠 약이 있어요? 가서 고생만 죽도록 하고 돌아왔잖아요?"
"그만 좀 해라. 이곳까지 오는 동안 네가 그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 줄 아느냐?"
"아직도 부족해요, 사부님 때문에 그 놈의 사무라이인지 뭔지 하는 인간들에게 쫓겨다니던 생각을 하면---."
이를 갈면서 제자인 양평이 말을 할 때, 사부인 정각 대사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면서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하늘이 참 맑구나. 같은 하늘이지만 그곳에서 보는 하늘보다는 이곳에서 보는 하늘이 훨씬 보기가 좋구나."
천외(天外)로 도피하는 사부인 정각 대사를 향해 양평이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피 터지게 싸우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도와 야죠? 손에 피를 보기 싫다고 싸우는 것은 제자에게만 맡기고 구경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딴청을 피우면서 제자의 잔소리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정각 대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놈아?! 네가 다치면 그때그때 네 몸을 고쳐 주었잖아?! 아무리 내가 잘못했기로서니 난 네 사부란 말이다! 무려 한 달이 넘도록 같은 소리로 이 사부를 그렇게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잔뜩 화가 나서 소리치고 있는 정각 대사의 마음속에는 이 정도 소리치면 알아서 제자가 꼬리를 말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자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 않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예! 두고두고 괴롭힐 생각입니다! 까닭 잘못했으면 외팔이 병신이 될 뻔한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제자의 이유 있는 대답에 정각은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방장 사형을 만나는 데로 이놈을 밖으로 내쫓아야겠다. 어떻게 된 놈의 속이 이리도 좁은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굳히고 정각이 향한 곳은 소림사의 방장이 머무는 거처 방장실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부의 뒤를 따라 양평은 연신 정각의 귀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으며 사부를 갈구는 일을 결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십 년 동안 헛고생을 하게 만든 사부에 대한 양평의 심술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정각과 양평 그리고 방소구에 대한 소문이 소림사 안에 퍼진 것은 채 반시진이 걸리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림사의 승려들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날은 저물어서 붉게 물든 해가 산너머로 숨고 있을 때, 정각의 두 제자는 개울가로 쫓겨나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체, 밥부터 주면 좀 안되나? 너무 더러우니 목욕부터 하고 나서 오라니---."
연신 투덜거리면서 때가 새카맣게 낀 몸을 씻고 있는 소구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잔뜩 부은 얼굴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양평이 있었다.
'체 왜 우리만 이 개울로 나와서 목욕을 해야 하냐고?'
양평은 소림사 안에서 편안하게 동자승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하고 있을 사부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투덜거렸다.
"이놈들아! 빨리 씻어! 내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구?!"
사대금강 중의 막내인 방철이 두 사람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조금만 참으라구요! 십년 동안 쌓인 때가 그렇게 쉽게 닦일 것 같아요?!"
소구가 소리치고, 방철과 양평은 황당한 얼굴이 되어 소구를 바라보았다.
'으--, 더러운 놈!'
방철의 머리 속에서는 그런 고함이 터지고, 양평은 소구의 옆에서 멀리 떨어지면서 생각했다.
'가까이 있지 말자. 어쩐지 물이 시커멓게 된다 했더니---.'
하여튼 그렇게 목욕을 하고, 드디어 고대하던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소구는 바로 잠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소구는 사형 양평과 함께 방장실로 가야만 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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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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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