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부활 이후에 40일간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이에 기쁘고 흥분되었던 마음이 당황스럽고 막연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했던 일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명확한 말씀 붙들고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4).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산에서 다락방으로 돌아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역하라면 쉬워도 기다리라면 어려워합니다. 시간 낭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정확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승천하심을 본 사람들은 다락방에 들어가서 순종하며 기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500인이나 되었지만 120명만 순종했고 나머지 380명은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고전15:6, 15). 이사야에서는 이것을 "남은 자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이, 순종하는 백성이 남아 있는 백성입니다.
“~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눅14:15,16) 이 말씀에 보면 남들보다 축복을 더 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청함을 거절합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를 가서 잔치에 못 가겠답니다. 받은 축복으로 인해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들 때문에 오히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초대받아 구원을 받습니다. 축복이 우리의 생명을 얻는 구원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내가 있을 때 부흥이 일어나고, 내가 있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모여서 회의하고 토론한 것이 아니라 기도한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곳이 되어야 합니다. 민주적인 사역을 하는 교회는 잘 될 것 같지만 오히려 다툼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교회는 무슨 문제가 있든지 항상 모여서 기도하면 일치가 일어납니다. 모여서 오로지 더불어 기도만 하니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조율하는 것입니다. 그럼 전 성도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능력 있는 모습으로 변화가 됩니다. 오합지졸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군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120명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것입니다. 나가서 말씀을 전할 때 한 번으로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120명의 믿음이 3천 명을 압도하고도 남은 것입니다. 그러니 부흥이 일어나도 문제가 없습니다. 어리숙한 120명이 모인 곳에 3,000명이 들어오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세속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수가 느는 것이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위기 상황에서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기도로 내용을 채웠더니 충만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기도하는 가운데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죄악이 환하게 보이게 만들고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자꾸 언급하게 만들어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부족한 게 보이고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보이니까 더 구하게 되고 죄가 보이니까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빛입니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의 마지막 목회 서신에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했는데 이는 악질이 됐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이 더 잘 보인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세밀하게 일해 가십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며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20, 시109:8). 항상 기도로 인한 체험은 말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확신을 가지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는 제자의 조건은 항상 함께 다녔던 부활의 증인입니다(22). 어떤 사람은 목사보다 성경을 더 잘 아는 사람도 있는데 지식이 많은 사람의 특징을 보면 부활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안 믿으면 지식이 아무 힘도 되지 못합니다. 생명이 없고 역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부활의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귀신도 믿습니다. 이것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시지 않으면 믿음도 안 생기고 동행의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의 자리는 존경의 대상 자리가 아니라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그 직분을 사모한 것입니다. 제자의 조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는가? 내 안에 부활의 주님이 계시는가입니다. 그럼 가난해도 좋고 병들어도 좋고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기도의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 이게 제자의 조건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명확한 말씀을 순종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확한 말씀 붙들고 순종하여 제자를 세운 것입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아 순종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하다 보면 순종의 영역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우리가 커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신뢰의 부분까지도 다 눈으로 보고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성장이 순종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동행하십시오. 항상 승리가 떠나지 않는 믿음의 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