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목동에 살 때였다.
당시 나는 목동 트윈빌 D-3004호 74평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었는데 30층 꼭대기에 옥상 정원 40평이 별도로 있었다. 그 곳에다 한 그루에 수백만원씩 주고 조경용 소나무 13그루를 심고 바닥에는 켄터키 그라스라는 고급잔디를 심어 놓으니 하늘에 떠 있는 글자 그대로 하늘정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구경시켜 달라고 줄을 섰고 구경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탄사를 늘어 놓았다.
딸아이가 강남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걸 몹시 힘들어하는데다 지금 대우인터내셔널 회계팀에 근무하는 아들이 당시 다니던 학원도 강남이라서 강남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던차에 우리집을 파는 줄알고 동네 떡장수가 집을 사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그 집은 팔지 않고 대물림해 줄 집인데도 이사를 간다니까 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우리 딸이 전에 다녔던(지금은 한화증권 과장이지만 전직장은 '에프앤가이드'라는 증권정보회사)회사 팀장의 친구가 월급쟁이를 때려치우고 우리 동네에서 '고궁'이라는 떡집을 차렸는데 맛이 뛰어나 장사가 잘 되 돈을 많이 벌어 벤츠 500을 타고 다니는데다 자식은 캐나다 유학을 보내고 또 수십억이 넘는 큰 집까지 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다.
나는 돈을 벌기위해 청춘의 많은 부분을 외국,그것도 열사의 사막에서 보냈고 귀국해서는 또 무슨 역마살이 끼어서였는지
수십나라를 십년이상 가방하나 들고 물건 팔기위해 코쟁이들을 찾아다니며 설움을 당하면서 시차(Jet-lag)때문에 고통받으면서 돈을 벌었는데 여기 우리동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이제 삼십대 후반,잘해야 사십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그것도 떡장수를 해서 큰 돈을 모았다니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당장 그 집 떡을 사 먹어 보니 과연 맛이 있는데다 떡하나 하나가 모두 예쁜 포장이 되어 있어 시각적 효과도 만점이었다.
내가 나의 놀라움을 표시하니 와이프가 말하기를 여의도 지하상가 대교떡집은 큰 건물이 몇개이고 같은 지하상가에 있는 대림정육점도 큰 건물이 몇개나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돈을 벌기위해 나처럼 대학나와 대기업에서 10년이상 근무하고,외국어,회계실무,제품생산을 섭렵하고,해외판로개척을 위해 지구를 다람쥐 체바퀴돌듯 수십바퀴 도는 그런 방식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남들이 눈여겨 보지않고 하찮게 생각하는 업종이라도 남들보다 훨씬 잘 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뒤 늦게 깨달았다.
마침 명절 때 와이프가 여의도 지하상가에서 고기와 떡을 사야 한다고해 태워다 주면서 그 두 집,떡집과 정육점을 가 보았다.과연 명불허전,그 집 떡을 사려고 늘어선 사람들이 지하에서 시작해 계단을 거쳐 건물 밖에까지 줄 서있었다. 송편을 먹어보니 과연 일품이었다. 기계로 만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비법으로 삼십년 넘게 장안의 입맛을 사로 잡아왔고 오래전부터 청와대 납품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정육점을 가보니 꽤 젊은 사람이 주인인데(사십대 중반정도) 와이프 말이 원래는 옆에 쪼그만 정육점 종업원이었는데(수년전에 갔을 때는 게딱지 같이 작은 정육점이 대림정육점옆에 붙어 있었는데 얼마전에 가니까 대림정육점이 그것마저 인수해서 확장해 놓음)독립한 다음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는 지는 모르지만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 고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함으로써 이십여년이 지난후에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과연 고기(주로 쇠고기)가 맛있었고 손님들에게 친절하였으며 고객관리가 철저하였다.(주인의 멘트; 사모님 드리려고 맛있는 부위를 따로 준비해 놓았어요)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냉동고에 가서 고기를 가져왔다. 고객에게 자기 존중감(=Sense of self-importance)을 갖게하는 기막힌 상술이었다.
한번은 부천에 있는 '강원 토종 삼계탕'이라는 곳으로 와이프가 가자고 했다.우연히 자기 친구들 모임에 따라 갔다가 먹어 보았는데 맛이 기막히다는 것이었다. 가서 보니 난 태어나서 그렇게 큰 삼계탕집은 처음 보았다. 주차요원에게 물어보니 평일날 하루 매출이 4천-5천만원, 복날이면 하루 매출이 일억 이천만원이라는 것이며 매출의 절반은 이익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주변 은행에서 주인내외를 황제와 황후처럼 모신다는 말도 빼 놓지 않았다. 우선 번호표를 받고 계단에서 30분을 기다리는데 주인(키가 작고 왜소하였다)이 마이크를 들고 번호를 부르면 입장할 수 있었다.우리 부부는 계단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데 어떤 부부가 기다림이 지루하다고 표 두개를 양보해 주었다.
덕분에 조금 시간 절약해서 들어가 먹으면서 느끼는 진리; 지구 끝까지 멀리 돌아다니면서 돈을 버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데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남들보다 훨씬 잘 하기만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느니라(재모 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