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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연애] 01
1. 산 속 / 밤 (7년 전)
어둡고, 춥고, 황량한 겨울 산.
둘둘 말린 카펫을 어깨에 지고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정신이 빠진 듯 아무 곳이나 발을 막 디뎌 넘어질 듯 위태롭게 휘청인다.
남자, 지나간 자리 ‘산불방지강조기간 2005년 2월 25일 ~ 4월 15일’ 플랜카드 보인다.
툭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듯 떨어지는 카펫.
미친 듯 중얼대는 소리를 배경으로,
카펫 옆을 경황없이 돌아다니는 남자의 흙 묻은 신발을 따라가다 보면,
벌어진 카펫 틈으로 시체인 듯한 실루엣 비치는데,
잠시 후, 그 실루엣에서 훅… 하얀 김이 쏟아진다.
우뚝 멈춰서는 남자의 발.
마른 바람 불고, 당황해 불규칙적으로 몰아쉬는 남자의 숨소리만 점점 더 커진다.
덜덜 떨며 돌을 집어 번쩍 들어 올린 남자의 손. 암전.
2. 성당 _ 고백실 / 새벽 (이하 현재)
어두운 화면.
김윤혜 : … 없어요.
화면 밝아지면, 작고 소박한 고백실, 윤혜, 미사포 쓰고 단정히 앉아 있다.
신부님 : (격자 창 사이로 빠끔 내다보며,) 진짜?
김윤혜 : 네.
신부님 : (사람 좋게 웃으며,) 올 때마다 고백할 죄가 없으면 난 뭐하라구?
김윤혜 : … (희미한 미소)
신부님 : 활짝 좀 웃어라, 죄지은 거 없단 놈이 표정은 왜 늘 그 모냥이야.
윤혜, 멋쩍은 듯 이마를 쓰다듬는다.
3. 성당 앞 / 새벽
가로등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고, 사방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다.
자전거 끌고 나가던 윤혜, 뒤돌아 성당의 십자가를 한 번 본다.
4. 윤혜 집 _ 안방 / 아침
반질반질 잘 쓸고 닦은 방 안, 아침인데도 어두워 형광등이 켜져 있다.
거울 앞에서 눈부시게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 윤혜, 단추 잠그다
단춧구멍 있는 깃 안쪽에 묻은 작은 얼룩 보이자 인상을 살짝 쓴다.
일단 단추를 잠그자 깃 안쪽 얼룩 가려져 잘 안 보인다.
윤혜, 재킷을 입으려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셔츠 단추를 풀고는 얼룩을 보더니,
결국 다른 새하얀 셔츠를 꺼내 갈아입는다.
5. 동네 골목 / 아침
지저분하게 언 눈이 듬성듬성 보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깔끔하게 묶은 윤혜, 꼿꼿이 자전거 타고 내려온다.
윤혜, 저 너머에 시선 꽂히고, 살짝 언짢은 표정 스친다.
시선 따라가 보면, 할머니, 한 쪽 다리를 절룩이면서 흙 담긴 포대를 끌고 다니며
골목 구석 얼음 언 곳 위에 맨손으로 흙을 뿌리고 있다.
윤혜, 신경질적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못마땅하게 쳐다보는데.
(단독주택) 문 열고 나온 대웅 엄마, 막 일어나 부스스하니 가운만 겨우 걸쳤다.
우유 주머니에서 우유 꺼내다 집 앞에 흙 뿌리는 할머니 보더니 질색하며,
대웅 엄마 : (손까지 내저으며,) 아유, 여긴 됐어요, 아침부터 너저분하게.
할머니 : (눈도 못 마주치고,) … 미끄러질까 봐.
대웅 엄마 : 미끄러지든 자빠지든 신경 끄시고, 암튼 우리 집 앞은 오지 마셔.
(돌아 들어가면서 혼잣말) 남 생각할 처진가, 누가 반가워한다고.
대웅 엄마, 들어가고,
자전거 끌고 조만치 다가온 윤혜, 뭔가 한마디 하려다 말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그냥 페달을 밟는다.
윤혜, 할머니를 쳐다도 안 보고 스쳐 가면,
할머니,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에 허리를 펴더니, 저만치 가는 윤혜 뒷모습을 보며 한숨처럼 ‘관셈보살’ 하고 중얼거린다.
6. (전주시) 관광 안내소 앞 / 아침
게시판에 붙은 게시물들 몇 펄럭거리고,
자전거 세운 윤혜,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며 문 앞으로 간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윤혜.
7. 관광 안내소 / 아침
윤혜, 젖은 걸레와 마른 걸레를 양손에 들고 여기저기 닦는다.
젖은 걸레로 먼저 닦고 바로 마른 걸레로 그 위를 꼼꼼하게 다시 닦는다.
8. 관광 안내소 _ 탕비실 / 아침
컵에 녹차 팩 담아 들고 들어온 윤혜, 싱크대에 놓인 컵들 본다.
윤혜, 그 컵들을 빤히 보다 녹차 컵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든다.
싱크대 위쪽 문에 ‘사용한 컵은 각자 씻습니다.’ 적힌 오래된 공지 메모 보더니,
잠깐 망설이다 고무장갑을 도로 내려놓고 녹차 컵 들고 돌아서 정수기 물 받는다.
9. 관광 안내소 / 아침
윤혜, 녹차 마시면, 오 계장 들어온다.
윤혜, 광미, 미진, ‘오셨어요.’ 인사하면, 오 계장, 대충 고개 끄덕여 인사 받더니,
오 계장 : 미스 김, 밖에 저 게시판, (아차, 싶은 표정이더니, 얼른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게시판 좀 정리하지,
너덜너덜 아주 보기가 그러네.
예쁘장한 미진(여, 20대 후반), 자기 일 아니라는 듯 딴청 인데,
유광미 : (윤혜 눈치 살피며 바로 일어나) 예, 제가 //
김윤혜 : (벌떡 일어나며,) 아뇨, 제가 해요.
윤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억지 미소 보이고는 커다란 스테이플러 들고 나간다.
10. 관광 안내소 앞 / 아침
탕, 탕, 스테이플러로 너덜대는 게시물들 고정시키는 윤혜.
스테이플러 든 채 마지막 남은 낡은 게시물 하나를 손으로 쓰다듬어 편편하게 하는데,
오 계장 다가와 스테이플러를 쓱 뺏는다.
오 계장 : 뭘 직접하구 그래, 사람 맘 불편하게. (윤혜 자리 뺏는다.)
김윤혜 : (밀려나며,) 괜찮은데…
오 계장 : 괜찮긴. (탕, 탕, 박으며, 부드럽게) 근데… 아무래도 어렵겠어. 위에서 영 내켜하질 않으시네.
김윤혜 : … (땅만 본다.)
오 계장 : 내가 다른 자리 얼른 알아볼 테니까, 여긴 정리하자. 오늘까지만 나오는 걸로 하고, 응?
김윤혜 : … (여전히 땅만 본다.)
오 계장 : 이번 달 수당에 위로금 조로 쫌 더 들어갈 거니까 너무 섭섭해 말고.
김윤혜 : (작지만 또박또박) 계약기간 아직 남았는데요.
오 계장 : (문득) 그지… (막혀하다,) 그… 그니까 부탁! 하는 거잖아.
김윤혜 : …
오 계장 : (금방 반명하듯)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러는 거, 좀 경우가 아닌 건 아는데,
원래 윗사람 바뀌면 자잘한 변동 사항들 생기고 그러는 거 알잖아.
김윤혜 : …
오 계장 : (답답해하며,) 아니 미스 김도 좀 그럴 거 아냐. 문 앞에 (게시물 가리키며) 떡하니 아버지 사진 붙어 있는 거, 안 불편해?
오 계장이 가리키는 게시물 보면, ‘살인 용의자 김주평’ 수배 전단이다.
윤혜, 모멸감에 아랫입술 깨물며 외면하면,
오 계장 : (말이 과했다 싶어 딴청,) 어이 춥다, (뒤돌아 들어가다,) 오늘까지야, 응?
오 계장, 웅크리고 안내소 쪽으로 가면,
윤혜, 수배 전단을 스산한 표정으로 한참 보다가, 맘 추스르고 안내소 쪽으로 간다.
11. 경기전 _ 마당 / 오전
태실 앞,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중년의 관광객들 모여 있고,
그 앞에서 윤혜, 차분하게 설명 중인데, 분위기는 완전 썰렁하다.
김윤혜 : 이 태실은 조선 예종대왕과 관련이 // (있는데요.)
뭔가 시선이 느껴져 문득 말을 멈추고 슬쩍 주변을 둘러보는 윤혜,
불편한 표정으로 사방을 슬쩍슬쩍 경계하며 설명을 이어간다.
김윤혜 : … 있는데요, 이 안에 무엇이 있을까요?
관광객들, 각자 옆 사람들과 소곤소곤 수다 떠느라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김윤혜 : (익숙한 일이라는 듯) 바로 예종대왕의 태가 담긴 항아리가 있습니다.
관광객1(여) : 춥다, 가이드 언니야, 어디 뜨뜻한데 들어가서 밥부터 먹음 안 되까?
김윤혜 :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추우시죠? 얼른 할게요. 여기 보면 //
관광객1(여) : 들었다 치고 가자, 이러다 우리 동태 되겠어.
관광객들, ‘그럽시다, 춥네, 추워.’하며 멋대로 주차장 쪽으로 가면,
김윤혜 : (할 수 없이) 그럼 일단 버스로 가 계세요.
윤혜, 뒤돌아 가는 사람들 머릿수 헤아리는데, 어디선가 찰칵! 소리.
보면, 저 너머 정면에서, 남자(재광), 윤혜 쪽으로 카메라를 대고 찍고 있다.
윤혜, 인상 쓰더니, 남자 쪽으로 간다.
12. 경기전 입구 / 오전
뷰파인더에 비친 바닥에 고인 물 위로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뒷모습이 비친다.
스륵스륵,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막 누르는 순간, 여자의 낡은 단화가 프레임 안으로 쑥 들어온다.
재광,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 들어보면, 윤혜, 서 있다.
재광, 살짝 놀라는데,
김윤혜 : … 나 찍었죠?
한재광 : (당황해 경직된 얼굴로 딴 데 쳐다보며,) 어…
김윤혜 : … (재광의 눈길 따라가 빤히 보면,)
한재광 : (멋쩍게 웃으며,) 어… 그게… (하며, ‘김윤혜’ 이름표 슬쩍 본다.)
김윤혜 : (그 눈길 의식해 불편해 하며) 지워주세요.
한재광 : (둘러대듯) 찍혔나.. 그래두 (손가락 마디 보이며) 요만하게 걸렸을 거예요.
김윤혜 : (단정하게) 고만해도 불편해서요.
한재광 : (쿨하게 무마하듯,) 알았어요, 확인해 보고 혹시 나왔으면 지울게요. (딴청)
김윤혜 : … 지금요.
한재광 : (윤혜 보며,) 아, 지금…
재광, 뭔가 곤란한 듯 곰곰 생각하는데, 빵! 하고 버스 경적이 울린다.
한재광 : (버스 쪽 가리키며,) 부르나 본데…
윤혜, 아랑곳 않고 고집부리며 쳐다보면, 재광, 뭔가 망설이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카메라를 든다.
재광, 좀 허둥대며 카메라를 조작하더니 사진 돌려보는데,
개 뒷모습 찍은 사진 한 장 넘어가자마자 윤혜 얼굴이 크게 잡힌 사진이 나온다.
윤혜, 멈칫 하는 표정으로 사진을 보더니 재광을 본다.
재광, 당황해 얼른 지우는데, 바로 다음 사진도 윤혜를 크게 찍은 사진이다.
얼른 지우면, 또 윤혜를 크게 찍은 사진.
사진을 보던 윤혜, 어이없다는 듯 재광을 빤히 쳐다본다.
한재광 : (민망해, 하… 웃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친절하게 설명하듯), 찍는 사람이 셔터를 막 누를 때는,
이유가 딱 두 가지거든요.
김윤혜 : (미간 살짝 찌푸린다.) …
한재광 : 모델이 너무 훌륭하거나, 너무 아니거나. 그쪽은 전잔 거지, 훌륭한 쪽.
김윤혜 : … (씨알도 안 먹히는 … 표정)
한재광 : (사진 보여주며,) 봐요, 근사하게 나왔잖아요. 진짜 다 지워요? (눈치 보며,) 원하면 보내주고 지울 수도 있는데.
김윤혜 : (단호) 필요 없어요.
윤혜,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 재광, 아쉬운 표정으로 탁! 눌러 마저 지운다.
다 지운 거 확인한 윤혜, 쌀쌀하게 돌아서 간다.
재광, 고거 보통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윤혜 뒷모습 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는다.
한재광 : (윤혜 등 뒤에 대고,) 저기요!
김윤혜 : (돌아보면,) …
한재광 : (활짝 웃으며,) 반가웠어요!
윤혜, 뭔 소리? 하는 표정으로 재광을 쳐다보는데, 주차장 쪽에서 빵빵! 경적 다시 울리자, 얼른 뒤돌아 뛰어간다.
재광, 뛰어가는 윤혜의 뒷모습을 대견한 듯 한참 쳐다보다, 전화 건다.
한재광 : (전화에 대고,) 상아야, 난데, 지금 바로 취재 협조 공문 하나만 넣어주라.
13. 관광 안내소 _ 주차장 / 낮
지저분한 자동차 서 있다.
14. 관광 안내소 주차장 _ 차 안 / 낮
엉망진창인 차 안, 뒷좌석엔 카메라 가방, 산악용 배낭 등이 대충 놓여 있다.
뒤로 젖혀진 운전석에 졸듯이 기대 앉아 있는 재광.
[회상]
경찰서 앞 / 밤 (7년 전)
(경찰서는 안 보이고,) 막막한 표정으로 서서 어딘가 보고 있는 재수생 재광.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가 놀라 쳐다보면,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고등학생 윤혜(18세)의 뒷모습.
e. 띠리릭, 띠리릭 (전화벨 소리)
[현재]
재광, 전화기 액정 보더니, 심드렁하게 받는다.
한재광 : 어… (사이, 일어나 앉으며 시큰둥) 차에 있어, 기다리는 중.
통화 중, 앞 유리 너머로 관광버스 와서 서는 것 보이고, 문 열리면 윤혜만 내린다.
관광버스를 향해 인사하고 돌아서는 윤혜, 안내소 쪽으로 걸어간다.
재광, 그런 윤혜를 눈으로 좇으며 통화 중이다.
한재광 : 시에서 이쪽으로 공문이 아직 안 내려 왔대서. (사이, 마른 얼굴 쓸며,) 밥은 먹었구? (사이) 잘했네.
오 계장 다가와 보조석 창으로 안을 기웃거리듯 들여다본다.
한재광 : (오 계장을 보더니,) 상아야, 일단 끊어야겠다, 내가 다시 할게.
재광, 전화를 얼른 끊더니, 문을 열고 나간다.
15. 관광 안내소 _ 주차장 / 낮
재광, 내리면, 오 계장 얼른 운전석 쪽으로 다가오며,
오 계장 : 안에서 기다리시죠, 왜?
한재광 : 차가 편해서요.
오 계장 : 오래 기다리셨죠. (정중히 명함 내밀며,) 부시장님께 보고하고 이쪽으로 넘기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네요.
재광, 명함 받고는 자신의 지갑 꺼내 명함을 찾는데, 없다.
재광, 좀 당황하며 차 문 열어 차 안을 살짝 뒤지더니, 영수증들 사이에서 구겨진 자신의 명함 꺼내 내민다.
오 계장 : (받아서 보더니,) 아.. (글씨 쓰는 시늉하며,) 이런 작가가 아니라, 사진작가님이시네, 찰칵찰칵. (방긋 웃는다.)
한재광 : … (머쓱한지 딴청.)
16. 관광 안내소 / 낮
재광, 등지고 서서 오 계장, 광미와 얘기 중이다.
오 계장 : 안내는 우리 유광미 씨가… 15년 경력으로 제일 베테랑이십니다.
유광미 : (인사하며,) 잘 부탁드립니다.
한재광 : (시큰둥) 전 뭐 길만 좀 아는 분이면 되는데… (하며 돌아보다 탕비실에서 막 나오는 윤혜를 보더니, 딱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저 분이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오 계장, 광미, 당황하고, 자리에 앉으려다 찍힌 윤혜, 재광을 알아보고 더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17. 관광 안내소 _ 화장실 / 낮
윤혜,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 만지고 있으면, 광미, 칫솔통 들고 들어온다.
윤혜, 광미에게 좀 민망한 표정으로 인사하면서,
유광미 : 괜찮아. 추운데 일 안하면 나야 좋지 뭐. (문득) 혹시 아는 사람이야?
김윤혜 : (펄쩍!) 아뇨.
유광미 : (칫솔에 치약 묻히며,) 근데 뭘 저렇게 딱 찝어 너래, 언제 봤다구?
김윤혜 : 아까 경기전에서 잠깐 마주치긴 했는데…
유광미 : 그럼 그렇지. 팍 꽂힌 거네, 자기한테.
김윤혜 : (그런 말 불편하다는 듯 못 들은 척 하면,) …
유광미 : 이쁘고 볼 일이다, 잘생긴 서울 남자랑 일 핑계로 데이트도 하고.
김윤혜 : (불쾌한 표정 지으며,) 데이트 아니에요.
유광미 : (윤혜 표정 보더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농담!
김윤혜 : (외면하며 나지막이) … 그래도 불쾌… 해요.
유광미 :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알았습니다, 쏘리! 취소!
김윤혜 : … (겨우 표정 추스르면,)
유광미 : (칫솔 물었다 확 빼곤,) 야! 넌 어떻게 일일이, 싫다, 좋다, 맞다, 틀리다 니? 그렇게 따지고 살면 좋냐?
너 그러다 (뒷목 잡으며) 풍 와아!
윤혜, 뚱하니 서 있으면, 광미, 그런 윤혜가 어이없으면서도 이해 돼 ‘으이그, 쯧쯧’ 하고는 칫솔 문다.
18. 관광 안내소 앞 / 낮
윤혜, 나오면, 게시판 앞에서 게시물 보고 있던 재광, 고갤 돌려 윤혜를 본다.
윤혜와 재광 눈이 마주치고, 잠시 부딪히던 서로의 눈길, 재광이 먼저 외면한다.
윤혜, 다가와 어색하게 인사한다.
한재광 : (씩 웃더니,) 또 보네요.
김윤혜 : … 어디부터…
한재광 : (생각하다) 일단 뭐 좀 마시고 하죠.
김윤혜 : (빤히 보면,) …
한재광 : 어떻게? 차타고 가나, 아님?
김윤혜 : 대부분 걸어가면 되는 거린데…
재광, 앞서 가라는 손짓 하면, 윤혜, 앞서 걷고, 재광, 따라간다.
19. 가게 앞 / 낮 가게 앞
간이의자 옆에 윤혜, 서 있다.
재광, 캔 맥주 두 캔을 손에 들고 나와, 윤혜에게 하나 내민다.
윤혜, 고개 가로 저으면, 재광, 싫음 말고 하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간이의자에 털썩 앉더니, 꿀꿀 마신다.
윤혜, 그런 재광을 좀 못마땅한 듯 쳐다본다.
재광, 윤혜 보란 듯 캬… 하는데,
주인, 접힌 빈 종이상자들 들고 나와 가게 옆에 놓는다.
한재광 : (주인 보며,) 죄송한데요, 캔 커피 하나 주세요. (윤혜 보며,) 커피, 하죠?
김윤혜 : (들어가려는 주인 향해,) 그냥 물 한 병 주세요.
한재광 : (윤혜 흘긋 보며) 원래 안 마셔요, 아님 지금 안 마시는 거예요?
김윤혜 : 원래. (가방에서 지갑 꺼내며,)
한재광 : 맥주를? 커피를? (주머니에서 동전 꺼낸다.)
김윤혜 : 둘 다.
주인, 나와 윤혜에게 물병 내밀자, 재광과 윤혜, 동시에 동전을 내미는데,
윤혜, 재광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면, 재광, 얼른 손을 거두고,
윤혜, 오백 원 낸다.
주인 : 육백 원인디.
윤혜, 머쓱해하며 지갑 더 뒤지는데, 그사이 재광, 얼른 100원짜리 낸다.
윤혜, 거의 동시에 만 원짜리 내밀면, 주인, 뚱 하니 윤혜를 보다 그냥 들어간다.
윤혜, 만 원짜리를 재광에게 내밀면, 재광, 윤혜를 빤히 보더니 받는다.
한재광 : 거스름돈은 나중에! (하며 주머니에 넣더니,) 형젠 있어요?
김윤혜 : … (은근 당황스러워 하며, 얼결에,) 없어요.
한재광 : 나도 혼잔데. (맥주 한 모금 마시더니,) 어떻게 살았어요?
김윤혜 : 네?
한재광 : (피식 웃으며,) 질문이 좀 그런가?
김윤혜 : … (정색하며,) 이제 어디로 가실건가요?
한재광 : (대답은 안 하고 맥주 마저 마시고 캔 구기더니,) 어디가 좋아요?
김윤혜 : ?
한재광 : 그쪽이 좋아하는 데부터 갑시다.
김윤혜 : … ?
한재광 : 동네 토박이들이 좋아하는 데가 진짜 명소거든.
재광, 윤혜를 보고 씩 웃으면, 윤혜, 빤히 재광을 쳐다본다.
20. 오목대 / 오후
윤혜, 가뿐가뿐 걸어 올라오면, 재광, 그 뒤에서 숨차하며 올라온다.
재광, 주역각 계단에 철퍼덕 앉고, 윤혜는 그 앞에 선다.
한재광 : 일부러 높은 데 온 거죠, 나 골탕 먹이려고.
김윤혜 : (피식 웃는다.) …
한재광 : 웃을 줄도 아는구나.
윤혜, 얼른 웃음기 거두며, 멀리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뒷모습이 스산하다.
재광, 가방에서 사진기 꺼내 일어나더니 윤혜를 향해 들이댄다.
돌아보던 윤혜, 카메라 보며 싫은 표정 지으면, 재광, 카메라를 도로 내린다.
김윤혜 : (가리키며) 저 쪽으로 가면 시내 전체를 찍을 수 있어요.
재광, 윤혜가 가리키는 반대쪽으로 가더니 주역각 밑으로 쓱 기어 들어간다.
윤혜, 별 관심 안 두고,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며 살며시 심호흡 한 번 하는데, 안에서 어흑! 하는 소리 들린다.
윤혜, 뭐지? 하는 표정으로 주역각 쪽으로 다가간다.
21. 오목대 _ 주역각 아래 / 오후
컴컴하고 습한 주역각 아래, 재광, 어정쩡하게 구부리고 앉아 있다.
김윤혜 : (들여다보며,) 뭐해요?
한재광 : 쥐…
김윤혜 : (겁먹고 뒤로 물러나며,) …
한재광 : (인상 쓰며,) 아니 다리에…
김윤혜 : (잠시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가 다가가며,) 못 움직이겠어요?
한재광 : (아파 신음) 아… 흑…
김윤혜 : (당황해 쳐다보다,) 벗어야겠어요.
한재광 : (뭐라?) 뭐.. 뭘!
재광, 놀라 쳐다보면, 윤혜, 재광의 신발을 가리킨다.
재광, 다리를 움직여 겨우 신발 끈 푸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 허걱!
윤혜, 망설이다 재광의 신발을 잡으려 하면, 재광, 움찔 발을 뒤로 뺀다.
윤혜, 재광을 보자, 재광 할 수 없이 발을 쓱 내밀고, 윤혜, 얌전하게 신발 끈 푼다.
재광, 무안하고, 아프고, 신발 끈 푸는 윤혜의 손을 보니 기분도 이상하다.
윤혜, 신발 끈 다 풀면, 재광, 얼른 신발 벗어 발 당기고, 윤혜, 살짝 눈길 돌려 외면.
한재광 : (발 당기다 괜히 딴청,) 근데 여기 좋네, 아늑하니.
김윤혜 : … (밖으로 눈길 주며,) 해질 때가 특히 좋아요.
한재광 : 전에도 들어와 봤다는?
김윤혜 : (끄덕끄덕) …
한재광 : (다리 주무르며,) 뭐 했는데, 여기서?
김윤혜 : … (여전히 밖에 눈길 준 채) 그냥…
[회상]
오목대 _ 주역각 아래 / 해질녘 (7년 전)
사생대회 주역각 밖으로 교복 입은 여학생들의 다리 무더기로 왔다 갔다 하면,
교복 입은 윤혜, 스케치북과 가방 옆에 놓은 채 웅크리고 있다.
[현재]
윤혜, 여전히 밖을 보며, 보일 듯 말 듯 한숨 쉬면,
한재광 : (윤혜를 따라 밖을 보다, 신발 집어 신으며,) 무서웠겠다.
김윤혜 : ?
한재광 : (신발 끈 묶으며 혼잣말처럼,) 해질 때까지 이런데 혼자 있었음…
김윤혜 : … (새삼 울컥해 빤히 쳐다보더니, 외면하고 몸 일으키면서,) 안 가요?
재광, ‘가볼까나.’ 일어나더니 휘청 중심 잃으며 윤혜 어깨를 딱 짚는다.
윤혜, 놀라고, 재광도 놀라 얼른 손 떼다 더 중심을 잃으며 넘어져 피하는 윤혜 등에 업힌 모양이 됐는데,
갑자기 ‘아, 아’ 하는 메가폰 소리 들리더니,
관리아저씨e : (메가폰) 어이, 남녀, 다 큰 남녀. 그대로 멈춰라, 멈추고 나와라.
메가폰 든 아저씨 안으로 고개 쑥 들이밀고, 이상한 자세의 재광과 윤혜, 낭패다.
22. 오목대 _ 주역각 앞 / 늦은 오후
재광과 윤혜, 주역각 아래서 머쓱하게 나오면,
관리 아저씨, 메가폰에 여전히 입 대고 말한다.
관리 아저씨 : (메가폰) 문제! 왜 다 큰 남녀들은 이곳에만 오면 그곳으로 기어들어갈까요?
김윤혜 : (변명하듯) 그게 사진작가신데… //
관리 아저씨 : 뭔 사진을 찍으셨길래 둘 다 이렇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셨습니까?
김윤혜 :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쥐가 나서 //
관리 아저씨 : 그 자세면 쥐나는 게 당연지사! 각설하고! 이곳은 지방 기념물 제16호.
청춘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기엔 적절한 곳이 아니지요? 어떻게 생각해요?
김윤혜 : 그게 아니구요… //
한재광 : (윤혜 말 막으며,) 네, 맞습니다! 주의 하겠습니다.
김윤혜 : (재광을 짝 째려보고,) …
관리 아저씨 : 자, 남녀, 몹시 부끄러울 테니까, 일단 그냥 보내드립니다. 뒤로 돌앗!
재광, 킬킬 웃으며 돌아서서 다리 주무르며 걸으면,
윤혜, 고개도 못 들고 있다가 얼른 뒤돌면서 재광의 등을 째려보다 따라 걷는다.
관리 아저씨 : (둘의 뒤에 대고 메가폰 통해) 예쁜 사랑 하세요.
윤혜, 빨리 걸으며 완전 낭패한 얼굴인데, 재광, 피식피식 웃기만 한다.
23. 오목대 _ 계단 / 해질녘
윤혜와 재광,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윤혜, 단호하고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한재광 : 진짜 죄졌나, 왜 이렇게 빨리 가요?
김윤혜 : …
한재광 : 혹시 화났어요?
재광, 대답 안 하고 가는 윤혜 앞을 막아서면, 눈길 피하는 윤혜, 파르르한 표정이다.
한재광 : 뭐야, 진짜 화났네. 아니 왜?
김윤혜 : … (화 누르며) 분명히 했어야죠.
한재광 : 뭘?
김윤혜 : … 아저씨야 오해할 수 있지만, 그쪽은 아니라고 분명히 해명을 했어야죠. 아님 내가 해명하는 걸 막질 말든가.
한재광 : (어이없어하며,) 한들, 믿어요? 말만 길어지지. 어차피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뭘 그렇게 파르르하구 그러시나.
김윤혜 : 상관있어요, 난. 넓어보여도 건너건너 다 아는 동네라 말이 많거든요.
그 쪽은 볼 일 보고 가면 그만이지만, 저는 그 소문 다 들어야 된다구요.
한재광 : … (빤히 보다,)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윤혜, 뭐?!!! 하는 표정으로 놀라 쳐다보고, 재광, 빙글빙글 웃고만 있다.
24. 관광 안내소 앞 / 저녁
윤혜, 먼저 걸어오고, 재광,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김윤혜 : (재광을 쳐다도 안 본 채,) 그럼 이만. (어정쩡한 목례.)
한재광 : (자신의 차 가리키며,) 데려다 준다니까, 집까지.
윤혜, 말대꾸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돌아서 자전거 쪽으로 가고, 재광, 본다.
윤혜, 자전거 끌고 나오고, 재광, 옆에 있는 차에 기대서며,
한재광 : (윤혜를 향해) 그럼 내일 봅시다, 점심에 올게요.
김윤혜 : … (무시하고 지나가면,)
한재광 : (옆에 대고 강조하듯,) 낼도 잘 부탁합니다.
김윤혜 : … 싫어요, 다른 분한테 부탁하세요.
한재광 : (따라하듯) 싫어요, 그쪽한테 부탁할래요.
김윤혜 : (쳐다보며,) 대체 왜요?
한재광 : 궁금하니까. (윤혜를 정면으로 보며 진지하게,) 궁금해요, 그쪽이.
김윤혜 : !!!?
대답 안 하고 돌아서 가는 윤혜 뒤로, ‘낼 봐요!’ 소리치고 운전석에 오르는 재광이 보인다.
자전거 끌고 가는 윤혜,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다.
25. 도로 + 차 안 / 저녁
재광, 운전해 큰 길로 들어서면, 앞 쪽에, 길 한 옆으로 달려가는 윤혜의 자전거 보인다.
[회상] 유원지 / 밤 (7년 전)
추운 밤길을 코트 입고 달리는 고등학생 윤혜, 숨이 찬지 문득 멈춘다.
뒤따라오던 재수생 재광, 따라 멈추고 숨 몰아쉰다.
윤혜, 주먹 꼭 쥔 채 가만히 서서 한참을 앞을 보더니, 후두둑 어깨를 떤다.
윤혜, 다시 전력 질주 시작, 재광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잠시 후, 풍덩! 소리 들리고, 뒤에서 보던 재광, 놀란 눈이 된다.
[현재]
재광의 차, 윤혜의 자전거 곁을 지나친다.
한재광 : (혼잣말) 하나도 안 변했네…
운전하면서 사이드 미러로 단정하고 야무지게 자전거 타고 달리는 윤혜 보던 재광, 씩 웃더니, 차선 변경한다.
26. 윤혜 집 앞 / 밤
윤혜, 자전거 끌고 터벅터벅 올라와 집 앞에 서면,
권대웅e : (뒤에서 시비조로) 늦었다.
돌아보면, 짧은 머리에 추리닝, 한겨울에 맨발 조리 신은 대웅, 딱 봐도 동네 양아치다.
김윤혜 : (그냥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
권대웅 : (자전거 잡으며,) 짤렸다며.
김윤혜 : (야무지게) 아직 계약기간 남았어.
권대웅 : 그래서 계속 다니겠다?
김윤혜 : …
권대웅 : 여러 말 말고… (진지하게) 이참에 나랑 튀자.
김윤혜 : … (빤히 보다, 돌아서면,)
권대웅 : (윤혜 팔 잡아 돌려 세우며,) 화끈하게 동네 뜨자구.
김윤혜 : (팔 빼고 돌아서 대문 열며,) 싫어.
권대웅 : 왜, 우리 엄마 때문에?
김윤혜 : (자전거 뺏으며,) 너 때문에.
권대웅 : (어이없어하며) 아놔… 이 권대웅이가 어때서? 퐈이링 좋겠다, 갑빠에 각 딱 잡혔겠다, 알차게 생겼겠다, 뭘 더 바래?
윤혜, 그냥 자전거 끌고 안으로 들어가면, 대웅, 뒤에서 자전거 얼른 받쳐 들어주며,
권대웅 : 그래, 튕겨라, 튕겨. 튕겨도 (개콘 유행어처럼) 이뻐어!
매몰차게 대문 닫히면, 대웅, 기웃기웃 담 안을 보다가 돌아서 간다.
가면서도 뭐 그리 좋은지 마냥 점프, 점프해 담 안을 보며, 뛰어 내려간다.
27. 재광 숙소 / 밤
침대 위에 침낭 펼쳐져 있고, 재광, 벽에 기대듯 앉아 통화 중이다.
한재광 : 보긴 했는데, 사진은 못 찍었어요. 근데 김주평 여기 없어, 척 보니 분위기가 아닌데, 뭐.
지 아빠 숨겨놓고 살 성격도 아니고… (사이) 그 집까지? 에이 갑자기 거길 어떻게 가요? 무리무리.
(사이, 귀찮다는 듯) 알았어요, 갑니다, 가요. (사이) 건지산? 내일 가지!
재광, 대충 전화 끊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서류 봉투 집어 든다.
안에서 서류 꺼내 보면, 몇 년 전 여름에 찍은 윤혜 사진 붙어 있다.
그 뒤에 집 주소, 안내소 근무, 가족 관계 등 인적 사항 적힌 종이 있다.
재광, 그 주소를 스마트폰에 찍어 길 찾는다.
28. 윤혜 집 _ 거실 겸 부엌 / 밤
솔솔 김나는 갓 지은 밥, 고봉으로 한 그릇 뜨는 주름진 손.
윤혜, 싱크대 앞에다 나무 상 펴고 수저 내려놓고 있다.
할머니, 그 뒤를 지나 뚜껑 덮은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29. 윤혜 집 _ 안방 / 밤
할머니, 오래돼 빡빡한 장롱 문을 열더니 반쯤 쌓인 이불 사이에서 밥그릇 뺀다.
손에 든 새 밥그릇을 그 자리에 넣으며, ‘관셈보살’ 중얼 거리고는 한숨을 크게 쉰다.
30. 윤혜 집 _ 거실 겸 부엌 / 밤
윤혜, 할머니와 마주 앉아 식사 중인데, 분위기가 석석하다.
거실 한 구석에는 커다란 봉지에 부업거리 잔뜩 들어있다.
할머니 : (눈치 보며,) 오늘도 밖에서 일했냐.
김윤혜 : … 네.
할머니 : 어떤 사람들이 엄동설한에 구경을 다 다닐까… 많이 왔디?
김윤혜 : (마지못해) 오전엔 단체, 오후엔 개인.
할머니 : 혼자와도 해 주냐?
김윤혜 : … 사진 찍는 사람이라서… 특별히.
할머니 : … 남자디?
김윤혜 : … 네.
할머니 : (반기며,) 어떤 남자? 젊냐?
김윤혜 : 그냥… 서울 남자.
할머니 : (한숨) 어디 좋은 놈 잡아 빨리 시집을 가얄 텐데… (하다가 그릇 반도 안 비우고 수저 내려놓으면서,) 관셈보살.
김윤혜 : 마저 드시지.
할머니 : 그만 할란다, 배를 곯나, 혀가 까끌까끌한 게,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김윤혜 : (못 들은 척) …
할머니 : 꿈에 너랑 나랑 밥을 먹는데 와서 멍.. 하니 쳐다보더라.
김윤혜 : … (밥 다 먹고 수저 내려놓더니, 일어나 그릇들 싱크대에 담는다.)
할머니 : 그 순해 빠진 놈이 도망 다닐 주제나 되나, 어릴 때부터 니 애비가 //
김윤혜 : (탁! 그릇 거칠게 내려놓으며,) 할머니!
할머니 : (눈치 보며) 알았어, 알았어. (일어나 고무장갑 들며,) 들어가 쉬어.
윤혜, 고무장갑 빼앗아 들고는 설거지 시작하면,
할머니, 끙 하고 움직여 싱크대 아래편에서 쓰레기봉투 꺼낸다.
김윤혜 : (물 탁 잠그고 돌아보더니,) 또 어디 가시게?
할머니 : (눈치) … 요 앞에 …
김윤혜 : (고무장갑 벗어 탁 내려놓으며,) 요 앞 어디요? 그걸 왜 할머니가 하는데? 대체 동네 쓰레기장을 왜 청소해!
그런다구 누가 신경을 써, 고마워하길 해!
할머니 : … 뭐 바라고 하냐, 그냥 동네 사람 보기 면구스러 //
김윤혜 : (버럭) 왜! 대체 뭐가 그렇게 면구스러워!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설설인데!
할머니가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진짜로 아빠가… 나쁜 짓 한지 알잖아! 그래서 나까지 //
윤혜, 문득 말 멈추고는 그대로 확 나간다.
31. 윤혜 집 앞 / 밤
재광, 윤혜 집을 기웃하며 휴대폰으로 사진 찍다가 안에서 발소리 들리자 얼른 휴대폰 집어넣는데,
윤혜, 거칠게 대문 열고 나온다.
윤혜, 나오다 당황해 멀뚱 서 있는 재광을 보더니 깜짝 놀라 멈칫하고, 재광도 얼음!
김윤혜 : (의아해하며,) … 혹시… 저희 집 오신 거예요?
한재광 : … 어… (둘러대듯) 뭐, 잠도 안 오고. 아까 그렇게 가서 찜찜하기도 //
할머니e : (마당에서부터) 윤혜야, 윤혜야! 옷이라도 입어, 추워.
할머니, 급하게 윤혜의 코트와 목도리 들고 나오다, 재광과 윤혜를 번갈아 보더니,
할머니 : 누구? (하며, 빤히 쳐다보면,)
김윤혜 : (곤란해 하면,) …
한재광 : (불쑥 나서며,) 아까 낮에 안내를 좀 // (받았습니다.)
할머니 : (불쑥 말 자르며,) 아… 서울 총각…
한재광 : ? (어정쩡) 아… 예. (꾸벅 인사한다.)
할머니 : (갑자기 재광 손 덥썩 잡으며,) 아이구, 들어와, 들어와요. 코피 한 잔 해.
김윤혜 : (제지) 할머니…
한재광 : (불편한지 손을 빼면서, 잠깐 생각하더니, 넉살좋게,) 그럼 좀 주실래요?
윤혜, 어이없어 쳐다보고, 재광, 눈길 피하며 할머니 쳐다보면,
할머니, 좋아라 ‘들어와, 들어와.’ 하며 앞장서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32. 윤혜 집 _ 거실 겸 부엌 / 밤
할머니, 물 끓이고, 윤혜, 옆에서 커피 잔 꺼내고, 재광, 뻘쭘하니 서 있다.
할머니 : (돌아보더니 다짜고짜) 장가는 갔수?
한재광 : 아직요.
할머니 : 참 훤하게 생겼네.
할머니, 신나하는데, 재광,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저쪽 둘러보며 서 있다.
할머니 : 서울엔 언제 가시나?
한재광 : 내일요.
달그닥! (찻숟가락 내려놓던 윤혜, 순간 멈칫하며 숟가락을 놓쳤다.)
할머니 : 거기 앉아요, 집이 누추해서…
한재광 : 좋은데요 뭐. 요즘 이런 집 보기 귀한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김윤혜 : 그건 좀 //
할머니 : (윤혜 막으며,) 그러슈, 살림이 궁해서 좀 면구스럽네.
한재광 : 아녜요, 정감 있고 좋은데요, 뭐.
재광, 문 열려 있는 안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33. 윤혜 집 _ 안방 / 밤
소박하고 단정한 방, 재광, 둘러보면,
김윤혜 : (쪼로륵 들어와 곤란한 듯 막아서며,) 근데… 저희 집은 어떻게 아셨어요?
한재광 : (순간 당황) ! 아… 그게… (대충 둘러대듯) 물어, 물어.
김윤혜 : (의아해 하며,) ?
할머니e : 윤혜야, 코피 어딨냐?
윤혜, 부엌 쪽을 보고, 재광을 한 번 보더니, 일단 나간다.
재광, 윤혜 나간 사이, 얼른 방을 둘러보더니, 문갑 위에 있는 낡은 휴대전화 본다.
재광, 얼른 휴대전화 열어 통화 기록 보는데, 거의 기록이 없다.
재광, 주소록도 보는데 별거 없어 얼른 휴대전화 내려놓고는 둘러보면,
벽 한 쪽이 커다란 베니어판으로 가려져 있는데, 귀퉁이는 낡아서 너덜하다.
재광, 가까이 가 베니어판 너머를 들여다보면, 창문이 거기 있다.
김윤혜e : 뭐 하세요?
한재광 : (당황해 돌아보며,) 아… (베니어판 보다,) 창인가 봐요, 이쪽이?
김윤혜 : … (의심) 네…
한재광 : 창문은 있는 거 같은데 왜 다 막아 놨어요?
할머니 : (따라 들어오며,) 그게 얘 아빠가 옛날에 밤에 일하고 낮에 잤거든.
해 가린다고 거길 막아 놨는데, 당최 빠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한재광 : 아, 예… 그럼 아버님은?
할머니 : 애빈… (하다 윤혜 눈치를 보고는,) 돈 벌러 갔어, 멀리. (분위기 바꾸며,) 나와 코피 마셔요.
하는데, 재광은 머쓱해 윤혜 눈치를 살피고, 윤혜, 여전히 좀 의심스런 표정이다.
한재광 : (윤혜 눈길 피해 베니어판 가리키며 어정쩡하게,) 떼볼까요?
하면, 윤혜, 뭐라? 하는 표정이고, 할머니, 벙긋 웃는다.
[시간경과]
잘 갖춰진 공구함 열려 있고, 재광, 그중 망치를 빤히 보고 있다.
윤혜, 그런 재광을 여전히 좀 불편해 하며 보고 있으면,
재광, 문득 윤혜의 눈길을 느끼고 쳐다본다.
재광, 전기 드릴 들고 의자 위로 척 올라서다, 낡은 의자 휘청하자, 중심 잃고 얼른 의자 모서리를 잡는데,
동시에 윤혜, 의자 모서리를 잡아주느라 재광의 손 위에 척 얹어 잡는 꼴 됐다.
윤혜, 당황해 손 떼면, 재광, 머쓱해 얼른 일 시작한다.
윤혜, 다시 의자를 잡아 주고, 재광, 위이잉 드릴 돌려 나사 뽑기 시작한다.
할머니 : (안으로 들어서며,) 뭐니 뭐니 해도 집엔 사내가 있어야 좋아.
한재광 : 두 분만 사시나 봐요.
할머니 : 어… 애 에미가 일찍 세상을 떠서…
김윤혜 : (의자 모서리만 더 꼭 잡으며,) …
한재광 : (일하며 무심한 듯) 아버님은 자주 못 오시나 봐요?
할머니 : … 아예 못 와. (한숨) 인테리 일 해서 손재주도 좋고 심성도 고운 놈인데 //
하는데, 쩍! 재광, 거칠게 베니어판 뜯어내자 먼지가 풀썩 일고,
윤혜와 할머니, 먼지에 인상 찌푸린다.
34. 윤혜 집 _ 화장실 / 밤
재광, 손 씻고, 수건에 손 닦으며 둘러보는데, 샤워기만 있고, 세면대 없는 구식이다.
구석에 오래된 세탁기를 보자, 재광, 얼른 열어보는데, 달랑 수건 한 장 있다.
플라스틱 장 열어봐야 수건밖에 없고, 벽에 걸린 칫솔 두 개 보더니,
재광,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짓이라는 듯 픽 웃는다.
35. 윤혜 집 _ 거실 겸 부엌 / 밤
재광, 화장실에서 나오다, 공구상자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윤혜 본다.
재광, 문가에 서서 보면, 방 안에 온갖 잡동사니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 보인다.
윤혜, 그런 재광 보더니, 얼른 불 끄고 나오려고 하다 문 옆 책상에 세워져 있던 액자를 손으로 쳐 떨어뜨린다.
재광, 얼른 주워들어 보면, 10살쯤 된 윤혜가 엄마, 아빠와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행복해 보인다.
재광, 사진 속 김주평의 웃는 얼굴을 보고 슬쩍 당황하는데,
윤혜, 얼른 뺏으며 재광의 기색을 살핀다.
한재광 : (윤혜 눈치 보며 무마하듯) 저기가 어디더라…?
김윤혜 : … (도로 책상 위에 얹고는 문 닫으며,) 기억 안나요.
한재광 : (닫힌 문 보며,) 신나 보이네.
김윤혜 : … (재광 눈길 따라 닫힌 문 쪽을 보는데, 쓸쓸한 표정이다.)
36. 윤혜 집 앞 / 밤
대문 열리고, 재광, 나오면, 윤혜와 할머니, 따라 나온다.
할머니 : 고마워, 이 은혜를 어째? 코피 한 잔이라도 하고 가야 되는데…
한재광 : 아닙니다.
할머니 : 담에 또 와, 그땐 밥 먹구 가, 응?
재광, 대답 떼먹고 할머니께 인사하고, 윤혜를 한 번 보고 돌아서 가면,
할머니, 윤혜를 배웅하라고 밀더니, 대문 탁 닫고 들어간다.
재광, 돌아보면, 윤혜, 닫힌 문 가리키며 재광 보다가,
김윤혜 : … (겨우) 고마워요.
한재광 : (돌아보며,) 내일 되면 더 고마울 텐데…
김윤혜 : 네?
한재광 : (씩 웃더니,) 낼 점심 먹는 거 잊지 마요.
김윤혜 : …
재광, 얼른 뒤돌아 손만 번쩍 들어 안녕하고는 길 따라 내려간다.
윤혜, 내려가는 재광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본다.
37. 골목 아래 / 밤
재광, 주머니에 손 넣고 내려오다 문득 뒤돌아보더니 피식 웃는다.
재광,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 꺼내 문 열려는 순간,
강 형사e : 한재광 씨?
재광, 돌아보면 강 형사 서 있다.
강 형사 :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하… 뭐하시는 겁니까, (강조) 여기서?
강 형사,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으면, 재광, 낭패다.
38. 윤혜 집 _ 마당 / 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마당, 할머니, 장독 위에 맑은 물 떠놓고 빌고 있다.
39. 윤혜 집 _ 안방 / 밤
걸레 들고 창을 닦던 윤혜, 못이 박혔던 자리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Insert] 씬24. 관광 안내소 앞 / 저녁
한재광 : 궁금하니까. (윤혜를 정면으로 보며 진지하게,) 궁금해요, 그쪽이.
[현재]
윤혜, 천천히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거울을 빤히 쳐다본다.
서랍 열어 그 안에 있는 귀걸이를 보다가 하나 들어 귀에 대본다.
40. 동네 / 밤 → 아침
동네, 차츰 밝아 온다.
41. 윤혜 집 _ 안방 / 아침
자던 윤혜, 몸 뒤척여 엎드리더니 눈 뜬다.
눈 부셔 얼굴 찡그리며 위쪽을 보면, 창으로 해가 들어와 머리맡에 가득이다.
윤혜, 그 햇살 들어온 머리맡을 손으로 슬슬 문지르더니, 픽 웃는다.
42. 관광 안내소 / 아침
출근한 윤혜, 책상 위에 짐 정리한 상자 놓여 있는 것 본다.
윤혜, 건조한 얼굴로, 상자를 열어 짐을 풀어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43. 재광 숙소 앞 / 낮
재광, 어깨 뻐근해 하며 나오다, (상아의) 차 앞에 서 있는 상아 보고 놀란다.
44. 관광 안내소 / 낮
시계, 12시를 가리키고, 윤혜, 발송할 브로슈어들 접어 편지 봉투에 넣고 있다.
유광미 : (미진과 함께 나가려다 윤혜에게) 밥 안 먹어?
김윤혜 : 먼저 드세요.
유광미 : 일단 버티기로 한 거지?
김윤혜 : (끄덕) …
유광미 : 그래, 힘내. (돌아서는데,)
김윤혜 : (생각난 듯) 저기 혹시 어제 제 주소 가르쳐 주셨나요?
유광미 : 아니, 누구한테?
김윤혜 : 아니… (하며, 미진 쳐다보면,)
신미진 : 나도 모르는데.
김윤혜 : 아녜요, 식사하고 오세요.
광미와 미진 나가고, 윤혜, 고개 갸웃하고는 하던 일 한다.
[시간경과]
문 열리면, 윤혜, 반갑게 보는데, 식사 갔던 광미와 미진 들어온다.
윤혜, 살짝 실망하는데, 시간은 오후 1시가 지났다.
윤혜, 책상 위 인터넷 창에는 ‘사진집, 유럽의 골목길’ 책 검색한 것 보인다.
윤혜, 인터넷 창 닫고, 지갑 들고 일어난다.
45. 카페 / 낮
재광과 상아, 마주보고 앉아 있다.
주상아 : … 그래서, 이제와 안 한다? 공문 보내구 개별적으로 안내까지 받았는데?
한재광 : 뭐 말하자면.
주상아 : 웬일로 지자체 홍보 사진을 다 찍는다 했다, 처음부터 할 생각 없었지?
한재광 : …
주상아 : 이제와 취소하면 여기저기 난리 날 테고… 결국 내가 해야겠네.
한재광 : (픽 웃으며,) 고맙다.
주상아 : (눈 흘기며,) 뭔 꿍꿍인지…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한재광 : 언젠 계획이 있었나 뭐…
주상아 : (쯧쯧) 한재광, 언제 두 발 다 담그고 살래? 붕 떠서 인생 살면 멀미 안 나?
재광, 피식 웃기만 한다.
46. 서점 / 낮
윤혜, ‘사진집, 유럽의 골목길’ 들춰 보고 있다.
윤혜,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보고 있다.
커다란 건물 유리를 등지고 앉은 채 유리에 비친 뒷모습 찍은 사진 보이고,
그 아래, ‘한재광, 1985년 생, 세상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다 얼떨결에 사진작가가 됐다.’
윤혜, 그 뒷모습 사진을 한참 본다.
47. 카페 앞 _ 건널목 / 낮
윤혜, 건널목 거의 다 건너오다 카페에서 나오는 재광과 상아를 본다.
윤혜, 우뚝 멈춰 서서 두 사람 보는데, 신호 바뀌고 오토바이 빵빵대며 지나간다.
윤혜, 놀라 마저 건너고, 갑작스런 오토바이 소리에 돌아보던 재광, 윤혜를 본다.
한재광 : (뛸 듯 다가오더니 천진난만하게) 어디 가요?
김윤혜 : … (어이없지만,) 안내소요.
한재광 : 점심은 (하다가 그제야 생각나,) 아차, 점심… (보며,) 미안하네.
김윤혜 : … 괜찮아요. (하며 상아를 보면,)
한재광 : (윤혜 눈길 따라가다가,) 아… 출판사 사진팀장. 인사 할 // (래요?)
김윤혜 : 그럼. (목례하고 간다.)
한재광 : (뒤에 대고) 가 있어요, 금방 따라갈게. (상아에게 간다.)
주상아 : (윤혜 보며,) 이쁘네, 누구?
한재광 : 있어, 안내소에…
주상아 : 흠… 그래서 공문 넣어 달랬구만.
한재광 : (무시) 곧장 서울 갈거니?
주상아 : (픽 웃더니, 윤혜를 턱으로 가리키며,) 진전은 좀 있었고?
한재광 : (피식) 아냐, 그런 거.
주상아 : 아냐?
한재광 : 아냐.
주상아 : 그럼 나 자고 가도 돼?
한재광 : 그러든지.
상아, 방긋 웃으면, 재광, 마주 웃고는, 고개 숙이고 가는 윤혜 뒷모습 한 번 더 본다.
48. 관광 안내소 / 오후
오 계장, 손에 서류 봉투 들고, 일어나 고개 숙이고 있는 윤혜 앞에 서 있다.
오 계장 : 이건 나하고 이래서 될 문제가 아냐, 위에서 결정 난 거라니까.
김윤혜 : … (고개 숙인 채 또박또박) 뽑을 땐 문제 안 삼으셨는데…
오 계장 : 그랬지. (또 말문 막혀하다,) 그건 윗분이 달랐잖아. 관용과 화합을 중시하는. 근데 새로 온 분은
실리와 명분을 중요시 하는 분이시라니까. 안내소는 우리 시 얼굴이다, 그런 면에서 미스 김은 좀 곤란하다, 이거거든.
김윤혜 : …
오 계장 : 생각해보겠다, 뭐 이런 말도 못해?
김윤혜 : …
오 계장 : 좀 봐 달라잖아, 정말 이렇게 고집 부릴 거야? (서류 봉투 내밀며,) 이거 봐, 이거 싹 개비해서 또 새로 다 배포됐어.
윤혜, 받아서 천천히 열어보면, 새로 찍은 ‘살인 용의자 김주평’ 전단지다.
김윤혜 : (모멸감) …
오 계장 : 암튼 곧 다른 사람 올 거니까, 여러 말 말자구.
오 계장, 쳐다보면, 윤혜, 서류 봉투와 스테이플러 들고 문 쪽으로 간다.
오 계장 : (뒤 따라가면, 열 받아 말 더듬으며,) 쿨한 거야, 독한 거야! 그러고 싶어?
하는데, 문 열리고, 재광, 들어온다.
오 계장 : (당황해 얼른) 오셨어요? (하며 재광에게 다가간다.)
재광, 멀뚱하게 오 계장과 윤혜를 번갈아 보다, 윤혜 손에 쥐어진 사진 본다.
윤혜, 자기도 모르게 사진을 뒤로 감추면,
재광, 윤혜 손에서 사진을 빼앗아 보더니, 스테이플러도 빼앗아 오 계장에게 내밀며,
한재광 : (오 계장에게) 오늘 갈 데가 많아 급한데… 이거 대신 부탁드려도 되죠?
오 계장, 얼떨결에 받으면, 재광, 문을 활짝 열더니, 윤혜에게 ‘갑시다.’ 하곤 앞장선다.
윤혜, 당황한 표정으로 오 계장 보면, 오 계장, 신경질적으로 따라가라는 손짓한다.
49. 향교 / 오후
재광과 윤혜, 서먹서먹하게 걷다가 윤혜, 일은 일이라는 듯 자세 잡더니,
김윤혜 : (문을 가리키며) 이건 일월문이라고 합니다. 안쪽에 보면 // (대성전 현판이)
한재광 : (말 끊으며,) 진짜 크다.
김윤혜 : (재광의 시선 따라 보면, 은행나무) 은행나무예요.
한재광 : (나무 보다 윤혜 보며 문득,) 얼마나 됐어요?
김윤혜 : (나무 보며,) 한 400년 정도.
한재광 : 아니 그쪽, 이 일 한지 오래됐어요?
김윤혜 : … 7개월째요.
한재광 : 그럼, 그 전에는 뭐 했어요?
김윤혜 : … 그냥 이것저것.
한재광 : 아… 이것저것. 나도 이것저것, 근데 이것저것 뭐요?
김윤혜 : … (빤히 보다,) 사진 안 찍으세요?
한재광 : (딴청) 점심 안 먹었죠?
김윤혜 : …
한재광 : (얼굴 들이대며,) 나도 안 먹었는데… 일단 뭐 좀 먹죠.
재광, 웃으면, 윤혜, 곤란하지만 싫지 않다.
50. 식당 앞 / 오후
재광과 윤혜, 식당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윤혜, 멈칫 한다.
식당에서 막 나오던 민수, 그런 윤혜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이민수 : (다가오며,) 오래간만이다.
김윤혜 : (희미한 미소) 어…
이민수 : (재광을 흘긋 보면,) ?
김윤혜 : (얼른) 안내 중이에요.
이민수 : 그래, 안내소서 일한단 얘긴 들었다.
김윤혜 : 다니러 왔어요?
이민수 : 응, 이제 올라가야지.
하는데, 안에서 정장 차려입은 여자(20대), 민수 아버지 모시고 나온다.
윤혜, 민수 아버지 보자 인사하는데, 민수 아버지, 흠.. 짐짓 외면하신다.
여자, 민수 옆에 와 서면, 윤혜, 완전 당황했다.
이민수 : (머쓱) 인사해, 여긴 //
민수 아버지 : 아, 얼른 안 가고 뭐해? 서울 가려면 한참인데, 며늘애 피곤하게..
이민수 : (쑥스러운 듯 웃으며,) 나 결혼해. (여자에게) 아는 동생.
윤혜, 어정쩡하니 인사하는데, 여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한다.
이민수 : 다음 달에 시내서 할 거니까, 와라.
김윤혜 : (얼떨결에) 아… 예.
민수 아버지 : (확 못마땅해 하며,) 오긴 뭘 와, 남에 잔치에 액 낄 일 있어!
이민수 : (나직이) 아버지이!
윤혜, 맘에 칼 꽂혔고, 민수, 좀 난감해 하고, 여자는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민수 아버지, 흠! 하고 먼저 가면, 여자, 따라가고, 민수, 멋쩍게 ‘또 보자.’ 하고 간다.
윤혜, 입술 꼭 깨문 채 가만히 서 있고, 재광, 좀 떨어져 못 본 척하고 있는데,
김윤혜 : (재광 돌아보더니,) 들어가죠.
윤혜, 안으로 들어가고, 재광, 눈치 보며 따라간다.
51. 식당 / 오후
윤혜, 씩씩하게 꼭꼭 씹어 꾸역꾸역 국밥 먹으면,
재광, 눈치 보며 슬슬 먹다,
한재광 : (떠보듯) 첫사랑?
김윤혜 : (한입 문 밥 꿀떡 삼키기만) …
한재광 : 맞구만.
김윤혜 : … 이제 어디 가나요?
한재광 :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아깐 그냥 밥이나 먹자고 끌고 나온 거였어요.
김윤혜 : … 밥이나 먹자고 끌려 다니는 거, 제 일 아니거든요. 어디 가요?
한재광 : … (할 수 없이 대답,) 건지산.
윤혜, 갑자기 당황한 듯 쳐다보다, 앞에 있는 물 한 모금 꿀꺽 마시고는 일어난다.
재광, 엉겁결에 물마시고 따라 일어난다.
52. 도로 _ 차 안 / 오후
재광은 재광 대로 생각에 잠겨 있고, 창밖을 보는 윤혜 표정, 건조하다.
53. 건지산 주차장 / 늦은 오후
흐린 하늘 뒤로 건지산 보이고, 주차장에 재광의 차 주차 중이다.
54. 건지산 주차장 _ 차 안 / 늦은 오후
윤혜, 긴장돼 있는데, 재광은 무심히 장비 챙기고 있다.
한재광 : (윤혜 표정 보더니,) 올라가기 싫음 안 올라가도 돼요. 갔다 얼른 오지 뭐.
김윤혜 : …
한재광 : (윤혜 신발 보더니,) 신발도 그렇고.
김윤혜 : … 처음이신가요?
한재광 : (산보며,) 여기서 본 적은 있는데, 직접 들어가는 거는 처음이긴 하네.
재광, 배낭 들고 훌쩍 차에서 내리고,
윤혜, 결심한 듯 차에서 내린다.
55. 건지산 _ 입구 / 늦은 오후
재광과 윤혜,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데, 파란잠바 입은 남자(강목수), 스쳐 내려간다.
재광도 긴장되지만 의도적으로 괜찮은 척하고 있고, 윤혜는 두려운 표정이다.
한재광 : (윤혜를 보더니,) 혼자가도 된다니까.
김윤혜 : (약간 넋이 나간 채) 제대로 해야죠… 일인데.
재광, 결의에 찬 윤혜를 보더니 앞서 걷고,
윤혜, 후… 심호흡하고는 따라간다.
걸어가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강목수의 시선.
56. 건지산 _ 등산로 / 늦은 오후
재광, 숨 몰아쉬며 걷다 돌아보면, 윤혜, 저 아래 쪽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다.
재광, 망연히 숲 속을 바라보면,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축축한 바람이 분다.
숲속을 망연히 바라보다, 문득 카메라를 들어 숲 쪽에 대고 줌을 당겨 보는 재광.
뷰파인더로 보면, 안쪽 숲 바닥에 노란 꽃(다발)이 보인다.
재광, 뭐지? 하고 숲 안쪽으로 가려고 보면, 모퉁이를 돌아 윤혜 나타난다.
윤혜, 하… 하… 하얀 김을 쏟으며 걸어 올라오다, 문득 서더니 멍하니 앞을 본다.
[회상] 건지산 _ 등산로 모퉁이 / 낮 (7년 전)
‘산불방지강조기간 2005년 2월 25일 ~4월 15일’ 플랜카드 보인다.
폴리스 라인 쳐져 있고, 경찰 두 명 양쪽을 지키고 있다.
교복만 달랑 입은 고등학생 윤혜, 그 앞에서 오돌오돌 떨며 서 있다.
구경 나온 남자 2명, 폴리스 라인 가까이에 서서, 기웃대며,
‘저 위에서 죽였대잖아.’, ‘아이구 징해라. 그런 놈은 잡아다 똑같이 쳐 죽여야 돼.’
‘죽은 남자가 사법 시험 패스했댄다.’, ‘하필? 아까워 어째.’ 등등 대화하고 있다.
좀 뒤에 떨어져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어린 윤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다, 뒤로 돌아 뛰어간다.
[현재]
앞을 보던 윤혜, 갑자기 사방을 둘러보는데, 등산로 한 쪽은 앙상한 나무들의 숲이다.
윤혜, 앞으로 더 가지 못 하고 서 있고, 위에서 재광, 불안한 듯 내려다보고 있다.
윤혜, 입술을 꼭 깨물고 계속 올라가면, 재광, 그런 윤혜를 빤히 쳐다볼 뿐이다.
휘청하는 윤혜, 중심 잡더니 ‘아냐, 다 잘못 아는거야.’ 중얼대며,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다시 다리가 엇갈리며 풀썩 넘어진다.
위쪽의 재광, 놀라 뛰어 내려오는 사이, 윤혜, 간신히 일어나는데,
한재광 : (다가와) 괜찮아요?
김윤혜 : (끄덕끄덕) …
한재광 :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신발 넘 미끄러워… 먼저 내려가 있어요, 금방 갈게.
윤혜, 숲 쪽을 한 번 보더니, 가만히 서 있다가 휘청 도망치듯 돌아서 내려간다.
재광, 휘청휘청 아슬아슬 내려가는 윤혜 보다 돌아서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올라가던 재광, 다시 돌아보면, 윤혜, 휘청이며 다시 미끄러져 무릎 꿇은 채 넘어진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수그리는 윤혜, 덜덜 떤다.
그런 윤혜를 보던 재광, 따라 내려가더니, 벌벌 떠는 윤혜를 보고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웃옷을 벗어 윤혜 뒤에서 푹 씌우고는 양쪽 팔을 잡아 번쩍 일으킨다.
윤혜, 잡힌 팔을 빼려 하는데,
한재광 : (화난 사람처럼) 쫌! (하더니 더 꽉 잡은 채 앞만 보고 내려간다.)
윤혜를 부축해 내려가는 재광, 착잡한 기분이다.
57. 건지산 주차장 / 늦은 오후
넓은 주차장에 달랑 재광의 차만 세워져 있다.
재광, 윤혜를 부축해 보조석에 태우고 얼른 운전석 쪽으로 가고 있다.
58. 건지산 주차장 _ 차 안 / 늦은 오후
윤혜, 보조석에 창백하게 앉아 있다.
한재광 : (올라타며,) 그러게 올라오지 말라니까…
김윤혜 : …
한재광 : (흙으로 엉망이 된 윤혜의 신발과 바지 보며,) 다쳤어요?
김윤혜 : … 아뇨.
재광과 윤혜, 나란히 앉아 앞 유리 너머 건지산을 한참 본다.
59. 도로 / 저녁
어스름한 도로, 재광의 차, 달려간다.
60. 도로 _ 차 안 / 저녁
재광, 운전 중이고, 윤혜, 보조석 창밖을 보고 있다.
한재광 : … (분위기 바꾸려는 듯) 무슨 생각해요?
김윤혜 : …
한재광 : … (대답 듣기는 포기하고 운전에 집중)
김윤혜 : … (덤덤하게,) 결혼식… 나도 가보고 싶단 생각했어요.
한재광 : … 그깟 결혼식 가면 되지, 결혼하러 가는 것도 아니구.
김윤혜 : 가봤어요, 결혼식?
한재광 : (생각하더니,) 없네.
김윤혜 : 한 번도?
한재광 : (끄덕끄덕) …
김윤혜 : 왜요?
한재광 : 그냥 뭐… 사람 모여 축하하는 거 별로라…
김윤혜 : 안 가는 거네… 아마… (차창 밖을 보며,) 난 평생 못 가볼 거예요, 결혼식은.
윤혜, 멀리 눈길 주면, 재광, 그런 윤혜가 안됐다.
김윤혜 : (창밖에 눈길 준 채,) 진짜 내일 가요?
한재광 : 네.
김윤혜 : (쳐다보며,) 그럼…
한재광 : (윤혜를 쳐다보며,) ?
김윤혜 : 그럼… (다시 차창 밖 보며,) 나랑… 잘래요?
한재광 : !!! (얼음)
재광,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순간 앞쪽으로 뭔가 스치고, 갑자기 끼이익, 서는 재광의 차.
61. 도로 갓길 / 저녁
산 바로 아래 갓길. 재광의 차 세워져 있고, 재광, 이쪽저쪽 둘러본다.
재광,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휴대전화 건다.
그런 재광을 길 위쪽에서 바라보는 시선 (강목수).
62. 도로 갓길 _ 차 안 / 저녁
윤혜와 재광, 서먹서먹하게 앉아 있다.
한재광 : (분위기 전환하려는 듯) 음악이…
하며 버튼 누르면, 갑자기 메탈 음악이 쿵쾅쿵쾅! 쏟아지는 바람에, 둘 다 깜짝 놀란다.
재광, 모른 척 눈감고 좀 듣더니 안 되겠는지 오디오 끄고, 윤혜를 슬쩍 보고는,
한재광 : (갑자기 뒷좌석 돌아보며,) 카메라 괜찮나?
재광, 카메라 가방 들어 옮기다, 뒤쪽 쳐다보던 윤혜의 이마를 툭 쳐 당황하고,
윤혜, 역시 당황해 이마를 문지르며, 가방을 받쳐 준다.
재광, 잘 안 열리는 지퍼 무리하게 당겨서 가방 열어 보는데, 당연히 멀쩡하다.
한재광 : (머쓱해 하며 도로 닫으려다, 문득) 사진 볼래요?
김윤혜 : 네? 아… 네.
재광, 사진기 켜서 내밀면, 윤혜, 사진들을 돌려 본다.
갑자기 재광의 전화벨이 울리고, 보면, 발신인이 ‘신 여사’다.
재광, 당황한 듯 얼른 전화기를 끄면, 윤혜, 왜 안 받냐, 는 듯 쳐다본다.
한재광 : (딴청하듯 창문 열더니,) 공기 좋네.
재광, 차에서 내린다.
윤혜, 사진 보면, 여러 풍경에 사람이든 개든 고양이든 뒷모습이 약간씩 걸려 있다.
63. 도로 갓길 / 저녁
재광, 갓길 아래 내려다보고 서 있으면, 윤혜, 차에서 나와 옆에 와 서더니,
김윤혜 : 근데 다 뒷모습만 찍었네요…
한재광 : ?… (피식 웃더니,) 처음이다 그거 눈치 챈 사람, 다 풍경 사진인지 아는데 …
김윤혜 : …설마… (음… 하며 앞을 쳐다보다,) 왜 뒷모습만 찍어요?
한재광 : … 그냥… 잊혀지질 않아서…
김윤혜 : 뭐가요?
한재광 : … (외면하다, 새삼 따지듯) 근데 왜 자고 싶어요, 나랑?
김윤혜 : (좀 무안해 피식 웃으며,) … 낼 간다니까…
한재광 : (빤히 쳐다보며,) 내일 갈 사람이면 다 자요?
김윤혜 : (앞만 보며,) 모르는 사람이니까… (혼잣말 하듯) 내가 누군지…
한재광 : ! … (당황해 시선 거두며,) …
김윤혜 : (피식 웃더니,) 누군지 안 묻네, 궁금하다더니… (차 쪽으로 가려고 몸 돌리다 문득) 근데… 난 왜 앞모습을 찍었어요?
한재광 : (당황해 마주 쳐다보면,) !!!
김윤혜 : 안내 받으면서 사진도 하나도 안 찍고… (곰곰 생각하다) 근데…
(갑자기 확 의심이 드는지,) 우리 집은… 누가 가르쳐줬어요?
재광, 윤혜를 마주 본 채 당황해 어버버 하는데, 둘 사이로 불빛 확 들어온다.
놀라서 보면, 해병대 마크 붙은 레커차 불빛이고, 놀라 내려 뛰어오는 대웅 보인다.
64. 정비소 / 밤 (비)
사무실 안, 창밖으로 내리는 비 보이고, 윤혜, 멍하니 난롯가에 앉아 있다.
그 옆, 수리실, 대웅, 못마땅한 표정으로 재광의 차 보닛 열어서 보고 있다.
권대웅 : 이거 이거 속이 완전 허당이네, 차랑 개는 원래 주인을 쏙 빼닮는다던데.
한재광 : (다가오며 뺀질하게,) 그래도 겉은 훌륭하잖아?
권대웅 : (재광의 아래 위 훑어보다, 자신의 후줄근한 외모랑 비교해 보더니,) 흠… (갑자기 버럭) 아놔, 빡 돌아서.
우리 윤혜 다쳤으면 어떡할 뻔 했어요?
한재광 : 보험회사 바쁠 뻔 했지.
권대웅 : (안에 부품을 탕탕 쳐 보며,) 운전한 놈은 내 손에 아작 났을 테구. 암튼 서울 것들은 군기가 빠져가지구.
한재광 : 빡센 거 멋지긴 한데, (내려다보며 측은한 듯) 발 안 시려요?
권대웅 : (맨발에 조리… 딱 각 잡으며,) 끄떡 없스, 해병대 짬밥 먹었거든. 내 발 완전 씩씩해!
한재광 : (진지하게) 군인 눈엔 씩씩해 보여도, 민간인 눈엔 그냥… 없어 보여요. (씩 웃더니,) 안에서 기다릴게요.
(사무실 쪽으로 가면,)
권대웅 : (조리 벗고 발가락으로 공구 들어 재광 뒤에 툭 던지며,) 이거나 먹어라!
65. 정비소 _ 사무실 / 밤 (비)
난로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윤혜, 전화벨 울려 보면, ‘발신표시제한’이라고 뜬다.
윤혜,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 받는데, 잘 안 들리는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한다.
윤혜, 일어나 문가 쪽으로 오면서 계속 여보세요? 하다가 문득 얼음! 된다.
김윤혜 : (몸 뒤로 돌려 숙인 채) … 아빠?
하는데, 재광, 문 열고 들어오자, 윤혜, 놀라 몸 확 돌려 쳐다보는데 하얗게 질려있다.
윤혜, 귀에 전화기를 대고 멍하니 있더니 끊겼는지 끊는다.
한재광 : (놀라 윤혜 기색을 살피며,) 괜찮아요?
재광을 본 윤혜, 정신을 차려야겠는지 허둥지둥 정수기로 가 물 받는다.
윤혜 물 마시려는데, 우당탕, 대웅 엄마, 막 들어서려던 재광을 밀고 들이닥친다.
재광, 윤혜, 둘 다 얼떨떨한데, 대웅 엄마, 다짜고짜 윤혜에게 다가가더니,
대웅 엄마 : (윤혜 손에 든 컵 확 뺏어 확 끼얹으며,) 야! 너 얼씬대지 말랬지! 우리 대웅이 근처에 한번만 더 얼씬대면
개꼴 난다고 했어, 안 했어!
윤혜, 완전 황당해 하며 고개 빳빳이 들고 쳐다보고 서 있으면, 재광, 말리려는데,
대웅, ‘엄마!’ 하며 따라 들어와 엄마를 뒤에서 안는다.
권대웅 : 이러지 마시라니까. 손님, 손님 차, 차 퍼져서 끌고 온 거야.
대웅 엄마 : (잡힌 채 윤혜에게 덤벼들며,) 전주 바닥에 정비소가 여기 하나야? 지 주제를 알아야지! 어딜 감히 널 넘봐!
권대웅 : (말리며,) 보험회사서 보냈는데, 우연히 여긴 거야.
대웅 엄마 : 우연이 어딨어, 무조건 다른 데 가야지. 니 아빠 사진 밖에 수두룩 빽빽 또 붙었어.
나 같음 고개들고 다니는 것두 부대낄 텐데, 넌 무슨 정신이 있어 치대니?
권대웅 : (막으며,) 엄마, 그니까, 내가 혼자 좋아하는 거라니까!
대웅 엄마 : (대웅 등짝을 막 때리며) 등신아! 미쳤어! 우리 가진 건 돈 밖에 없으니까, 며느리라도 번듯한 거 들어와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윤혜, 가방 들고 대웅 엄마에게 인사하고 사무실에서 나가면, 재광, 얼른 따라 나간다.
66. 정비소 _ 마당 / 밤 (비)
윤혜, 문 닫고 나와 황망한 표정으로 정비소 마당을 가로지른다.
재광, 문 옆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던 우산 하나 집어 들고 천천히 뒤따라간다.
67. 정비소 옆 길 / 밤 (비)
윤혜, 걸어가고, 뒤에 낡아 살 구겨진 우산 어정쩡하게 받친 재광, 따라간다.
윤혜, 걷다가 결심한 듯 휙 돌더니 뒤따라오는 재광에게 다가온다.
윤혜, 재광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담벼락 위에 붙은 벽보를 한 번 쳐다본다.
윤혜, 심호흡 한 번 하고, 벽에 붙은 살인 용의자 수배 전단지 속 용의자 가리키며,
김윤혜 : … 우리 아빠예요.
한재광 : … (전단지 보며,) 아는데…
김윤혜 : ? (놀라 쳐다보면,) !!!
한재광 : (그 아래 피해자 이름 ‘한재민’ 가리키며,) 우리 형이거든.
김윤혜 : !!! (경악)
한재광 : 지금 어딨니, 니네 아빠?
구겨진 우산 속, 윤혜, 완전 얼음 돼 있고,
재광, 윤혜를 똑바로 쳐다본다.
- 1부 끝.
첫댓글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