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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찬미예수님...!!
1기, 이영호 벨라도입니다.
오늘 공부할 내용은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입니다. 9월 11일 - 12일, 왜관 본원에서 역사 심포지움이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오늘 우리가 나눌 공부 내용이기 때문에 꼭 참석 하고 싶었습니다. 막상 참석하고 보니, 실망했습니다. 11일 오후1시 30분부터 12일 오후 5시까지 계속 이어지는 내용은 10명의 박사 논문으로서 너무나 방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요약해서 약 90분간 발표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함께 참석 하셨던 분들, 모두 동감하시지요???
성베네딕도 수도원은 종류도 여러가지 일 뿐만 아니라 그 맛 역시 다양한 음식을 우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잔치에 초대 받은 우리는 오늘의 주방보조, 벨라도 입맛에 맛는 음식을 가려내어 편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서 교회사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식 정의를 하자면 교회사란 역사신학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역사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역사안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모습의 발견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하느님을 보았는가?
곽승룡 신부님 강의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중에는 일반 대중들에게 가셨고, 수난시기에는 제자들에게 오셨다. 부활후에는 믿는이들과 함께 살고 게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출하셨다가 귀가하셨다. 지금은 부모님 모시고 알콩달콩 살고 계십니다. 행복은 가정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이 어디론가 도망가지 못하게 꼭 붙들고 공부를 계속합시다.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년의 역사중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특히 봉헌회원으로써 특별히 기억될 만한 사건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선물입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며 하나의 작품완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역사 의식속에 머물러 깨여있는 것이 봉헌회원의 몫이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바로 베네딕도회의 역사를 써 가고 있구나라고 자각하는것이 봉헌회원의 몫으로 여겨집니다. 한달에 한번 모이고 헤어지는 것, 그것은 베네딕도 역사안에 기록되어가고 있으며 긍적적으로 진화될 수도 있지만, 도태되어 역사속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바로 내 앞에서 지나가고 있다. 지금은 대주교님으로 계시는 최창무 주교님께서는 나의 은사님이 되십니다.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의 어느 교육도시, 하숙집 주인 아저씨의 역사 증언이었습니다.
....................,
나의 군인 생활 중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었지.
1차 세계대전 중 나는 연합군으로서 참전하였지.
연합군 소대 전투중 독일군 포로가 몇 명 잡혔지.
전투가 심해 포로들 이송이 쉽지 않았지.
포로들은 우리와 함께 하루 밤 묵게 되었지.
한밤중 내가 초병으로 근무할 때였지.
잠간 방심한 사이에 독일군 포로가 도망가는 것을 발견했지.
총을 겨누고 쏘려고 하였지만 그만두었지.
적군이었지만 등을 보고 총을 쏘는 것이 비겁하게 여겨젔기 때문이었지.
또한 젊은이의 목숨도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지.
심한 전쟁 중 젊은이들은 수없이 죽어갔기 때문이야.....,
그 와중에 포로 탈출은 흔한 일이었지.
아침에 업무 정리 중 발견된 일이지만,
도망병 독일 포로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어.
그 때 내가 총을 쏘았드라면 세계역사는 달라 젔을꺼야...., 이와같이
역사는 바로 내 코앞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물론 이 이야기는 교육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역사는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역사속에 우리는 늘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속의 주인공으로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느님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고 성장시켜야만 하는 선택받은 백성들이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탈랜트를 주시어 이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것도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베네딕도회의 대표적인 영성 중에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왜관 성베네딕도회 수사님들의 공원묘지 견학을 간적이 있습니다. 묘지명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름과 생졸(生卒), 즉 누구며 언제 태여나 언제 죽었는지만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묘지명, 그곳에는 분명 베네딕도회의 기본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세상안의 존재하는 모든 것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사람은 왔던 것처럼 갈 뿐이다. 그대의 탈랜트마져 하느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묘지명은 그대의 것만 표시할 뿐이다. 그래서 이름 석자, 그리고 생졸(生卒)만 기록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성베네딕도회 기본 정신이다.
9월11일 - 12일, 발표된 논문들은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회의 100년간의 업적들입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건의 중대성이 아니라 사건속에 들어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교회사는 역사신학으로서 사건속에 하느님의 얼굴이 들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이 삭제된 교회사는 진정한 교회사가 아니다.
구약의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멋진 아버지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늘 효자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약하고 변덕스러고 때로는 배신까지 하는 뻔뻔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지만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 놓는 일은 늘 잊지 않았습니다.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년의 역사 중 개별적인 사건들은 구약에서처럼 기억될 만한 착한 일들도 있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약점들이 들어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베네딕도 연합회에서의 일들, 파리외방전교회와 베네딕도회와의 선교지에서의 주도권 다툼. 동서양의 인종차별, 정치와 종교(식민지안에서의 한일 관계등)와의 갈등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사건속에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의도적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삭제한다면 진정한 교회사라고 할 수 없다. 뿐만아니라 이 자리에서 평가할 근거 역시 없다.
어리석은 십자가란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의 사건까지 이어져 순교라도 할 수 있는 굉장한 사건이지만,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조작된 하나의 사기 행각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년의 역사 역시 매 사건마다 하느님의 모습이 보여진다면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요소만 강조한다면 아주 형편없이 평가 절하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년사를 바라보는 봉헌회원 마음자세에 대하여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서툰 표현이지만 발언자의 의도를 보시고 많은 이해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봉헌회의 과제들을 제언해 보겠습니다.
봉헌회원들이 꼭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이제 막 시작되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시성시복 운동의 적극 참여입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이형우 아빠스는 2007년 12월 10일 공동체 미사중 성오딜리아 총재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가 임석한 가운데 시성시복 추진 교령을 반포하였다. 예비 성인들, 즉 가경자들이 선정되었고 그분들의 가치가 세상에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한 가족을 형성한 우리가 만일 이일에 무관심 하고 있다면 말도 안됩니다. 그분들과의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집니다. 그분들과 우리는 어떻게 친교를 나눌 것인가?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증거자에게서 다시한 번 들어납니다. 그리스도교 가치관은 십자가에서처럼 증거자들에 의해 높이 들어 올려 집니다. 십자가의 존재를 단순한 형틀로만 생각한 이들은 칠흑같은 절망이 다가옵니다. 허지만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존재는 분명 개선문임을 확신합니다. 끔직한 십자가가 아니더러도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부활을 확신한다면 우리들의 현재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롭습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시복시성 운동은 한국교회에 중요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정신은 <사랑>입니다. 허지만 그 사랑은 <지금> 막 시작되고 있을 뿐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늘 조급하게 결과를 재촉하지만,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끈질긴 기다림을 요구할찌도 모릅니다. 그 <사랑>은 <부활>후에 완성될 것입니다. 시성 시복 운동이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치우칠 경우 남북 갈등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미리 지적하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십자가는 용서와 화해의 표지이지 증오와 대결의 깃발이 결코 아닙니다. 자, 지금부터는 그 역사의 현장에 더 가까이 가 봅시다.
.......1920년 원산교구를 설립한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과 1925년 한국에 진출한 성베네딕도 수녀원은 헌신적으로 북한지역에서 선교하였으나, 이제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완전히 폐쇄되고 말았다.
“5월11일 ...나는 10시 정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깨여있었
는지 모르겠다. ....순간 성당의 종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여섯 명의 사복 요원이 아래에 서 있었다. .............순간 나는 나의 동지들을 깨웠다.”
1949년 5월13일 아침 8시에 원산역을 떠난 열차는 저녁8시에 평양에 도착하여 ........, 평양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다. 사우어 주교와 루페르트 신부등...., 투옥된 외국인 신부, 수사, 수녀들은 총 67명이었다. ....남자 감방은 8평방미터 크기에 18명씩....,
❑옥사덕 수용소(1차 수감)
1949년 8월5일, 신부 17명, 수사 22명, 수녀 20명 등 총 59명의 수도자들이 이송되어 8월6일 도착한 곳은 자강도 전천군 별하면 쌍방리의 험준한 계곡안의 금모래 언덕, 일명 옥사덕이었다.(청천강 상류지역)
❑강제노동 : 강제노동은 수도자들을 감시하는 경찰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주택, 사무실, 도로 정비, 그리고 농장 운영이었다. 도구는 오로지 호미와 보습이었다. 옥수수, 기장, 콩, 보리, 감자....., 까마귀, 까치, 퀑, 노루, 맷돼지등의 출몰로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그보다 더 지능적인 고문은 산비탈과 돌무덤에서 억지 농사 강요로 성베네딕도 수도자들을 괴롭혔다는 점이다. 겨울이 되면 강제 노역은 농장일에서 숯가마일로 바뀌었다.
❑의식주 :
옷은 덕원 신학생들의 옷 몇 가지, 아이들의 옷을 배급받은 어른들의 모습..
먹을거리는 옥수수, 기장 콩으로 만든 죽
잠자리는 기차 객차 같았다. 위로는 석가래가 보이고 널빤지 아래로는 싸리가 보였다.
❑신앙생활
수녀들 숙소 하나를 경당으로 사용하고 간단한 목재 제대와 한국식 낡은 관을 이용하여 감실을 꾸몄다. 주례 사제를 바꾸어 매일 미사 집전을 하게 되었다.
“날마다 거행되는 그 성스러운 미사는 우리의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 미사는 우리에게 수용소 생활의 온갖 고통과 궁핍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그러한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또한 공산당 경찰들이 그 점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던가.”
❑순교자들
1949년 6월27일, 옥사덕에 도착한 이래 수도자들은 강제노역을 감당 못하여 순교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7월3일 베드로 게르네르트(Gernert, Petrus) 수사에 이어 8월3일 정양리 마르코(Metzger, Markus 丁洋利)가 사망했다. 수도자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자 평양인민교화소에 감금되어 있던 여의사 디오메데스 수녀와 간호사 프리트헬마 수녀를 7월18일 데려 왔으나, 환자용 약이나 음식을 제공받지 못해 별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1949년 7월에서 1950년 8월까지 옥사덕에서는 총 여섯 명의 수도자들이 희생되었다.
❑한국전쟁 발발과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한국전쟁 발발 내용을 전혀 몰랐다. 우왕좌왕(右往左往) 하는 한국 전쟁 상황에 따라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만포에서 관문리로 갔다가 옥사덕에 재수감되는 고초를 겪게 되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새로 부임한 교도소 소장은 전보다 더 지독한 악질이었기 때문이다. 옷은 푸른 죄수복으로 바뀌었고, 발은 맨발이었다. 겨울을 대비하여 헌겁신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신어야만 했다. 먹을 거리는 더 작아져 겨울동안 수확을 못한 밭에 눈과 함께 얼어 붙은 무나 배추를 파 먹거나, 가축에게 주는 밀기울을 끓여 먹는 일이 가끔씩 일어났다. 몰래 감자를 흠쳐 먹는 일도 있었다. 경찰들에 발각되어 호되게 욕을 얻어 먹곤 하였다. “도둑이며 강도, 그리고 멍멍이 새끼.....,” 이런 일은 1952년 9월19일 새 소장이 부임할 때까지 지속 되었다.
옥사덕 재수감 이후 신앙생활 역시 악질 소장, 별명 살쾡이의 재임기간 중 어려운 시간들을 맞게 된다. 제일 먼저 살쾡이는 미사 봉헌이 눈엣 가시처럼 여겼다. 수도자들은 포도주와 밀이 떨어져 절망스러웠으나, 산속의 머루와 배급 자루속에 밀의 발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지능적인 악의 세력은 이 일을 좌시하지 않았다. 살쾡이와 수도자와의 전쟁이 선포된 것이다. 이 시기에 싯귀 한 소절을 소개하겠다. 옥수수 밭, 틈새의 밀을 지키던 수녀님의 절묘한 싯귀이다
“적막을 안고 뫼밭(山田)에 선
누런 밀이삭 불어오는
산들바람으로 가벼웁게 나부낀다.
사제의 거룩한 손이 그대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시켜 놓으리라
밀이삭이여
그대는 여름 햇볕에 마음껏 무르익어라
가날픈 넝쿨에 매달리어
흔들리는 포도송이
비바람 찾아오고
서산 너머 해님이 잠들 때까지
그리스도의 성혈이 되는
이 신비를 그대는 아는가
태양의 작열 속에서
그대는 단맛 가득히 무르익어라.
영혼아, 그대는 설워마라
님의 따듯한 손길이
풍파의 암흑 속으로 너를 데려왔으니
그 섭리의 뜻을 인식하여 쓰라린 고통속에서
영혼아 깨끗이 무르익어라.
옥수수 밭 속에 밀은 천신만고 끝에 수확을 하게 된다. 그 양은 한 사발 정도, 그러나 살쾡이는 그것 마져 압수하고 만다. 수도자들은 절박하게 되돌려 줄 것을 간청하였고 결국은 소원 성취하게 된다. 극도로 절약하여 작은 성체를 만들고도 몇 고랑에 뿌릴 씨앗이 되었다.
성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북한의 죽음의 수용소를 거처 가는 동안 오늘 우리에게 던져주는 뚜렷한 멧세지가 있다. 그것은 미사와 시간전례의 중요성이다. 다시한번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날마다 거행되는 그 성스러운 미사는 우리의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 미사는 우리에게 수용소 생활의 온갖 고통과 궁핍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그러한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또한 공산당 경찰들이 그 점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던가.”
옥사덕 수용소 생활 중 살쾡이는 수도자들의 정신적인 기둥, 즉 미사와 시간전례을 파악하고 난후 그것을 파괴하고자 수없이 공격을 시도하였다. 언덕위 골고타의 십자가가 열일곱 개가 세워 질 때까지 이일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수도자들은 살쾡이를 물리치고 승리한 것이다. 미사와 시간전례를 지켜낸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그러나 17명의 순교자, 그것은 결코 작은 희생이 아니었다.
17명의 순교자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있었던 백년전의 4대 박해와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베네딕도회 순교자들에게는 칼과 창, 그리고 그 외 직접적인 사형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 간접적인 살인도구, 즉 무관심, 수수방관등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통하여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수도자들의 순교는 감기와 배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
현대인의 크리스찬적 삶 안에서 실천적인 사랑을 외면하는 일, 그것은 살쾡이와 다를 바 없다.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폐쇄하고 하늘로 향하는 천정만 뚤어 놓으면 그만이다라는 착상은 편하고 안전한 크리스찬적 삶으로 보여 질수 있지만, 옥사덕 수도자들을 괴롭협던 살쾡이의 고집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우물안에 개구리가 바로 그들일 것이다.
나의 책상위에 작은 꽃, 하나가 나의 무관심으로 메말라 죽어 간다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분명히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애완동물이 나의 수수방관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생명의 귀중함을 다시한번 깨닭아 보아야 한다.
나의 이웃이 병들거나 굶어갈 때 무관심하다면 살쾡이의 무식한 교도행정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현대인의 가치관, 그것은 모두 살쾡이가 뿌려 놓은 악성 바이러스가 분명하다. 손발을 깨끗이 씻고 집안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소독하여야 할 것이다. 베네딕도 수도자들은 17명의 순교자들의 피로 이러한 세상의 편견을 소독하려 하였다. 그들은 당신들의 거룩한 피로 정화된 그곳에 미사와 시간전례를 채워 넣었다. 다시는 악의 세력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거룩함으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이다.
옥사덕에서 순교한 성베네딕도의 수도자들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모범적인 크리스찬적인 삶의 표본을 제시한 것이 분명하다.
옥사덕 수용소안에서의 전례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참으로 초라했다. 모여든 수도자(修道者)들, 그들을 똑바로 보라...., 혹시 프란치스코회 수사(修士)들이 아니었을까? 누더기가 된 푸른 죄수복(罪囚服), 헌겁 신, 볼품없는 앙상한 몸골, 쑥 들어간 눈망울, 동상(凍傷)으로 푸르둥둥 썩어가는 손과 발, 모두 하나같이 나무지팡이에 이끌리어 제단(祭壇)을 중심으로 모여 들고 있었다. 수도자(修道者)들은 아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배탈이 나면 어김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벌써 16명의 동료가 이런 절차를 거처 하느님 품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동료 수도자(修道者)의 임종(臨終)을 준비하기 위하여 모두 이렇게 모여든 것이다. 사제(司祭)는 제의(祭衣)를 준비한다. 덕원에서 준비해온 하얀 제의, 단 한 벌 뿐이었다. 동료는 끝내 선종(善終)하고 만다. 장례미사는 그 자리에서 진행되어갔다. 언덕위의 십자가는 이제 열일곱으로 늘어났다.
옥사덕의 순교자들의 최고의 덕목(德目), 즉 최고(最高)의 가치(價値)는 성체성사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개인과 단체가 이를 지켜내기 위하여 예고된 순교(殉敎)를 감수하고 있었다.
미사, 그것은 사랑의 표지이다. 단 한번의 제물로 하느님과의 완전한 화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세력은 또 다른 증표를 요구하고 있다. 십자가 밑에서 믿는이들을 조롱하는 로마 병사처럼 구원자 하느님의 갑작스러운 출현을 기다리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옥사덕에서 살쾡이 역시 로마병사처럼 하느님의 출현(出現)을 은근히 기다렸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시다. 용맹한 혁명군 사령관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목자(牧者)로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이런 희비(喜悲)의 엇갈림은 신앙(信仰)의 신비(神秘)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 한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 수난이 다가오자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부활 후 이제는 믿는이들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고 계시다.
우리에게서 믿음이 약할 때, 성체안에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점점 작아 보인다. 살쾡이는 이때 설친다. 잠자는 예수님을 모신 덕분이다. 살쾡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우리는 스스로 폭군임을 선언한다. 폭군은 천륜(天倫)을 버리고 사랑을 거스르는 만행을 서슴치 않는다. 폭군은 잠자는 스승을 향하여 모기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귀엽게 속삭인다. ..................스승이여 편안히 쉬소서. 똑똑하고 명석한 제자, 바로 내가 스승을 대신하여 세상을 운전해 보리다. 스스로 현자(賢者)라고 칭한 폭군(暴君)은 깜박이는 경고등, 직진을 막아서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광화문 네거리를 쾌속 질주한다. 교통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대형사고였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다. 그들 중에는 나의 가족, 나의 이웃들이 보인다. 품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특히 복지 시설등에서 이런 대형사고는 종종 일어날 것으로 예견(豫見)된다. 고령화 시대에 걱정스러운 일이다. 살쾡이 바이러스 덕분이다. 크리스찬 생명의 가치관을 무너트린 무신론 때문이다. 황금만능이 추가되면 그 추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옥사덕 순교자들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생명의 가치관 보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교로 더 많은 희생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분명한 경고 멧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옥사덕에서 처럼, 무신론(無神論)은 삶의 가치를 바꾸어 놓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똑똑히 전할 뿐만아니라, 현대인들에게 크리스찬적 삶의 방향(方向)을 정확히 가르키고 있다. 특별히 성체성사와 시간전례가 강조된 점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구체적인 대안을 들어 낸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위와 같이 우리의 삶 안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발견을 말한다. 나는 분명히 대답하고 있다. 언덕위에 저 십자가, 그곳에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보았노라고.... 믿는이들과 함께 계시는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외친다. 자, 일어나 함께 가자!!!
봉헌회원들의 관심사는 시성시복 운동에 이어 지식인들의 문서선교 참여입니다. 연길교구에서 가톨릭 소년 창간호를 중심으로 한 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지금에 와서도 흐믓 합니다. 尹克榮, 姜小泉, 金英一, 安壽吉, 박영종(木月), 金相德, ....., 吳基順, 吳基先, 林和吉, ...尹東柱. 이상...., 권오순.
봉헌회원들은 월례모임을 통하여 간단한 리포트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강의 역시 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월례모임을 한 차원 격상 시킨다면 소년 창간호를 준비하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중에는 현직 또는 전직 대학교수로서, 또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또는 세계적인 학자로서 덕망이 높은 분들이 많습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지요. 적극적인 참여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일입니다. 선배들의 실험정신을 따라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리포트 후기)
시성시복 운동에 관한 묵상 자료를 소개하면서 발표자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옥사덕 수용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수도자들 스스로 남긴 자료들 속에 더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무조건 참고 견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수도자들은 고발장을 작성하여 공산당의 만행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옥사덕의 순교자는 열 일곱분 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사정을 들어 봅시다.
1. 페트루스 게르너 수사(설사, 쇠약 7월 2일)
✠...최초의 희생자, 늘 구석 자리를 잡고 깊은 침묵속에 기도하시던 수사님, 옆 사람 마저 그의 죽엄을 알지 못했다. 동료들이 그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일행이 수용소 마을을 이동할 때, 어린아이처럼 등에 업어 주는 일 밖에 없었다.
2. 마루쿠스 메쯔거 수사(설사, 탈수 8월2일)
✠...몸을 가눌 수조차 없도록 온몸이 뚱뚱 부어오른 수사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탈수 증상으로 물병을 품고 사셨던 수사님, 끝내 한모금의 물을 찾아 헤메다 죽엄을 맞이 하셨다.
3. 오이겐 오스터마이어 수사(고령 64세, 장질환 49년 9월 14일)
✠...병약한 그는 수용소의 간수도 간섭하지 않았다. 수사님은 모두를 위해 금체취를 시도하였다.그러나 장질환으로 갑자기 죽엄을 맞이한다.
4. 바실리우스 하우저 수사(수종증, 50년 2월 14일)
✠...다리가 붓고 모든일에 의욕이 떨어지더니, 갑자기 복수가 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부실한 음식 때문이란다. 수사님은 입맛을 다시더니 입버릇처럼 지꺼린다. 병든 닭이라도 한 마리 먹었으면...,
5. 파스칼 팡아우어 수사(수종증, 50년 4월 16일)
✠...반복되는 설사, 그것은 수사님을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하게 만들더니, 마침내 하느님품으로 모셔갔다. 정원사이셨던 수사님은 냉수 마찰로 몸을 단련 시켜왔던 건장한 분이셨는데....,
6. 애바 쉬츠 수녀(심장병, 장질환, 탈수 8월 10일)
✠...심장과 위장은 남다르게 약했다. 더군다나 전혀 맞지 않은 콩밥이 원인이 된 지속적인 설사는 수녀님의 체력마져 완전히 소진하게 만들어 옥사덕 수용소를 올라 오던중 기절하여 소등에 업혀 간신히 와야했다. 그 후 얼마를 더 버티지 못하고 하느님품으로 가셨다.
7. 가누트 아베르나스 신부(심장, 신장, 혹한 추위에 방치 11월6일)
✠...오래된 심장과 신장병은 신부님을 괴롭혔다. 옥사덕 언덕길은 그에게 너무도 벅찼던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애바쉬츠 수녀처럼 신부님도 소등에 간신히 올라 일행과 동참할 수 있었다. 허지만 허지만 북한군은 한때 압록강을 넘어 단동으로 가야만 했다. 전쟁의 피난길속에 병약한 신부님은 마침내 하느님품으로 가야만 했다.
8. 그레고리오 조르거 신부(설사, 명상가, 굶주림과 추위로 동사 11월5일)
✠...신부님은 이미 하느님 품으로 가셨던 선배들처럼 지속적인 설사로 인한 쇠약해진 몸이었다. 거기에다 과로와 기아, 그리고 혹독한 추위였다. 신부님은 복잡한 참호속에서 운명하셨다.
9. 힐라리우스 호이스 수사(설사, 예술가, 약초 채집가, 50년 12월 12일)
마침내 겔루트 수녀님은 그들을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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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덕 수용소와 비슷한 사건 하나 더 소개합니다. 한국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용인에 자애원 이야기입니다. 자애원은 원래 길거리에서 빌어 먹는 부랑자 대방동수용소 였는데 영보수녀원에서 인수하여 용인으로 이전한 복지시설입니다. 영보수녀님들이 복지시설에 처음 들어서는 날의 모습입니다. 복지시설은 군대 병력처럼 분대, 소대, 중대, 대대, 연대등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소대장은 수녀님들을 정중히 소대 중앙으로 모시고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영 분위기는 잠시 후 소대장의 공격 명령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수녀님 수건이 벗겨지고, 수도복이 찢어지는 수모를 격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은 당황하지 않고 사랑으로 함께 지낼 것을 몇 번이고 더짐하면서 위기를 모면한 사건입니다. 그 후 원생들은 수녀님들의 사랑과 희생을 확인하면서 공격성이 줄어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대방동수용소에서는 관리자들의 비리로 복지 기금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고, 원생들은 일주일에 수 명씩 죽어 갔었다고 합니다. 옥사덕과 대방동을 비교하면서 들어 봅시다
옥사덕 고발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수용소의 모든이가
너희들은 불법적으로 우리의 소유물을 빼앗았다.
법의 보호자라 자칭하는 너희들이
너희들은 증오로 가득차 우리의 권리를 완전히 박탈했고
파렴치한 노예처럼 굴욕적으로 우리를 속박했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독재의 권력을 보여주었고
우리를 깊은 불행으로 끌고갔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수용소의 우리 남자들이
너희들은 힘에 넘치게 우리들에게 일을 시켰고
악의에 찬 노예보다 우리를 더 나쁘게 다루었다.
너희들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기운을 빼앗아 갔고
이제는 골수를 빨아드렸다.
너희들은 우리들로 인해 살이 찌고
우리에게서 우리의 고통의 결실을 빼앗었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 여자들, 약한 사람들이
너희들은 남자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에게 시켰다.
피가 나는 손으로, 익숙치 못한 손으로
너희들은 우리의 실수를 음흉하게 비웃고
우리의 호소에 대해서는 조롱만 했다.
어머니가 너희를 기르지 않았느냐?
너희들에게 경외심을 가르친 여자가 없었느냐?
우리는 너희들을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들을 고발한다. 머리카락이 흰 노인들이
우리는 보살핌을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지쳐 있었다.
60이 지나고 70이 넘어서
너희들은 우리를 쉬게 하지 않았고, 연민(憐愍)도 몰랐다.
너희들은 매일 불쌍한 사람들을 일터로 몰아댔다.
떨리는 손으로, 흔들거리는 무릎으로
우리는 저항하지 못하는 가축처럼 일을 해여 했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병들고 쇠약해진 사람들이
너희들은 우리를 수용소에서 들판으로 몰아냈고
우리는 들판을 눈물로 적셨다.
너희들은 한번도 우리의 호소를 믿지 않았고
우리의 괴로움에 고통만을 더해주었다.
너희들은 초라한 식사라도 우리에게 거의 베풀지 않았고
이 땅에는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이
너희들은 우리의 생명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았다.
너희들은 경멸적으로 우리가 비참하게 파멸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비루먹은 개처럼 우리를 죽게 했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비인간적인 짓을 했다.
우리 말없는 사자들, 우리가 너희를 고발한다.
우리는 너희를 고발한다.
수도자들은 고발장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라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 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는 보통 스스로 자신을 불태우는 촛불로 표현합니다. 또는 열정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붉은 장미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옥사덕의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의 씨앗을 품었던 눈, 때가 되자 자신을 녹여내어 품었던 씨앗의 생명을 불어 넣는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겨울의 눈, 그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가슴이었습니다.
질문 ???
우리는 참으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완전히 잊혀진 존재들인가
쓸모가 없어서 내다버린
쓰레기란 말인가
햇볕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눈처럼
그렇게 우리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는가
우리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우리의 이 고통들 무의미할 뿐인가
한국에서 선교 삶 70주년 맞는 벨트뷔나 수녀님
1937. 6. 21 수련자로 원산에 도착, 옥사덕의 마지막 생존자
질문에 대한 대답 !!!
그대는 보았는가
겨우내 여기저기 산기슭마다
까마귀나 노루의 발자국만 보이며
뒤덮여 반짝이던 쓸모없는 눈들을
그래도 이른 봄볕에
진기하게 새 생명 시작되니
세상에서 아득한 이 골짜구니
어느덧 남몰래 눈은 녹아
쿨쿨거리며 돌 틈새마다
작은 샘 솟어나고
언덕 넘어 비탈 아래로
예서제서 실개천 급히 흐르고
시내 도랑 넘치게 흙탕물
요란스레 거품일고 모여들어
절벽 위로 콸콸 미친 듯
골짜구니 아래로 흘러내리어
흐름은 파도 넘실거리며
이제 큰 강 되어
커다란 힘으로 불어나는 것을
이토록 큰 힘 이룬 것
작은 샘 하나하나 모인 것 아닙니까
추방된 삶의 벙어리 된 우리 고통들
그것은 세상 가득히 은총의 씨앗을 뿌리리니
하느님을 위한 일이 있는 곳마다
어디서나 우리는 함께 있지 않습니까?
북한의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 문제가 얼마나 방대한지 구체적인 자료들을 살펴 봅시다
몇년 후 평양교구는 이럴 것이다.
현재 6도, 120개 시군, 94개 구, 491개동, 1967개리,
103개 공업단지, 총인구 13,899,015명이다
예비신자 20% 잡아보면 2,782,500명이다,
본당은 예비신자 5,000명을 기준으로 하면 561개 본당이다.
공소는 준 본당으로 리에 하나씩으로 하면 2084 이다.
(리는 남한의 면과 같다)
평양교구는 도 또는 직활시에 하나씩 즉 6개 교구로 분활되어도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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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교구는 이렇다.
현재 4도, 63개 시군, 68개 구, 288개동, 1290개리
131개 공업단지, 총인구 7,906,769명이다.
예비신자 20% 잡아보면 1,378,500명이다.
본당 5000명 기준으로 하면 본당 272 이다.
공소는 준 본당으로 리에 하나씩으로 하면 1499 이다.
(리는 남한의 면과 같다)
함흥교구도 도 또는 직활시에 하나씩 즉 4교구가 분활되어도 작지 않다 교구 또는 본당 설립에는 인력과 재력이 많이 든다. 북한선교는 평양교구와 함흥교구등 2개 교구의 일이 결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 10개 교구 설립에 관한 한국 교회의 숙원 사업이야기다. 성직자는 물론하고 평신도들이 온 힘을 다해 풀어 갈 숙원 사업이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극동 문제 해결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베네딕도16세 교황님의 서한을 살펴 봅시다
.........,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가 나아가는 길의 신비롭고 심오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발견하도
록 돕습니다. 실제로 “묵시록의 가장 중요한 환시 가운데 하나는 일곱 번 봉인되어서 아무도 뜯을 수 없었던
두루마리를 펼치는 어린양입니다. 요한은 심지어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슬피 울기까지 합니다(묵시 5,4 참조). 역사는 완전히 해독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서, 누
구도 읽을 수 없습니다. 희미하기만 한 역사의 신비 앞에서 요한이 슬피 우는 것은 어쩌면 아시아인들이 받아
야 했던 박해 앞에서 하느님께서 침묵하신 것에 대한 아시아 교회의 절망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것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겪게 되는 심각한 시련과 오해와 적의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당
혹감을 분명하게 반영하는 절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그분께 맞갖은 것이 아니었듯이, 이러한 것
들도 물론 교회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시련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의 부추김에 동조하는 인간의 사악
과 더불어 사건들 안에 보이는 하느님의 탁월한 안배를 드러냅니다.”8)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죄와 죽음의 정복
자, 새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분은 인간이 원수에게까지 자비와 사랑을
베풂으로써 인간의 모든 나약함과 비극을 이기는 십자가의 승리를 증언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복음에 충실한 가운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와 보편 교회와 친교를 이루어 사랑과
일치의 징표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여러분 나라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
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
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
오”(요한 13,34-35; 17,21)].
이어서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새로운 희망을 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살아가고 일해야 하는 이러한 환경에서 저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그토록 강력하게 힘주어 강조하셨던 것을 일깨워드리고 싶습니다. 새 복음화가 요구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에는,5) 그리스도교 제일천년기에 십자가가 유럽에 뿌리내렸고 제이천년기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에 뿌리내렸듯이 제삼천년기에는 광활하고 약동하는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큰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6)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쳐라.’(루카 5,4)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 말씀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
를 기억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며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
이나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7)
새로운 시대의 대표적인 영성, 그것은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시성과 더불어 그들이 펼친 옥사덕 영성이
아닐까요. 500년 경 베네딕도 성인이 살아 계실 때처럼 ........................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글 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