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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축성 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삼국사기 열전에 보면 구근이라는 사람이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을 따라가 서원경(西原京)의 술성(述城)을 쌓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성이 상당산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과 '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산성은 산의 8부 능선에 4.2km에 걸쳐서 마치 시루삔을 두른 듯한 형태로 존재한다. 오목한 분지를 품에 안고 산허리를 따라 쌓아나간 포곡식(包谷式)산성이다.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내벽은 자갈과 흙으로 채워 넣고 다짐으로써 성벽 내부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우리나라 산성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이다. 상단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은 무지개문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사석(武砂石)을 다듬어 11단으로 쌓았다. 바깥쪽에 옹성이나 적대(敵臺) 등 성문을 보호할 시설이 없는 대신 안쪽에 옹벽을 쌓아 성문을 드나들 때는 반드시 꺾여 드나들도록 하였다.
치성이란 이름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는 꿩(雉:치)의 행태에서 뜻을 빌려온 것이다. 산의 구불구불한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쌓은 포곡식 산성에는 따로 치성이 필요한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상당산성 남문 쪽은 산의 굴곡이 거의 없는 데다 옹성마저 따로 없어 치성을 만들어 방어의 취약점을 보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루를 내려와서 성벽을 따라 서문을 향해 약 400m 가량 가다보면 문루도 없고 마치 개구멍처럼 뚫린 문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남암문이다.
남암문을 지나 서문(西門)인 미호문을 향해 걷는 길은 상당산성 길 중 가장 눈 맛이 시원한 길이다. 가까이는 청주 시내가, 멀리로는 미호천과 멀리 증평평야까지 바라다 보인다. 성 안쪽 길섶에는 영산홍과 철쭉이 무리지어 있다. 이들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눈길을 잡아끌려고 애쓰지만 무정한 길손들은 멀리에다만 시선을 준 채 걸어갈 뿐이다. 서벽 아래 능선은 가파르고 험하다. 평지와의 표고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성벽의 높이도 4벽 가운데 가장 높고 잘 다듬어져 있다. 서쪽에서 다가오는 적을 관찰하기도 쉽고 방어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돼 있다. 서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대비하기 위해 축성된 상당산성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미호문은 거대한 2개의 무사석을 쌓고 그 위에 장대석을 올려놓았다. 또 바깥쪽으로 돌출된 문 옆 성벽이 옹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이 문의 특징이다. 서문에서 북벽을 거쳐 동암문에 이르는 약 2.2km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산행의 단조로움을 피하게 해준다. 북벽은 자연지형만으로도 방어에 별다른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만큼 가장 산세가 험한 곳이다. 그러기에 애초부터 문도 만들지 않았으며 성의 높이도 낮게 쌓았다. 북벽에서 정점을 이룬 산등성이는 동벽 쪽에 이르러서야 내리막길로 바뀌는 시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암문이 숨겨져 있다.
맹자에 나오는 천시불여지리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에서 따온 말이다. 하늘이 주는 좋은 때는 지리적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는 뜻이다.
저수지 호안을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면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산성마을이 나오는데 비빔밥이나 동동주, 토종닭 따위를 파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저수지 둑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200여 미터 가량 올라가면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는 치성 위에 올라서게 된다. 출발했던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거나 복원된 성곽시설은 동문, 서문, 남문 등 문 세 곳과 동암문(東暗門)과 남암문 등 암문 두 곳, 그리고 치성 세 곳과 수구(水口) 세 곳, 장대(將臺) 두 곳과 포루자리 열다섯 곳 등이었다. 상당산성을 걷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줄잡아 1시간 30여 분이 걸린다. 그렇지만 굳이 서둘러 산행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 소요(逍遙)란 무거운 일상의 무게에서 놓여나 자연과 벗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산길을 걸으며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 시원한 바람 소리 등 자연의 풍광을 그냥 즐기면 된다. 이 소요의 경지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일러 장자(莊子)는 '지락(至樂)'이라 했다. 오늘날의 산성은 군사적 용도에서 바로 이 소요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의 개념으로 바뀌어졌다. 더구나 높은 곳에 자리한 산성은 역사를 배우는 기쁨에다 조망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선사한다. 一住寒山萬事水 更無雜念佳心頭 閑於石室題詩句 任運還同不繫舟 한번 한산에 들자 만사를 쉬었나니 다시 마음에 이는 잡생각 없네 한가히 돌집 벽에 싯줄이나 끼적이며 제대로 맡겨 두어 뜬 배 같구나. - 김달진 역 <한산시> 중에서 햇빛 맑은 날엔 <한산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느긋하게 산성길을 걸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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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신기신기
지도...
지도...
성하넌 정말 멋있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