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5일
북한, 장거리 로켓 대포동 2호 발사
북한이 2009년 4월 5일 장거리 로켓 발
사로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 능력을 입증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70년대 후반 미사일 개발에 착수, 19
84년 스커드-B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이후 25년만에 ICBM 기술 보유국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발사한 로켓의 2단 추진체의 낙하
지점이 애초 예고된 무수단 발사장 기점 3천600㎞에는 못미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8년의 대포동 1호보다 더 멀리 낙하했
다는 점을 감안하면 ICBM 능력을 갖췄다
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날 발사된 로켓의 2단 추진체는 일본 동쪽에서 1천270㎞ 지점에 떨어졌고 이는 무수단 발사장으로부터 2천300㎞가량 거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대포동 1호 로켓의 2단계 추진체는 1천646㎞ 지점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쏘아 올린 국가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이란 등 9개국으로, 이들 국가는 모두 막강한 화력의 ICBM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ICBM 기술 보유가 갖는 국제정치 및 군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군사적으로도 최대 사거리 8천㎞로 추정
되는 대포동 2호가 미국까지 사정권에 둘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안보지형에도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무수단리를 기점으로 미국 본토 서부까지
는 1만1천㎞이지만, 하와이 7천600㎞, 알래스카 7천400㎞로 사정권에 들어간다.
미국의 태평양 전진기지인 앤더슨 공군
기지가 있는 괌까지는 불과 3천600㎞ 거리다. 탄두 무게에 따라 사거리를 충분
히 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본토까지 위협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날 발사한 대포동 2호에 탄두를 장착해 ICBM화 하더라도 그 사정권이 어디까지일지 현재로선 단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ICBM의 경우 탄두가 대기권 안으로 재진입해야 하며 그때 발생하는 초고열을 견딜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확보했을지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은 1998년 8월31일 사전 예고없이 함북 무수단리에서 사거리 1천500~2천
500㎞로 추정되는 3단식 로켓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당시 1단계 로켓은 발사지점으로부터 243㎞ 거리의 동해 공해상에 떨어졌고 2단계 로켓은 65㎞의 고도로 일본열도 상공을 지나 1천646㎞ 해상에 낙하했으며 3단계 로켓은 궤도진입에 실패해 대기 중에서 타버린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이나 인공위성 기술 중 하나인 다단로켓 기술은 상당수준임을 보여줬다. 이후 북한은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3단계 로켓의 고체연료 기술 확보에 나섰고 KN-02 미사일 개발로 소형로켓용 고체연료 기술을 확보했다.
▶2001년 ‘장구 인생’ 45년 김덕수 첫 독주회
▶2000년 모리 요시로 자민당 간사장, 일본 총리에 선임
▶1999년 한얼교 창시 신정일씨 별세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 조용배씨 별세
▶1991년 한국-마샬군도 국교 수립
▶1986년 전두환 대통령 유럽4개국 순방 등정
▶1983년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1982년 캐링턴 영국 외무장관 사임
▶1982년 영국 기동함대, 포클랜드 탈환위해 출동
▶1981년 국내외 과학기술자종합학술
대회 참석차 북한 출신 재독일 과학자 5명 내한
▶1976년 제1차 천안문사태 발생
👉🏿 제1차 천안문사태 :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체제 말기인 1976년 4월에 있었던 대중반란. 천안문 광장에서 1976년 4월 5일에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군중을 탄압한 ‘제1차 천안문사태’가 발생하여 덩샤오핑(鄧小平 : 당시 중국공산당 부주석ㆍ부총리)이 실각되고, 화궈평(華國鋒)이 정식으로 총리가되었다.
▷ 제2차 천안문사태 : 1989년 6월 4일, 중국의 베이징시의 중앙에 있는 천안문(天安門 : 텐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여, 유혈사태를 일으킨 정치적 참극.
▶1975년 한국-캄보디아, 단교
▶1975년 대만 총통 장제스 사망
👉🏿 대만 총통 장제스는 1887년 10월 31일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나 1906년 보정군관학교, 1910년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이 되어 2년 후인 1928년 북벌을 완성,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했다. 1938년 국민당 총재, 1943년 국민정부 주석에 재취임했다. 장제스는 마오쩌둥과 함께 근대 중국의 창건자 쑨원의 후계자였다. 장제스가 국민당 창건자로서의 쑨원을 이었다면 마오쩌둥은 소련과 연대해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을 펼친 만년의 쑨원을 이었다.
▶1974년 나이로비 해양회담, 나이로비 선언 채택
▶1972년 북한, 일본기자 17명에게 입북 허가
▶1968년 전국 고교-대학생에 군사훈련 실시 결정
▶1968년 체코 자유화 행동강령 채택
▶1967년 미국의 유전학자 조셉 멀러 사망
▶1964년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사망
▶1963년 라오스 내전 재발
▶1963년 네덜란드 건축가 오우트 사망
▶1961년 한국-그리스, 국교 수립
▶1955년 처칠 영국 수상 노령을 이유로 사임, 후임에 이든
▶1951년 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1951년 경남 계엄사령부 김종완, 공비가장 거창사건 국회조사단 기습
▶1949년 식목일 제정
▶1945년 소련, 일본-소련 중립조약 파기
▶1941년 조선만화가협회 발족
▶1939년 민족운동가 남궁억 사망
👉🏿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황성신문을 창간한 한서 남궁 억 선생이 1939년 4월 5일 사망했다. 남궁 선생은 아무도 영어를 배우려 들지 않았던 시절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고 어전통역관이 됐다. 개화파였지만 정치보다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독립협회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황성신문`사장에 취임했다. 한일합방 이후 고향인 강원도 홍천으로 낙향해 학교를 지었으며 7만주에 이르는 무궁화 묘목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정신을 고취했다는 혐의로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숨을 거뒀다. 문화관광부는 선생을 2000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1937년 만포선철도 가설에 관한 각서 조인
▶1929년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한국의 서양화가 김창렬 출생
👉🏿 서울대학교 재학 중 강제징용을 피해 경찰학교에 지원하여 1961년까지 경찰로 일했다. 경찰생활 중인 1957년 박서보,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현대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1966년 록펠러 재단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68년까지 미국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72년 파리의 살롱 드 메 전시회에 물방울 그림인 <밤의 이벤트>로 데뷔했으며, 물방울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전 세계에서 활발한 전시를 하고 있다.
▶1926년 양기탁 길림서 고려혁명당 조직
▶1923년 남베트남의 대통령 구엔 반 티우 출생
▶1918년 영국-일본-미군 블라디보스톡에 상륙개시
▶1916년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 출생
▶1908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관혁악단.오페라 지휘자 카라얀 출생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 ~ 1989)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다. 그는 전후 시기에 가장 유명한 지휘자 중의 한 명이며 세계에서 가장 음반 녹음을 많이한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35년간(1955-1989) 지휘하였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1929년 울름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막스 라인하르트가 주최한 의음악을 지휘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월터 레그에 의해 복직하여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 지휘자로 지냈다. 1989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잘츠부르크에 묻혔다.
https://youtu.be/Y55gtz0xrc0
▶1903년 가야금 명인 한수동 출생
▶1902년 알렉신이라는 살균제를 발견한 독일의 세균학자 한스 부흐너 사망
▶1901년`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출생
👉🏿 이상화(李相和)는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가 모의가 발각되어 피신하였으며, 1921년 잡지 백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시와 소설 등 작품 활동과 평론 활동, 《개벽》,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에 동인 활동을 하였다.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38년에는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 지도하였다.
▶ 1871년 신미양요 발발
👉🏿신미양요(辛未洋擾)는 1871년 6월 1일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 전쟁이다. 미국은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의 책임과 통상 교섭을 명분으로 조선의 주요 수로였던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고 조선 측의 거부를 무시하고 탐침을 시도하여 교전이 일어났다. 3일간의 교전 결과 조선은 광성보가 함락되고 순무중군 어재연을 비롯한 수비 병력 대다수가 사망하였다. 미해군은 20일간 통상을 요구하며 주둔하였으나 조선의 완강한 쇄국 정책으로 아무런 협상을 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 정책을 강화하였다.
▶ 1722년 네덜란드의 해군이 이스터 섬을 발견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 섬은 태평양에 위치해 있는, 칠레령의 섬이다. 이스터 섬 주민들은 라파누이(Rapa Nui ‘커다란 땅’)라고 부른다. 라파누이 바깥의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섬의 발견은 1722년 4월 5일에 네덜란드의 사령관 야콥 로게벤에 의한 것이다. 이 섬을 발견하고 찾아낸 날이 부활절 날이어서 이스터섬(Easter Islan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722년 로헤벤이 이스터 섬을 방문하였을 당시 인구는 5-6천 명 정도였다. 1805년 이후 노예상인들이 마구잡이로 주민들을 잡아가 1877년 이스터 섬에는 110여 명의 원주민만이 있게 되었다.
▶ 1588년 영국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토마스 홉스 출생
👉🏿토머스 홉스는 잉글랜드 왕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이다. 서구 근대정치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책 《리바이어던》(1651)의 저자로 유명하다. 홉스는 자연을 이기적 본성을 지닌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한없이 추구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상정하고, 그로부터 자연권 확보를 위하여 인민이 그들 개인이 가지던 개인의 권리를 양도하는 사회계약에 의해서 리바이어던과 같은 강력한 국가권력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 계약이라는 개념은 홉스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존 로크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수용, 발전되었다.
https://youtu.be/FdFpM8bw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