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감사
(요한복음 6장 10-15절)
일본의 해군 장교였던 가와가미 기이치는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패전한 일본의 현실은 처참했다. 피폐해진 거리를 본 가와가미 기이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더구나 어디를 가나 군인만 보면 “저것들 때문에 패전했다”고 손가락질하고 노려보는 사람들 때문에 기이치는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심한 병이 나서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이 마비되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의 진료를 받게 되었고, 후치다는 가와가미 기이치에게 살고 싶으면‘감사합니다’를 따라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기이치 장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후치다는 기이치에게 “하루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일만 번씩 하셔야 병이 치료될 수 있으며, 감사하는 마음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사가 돌아간 후 기이치는 누운 채로 병을 낫기 위해 억지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분노와 적개심으로 불편했던 마음에 평온이 찾아 왔다. 그의 얼굴표정도 편안해졌고, 행동도 점점 부드러워졌다.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며, 예전처럼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루는 막내아들이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아버지의 방문을 열면서, “아버지, 감 드세요”라고 하자 아버지인 기이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내밀었다.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꼼짝도 못한 손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손에서 일어난 기적은 팔, 다리 등 구석 구석까지 회복되어 굳어 있던 그의 몸이 풀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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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불평은 습관입니다.불평하던 습관을 감사의 습관으로 바꾸십시오.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큰 기적의 사건을 우리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무덤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부활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신 기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속에 흐르고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감사로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1절에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에 “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축사라는 단어 속에는 감사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예표하는 감사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한 마디로 감사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삶 전체가 복이 됩니다.
1) 예수님의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고백입니다.(11절)
본문 11절에서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은혜라는 말과 감사라는 말은 같은 어원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그 마음이 감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축사하시기 전에 사람들을 잔지에 앉게 하시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전에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꽃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꽃을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 무덤 속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기라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하면서 나사로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모든 관계를 감사로 연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감사로 깊은 교제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시는데 열 명의 문둥병자가 멀리서 소리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과 가까이 할 수 없는 이 사람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은 ‘네 몸이 낫는다’는 약속입니다. 저들이 제사장을 향해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열명이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돌아가고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자의 확증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믿기는 했지만 자기 속에 구원받은 확증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사례한 문둥병자와 같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잃어버리면 구원의 확증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감사가 바로 구원받은 확증입니다.
구원의 감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제가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는 감사입니다.
2) 예수님의 감사는 나누어 주는 사랑의 감사입니다.(11절)
본문 11절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나누는 것인데 물질을 나누기 전에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인격을 나누는 것입니다.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국경으로 자르고, 사유 재산으로 자르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늘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하늘은 모두의 것입니다. 하늘은 쳐다보는 자가 임자입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땅이 나누어 가집니다. 이슬을 내리면 나누어 가집니다. 햇빛을 나누어 가집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분이기 때문에 나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을 홀로 독차지 말고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감사를 착취하는 사기꾼들이 너무 많습니다. 감사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감사는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 감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나누어야 할 것이며, 필요한 자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가난할지라도 나누어 먹는 형제는 우정이 있고 사랑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쌓아놓고 혼자 먹으려고 하는 형제는 탐욕과 독성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먹어도 소화가 안됩니다.
여기 ‘축사’라는 말은 성만찬이라는 말의 어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수많은 무리들에게 단순히 떡을 먹인 것이 아니요, 육신의 양식으로 배불린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성만찬과 같이 자신의 생명이 나누어짐으로 저들의 양식이 될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나누는 것입니다. 이 나눔은 자기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나누는 것이요, 생명을 나누는 것이며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을 보세요...사도행전 2장 46-47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저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감사는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11절)
본문 11절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면서 모두를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적은 것에 감사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기적을 보인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만족시켰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모두가 만족함을 누리는 것이 감사절입니다.
신명기 16장 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잔치집은 함께 즐거워야 합니다. 한사람도 소외당하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함께 즐거워하면 심령이 풍성해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게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심령에 은혜가 있어야 하고 내 심령에 감사가 넘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감사는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자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납니다.
못난 남편과 살면서 감사하면 남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못난 회사 사장을 잘 받들면 사장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못난 아내와 살면서 감사하면 아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부를 만나는 것입니다.
꽃을 보면서 감사하면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성경은 감사하는 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기적으로 삶을 바꾸는데 운명을 바꿉니다.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성품을 닮아야 운명을 바꾼 자입니다.
우리는 땅의 것을 채우고자 애를 쓰는 사람이 아나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삶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은혜, 감사, 찬양, 기도, 사랑, 말씀을 채우세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도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하고 사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