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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한 불연佛緣이 도래해서 오늘 천도薦度를 받는 영가들은 참 복福이 많으십니다.
산세도 수려하고 웅장한 그러한 기운이 뭉쳐있는 호거산虎踞山입니다. 또는 이 청정한 도량, 법장 스님을 위시해서 300 대중의 가까운 스님네가 정성으로 천도하는 그러한 천도를 받고서, 자기 본래 고향자리로 돌아가는 영가들은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 더구나 이 법당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지권인智拳印이, 지혜를 상징하는 그러한 도리를 본존불本尊佛로 모시고 있습니다. 또 저쪽에 사리암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 빈두루존자賓頭盧尊者가 옹호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도량 가운데서 천도식을 장엄莊嚴스럽게 베푸는데 어느 영가인들 극락세계에 상품상생上品上生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해서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 멸진정滅盡定을 성취해서 육근청정을 얻은 그런 영가들은 각령覺靈<주: 깨달은 영가>이 되어서 몸을 버리자마자 그냥 수원수행隨願受生이라, 자기의 원願 따라서 극락極樂도 가고, 일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지옥地獄도 가고 합니다. 그러나 육근청정六根淸淨을 얻지 못한 그런 영가들은 비록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 하더라도 윤회를 면치를 못합니다.
영가들이시여! 각령覺靈이시여! 육근청정을 이미 득得한 그러한 각령들은 이 자리에 오셔서 호념護念하시고, 아직 유명계幽冥界를 벗어나지 못한 그런 영가들은 산승山僧의 천혼법문薦魂法門, 지금까지 베푼 여법한 그런 천혼법문을 받고서 일념一念으로 망념妄念을 여의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소서!
영가들이시여! 영가의 몸은 대체로 지금 어디가(어디에) 있는가? 우리 중생들은 상相만 보고, 상만 보고 본 성품性品을 못 봅니다. 성자는 상과 성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성자는 (분별심을) 내지 않지만, 우리 중생들은 상만 보고 본 성품을 못 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본 성품 자리에서는 유정무정有情無情 또는 유상무상有相無相, 일체 존재가 일여평등一如平等이라, 일미평등一味平等한 진여불성眞如佛性인데, 그러한 성품을 미처 못 본 중생들은 상相만 보기 때문에 분명히 자타自他가 있습니다. 자타自他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한테 좋으면 탐심貪心을 낼 것이고, 자기한테 좀 싫을 때는 진심瞋心을 낼 것이고, 이런 것들은 모두가 다 무명심無明心으로 해서 원래 하나의 도리인데 하나의 도리(하나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데,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다만 중생들이 자작범부自作凡夫라, 중생들이 자기 성품을 모르기 때문에 범부가 되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우리 마음 가운데는 지옥地獄도 있고, 또는 아귀餓鬼도 있고 축생畜生도 있고, 또 싸움 좋아하는 아수라阿修羅도 있고, 인간人間도 있고 천상天上도 성문聲聞도 연각緣覺도 보살菩薩도 부처佛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든 아홉 경계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그까지는 아직은 완벽한 자리가 못 됩니다. 참다운 성품性品이 못 됩니다. 부처만이 참다운 생사生死를 여읜 본래 낳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참다운 성품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사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동물이나 다른 식물은 그렇지 않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른 식물이나 동물이나 어떤 무생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다 근본 성품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자리, 그 자리는 어디가(어디에) 있고, 안 있고 그게 아닌 것입니다. 어디가 있고 안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우주 자체가 진여불성입니다.
아,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스님(趙州從諶, 778~897)한테 가서 어느 스님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부처님 말씀(열반경涅槃經)에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이라,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했거니, 마땅히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한테 그렇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물으니깐, 조주스님 말씀이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무無라' 없다. 아, 그러면 조주스님은 부처님 말씀하고 배반된 그런 말씀을 한 것인가? 개의 머리에 불성이 있습니까? 개의 가슴에 불성이 있습니까? 우리 사람도 다 불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아, 불성이 내 가슴에 있는가? 머리에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조주스님께서 무無라고 하신 것은 불성은 개 안에 어디 가서 모양 따로 있고, 개 따로 있고, 개 안에 불성이 따로 있지가 않은 것인데, 물은 사람은, 아직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 개 어디가서 불성이 있겠지, 이렇게 물었단 말입니다.
불성佛性은 안에만 있고, 밖에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성은 우주에 충만된, 바로 우주가 불성이란 말입니다. 그런 도리를 뒤에 모신 지권인智拳印을 비로자나불이 쥐고 있는데, 분명히 우리한테 그러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일진법계一眞法界라,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천지우주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란 말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깨닫고 못 깨닫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밖에, 마음 밖에 어디가 따로 불성이 있다. 이것은 불법외도佛法外道라!
영가들이시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시오. 영가들의 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가들의 몸은 땅에 묻었으면 흙이 됐을 것이고, 화장火葬을 했으면 재가 됐습니다. 그러면 살아서는 영가들의 몸이 존재 했던가? 우리 인간이 지금 존재하니까 이제 영가들이 몸도 존재했다고 보겠지요. 그러나 존재했다고 보는 것은 사는 몇 십 년 동안에 영가들의 몸이 존재했다고 보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가상假相입니다. 영가들이 한 평생 동안 쓴 몸, 죽을 때는 그 몸뚱아리 때문에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가꾸어 온 몸인지라, 죽은 뒤에도 몸뚱아리 때문에 갈 곳은 못 가고 합니다. 죽어서 갈 때는 자기 몸에 대한 애착愛着 또는 사귄 자기 아내, 남편, 자식, 친지, 그런 애착, 그런 권속眷屬 애착, 자기가 쓰던 세간살이 금시계요, 목걸이요. 자기 토지요, 집이요, 감투요 하는 그런 애착, 이런 것 때문에 잘못 가는 것입니다. 본래로 부처지만 잘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가들이시여! 그대들의 몸이 어디가 있습니까? 몸이라는 것은 이것은 원래 있지가 않다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그런 소식을 분명히 알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명신불지明信佛智라! 부처님 지혜를 분명히 믿어야 우리 행위도 거기에 따라서 밝아집니다. (몸이라는 것은) 있지가 않다 말입니다. 왜 있지가 않는 것인가? 인연생因緣生의 법法은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아진 법은 사람 몸뚱아리뿐만 아니라 어떠한 것이나 존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공간성空間性도 시간성時間性도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몸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시시각각으로 전변무상轉變無常해서 마지않습니다. 어떠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가령) 지금 강도가 그렇게 높은 다이아몬드도 일 초 전과 일 초 후가 같지가 않단 말입니다. 일 초의 몇 억분의 일의 짧은 찰나 동안도 다이아몬드의 그런 모양, 모양 그 상태는 같지가 않단 말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동해서 마지않습니다.
우리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한 번 외일 적에 아, 제법공諸法空이라, 오온공五蘊空이라, 아, 제법을 다 분석할 때는 공이 되지 않겠는가.<석공析空> 사람 몸도 지地요, 수水요, 화火요, 풍風이요, 이제 그런 것이 다 모여서 잠시간 되었으니깐, 분석한 뒤에는 공이 되지 않겠는가. 반야심경의 색즉공色卽空이나 제법공諸法空을 말할 때에도 분석한 뒤에 공이 된다 이런식으로 풀이한 분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문은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즉공卽空이라, 즉공(당체즉공當體卽空)이라. 이 컵 이것은 컵 이대로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중생이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명명백백明明白白이 있다고 보는 내 몸뚱아리나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든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분명히 명명백백이 있다 말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명명백백이 없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스님도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하니 꿈속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이런 육도중생六道衆生이 분명히 있다 말입니다. 분명히. 그러나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天이라.<증도가證道歌> 깨달은 뒤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텅텅 비어 버린다 말입니다. 이렇게 바로 공이란 법칙 이것이 반야사상般若思想에서 말하는 즉공卽空입니다. 색즉공色卽空!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부처님께서 12년 동안에 아함경阿含經 그러시다가(설하시다가) 8년 방등경方等經(유마경, 승만경 등)이라, 그다음 22년 반야설般若說이란 말입니다. 12년 동안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고 말입니다. 승僧들은 그런 공부를 무던히 했다 말입니다. 따라서 세간적인 윤리 도덕은 상당히 많이 공부했다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의 진리眞理는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나오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은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윤리차원에서 그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방등경方等經부터서 서서히 제법공諸法空 쪽으로 갔다가, 반야경般若經! 반야경은 제법공을 제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이 공부는 무던히 했다 하더라도, 아, 즉공卽空자리를 내 몸도 바로 공이요, 감투도 공이요, 산도 공이요, 모두가 다 공이라는 소식을 알기는 쉽지가 않다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모르면은 우리 중생들은 삼계三界 내에서, 삼계 우리(울타리) 가운데서 못 벗어나고 아직은 헤매는 것입니다. 삼계三界의 지옥地獄 가운데서 헤맨다 말입니다. 따라서 험한(험난한) 것도 많아, 험한 것도 말입니다. 간혜미능면생사乾慧未能免生死라, <신라시대의 부설거사浮雪居士 사허부구게四虛浮漚偈> 간혜乾慧, 간혜로 해서 이것저것 좀 많이 안다 하더라도 제법공諸法空도리를 분명히 모르면 생사生死를 못 떠납니다. 따라서 (간혜로는) 우리 기본적인 자기구제가 안 된다 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영가들의 몸은 분명히 영가들이 몇십 년 동안 사는 동안도 없었고, 또는 그 전도 있었을리가 만무하고, 또는 영가들이 영가로 헤매다가 다시 사람 몸도 받기도 하고 천상가 태어나기도 한다 하더라도 그때 몸도 부처님의 반야도리般若道理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분명히 바뀔 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오늘 인연 따라 모이신 우리 불자님들이시여! 현대 과학은 제법공諸法空도리를 증명을 합니다. 따라서 제법공도리를 부처님 말씀은 또 고상한 말씀이고, 우리 중생들이 너무나 욕심에 탐착貪着하니까 방편方便으로 비었다고 하신 것이지, 어째서 이 몸, 내가 비었을 것인가? 이렇게 의단疑團을 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밀과학인 물리학이 바로 즉공卽空자리 모든 것은 본래로 비어있다는 소식을 증명한다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몸은 지금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요 세포는 분자 구조로 해서 되었다 말입니다.<분자생물학 - DNA, RNA 등> 분자란 것은 산소나 수소나 그런 원소로 해서, 원소의 결합여하에 따라서 분자 구조가 됐다 말입니다. 산소나 수소나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소립자의, 전자, 양성자, 중성자 그런 것들이 어떻게 진동하는가? 어떻게 결합되는가? 어떻게 운동하는가? 그것 따라서 전자가 되고 양자(양성자)가 되고 하는 것이지, 고유한 전자, 양자(양성자)가 있지가 않다 말입니다. 내 몸뚱아리나 어떤 것이나 원자로 구성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시간 공간성 내에서 있는 존재는 모두가 다 전자, 양자(양성자), 중성자 그런 걸로 해서 적당히 결합되고, 진동하고, 운동하고, 이렇게 해서 상相을 보이는 것이 '나'요, '너'요, 우리란 말입니다 그러면 전자, 양자(양성자), 중성자를 구성한 가장 미세한 알갱이, 더 분석도 못 하는, 공간성도 없고, 또는 전기도 안 띠어있고 말입니다. 그러한 가장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전자현미경 놓고 본다 하더라도 육안肉眼으로 알 수 없는 그러한 알갱이 그런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실은 물질이 아니란 말입니다. 공간성이 없고 전기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물질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재 물리학은 모든 물질은 본래로 에너지energy다. 에너지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적당히 자기 운동을 해서 결합여하에 따라서 이것되고 저것되고 한다 말입니다. 에너지의 순수 에너지, 순수한 상태가 바로,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여불성과 에너지와 대견對見(대비해서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만 싫어할 필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질이 아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그러한 생명체 우주의 정기精氣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여불성이란 말입니다. 물질이 아닌 것이, 물질이 아닌 정기가 어떻게 모아서 상相을 나툰다 하더라도 그건 상에 불과한 것이지, 실존實存이 될 수가 없다 말입니다. 물질이 아닌 에너지가, 에너지가 빙빙 돌고 결합되고 해 가지고서 나같은 모양도 하고 너같은 모양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이 텅 비어있는 본래 생명자체자리, 우주의 정正(바른) 그 자리를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런 성품性品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착着(집착)할 수가 없지만 그런 성품을 못 보고, 상相만 볼 수밖에 없는 중생, 탐욕심貪, 분노하는 마음瞋, 어리석은 마음癡 삼독심三毒心에 가려있는 중생들의 안목에서는 본 성품을 못 본다 말입니다. 또는 물리학자도 본 성품은 절대로 못 보는 것입니다. 물리학자가 모든 것은 다 비어 버려서, 종당에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에너지가 바로 물질이고 물질이 바로 에너지다, 색즉공色卽空이요, 공즉색空卽色이다. 이렇게는 짐작을 합니다. 그러면은 에너지 자체, 물질이 아닌 우주의 성품性品, 정기精氣 자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자는 모르는 것입니다. 과학자는 왜 모르는 것인가? 과학자는 성자聖者가 아닌, 성인聖人이 아닌 삼독심三毒心을 미처 못 여의는 중생이란 말입니다.
중생이 아는 것은 시간, 공간성 물질 밖에는 모릅니다. 중생은 상相밖에는 못 보는 것입니다. 상相을 떠나서 정말로 우주의 본 성품性品을 견성見性한 성자만이 비로소 '나'나 '너'나 일체존재의 근본 생명을 본다 말입니다. 0을 제로zero를 몇 십 번 곱하고 보태고 한다 하더라도 0은 0 아닙니까. ( 0 * 0 = 0, 0 + 0 = 0 ) 수학적인 동기가 0을 어떻게 곱하나 나누나 0은 0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전자가 되고, 양자(양성자)가 되고, 중성자가 되고, 탄소가 되고, 수소가 되고 말입니다. 이렇게 세포화된 내 몸뚱아리가 되었다 하더라도 에너지는 에너지가 모아서 모양만 낸 것이지, 실존적인 내가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이런 도리를 우리 중생이 알기는 너무나 허망한 것이지요. 그렇게 아끼고, 잘 먹고 잘 느끼려고 애쓰고, 잘 높이려고 애쓰고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생저양심異生羝羊心이라, 이생 다를 이異자, 날 생生자, 우리 중생들은 달리만 볼려고 애쓴다 말입니다.<십주심十住心>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성품性品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인데 모두가 다,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 하나란 말입니다. 성자 법문은 모두가 하나입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자타시비自他是非 이것이 있을 수가 없다 말입니다. 자연하고 나하고나. 그런데 중생들은 이생異生이라, 다를 이異자, 날 생生자, 다르게만 본다 말입니다. 상相밖에는 못 보기 때문에. 상相밖에는 못 보니까 저양羝羊이라, 수컷 저羝자, 양 양羊자 말입니다. 그저 먹는 것, 이성 사귀는 것 말입니다. 본능 가지고 사는 양羊이란 놈이 그렇게 되듯이 우리 중생들이 상相만 본다고 생각할 때는 본 성품을 공부한 우리 스님네사 그러겠습니까만 본 성품을 꿈에도 못 보고 꿈에 듣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생저양심異生羝羊心이라, 양羊이란 놈이 그 먹을 것이나 이제 탐내고 말입니다. 수컷이 암컷 탐내고 하듯이 그것 밖에는 모른다 말입니다.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아니면 우리의 생사生死를 여읠 수가 없습니다!
영가들이시여! 과거에도 그대들의 몸이 없었고, 사람 몸을 받아서 그렇게 잘 살고 못 살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런 때도 그대들의 몸은 참말로 없었습니다. 영가들이시여! 지금 깨닫지 못하고서 다시 사람으로 또는 천상으로 간다 하더라도 영가들의 몸은 여법如法히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인연생因緣生의 법, 인연생 고故, 인연 따라서 잠시간 나온 것은 모두가 다 바로 즉공卽空의 공이란 말입니다. 다만 공(단공但空)이 아니라, 그 공은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이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공부할 때에, 아, 공空만 생각하면 막바 종착(막바지 종착에는) 무기無記에 떨어져서 큰 탈이 아닌가, 이렇게 지레 겁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문의 공 이것은 공(단공但空)이 아니란 말입니다. 공이 아닌 바로 불성佛性이기 때문에 공에 파묻히면 그냥,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적인 허망무상虛妄無常한 것을 여의어 버리면 그 즉시에 바로 참다운 불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극락세계極樂世界는 분명히 존재하는 실존實存의 세계世界입니다. 다른 세계는 다 허망합니다만, 극락세계 가운데도 하품하생下品下生 하품중생下品中生 하품상생下品上生 중품하생中品下生 중품중생中品中生 중품상생中品上生 상품上品가운데도 상품하생上品下生 상품중생上品中生, 이런 세계는 아직 미오未悟요. 참다웁게 깨닫지 못한 세계입니다만, 극락세계의 상품상생上品上生은 바로 화장세계華藏世界입니다. 바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입니다. 이 세계가 이것이 우리가 바로 깨달으면은 그냥 수용하는 세계란 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오늘 (모이신) 사부대중이시여! 십만억 국토가 비록 저 멀리 밖에 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상相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십만억 국토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 가 극락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本 성품性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는 본래本來로 극락세계極樂世界를 지니고 있습니다. 본래가 부처라는 뜻(본래시불本來是佛)이나 본래로 극락세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나 같은 뜻입니다. 현재 우리가 범부의 껍데기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지금 마음은, 마음 이것은 석가모니 마음과 달마스님 마음과 우리 마음과 호리불차毫釐不差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영가들이시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영가들은 몸도 없거니 영가들의 권속도 잠시간 인연 따라서 만나고 헤어지고 한 뜬구름 같은 것이지, 실지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사랑했던 자기 자녀 간도 남편도 아내도 실지로 있지가 않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잘 모르니까 헛것 보고서 울고 웃고 합니다. 어느 것도 우리가 심정心情을 부릴만한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극락세계極樂世界에서 훤히 본다고 생각할 때 우리 중생들이 괴로운 것이 얼마나 안타깝기 짝이 없겠습니까. 있지도 않은 것을, 사슴이란 놈이 목마를 때는 저 아지랑이 보고서 물이라고 쫓아간다 말입니다. 가보면 무엇이 있습니까. 어리석은 개란 놈이 호숫가에서 지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는데 지 그림자인 줄은 모르고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멍멍 짖는다 말입니다. 멍멍 짖으면 또 물속에서도 이제 그 도전하는 모습이 보이겠지요. 그래서 종당에 가서 거기에 싸우기 위해서 빠져서 죽고 만다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대권大權 가지고 싸우나 또는 뭣으로 싸우나 그와 똑같습니다. 허상虛相 가지고서 허무한 환상으로 삼는다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철저한 철학적이고 과학적입니다. 부처님 가르침같이 철저한 과학이 없고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철학이 없습니다.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 본바탕은 무엇인가?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명확히 밝힌 것은 부처님 가르침뿐입니다. 지금 실존철학實存哲學도 무던히 했습니다만 실존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 우주의 실상實相은 무엇인가? 우주의 실상, 중도실상中道實相은 부처님 가르침 아니고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영가들이시여! 오늘 영가들은 주로 무구청정無垢淸淨한 운문사雲門寺에서 공부한 영가들이 축하해 줄 것입니다. 영가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본래 없는 몸, 본래 없는 번뇌煩惱, 내 몸도 없거니 따라서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내 몸도 없고, 우리가 느끼는 감상이나 또는 감수나 상상이나 또는 분별 이런 것도 원래 없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제법공諸法空 아닙니까. 제법공을 느낀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중생들은 물 밖에 난 고기나 똑같습니다. 물 밖에서는 고기가 푸덕거리다가 나중에 이제 아, 힘이 다하면 죽어버리겠지요. 우리 중생은 그와 똑같습니다. 중세기에 200년 동안 십자군원정(1095~1291)이나 말입니다. 74년 동안 소비에트 볼세비키(1917~1991) 사회나 말입니다. 1917년 10월 혁명을 일으켜서 볼세비키 혁명 뒤에 74년간이나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압제하고 그 결과가 무엇이 남습니까? 허상虛相을 가지고 허망虛妄한 상相을 가지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했다 말입니다. 중생들이 이루어진 이데올로기 이런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한 망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명신불지明信佛智라! 우리 불자님들은 분명히 부처님 말씀을 조금도 에누리 없이 믿어야 한다 말입니다.
우리는 본래로 행복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원수는 딴 데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을 가르켜서 원적怨敵이라, 원적이라 말입니다. 원망할 원怨자 도적 적敵자, 도적놈은 결국은 자기 몸이란 말입니다 그 도적놈 때문에 속아 가지고서 별짓 다한다 말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 먹여봐도 아무런 보답도 없습니다. 많이 먹으면 먹은만치 배신한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음식도, 거기다 비구, 비구니 분들은 따로 지금 (계를) 받으신 분들 아닙니까.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일종一種입니다. 삼세제불은 일종을 위(위주)한다 말입니다. 또 비구 비구니 때나 일종을 위주합니다. 그러지 않으니깐 아침에 또 그냥 조죽朝粥(아침 죽)이나 먹습니다만, 우리 몸뚱아리라는 것은 그렇게 물질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운문사 강원의) 학장님은 잘 알으시니깐 그야말로 참 불법佛法의 보살이십니다만,
기세경起世經이라, 기세경 보면 인간이 태어날 때의 모습이 있다 말입니다. 광음천光音天에서 맨 처음으로 인간이 나올 때는 그때는 이제 비행자재飛行自在라, 몸이 광명光明입니다. 몸이. 몸이 광명이기 때문에 비행도 마음대로 하고, 석벽무애石壁無碍라. 돌(석벽)이나 산이나 마음대로 갔다 와진다 말입니다. 몇 만리도 갖다가 벌써 하면 순식간에 자기 마음대로 가버린다 말입니다. 겁초劫初에는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몸은 광명으로 빛나고 그럼 몸이지만 미처 번뇌煩惱의 습기習氣를 아직 못 여의었다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삼계三界를 못 떠나 있다 말입니다. 삼계를 못 떠나 있기 때문에 아我라는 관념, 자기라는 관념을 못 떠난다 말입니다. 또는 좋다 궂다 그런 관념도 못 떠난다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겁초劫初에, 이 지구가 구성되고 해 가지고서 지구에 내려온 그런 광명신光明身인 그런 존재들이 고기식물(온갖 음식, 지미 지피 등) 이것저것 찍어먹어 맛 보고서 찍어먹어 맛 보니까, 그 맛을 보니깐 더욱 많이 먹고 말입니다. 그렇게 먹다보니깐 차근차근 몸에 있는 광명도 쓸려간다 말입니다. 그러다가 몸에 무게가 생기고 또 먹으니까 배설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되어서 남녀의 구분이 되고, 뭐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먹으면 먹은만치 이제 우리 몸뚱아리가 그때는 오염이 되어요. 그것이. 몸뚱아리가. 그래서 우리 승가僧伽에서 될수록 적게 먹고 하라는 것도 그거란 말입니다. 여담으로 흘러갔습니다만, 그만치 우리 몸뚱아리를 제아무리 아끼고 잘 입어봐도 이것은 아무런 거기에 따르는 참다운 행복은 그렇게 해서는 안 나옵니다.
영가들이시여! 마음을 열고 허상虛相만 떠나면 영가들의 앞에는 저 극락세계極樂世界, 광명세계光明世界, 극락세계는 바로 광명정토光明淨土입니다. 저 십만 억 국토 밖에 있는 극락세계만 광명정토가 아니라 이 자리 이대로 광명정토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우리 불자님들이 모두가 다 지금 광명光明 몸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삼독심三毒心에 가려서 오욕삼독五欲三毒에 가려서 겉만 보니까, 겉만 보니까 김가로 보이고 박가로 보이고 할 뿐이란 말입니다.
영가들이시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 불자님들이시여! 마음을 열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반야般若의 눈으로 먼저 봐 놓고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이지, 반야의 눈으로 안 보고서 본래 '나'도 '너'도 원래 있다, 이렇게 상相이 있다고 실존적으로 긍정할 때는 빡빡하고 공부가 안 됩니다. 참선 할 때에 '이뭣고' 선禪이라, 시삼마是甚麽화두라 말입니다. 시삼마화두라, 시삼마화두는 무엇 때문에 드는 것인가? 나한테 한 물건이 있으되 검기는 칠보다 검고, 밝기는 해와 달보다 밝고, 하늘을 받치고 땅을 괴고 그런 것이 항시(항상) '나'와 더불어 같이 있지만 내가 미처 모르는, 내가 거두어 얻지 못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따라서 내내야 이제 우주의 본 성품性品이 무엇인가?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가? 그거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견성오도見性悟道 해서 증證할려면 그때는 쉽지가 않다 말입니다. 분명히 쉽지가 않습니다. 단박에 되어 버리는 분도 있겠지만, 오랜동안 혜慧(지혜)와 공덕功德을 많이 닦아야 한다 말입니다. 남한테 베푸는 것도 공덕이오, 부처님 불사佛事하는 것도 공덕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남한테 베풀면은 베푸는 순간, 그 순간 우리 업장業障은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왕 베푼다 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상相 없이 베풀면 그때는 훨씬 공덕이 크단 말입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베푸는 '나'도 받는 저 사람도 내가 주는 물건도 본래 다 공空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베풀면 그때는 청정보시淸淨布施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공功(공덕)도 쌓고 또는 참선參禪, 염불念佛도 많이 하고, 저는 어디 가나 우리 불자님들한테 질문을 받습니다마는 참선은 참선이 따로 있고 염불은 염불 따로 있다. 참선은 저 근기根機가 수승한 사람이 하고, 염불은 하근기下根機가 한다. 이렇게 비교를 말한다 말입니다. 부처님 법문은 그런 고하高下(높고 낮음)가 없습니다. 고하가! 다만 우리 마음 소재가 마음을 어따(어디에) 두고 할 것인가. 마음을 방편方便에 두고 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때는 참선이 못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확 열어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반야사상般若思想, 반야의 도리를 마음에다 안 여의고 공부한다고 생각할 때는 이것도 저것도 다 선禪이란 말입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보면 '나의 법은 본체本體를 안 여읜다' <오소설법吾所說法 불리자성不離自性> 참선하는 법은 본체를 안 여읜다 말입니다. 본체는 무엇인가? 본체는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자취도 없지만은 바로 그것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제법공諸法空자리라, 진공묘유眞空妙有란 말입니다. 그 자리에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 염불을 하면 바로 염불선念佛禪이고, 화두 하면 그때는 화두선話頭禪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잠자코 화두도 않고 염불도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을 그 자리에다가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에다가 못 박아놓고서 가만히 명상하면 그때는 묵조선黙照禪입니다. 천수경千手經을 외이면 그때는 바로 그것이 천수경선千手經禪이란 말입니다.
부처님 법은 이법 저법 본래가 따로 있지가 않다 말입니다. '나'라는 아상我相 그것도 역시 아집我執도 무겁지만 그와 못지않게시리 법집法執이라, 내가 하는 식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 요즘 법화경法華經 본 사람들이 법화경 보면은 법화경만이 최상이다. 법화경은 팔만법문의 결론이다. 이래서 법화경만 주로 한 사람들, 법화종法華宗을 이것 저것 많이 세운다 말입니다. 일본 일련종 창가학회 모두가 다 법화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경전은 법화경만 세운(말씀하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초기에 말씀하신 그런 부처님 육성 같은 아함경阿含經이나 또는 반야경般若經이나 화엄경華嚴經이나 모두가 다 약간의 방편설方便說은 곁들여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 법문은 어떤 경전이나 방편과 진실이 아울러 있습니다.
거위鵝란 놈이 물에 가서 우유가 붙어있으면 우유만 딱 찍어먹고서는 물만 남겨두기만 합니다.<조정사원祖庭事苑 권5> 우리는 부처님 경전을 볼 때도 방편을 걸러 버리고서 핵심만 진실만 취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구분도 못하고서 거기에 막혀(얽매여) 들어가면 법화경에 막혀(얽매여) 들어가도 참다운 부처님 법을 모르는 것이고, 화엄경에 먹혀도(압도당해도) 그것의 참다운 불법을 모른다 말입니다. 자기 법집法執이라. 우리 마음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석가와 달마와 서산과 더불어서 조금도 흠축欠縮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또는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 우리한테는 명료하니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전이 되나 모두가 다 그 자리에서 부처님 말씀이 이래저래 조금씩 방편이 바뀌고 하신 것이지, 근본적으로 옳고 그르고 차이가 있지가 않다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떠나버려야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공부를 해야 화두를 들어도 상기上氣가 안 된다 말입니다. 내 몸뚱아리 꼭 이대로 따로 있고 저거 따로 있고 말입니다. 화두가 별도 있고 뭐 따로 있고 이렇게 분별시비分別是非하면서 참선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화두가 잘 훈습熏習이 안 됩니다. 공부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공부를 많이 하셔서 제가 새삼 차주어(부족한 것을 채워) 갈 필요는 없지만 부처님 법문은 팔정도八正道, 사실 팔정도에가 다 들어 있단 말입니다. 팔정도 뒤에 있는 칠각지七覺支라, 칠각지 법문을 보면 이것은 정혜쌍수定慧雙修란 말입니다. 정혜쌍수라. 우리 마음을 정定과 혜慧가 균등均等 되어가는 그런 섞여 있다 말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마음을 일으키고慧, 마음이 들뜨면 (마음을) 가라앉힌다定 말입니다. <칠각지>
본래 부처인지라, 가만히 부처님 자리를 지켜보고 있어도 좋습니다. 또는 본래 부처인지라, 부처님의 대명사인 관음보살觀音菩薩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외워도 좋습니다. 또는 제일의제第一義諦 본체를 보는 것이 화두인지라, 화두를 참구參究해도 좋습니다. 더 나아가서 더러는 화두를 참구하고 더러는 염불도 하고, 더러는 주문도 하고 더러는 가만히 속으로 명상도 하고 그래도 무방합니다. 다만 문제는, 문제는 본체성本體性을 안 여의면 된다 말입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가 원융무애圓融無礙한 만덕萬德을 갖춘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만덕을 한 말씀으로, 한 개념으로 표현을 못 하니까 진여불성 자리를 자비로운 면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관음보살, 또는 지혜로운 면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문수보살 대세지보살, 우리 중생의 영혼을 영가를 극락세계極樂世界나 인도환생人道還生이나 제도하는 그런 면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지장보살 우리 중생의 병고를 다스리는 그런 쪽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 약사여래. 이런 것이지, 이 부처 저 부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불교가 다신교多神敎라, 다신교라.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원융무애圓融無碍라! 원융무애라. 부처가 여기 있고 저기 있고 아니고 부처가 어디가 있고 공덕이 다른 것이 더 있고, 없고 하지 않다 말입니다. 일미평등一味平等 일여평등一如平等한 부처님은 바로 우주입니다. 우주자체. 그런 자리를 우리는 온전히 갖추어 있습니다. 우리만 갖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도 다 갖추어 있습니다.
영가들이여! 극락세계極樂世界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마음을 버리고 허상虛相을 버리고서 분별시비分別是非하는 그런 중생심衆生心을 버리고서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영가들한테는 극락세계의 장엄찬란莊嚴燦爛한 못(연못)도 팔공덕수八功德水라. 팔공덕수에 빛나 있는 것이고, 극락세계의 (땅과) 숲도 칠보장엄七寶莊嚴이라. 광명光明으로 빛나 있습니다. 극락세계는 무수한 성자가 모여서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이라. 부처님 법만 주야육시晝夜六時로 하고 있습니다. 극락세계의 새들도 공명조共命鳥, 가릉빈가迦陵頻伽 그런 새도 역시 모두가 다 부처님 법을 찬탄하고 찬미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의 본체, 우주 생명의 본체인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바로 훤히 밝은 광명光明입니다. 빛이란 말입니다. 현대물리학도 양자(양성자)나 전자나 중성자나 모두가 다 빛의 진동입니다. 현대물리학도 우주의 근원에는, 이른바 장場에너지(양자장론)라. 우주에는 훤히 빛나는 광자光子 광명光明만 충만해 있다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못 보는 것이지, 현대물리학도 우주의 근본에는 공간이나 어디나 말입니다. 모두가 다 광명으로 빛나 있는 것입니다. 광명 충만한 것입니다. 참선을 많이 하고, 염불을 많이 해서 우리 마음이 차근차근 삼독심三毒心이 희박해지면, 진 만큼 그런 광명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어떠한 경우도 서러워할 것도 없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본래로 완벽히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 자리를 분명히 믿는 것이 이것이 참다운 신앙입니다.
천지 우주가 일여평등一如平等한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다. 불가사의해탈법문不可思議解脫法門이라. <유마경維摩經> 모두가 다 어느 곳 어느 처소, 조그마한 티끝이나 모두가 다 부사의不思議, 불가사의해탈법문으로 충만해 있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터럭 끝 하나(한 올의 털, 일모一毛 )에도, 그 높고 넓은 수미산須彌山이 다 들어간다 말입니다. 한 방울의 물가운데도 사대(사대주四大洲)의 물이 다 들어간다 말입니다. <유마경維摩經 부사의품不思議品> 이런 소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히말라야 산이 어떻게 갖다가 하나의 조그마한 데(일모에) 들어갈 것인가? 히말라야 산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 덩어리나 수미산須彌山 모두가 다 터럭 구멍에 들어간다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성품세계性品世界에서는 작다 크다, 짧다 길다 하는 그런 상대相對 아닌, 상대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세계이니까 들어가고 안 들어갈 것도 없이, 모두가 다 조금도 차이가 없이 평등한 불성자리이기 때문에 산이요, 냇이요, 우주요, 태양이고 모두가 다 본래로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불이不二>
여기 지금 거의 한 300명 가까이 수數가 모여 계십니다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우리 중생의 눈으로 봐서는 다 뿔뿔이 입니다. 그러나 성품性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지금 다 불성佛性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공간에 탄소나 수소나 그런 것이 없는 공간이 있습니까. 탄소나 수소와 그런 것들도 역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것들도 역시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되었단 말입니다. 내 몸도 진여불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공간도 진여불성인 것이고 하니, 우리는 지금 모두가 다 진여불성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란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자비심을 내야 동체대비同體大悲입니다. 따라서 만물은 뿌리가 같고 본래로 같단 말입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라.>
공부해서 우리 번뇌煩惱가 녹아지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의 본래로 있는 광명光明을 느끼고 본다고 생각할 적에 우리는 분명히, 분명히 참말로 신심信心이 나는 것입니다. 설사 우리 몸이 조금 머리가 아프다, 또는 가슴이 답답하다. 이런 때도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기도를 모시고 또는 화두를 참구하고 이렇게 해서 닦여지면 그때는 닦여져서 정말로 광명이 눈앞에 훤히 보인다고 생각할 때는, 광명光明하고 하나가 되면 그때는 참다운 견성見性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못 되고 순간찰나만 본다 해도 역시 웬만한 아픈 것은 싹 물러가고 맙니다. 그렇게만 돼도 이 몸뚱아리, 부처님 법을 위해서 이 하찮은 몸뚱아리 몇 천 개 바쳐도 무방하다 그런 마음이 나온단 말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그렁저렁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무던히 닦아서 그래도 오계五戒를 지켜서 사람으로 태어났다 말입니다. 하필이면 54억 인총人總 가운데서 우리가 불교를 믿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절대로 산승山僧이 아려진(지어낸) 그런 말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우주의 실상實相을 바로 우리한테 가르친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하필이면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말입니다.
우리는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꼭 부처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금생今生에는 괴로우니까 기왕이면 내생來生가서 인제 보다 더 총명하고 좋은 몸 받아서 (공부하면) 되지 않겠는가. 상당히 저하고 (같이) 한 도반 한 분도 아, 몇십 년 동안 참선한 분인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금생에 무던히 지금 수도修道하고 있는데, 자기 몸 바꾸워서 공부해야 하겠다고 이런 분도 있습니다. 나이 좀 먹었다고 그래서 그런 것이, 그런 껍데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불구부정不垢不淨하고 불노불사不老不死라.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음인데 말입니다. 껍데기 좀 그렇게 오랫동안 늙은이 됐다고 그래서 그렇게 힘이 없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삼매三昧에 들면 삼매 가운데는 자기 수명도 연장을 시킨다 말입니다.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하는 것인데, 하물며 늙고 젊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따라서 금생에 한번 (마음) 먹었으면 엎어지나 자빠지나 성불成佛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가 다 장난인 것입니다. 결혼도 장난, 뭣도 장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가톨릭)도 역시 수녀나 신부나 그렇게 많고 우리 불교도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재가불자님들을 제가 폄하하는 그런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튼 원칙적인 걸로 해서는 재가불자라 하더라도 내외간이 동기가 돼서 자기가 낳은 어린애까지 다 도반이 되어서 말입니다. 부처님 법으로 더불어서 성불의 길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경우는 사실은 금생에 태어난 보람이 없단 말입니다. 우리 행복되기 참 쉽습니다. 행복되기. 부처가 되기 전에는 참다운 행복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처한테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진만큼 행복도 거기에 비례해서 더 많단 말입니다. 한 걸음 가까이 가면 한 걸음만이 그때는 우리 행복도 더해지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이 또는 자기 길을 모르고서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광촉光觸이라, 우리는 진여불성眞如佛性 광명을 접촉하는 빛 광光자 접촉할 촉觸자 말입니다. 광촉이라. 광촉光觸만은 꼭 맛보셔야 합니다. 광촉이라 말입니다. 본래 있는 그런 광명光明, 어느 보배보다도 어느 감투보다도 더 큰 광명, 그런 부처님, 내 생명의 광명은 대권大權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는 스님네 보고 대통령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그 광촉光觸, 우리 생명 내 생명 말입니다. 내 생명. 그놈을 얻어야 그래야 참다운 자기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까지는 미처 못 간다 하더라도 그런 광명을 순간 동안 접촉을 해야 한다 말입니다. 접촉을. 그러면은 그냥 걸망에다가 약봉지 넣어 가지고 갔다 왔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산승山僧 같은 사람도 승려가 된 지 46년인데, 한 번도 약 한 번도 안 먹어 봤다 말입니다. 아파서 누운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별로 신통히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부처님 법에 따르면은 따른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몸은 허상虛相이고 마음이 그때는 실제實際란 말입니다. 실제가 좋거니 허상 그것이 실제에 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용단勇斷을 가져야 합니다.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 말마따나 '철학哲學은 결단을 요要한다.' 철학은 매서운 결단을 요합니다. 본 성품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매서운 결단을 있어야지 상相을 여의는 결단이 없으면 공부를 못한다 말입니다. 상相을 여의면 여읜만큼 몸도 마음도 가벼운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남들 숭배하고 말입니다.
또는 우리 눈에는 안 보인다 하더라도 무수한 신장神將이 많이 있다 말입니다. 이 자리에는 무수한 신장들이 여기 와서 지금 듣고 있습니다. 그런 신장들이 우리가 청정淸淨한 계행戒行을 지키고 바로 나간다고 생각할 때는 신장들은 저급한 신장은 우리 마음까지는 못 봐도 고급한 신장은 다 우리 마음을 본다 말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행동 하나하나 모두가 다 지금 철갑 속에 들어있다 하더라도 신장은 본다 말입니다. 숨어서 우리가 그렁저렁 살 수가 없습니다. 행복되기 참 쉽습니다. 부처가 되기 참 쉽습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가 이렇게 혼돈무비混沌無比하게 한다 하더라도 사바세계를 구제하는 길도 부처님 가르침 이외에는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우주가 바로 부처님이거니, 우주의 부처님, 우주 부처님, 바로 법신불法身佛, 법신불은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우리 중생을 성불成佛하고자 해서 지금 이끌고 있다 말입니다. 본원本願이라, 부처님은 나무를 통해서는 뭘 통해서나 나무나 뭐나 다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님 기운氣運이 산에 가 있으면 산신이고, 물에 가 있으면 용왕이란 말입니다. 부처님은 사홍서원四弘誓願(본원本願)으로 무량서원無量誓願으로 우리 중생을 성불成佛로 이끄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괜시리 도전하고서 우리가 반발한단 말입니다. (부처님의 무량서원을) 따라가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계행戒行 지키고 참선參禪하고 염불念佛하는 것은 우리가 우주의 섭리攝理에 따르는 것입니다. 우주의 섭리에 따르면 참 편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불하기 쉬운, 극락세계에 가기 쉬운 말입니다. 고민할 필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 열어버리면, 그 아집我執, 있지 않은 그런 아집 말입니다. 또는 있지 않은 법집法執, 고놈 열어버리면, 영가들이시여! 아집我執 법집法執만 열어버리면 극락세계極樂世界는 훤히 빛납니다. 훤히 빛나는 극락세계에 부디 왕생극락往生極樂하소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 19920711 청화큰스님 청도 운문사 천도재 대법회 법문

첫댓글 큰스님께서 1992년 청도 운문사에서 설하신 보배로운 법문으로 오세암 법문, 심원사 법문과 더불어 이제까지 전체말씀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위의 텍스트는 참고를 하시면서, 아침에 업로드 하는 영상법문을 통해서 큰스님의 사자후를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근념하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