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 여년 전,
흑석동 고개를 넘어서 다니던 시내버스에선 TV 인기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그 구미호를 봤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승객들의 입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그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나라에서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조기 귀가를 발표했고 곧이어 버스 승강장은
빨강색 파랑색 표지판이 한 정거장 건너로 세워지고 버스에 새겨진 번호판도 빨강색과 파랑색으로 구분하도록 했다.
그리곤, 빨강색 번호판을 단 버스는 빨강색 표지판이 세워진 정거장에, 파랑색 번호판을 단 버스는 파랑색 표지판이
세워진 정거장에서 승객들을 태워 빠르고 신속하게 귀가를 하도록 조치하기에 이르렀다.
그 조치가 내려지자 사람들은 저만치서 달려오는 버스가 파랑색이면 빨강색 표지판 앞에 서 있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달려가 탔고, 빨강색 버스가 올 때는 파랑색 표지판 앞의 사람들까지 달려가 타려는 바람에
정거장 이곳 저곳에서 한바탕씩 아우성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빨강색, 파랑색 정거장 어느 곳에도 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모여있다가
먼저 오는 버스를 서로 타려고 밀치고 쑤셔대고 끌어내리고...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서 있던 작은 여자 아이 하나.
작은 마음 한가득 구미호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다 파랑버스, 빨강버스 모두 놓치고
그곳에 서 있기를 한참을 하다가 퉁퉁 부은 다리 끌고 집으로 향할 때는 하늘의 별이 총총한 한밤중이곤 했다.
그로부터 20 여년 후,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해결하는 세상에서도 구미호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사람들은 자신의 신상에 관한 정보 입력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담당자의 책상 앞에 줄도 없이 몰려들어
서로 밀치며 자신의 것부터 디미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컴퓨터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이라 그 컴퓨터 관리자조차 그 앞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달리
어쩌지 못하고 있음만 다를 뿐... 그야말로 컴퓨터가 지옥의 신神 이었다.
그 와중에 서 있던 작은 여자 하나.
작은 마음 한가득 구미호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 이리 저리 쏠리기를 멈추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아우성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리곤 조용히 관리자 앞에 자신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내려놓고
' 이제야 조용하군요.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검토할 수도 있고 좋은데요. 자, 내 것좀 봐 주세요.' 라고 말을 걸었다.
잠시 작은 여자를 쳐다보던 그 관리자가 다 안다는 듯이 대답을 던지며 여자가 내민 정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 그려~ 넌 역시 구미호여~~ "
짜~아~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첫댓글 구미호두 구미호 나름이네요. 이쁜 구미호님.
이거,,, 곱씹어보면 무지 무서운 이야긴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