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49: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49: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49: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49:17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49:19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49:20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49: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오늘 분문에 보면 연이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게 될 지명을 축복하는 식으로 미리 알려줍니다. 12지파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따라 내려오고 있는 축복입니다. 그 축복의 결과는 '땅 차지하기'입니다.
그런데 이 땅은 보통 땅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민이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일부 갖는 것은 자기 이름을 거기에 두기 위한 부동산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땅는 사람 이름이나 혹은 지파 이름을 두기 위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두기 위한 땅입니다.
따라서 만약 지파들 가운데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 지파는 이 약속의 땅에 추방되어야 합니다. 축복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은 그 축복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지배하는 상태를 두고 말합니다.
주기도문에도 나오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사람이 된 것 자체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닙니다. 또한 지파가 땅을 갖다는 것은 거기서 많은 수의 자식을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장만한 셈이 됩니다. 바로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각 지파들을 어떤 식으로 배치해서 자기 땅을 가졌을까요? 우리가 전에 보았듯이 야곱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서로 자매지간인 이 두 아내는 위가 레아이고 아래가 라헬입니다. 그들에게는 각각 여종이 딸려 있습니다. 레아의 여종은 실바요, 라헬의 여종의 이름은 빌하입니다.
자식을 가지게 된 순서는 우선 레아가 먼저요 그다음에 라헬의 여종인 빌하요 그 다음의 레아의 여종인 실바요, 그 다음이 또 다시 레아요, 마지막에 라헬에게 두 자녀가 생깁니다. 레아의 자식은 르우벤과 스므온과 레위와 유다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살펴본 지파들입니다.
그 다음의 야곱이 가진 자식은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통해서 가진 자식입니다. 이름이 단과 납달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언니인 레아의 여종인 실바를 통해서 갖게 되는 자식이 낳게 되는 갓과 아셀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언니인 레아를 통한 두 자식, 잇사갈과 스불론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라헬을 통해서 가진 자식, 요셉과 베냐민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약속의 땅 분배에 들어가면 요셉 지파가 두 배나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요셉을 통해서 낳은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아들과 동등한 반열에 끼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땅 분배가 총 13지파로 나뉘어지겠다 여기시겠지만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레위지파는 각 지파 속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땅분배는 동일하게 12등분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들 12지파가 어디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축복의 분량 만큼 땅이 넓게 되고 땅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많은 자식을 허락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되어 역시 축복 분량의 근거가 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나님이 자비의 속성을 보다 많이 보여주는 지파는 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차지한 약속의 땅, 다른 말로 하면 가나안 지역은 요셉지파와 유다지파 중심으로 양분됩니다. 먼저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셉지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둘을 합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둘로 쪼개 질 때에도 이 두 지파가 핵심이 되어 나뉘어지게 됩니다. 다른 지파들은 이 두 지파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지파들은 어떤 자리를 차지했을까요?
우리 보다 쉽게 지역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 교회가 위치해 있는 팔공산 산기슭인 대구시 동구 지묘동 중심으로 생각해 봅시다. 이곳을 예루살렘으로 칩시다. 그렇다면 여호수아 당시에 가나안 땅은 대략 경상북도만 합니다. 그렇다면 각 지파들은 경상북도 어디쯤 거주했을까요?
우선 유다지파는 대구, 경산, 청도까지 넓게 장악하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 성전이 있게 되는 예루살렘은 유다지파 지역입니다. 팔공산 너머 신령쪽이 조그마하게 베냐민 지파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12지파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인 구미, 성주, 김천까지는 므낫세 지파가 차지합니다. 그리고 왜관 근방에는 역시 요셉지파인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구요.
좀 더 위로 올라갑시다. 안동 지역이 잇사갈입니다. 그리고 영주 지역은 스불론입니다. 이 잇사갈과 스불론은 둘 다 레아 출신의 자식입니다. 레아의 여종인 실바 출신의 자식인 갓과 아셀 중에서, 갓지파는 포항 지역에 삽니다. 그리고 아셀은 저 충청도 단양과 제천 지역에 떨어져 삽니다.
예루살렘에서 볼 때 가장 멀리 떨어진 지파는 따로 있습니다. 그 지파는 단지파입니다. 단지파와 납달리는 둘 다 라헬의 여종인 빌하가 낳은 자식들입니다. 단 지파의 경우 강원도 영원, 삼척까지 멀리 삽니다. 그리고 납달리는 봉화 지역에서 삽니다.
자식들 중에서 제일 먼저 낳은 자식은 르우벤과 시므온은 어디서 살까요? 르우벤은 경주 지역에서 살고, 시므온은 대구 서남쪽 고령 지역에서 삽니다. 고령에는 참외가 많이 나지요. 이렇게해서 12지파의 배치는 끝났습니다.
이 배치도를 보게 되면 한 가지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야곱의 본 아내인 레아와 라헬 출신의 출신 지파들은 경상북도 안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유다와 요셉과 베냐민이 그런 지파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여종 출신의 지파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적들과 인접해 있습니다. 저 위로 강원도 있는 단지파가 그러하고 봉화 지역에 있는 납달리, 포항 지역에 있는 갓지파와 충청도 단양 근방에 있는 아셀 지파가 그러합니다. 이런 지파들이 수명이 짧습니다. 여기서 수명이 짧다는 것은 호시탐탐 적들로부터 먹이감이 되고 침략을 수시로 받는 받아서 일찍 망하는 지파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 근처 포진해 있는 이방 민족들은 대표적으로 블레셋 족속과 에돔 족속과, 모압족속과 암몬 족속이 있는데, 블레셋 족속은 합천에 거주합니다. 에돔 족속은 밀양에 살고, 암몬은 경주 지나 감포에 삽니다. 그리고 모압은 포함 지역에 살고요, 그러니까 이 이방민족에 인접해 있는 지파들은 늘 전쟁에 시달립니다.
합천에 사는 블레셋 족속은 고령에 사는 스므온 지파를 공격할 것이요, 밀양에 사는 에돔지파는 경주에 서는 르우벤 지파를 공격할 것이요, 감포에 사는 암몬 족속은 포항에 사는 갓 족속을 공격하기 용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되면 북쪽 앗수르 대 제국은 팔공산 위쪽에 사는 모든 지파를 송두리째 점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러한 멸망의 날이 임한 것은 결코 외부 족속들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다는 이 약속의 땅에 사는 12지파들이 모두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사사기 2:20-23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즉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축복하신 족속을 그 가나안 땅에 두신 것은 주변의 인간들의 힘보다 이 이스라엘 민족이 지니고 있는 언약의 힘이 더 우수하고 월등함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신이 계시고 왕이 계셔서 그 보이지 않는 분의 초월적 능력으로 유지되는 특이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이려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언약에서 나오는 힘만으로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룩한 하나님이 없는 민족과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 민족 사이를 차별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지시만 따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만 의지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다가 소위 성도라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힘에 의존한다면 그 순간부터 대기해 있는 세상의 세력이 성도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는 증거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을 은혜로 알고 받게 하옵소서. 그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더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