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김해 장유.
장유 친척 집에서 머문 지도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있는 곳인데 답사를 갔다 하면 김해 시내나 부산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이번엔 작정하고 한 번 장유를 답사해보려 한다.
장유는 김해에 속해있는 면이지만, 최근 신도시 건설로 인해 여느 도시 못지 않은 규모를 가지게 되었고 현재는 장유동으로 개편되었다. 다만, 친척 집에서도 그렇고 장유면 시절 행정구역이 편한 듯하다. 김해 지도를 펼쳐보면 장유에도 몇몇 유적지가 간간이 표시된다. 다만, 역시 김해 시내 유적지가 있다 보니 그렇게 신경 써서 표시해 놓은 것은 아니고 그냥 이런 게 있다 정도이다.
제일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친척 집 베란다에서 보면 바로 보이는 능동리 석인상이다. 장유 도서관 가는 큰길을 따라가다가 산 쪽으로 올라가는 작은 시멘트 길을 타고 올라가면 과수원이 나온다.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하기 그지없다. 언제나 그렇듯(?) 출입금지 팻말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다. 과수원 숲 속 작은 묘가 나오는데 묘 양옆으로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두 석인상이 나를 반겨준다. 이 능동리 석인상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무덤 주인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묘라고 하기도 하고 가락국 왕릉이라고도 전해진다. 무덤 규모나 석인상을 봤을 땐 역시 사대부의 묘가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석인상이 짓는 표정이 너무 인자하여 한동안 바라보다가 되돌아 나온다.

(능동리 석인상 가는 길.)

(과수원 안에 있는 석인상.)

(능동리 석인상. 양옆으로 한 쌍이 배치되어 있다. 뒤로는 중심무덤 한 기와 여러 무덤이 존재한다.)

(능동리 석인상. 인자한 웃음 때문인지 무척 잘 차려입은 제주 돌하르방 같다.)

(역광 때문에 모습이 잘 파악되질 않는 반대편 석인상.)

(석인상에 내려다본 모습.)
석인상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무계리 고인돌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골목 따라 들어가니 비교적 넓은 공터에 하얀 나무와 함께 거대한 돌덩어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생각보다 큰 고인돌의 크기에 많이 당황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해 있는 전형적인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 때문에 이 마을 이름도 광석(廣石)마을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갔을 때 꼭 저렇게 생긴 돌판 위에 고기나 해물을 구워먹는 요리를 먹은 적이 있다. 아무튼, 안내판에 따르면 근처에 고인돌 한 기가 더 있다고 하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앞으로도 이 동네 상징물로서 잘 남아있었으면 한다.

(무계리 고인돌(지석묘).)
다음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월봉서당으로 향한다. 중간에 잘못 내리는 바람에 한참을 걸어서 가야 했다. 조금 어수선한 마을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건물 같은데 보수 공사 중인지 더더욱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건물이 나온다. 입구에는 분명 월봉서당을 찾아왔는데 '월봉서원'이란 현판이 달려있다. 설명을 읽으니 원래 서당이 맞는데 1984년, 사당인 '명휘사'를 세우면서 월봉서원으로 개액했다고 한다. 이곳은 영남지방인 김해에서는 드물게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호학파의 거목인 이보림을 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곳이다. 완전히 반대되는 지방인데 어떻게 명맥이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공사 중이라 혹시 방해될까 봐 빨리 사진만 찍고 조용히 빠져나온다.

월봉서당. 개액이 되어 월봉서원으로 바뀌었다. 뒤로 앙지문이 보인다.)

(맨 뒤 건물인 월봉서원 건물.)
이제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율하리 고분군으로 향한다. 도심 속에 있는 율하리 고분군은 단숙 석관무덤부터 고인돌, 조선 시대 무덤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마을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그 중 많이 모여있는 곳 일부를 공원처럼 꾸며놓았다.
첫 번째로 간 율하 유적공원은 무슨 도로 위에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안에는 아까 보고 온 무계리 고인돌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고인돌과 몇몇 석관묘가 보인다. 비교적 크기가 작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특징이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솟대 구멍이다. 아주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돌이 둥글게 둘러 처져있는 듯한 것인데 이 솟대 구멍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무덤이 남쪽에는 주거지역이 발굴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주거지역에서 조상들의 신적인 공간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게 아닌가 싶다.

(도심 속 일렬로 늘어선 작은 고인돌. 무계리 고인돌과 비교하면 앙증맞게 느껴진다.)

(작은 석관묘.)

(비교적 큰 석관묘. 다만, 개인적인 생각에 너비가 좁아 과연 사람을 눕힐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솟대 구멍.)
길을 건너 조금 더 가면 상당한 규모의 유적공원이 하나 더 나온다. 이곳은 김해 율하 유적지구 중 B지구로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오늘따라 날씨도 맑고 적당히 추워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었다. 걷다 보면 아까와 같은 작은 고인돌과 석관묘부터 큰 고인돌까지 보는 맛도 있으니 이러한 공원이 가까이 있는 율하에 사시는 분들은 이곳이 축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다 보면 조선 시대에 세워진 듯한 기념비 같은 비석이 몇 개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설명에 의하면 조선 시대 무덤도 발견된다고 하니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곳을 명당으로 여긴 것 같다.

(석관묘. 아까 유적공원보다 비교적 규모가 큰 것 같다.)

(꼭 밥상같이 생긴 고인돌.)

(율하 유적공원 전체적인 모습. 신도시의 모습과 조화를 잘 이룬다.)

(조선 시대 비석. 딱히 설명이 없어 무슨 이유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다.)

(비교적 큰 고인돌.)

(고인돌의 단면을 나타낸 모습. 무척 궁금했었는데. 교육적 측면에서도 탁월한 것 같다.)
공원 끝에는 동사무소와 함께 율하 유적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말이 유적전시실이지 그냥 고인돌 모형과 작은 토기 몇 개만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이곳 율하 유적공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옆에 좋은 도서관도 있고 아이들이 자주 와서 많이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율하 유적전시실.)

(안에 있는 고인돌 모형.)

(요즘 가는 곳마다 보이는 토기와 돌칼.)
공원 끝 유적전시실 맞은편에는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란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이 무척 특이해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애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천편일륜적인 탁자와 의자가 아닌 창문 가에 기대에 앉을 수도 있고 계단에 앉을 수도 있고 너무나 자유로운 독서 분위기에 무척 놀랐다. 실내장식도 아기자기하고 밝고 진한 색채감을 사용해 꼭 동화 속에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곳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김해시가 2011년 공동으로 건립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다. 친환경적인 설비를 갖추었고 여러 사람의 재능기부 등이 이루어진 곳으로서 취지와 내부 모두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곳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해 장유 기적의 도서관.)

(내부 모습. 자유로운 공간구조가 아이들에게 적합할 것 같다.)

(아기자기한 실내장식.)
3시가 되기 전에 답사가 끝난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버스를 자주 탔지만, 이동시간이 길지 않아 산책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장유는 그동안 부산과 김해에 밀려 가까이 있음에도 답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고서 떠나 정말 다행이다.
가끔 이렇게 동네 가까이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떠나보는 것도 정말 좋은 것 같다. 김해 장유, 새롭진 않지만, 익숙해서 더욱 즐거웠던 답사였다.
-여정- (2014. 2. 27. 木)
장유 친척 집→→ 과수원→ 능동리 석인상→→ (버스)→→ 무계리 고인돌→→ (버스)→→ 월봉서당→→ (버스)→→ 율하 유적공원→→ 율하 유적공원 B지구→ 율하 유적전시실→ 김해 장유 기적의 도서관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다시 알아보니 장유면은 현재 장유동으로 개편되어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바뀌어서 수정했습니다. 다만, 문화재는 옛 행정구역이 편한 듯하여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문화유적은 없지만 그래도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볼 수 있어서 좋은것 같구나.
방학때 경주에 놀러올 기회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몸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 생활보내도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