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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불곡산(佛谷山·470m)은 규모가 작지만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가 일품인 산이다. 정상과 상투봉(440m), 임꺽정봉(450m)이 주능선을 형성한 불곡산은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진 바윗길이 스릴을 느끼게 하는 데다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고, 전철1호선 양주역에서 곧바로 산행이 가능할 정도로 교통이 좋아 수도권 등산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명산이다.
- ▲ 신선대에서 공깃돌바위 쪽으로 설치한 로프에 매달려 티롤리안브리지 등반을 하는 산머루산다래산악회 회원들. 아파트단지가 잿빛 숲을 이룬 의정부시가지와 바위꽃을 피운 도봉산과 북한산이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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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곡산에 암릉 마니아들을 유혹할 만한 짜릿한 암릉 길이 탄생했다. 산머루산다래산악회는 지난 봄 한 달간의 루트 작업 끝에 불곡산을 대표하는 기암인 악어바위와 임꺽정봉 등 암봉 6개를 잇는 ‘악어의 꿈’ 길을 개척, 지난 4월 말 시등식을 가졌다.
개척의 주역 이점남·권건행씨
“불곡산은 바위가 많고 아기자기해서 ‘생리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악어바위 능선 또한 도보산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생리지’예요. 그래서 고정로프가 걸려 있는 구간이 많아요. 그런 생리지를 피해 난이도 있는 암벽에 길을 냈어요. 시간 날 때마다 개척등반을 했어요. 근무 중 점심시간 이용해 볼트를 박기도 했으니까요.”
- ▲ 1 제1피치 등반. 권건행씨가 이점남씨가 추락할 경우에 대비해 받아줄 태세를 취하고 있다. 2 2피치는 비교적 수월한 암릉 구간이다. 권건행씨가 등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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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 악어의 꿈길 암릉 개척에 앞장선 산머루산다래산악회 권건행씨와 이점남씨는 등반기점으로 접근하며 개척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불곡산 기슭에 근무처가 있는 두 사람 모두 경력이 화려한 바위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정에 관한 한 골수 바위꾼 못지않아 보였다. 특히 권씨는 하드프리용 암벽을 찾기 위해 시간날 때마다 불곡산 곳곳을 찾아나섰다. 그러던 중 짤막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암벽으로 길을 내면 그럴싸한 리지 루트가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선을 그려오다가 올 봄 이점남씨를 비롯해 뜻맞는 산악회 선후배들이 힘을 모아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
대교아파트 정류장에서 산길로 접어든 일행이 군사용 각개전투훈련장에 이어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교장을 지나 산등성이를 오르는 사이 불곡산 북사면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기암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쿠션바위에 이어 남근바위 앞에 닿자 이점남씨는 일행은 오른쪽 능선 기슭으로 이끌었다. 20여 m 아래 오버행 암벽 하단부에 악어의 꿈 개념도가 그려진 스테인리스스틸 안내도가 눈에 들어왔다. “1피치와 3피치는 기존루트 오른쪽에 길을 하나씩 더 냈어요. 바위꾼들이 몰릴 때 정체현상이 일어날 것을 피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기존 루트는 ‘좌길’, 기존루트 오른쪽에 낸 우회 루트는 ‘우길’이라 이름지은 거예요. 1피치는 우길이 조금 쉽기 하지만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해요.”
- ▲ 1 4피치 등반을 마치고 악어바위에서 하강하는 최은정씨와 권건행씨. 암봉 오른쪽 벽에 악어 형상의 바위가 있다. 2 3피치. 파워와 밸런스 감각을 요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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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건행씨가 설명하는 첫 피치 암벽 아래에는 넙적한 돌멩이 여러 개가 포개져 있었다. 키 작은 사람을 위한 배려다. 첫 번째 볼트 부근 핀치홀드를 잡는 게 첫 피치 등반의 관건. 코끼리 코처럼 길어 일단 잡으면 완벽하다 싶은 홀드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팔을 쭉 뻗더라도 꽉 잡히지 않아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선등에 나선 이점남씨 역시 암벽 아래 돌멩이를 딛고 팔을 쭉 뻗어 보지만 홀드가 잡히지 않아 허벅지 높이의 언더홀드를 왼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오른발을 작은 턱을 딛고 일어서면서 홀드를 잡고 첫 볼트에 퀵드로를 걸었다.
첫 번째 볼트와 두 번째 볼트의 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바닥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 짤막한 슬링을 매달아 놓았다. 이점남씨는 그런 상태인데도 밸런스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등반하고, 피치 종료지점에 올라선 다음에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피치 등반을 끝낸 뒤 암봉에 올라서자 만두처럼 생긴 복주머니바위와 그 뒤로 악어바위, 코끼리바위를 거쳐 임꺽정봉까지 이어지는 악어의 꿈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등 뒤로는 얼마 전 모를 심어 싱그러움이 넘치는 백석읍 일원의 농경지와 콘크리트 숲을 이룬 마을들이 정겹게 바라보였다.
2피치는 각은 세지만 가로 홀드와 세로 턱이 많아 수월한 구간이다. 권건행씨의 선등으로 등반을 끝내자 조망이 한결 좋아졌다. 백석 들녘 뒤로 흥복산 줄기가 부드럽게 솟구치고 그 왼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수락산이 바위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양주역에서 불곡산으로 이동할 때만 해도 땅에 맞닿을 듯 바짝 내려앉았던 먹장구름도 하늘 위로 떠오르고 솔바람이 불어대어 후텁지근한 기운을 씻어내고 있었다. 이제 복주머니바위가 눈앞이고 산 아래는 더욱 파릇하다.
“산머루산다래산악회가 닉네임을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산악회지만 예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산악회들처럼 가볍게 인연맺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는 아니에요. 안전에도 엄청나게 신경써요. 그래서 매년 한 번씩 자체 등산학교도 열어요. 최은정씨도 등산학교 출신이에요.”
이점남씨는 “한 번 등반하면 30, 40명은 기본일 정도로 열성파 바위꾼들이 많이 모인 산악회”라며 “창립 11주년을 맞아 6월 22일 도봉산 선인봉에서 기념 등반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