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나혜림 장편소설
창비 / 2022년 9월
정인이는 폐지를 주워 파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중학생 소년이다. 제주도 수학여행 가정 통신문에 적힌 354,260원의 고민으로 정인이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최저 시급 9,160원*주 3회*하루 3시간 햄버거 가게 알바생에게 통보된 수학여행비는 참으로 모진 현실이다. 정인의 아지트에 고양이가 나타나고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데 이 검은고양이는 휴가 중인 악마! 헬렐 벤 샤하르: 새벽에 빛나는 별, 빛을 발하는 자, 라틴어로는 루시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악마 헬렐은 정인에게서 일주일 휴가차 놀다 가기로 한다. 정인은 헬렐이 나타나기 전에는 자신의 현실에 부정도 긍정도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정인에게 헬렌은 끊임없이 상상은 할 수 있다며 “만약에~”라는 유혹을 한다. 하지만 정인은 소원도 뭘 알아야 빈다고 대꾸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악마는 정인의 흔들리는 욕망을 본다.
정인이가 할머니에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내가 없었으면 할머니는 더 행복했을까?”질문을 던지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거 인생 망치는 주문이야”하는 할머니.
사람은 왜 그냥 있는 그대로를 못 보냐는 정인의 말에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사람 인(人)은 작대기가 두 개라며 이런 상상, 저런 상상, 좋은 상상, 나쁜 상상은 해 볼 수 있지만 상상은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좀 이상한 하루, 너무 완벽해서 행운 위에 행운이 생크림처럼 덧발라진 하루!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응달에서도 잘 자라서 꼭! 꽃을 피운다는 클로버. 네 잎이 아니어도 대단하다며 [클로버]를 흙냄새를 좋아하는 재아가 알려 주었다.
“신은 명령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불운 앞에서 인간은 왜 나인가? 묻지만 행운에겐 ‘왜 나인가’ 묻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는 악마. 정인에게 일주일동안 만난 악마는 불행이었을까? 행운이었을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를 키운 적은 없지만 내 앞에 나타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녀석들에게 주인공 정인이처럼 고민으로 말문을 열 때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고양이들이 나에게 나타났을 때도 신에게 기도가 필요할 때였다. 30년 전 엄마의 자궁근종이 심해 수술여부가 걱정되던 때였고, 혼자 울고 싶어 나왔던 집 앞에 만난 고양이에게 우유도 주고 참치캔도 주며 몇 일간 둘 만의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무사히 퇴원하고 고양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임신 때 현관문 앞에서 마주쳤던 고양이가 먹이를 달라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고양이 사료를 사다 잘 챙겨주었더니 후에 새끼 2마리와 찾아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당시에도 돌도 안 지난 둘째 아이가 아파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퇴원 후 다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행운이라는 ‘만약에~’라는 상상은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선택이고 선택을 위한 노력 또한 내 몫이라는 것을 안다. 갖고 있는 것들이 남들 보기에는 하찮고 부질없어 보이지만 하나하나 나에게는 소중한 행복인 것들.
인간들이 세운 담벼락이라는 물리적 영역표시물을 아무렇지 않게 사뿐히 담 사이를 누비는 고양이의 매혹적인 몸놀림처럼 나 또한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도 유연함을 지니고 헤쳐 나가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박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