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56번기행
한계령 구름속을 내려와 멀리 아래로 내려본 세상은 운해로 다듬은 선인이 사는 곳이다.
구름의 꽃들은 온갖 모양으로 설악의 온산을 보듬고 모든 삼라만상을 흰색으로 덮어 버렸다. 구름은 산을 내려 올수록 작은 물방울 로 변하여 차창에 소리 없이 내린다.
선녀탕을 만나면서 마주한 거대한 바위벽의 신비스런 형태는 , 등선폭포의 기암괴석의
그것에 뭍혀 지나고 금방 잊어 버린다.
설악의 변신은 계절을 두고서 바뀌고, 돌아 보면 또 다른 모습이니 이 무지한
범부의 짧은 글력으로는 풀어 낼 수가 없다.
자연송이로 꿇여낸 칼국수의 향은 온천욕을 한후의 멍한 정신을 추스려 고쳐주고, 위로 보이는 구름들 사이사이의 작은 햋빛은 새로운 기운을 솟게한다.
양양 시내의 초입에서 우회전하여 44번과 56번이 만나는 논화리 삼거리에서 홍천으로 길을
든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축의 지산인 정족산을 두고서, 우로는 남대천의 물길이,
좌로는 공수전 계곡의 강물이 흐르고 , 이것은 다시 만나 북한강으로 이른다.
송천마을 떡매치는 소리가 마을 입구의 고목을 돌아 신작로 까지 들리고,
키큰 옥수수밭을 지나 고추밭을 바라보고, "박가네 떡집" 이란 허술한 표지를 만난다.
여느 시중의 인절미와는 맛이 다른 것이 아마 정성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공수전 계곡의 물은 구룡령까지 내 닿고, 30여 키로미터의 길은
강의 굽이를 휘감고 돌아 흐르는 심산유곡으로 울창한 송림과 , 맑은 물,
둥근 자갈 밭과 결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비경이다.
몇해전 겨울 , 칠흑과 같은 밤을 달려 찿아간 구룡령 고갯길을 잊을 수가 없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이 무서운 공포를 벗어 나려고 앞으로만 나아가다 되돌아
나온 기억은 민가를 찿아 들 때 까지 죽음이란 단어를 여러번 떠 올렸고, 산사와 같은 적막에 흐르는 물의 소리는 송림을 헤매는 호랑이의 울음을 느끼게 했다.
황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미천골 가는 길이다.
이십여리에 이어지는 계곡의 자연은 ,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모두가 이름없는 폭포요,
보이는 모든 송림은 전부가 원시림이다.
힘들여 오른 바위 사이의 맑은 물은 먹으면 즉시 약수로 변하니 , 미물도 한 껏 활개치며
짧은 생을 뜻 대로 살아간다.
크고 작은 산들의 경계가 골짜기일진데 공수전 계곡 만큼 많은 골짜기를 지닌 곳도
아마 없을 것 같다.
1300여 미터의 약수산 허리를 넘어 가는 구룡령 길은 왜 이리 험난한지................
포장이 잘 되어 차량의 왕래가 용이 하건만 강원도의 산은 워낙 변화가 무쌍하여
종을 잡을 수가 없다. 안개와 비를 비집고 도착한 구룡령 정상은 홍천군의 땅인가 보다.
통나무 산막으로 잘 지은 휴게소는 워낙이 오지라 찿는이가 없어 한적하다.
나무들의 종류 별로 잘라 만든 계단에는 이름표를 새겨, 학습의 효과도 높인 것이
머 잖아 많은 여행객들이 찿게 될 것 같은 생각ㅇ이다.
산고개를 넘으면 홍천 땅 내면이다.
서울에서 생각하는 홍천 땅 하고는 많은 것이 다르다.
구룡령 넘어 양양 땅과 견주어 , 오지의 심도가 조금도 나은게 없다.
서석을 지나 어론 삼거리에 닿으니 제법 인가도 보이고, 모여 사는 동네도 여러 군데 나타난다. 수타사를 자랑하는 공작산을 끼고 홍천강흐름을 나란히 솔치 터널을 지난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나 쓸 법도한 삼각형의 짙푸른 숲을 만난다.
신내 사거리에서 56번 국도여행의 끝을 맺고 양평을 거쳐 집으로 돌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