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울 앞에서 수 십 분을 망설이며 이것저것 옷을 입어도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데, 그는 아무거나 턱 걸치면 그대로 그림이다. 우리가 이발하고 면도하고 무스 바르며 소위 때 빼고 광내는 동안 그는 무심히 세수만 하고 맨 얼굴로 등장한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모두들 황홀해지며 눈이 부신 표정으로 변한다. 이거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를 보고 있으면, 오, 신이시여!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비트]를 찍으면서 유오성은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처음 봤다]고 했고 그를 처음 본 순간 남희석은 [그에게서 광채가 났다]고 했으며 신동엽은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조인성이나 권상우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인가?
정우성. 그는 한국 꽃미남의 대명사다. 186cm, 73kg 이런 수치로는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광채가 그에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구미호]로 대중들 앞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94년. 그후 10년이 넘는 동안 만약 우리가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 속에는 정우성의 존재가 어느 정도 묻어 있을 것이다. 데뷔작에서는 연기력 부족이라는 호된 지적을 받았지만, [아스팔트의 사나이](1995년) [1.5](1996년) [곰탕](1996년) 등을 통해 인기를 얻어 [본 투 킬](1996년)로 다시 스크린에 되돌아왔다.
정우성이 우리 시대 청춘의 아이콘이 된 것은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년)에서 민 역을 맡으면서였다. 충무로 길 시사실에서 그 영화의 시사회를 본 후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그 영화의 다른 주인공들, 임창정 유오성 등과 함께 차를 마셨는데, 고독한 청년의 이미지보다는 수줍고 장난꾸러기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와 공연하며 [비트]에서 쌓은 이미지를 연장시킨다. 그가 맡은 도철 역은 이정재가 맡은 역에 비해 훨씬 착하고 순진하다. 전직 권투 선수로서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는 착한 남자를 연기하는 그를 보며 어쩌면 그의 실제 모습과 가장 흡사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유령]은 그의 강인한 남성적 캐릭터를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심해의 잠수함 속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생명인 그 영화에서 정우성은 마초 이미지의 대명사 최민수와 부딪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후 정우성은 스스로 침묵의 시간 속에 들어간다. [무사](2001년) [똥개](2003년)가 있었지만 2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은 것이다. 각각 김성수 감독, 곽경택 감독의 작품으로서 나름대로 가치는 있었지만, 정우성의 필모그래피 맨 앞 자리에 등장할 영화는 아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진입하는 그 시기. 어쩌면 꽃미남 남자 배우로서는 최전성기에 놓여 있을 그 시기, 그는 오히려 영화와 멀어졌다. 그가 다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가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면서였다.
2006년 정우성은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우성과 절친한 관계이며 현재 그가 소속되어 있는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HQ의 아이필름이 제작한 [새드무비]에 이어 [데이지]가 개봉하며 하반기에는 [중천]이라는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 온 것으로 알려진 정우성이 스스로 [올해 말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말을 했다.
영화감독 정우성. 이미 그렇게 낯선 단어는 아니다. 그는 지난 2002년 [러브 비 플랫]이라는 단편을 찍은 바 있다. [천장지구][열혈남아] 같은 홍콩 느와르에 영향을 받아 고독한 킬러의 이미지에 스스로 몰입한 이후 그의 꿈은 항상 킬러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에서 그가 맡은 고독한 킬러 박의는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배역이었다.
[[비트] 이후 내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박의라는 이름이 한국 이름 같지 않게 조금 낯설지 않은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굴하지 않는 어떤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라고 되묻는다.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 의외로 멜러 영화가 드물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꽃미남이며 이 시대 청춘의 아이콘인 그가 왜 그동안 멜러 영화를 기피했을까? 스스로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후 이제는 멜러 영화만을 찍고 있다.
[멜로 영화를 일부러 기피하지는 않았다. 늘 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새드무비]에 이어 연달아 멜로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각 영화마다 맡은 배역이 다르고 표현되는 방식 또한 다르다. 특히 [데이지]를 찍으면서 한 인간으로서 사랑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데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CF 속에서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지만 정우성 전지현 커플이 영화를 찍은 것은 처음이다. 순간적인 임팩트가 강한 CF와 달리 영화는 서사구조를 갖고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반 촬영 때는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곧 편해졌다는 것이다. 부담감도 컸고 그만큼 김대감도 있다고 했다.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서 현재 형성된 그 이미지를 기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깰수 없는 것을 깨기 위해 일부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다]는 그의 말은 그가 무척 현실적인 사고를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 사람의 위대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 가장 무섭고 힘든 시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가 형성한 청춘의 아이콘은 이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로 무장한 후배들이 등장하고 있고 청춘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고독한 이미지의 수사학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확대 심화시켜 나가야만 한 사람의 배우로서 기억될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서운 노력이 필요하다. 정우성의 문제는 그의 캐릭터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유효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확대하거나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작품 선택을 보면 그런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확대하지 않을 생각이면 적어도 심화시켜야 한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수줍은 청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낯가림이 심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모른다고 그 사람들 앞에서 낯가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세상에 노출되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친숙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다.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을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사람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세상을 잘 몰라 내가 맡은 인물들을 딱딱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경험도 더 풍부해지니까 내가 맡은 배역을 표현하는데 훨씬 더 부드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영화 [데이지]는 전지현 정우성이라는 최고의 CF 커플들이 스크린으로 공간을 이동한 것 같은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한류 주역들을 캐스팅해서 [무간도]의 홍콩 감독 유위강을 초빙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찍은 이 영화가 태생적으로 다국적 마케팅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는 있다. 제작자에게 이 영화가 상업적 흥행이 목적이라면, 배우 정우성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고독한 킬러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올해 말 자신이 감독 데뷔하겠다고 공언한 영화도 비슷한 장르이지 않을까? 그는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고 또 자신의 감독 데뷔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을 아꼈지만, 분명한 것은 커다른 틀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의 청년기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 느와르풍의 멜로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감독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그가 한 시대의 청춘의 아이콘으로서 영원히 남기 위해서는 더 깊은 캐릭터의 심화과정이 필요하다. 한시적 소모품이 아닌, 영원한 배우로서 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캐릭터가 갖는 깊이를 확산시켜줄 좋은 영화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영화감독 정우성으로서의 매력을 더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가 만든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물론 감독 정우성의 데뷔작 주연은 정우성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