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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잎 등급과 찻잎 채다와 찻잎 선별 -
반면에, 녹차는 등급이 세밀하게 나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녹차의 찻잎 등급은 명전,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분류한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요즘은 우전과 세작이 조금 섞인 상태고, 세작과 중작이 조금 섞인 상태다. 그것은 차를 따로 만들어서 섞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찻잎 채취시기를 조금 길게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우전 만들 찻잎을 조금 길게 잡는다. 그러면 우전의 잎이 조금 커진 찻잎을 포함하게 된다.
찻잎은 모두 한꺼번에 딱 정해서 일창이나 일창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찻잎은 이제 '포'로 맺혀있기도 하고 또 어떤 찻잎은 '순' 상태가 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찻잎은 일창일기가 되어 있기도 하다. 각각 피어나는 속도가 다르다. 찻잎을 채취할 때 원하는 형태의 찻잎을 채취하는 것이 '찻잎따기(채다)'의 기본이다. 그러나 보통은 보이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딴다. 그리고 고르기를 한다. 이때의 고르기는 쇤잎이나 티끌 같은 고르기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현재 찻잎을 채취하여 일창, 일창일기, 일창이기 등등에서 찻잎을 '선별'하지는 않는다. 명전차를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노동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청명 이후부터 곡우 전까지, 곡우 이후부터 입하 전까지 각 시기별로 찻잎을 채취하기에 그때 채취한 찻잎이 그대로 찻잎 등급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세작 찻잎이 다소 커진 잎을 포함하게 된다. 그래서 중작은 많이 만들지 않는다. 수제차 대작은 거의 만들지 않고 끓여 마시는 엽차 용도의 차로 만든다. 이러한 이유는 첫째로 미세한 계절의 번화가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해는 찻잎이 일찍 피고 어느 해는 조금 늦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찻잎 채취를 제 때에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찻잎을 채취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일부의 기계화된 차밭(다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손으로 직접 채취(채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중작이나 대작이 대중적인 녹차가 아니라 세작이 대중적인 녹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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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와 《동다송》-
초의선사는 《동다송》「제 27송」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차서에 이르기를, "차를 따는 시기는 그때가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차맛이 온전치 않고, 너무 늦으면 싱그러움이 없어진다. 곡우 5일 전이 으뜸이고, 곡우 5일 후가 버금가며, 그 후 5일 후가 그다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차는 곡우 전후는 너무 이르고, 입하 후를 그때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차를 딸 때는 '밤새구름 없이 이슬에 젖은 찻잎을 따는 것이 으뜸이고, 낮에 따는 것이 버금가며, 음산하게 비가 오는 때는 차를 따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소동파가 겸 스님에게 보내는 시에 이르기를 '도인이 새벽에 남병산에서 내려와 삼매경의 솜씨로 차를 끓여 마셨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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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초의선사는, 우리나라는 ‘입하 후에 찻잎을 채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날씨가 지금보다 더 추웠을까? 아니면 차나무가 지금보다 대체로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칠불선원은 화개 마을보다는 상당히 고지대이긴 하다.
초의선사는 《동다송》 「제 27송」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동다송》 「제 32송」 에서는 '백파거사 신현구'의 글로 마무리 짓고 있다. 그런데 백파거사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초의는 햇차의 녹향을 맛보려고 불을 피워 연기를 내니, '곡우 전의 첫물'이라 날짐승의 혀같이 부드럽다. 단산의 운감차와 월간차 손꼽지 말자. 잔에 가득한 뇌소차는 햇수(수명)를 늘인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보자면, 초의선사는 분명 '곡우 전'에 첫물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날짐승의 혀같이'는 바로 '작설'을 비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부드럽다는 의미이고, 작설의 형태를 갖출 때 찻잎을 채취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곡우 전인 양력 4월 5일 이전에 채취한 찻잎으로 첫물차를 만들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청명’ 이후 무렵의 차는 현재에서 보자면 '우전 등급'이다. 초의선사는 우전 등급으로 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동다송》 「제 32송」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명전차는 아니고 우전차를 만들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명전 등급은 아직 너무 어리고 채취하기에도 까다롭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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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의 영향과 차나무에 대한 관념 -
그런데 왜 「제27송」에서는 '우리나라는 곡우 전후는 너무 이르고, 입하 후'가 적당하다고 했을까? 우리가 실제로 지리산 화개에서 차를 만들어 보면, 24 절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차농들은 곡우 전후에 차만들기 바쁘다. 고급차는 곡우 전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입하 후면 이미 양력 5월 6일 경이 지난다. 이때는 이미 세작 등급 끝물이거나 한다. 물론 요즘은 세작 만드는 기간이 조금 뒤로 늦춰졌다. 날씨가 4월에도 기온이 낮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5월 초나 중순에 접어들면 찻잎은 이미 제법 커지고 찻잎의 부드러움은 다소 반감된다.
물론 차밭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긴 하다. 이때도 차를 만들긴 하지만, 이미 중작이거나 대작으로 향하고 있다. 이때의 찻잎들은 발효차를 만들기에 적당하다. 물론 발효차도 우전이나 세작 등급의 찻잎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차농의 제다인이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에 달린 일이다.
예전에는 물론 초의선사의 영항이었겠지만, 대략 15년 전이나 20여 년 전에는 차농들이 중작과 대작을 어느 정도 만들었다. 그리고 입하 이후의 찻잎으로 만든 차가 맛나고 영양분도 풍부하다고 하였다. 중작이나 대작 등급의 찻잎으로 녹차를 만들어도 당연히 맛이 있다. 큰 잎은 큰 대로 또 시원하고 경쾌한 제맛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녹차는 각 절기별로 찻잎 등급이 달라지므로 맛과 향 그리고 탕색도 달라진다.
녹차에서 명전이나 우전은 독특한 맛이 있다. 또한 세작은 세작의 맛이 있고, 중작은 중작대로 대작은 대작대로 각자의 제맛이 있다. 예전에는 너무 어린 찻잎을 채취하는 것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죄의식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계화된 차밭도 그렇고 차나무의 가지도 치고 찻잎 채취가 끝나면 위를 평평하게 베어 버리기도 한다. 아직 새 순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더 찻잎을 채취할 필요가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 새순이 나오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인간이 잔인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너무 어린 찻잎을 채취한다고 하여 그것이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으로 문제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나무 재배 방식은 나무가 가진 특성에 맞춰서 재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찻잎은 채취하면 금방 또 나온다. 과도하게 어린잎을 따 버리면 우전이나 세작을 만들 찻잎이 부족해지기에 어린잎 채취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차나무를 무성생식으로 한그루 늘려 두 그루 키워보니, 찻잎이 그리 많지가 않다. 찻잎 따기가 아까워서 보고만 있다. 상대적으로 차밭에서는 그런 생각이 덜 들 수도 있다. 차밭이 광활하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리고 찻잎을 따보면 한 차나무에서 딸 만한 찻잎이 사람눈에 그리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옆 나무로 옮겨가며 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각 차나무에서 골고루 채다 하게 된다. 그러니 그 뒤로도 찻잎은 계속 올라오게 된다.
차나무의 특성상 찻잎을 채취하는 것이 차나무에도 좋다고 보인다. 차나무는 나무이고 나무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심리를 안정화시킨다고 보인다. 사람은 많은 것에 감정이입하고 인간처럼 대하지만, 차나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아끼는 것과 어떤 특성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며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어리고 여린 찻잎을 뜨거운 솥에서 덖는 것은 그럼 어떻게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해야만 '덖음 녹차'가 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차나무와 그 차나무의 찻잎을 '채다' 하여 '제다' 하는 과정은 다른 것일까? 아끼고 기쁘고 어여쁜 마음으로 가꾼 상추를 먹을 때의 그 마음도 기쁨이고 어여쁨이고 사랑이다. 차나무와 그 차나무에서 채취한 차나무의 찻잎도 그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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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맛어때에 연재하기 위해서, 이미 원본 상태에서 완성한 글을, 단락별로 나누다 보니, 하나의 자체적인 글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내용을 더 추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추가 되는 내용을 더 집어 넣는 것은, 분할한 글 자체가 갖는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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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2024/03/19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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