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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5일 베를린 필하모니에 실황 / 143분>
=== 프로덕션 노트 ===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 베를린 필하모니에 공연 실황
"다른 행성에서 온 피아니스트" - 잘츠부르크 나흐트리텐
"모든 부분에서 진정으로 경이로운 피아니스트이다" - 인터내셔널 피아노
호평 받았던 2013년 6월 5일 열린 소콜로프의 베를린 필하모니에(베를린필 전용 콘서트홀)의 라이브 실황이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콜로프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스튜디오 녹음은 하지 않아 그의 앨범은 매우 희귀하다. 이번 실황은 2002년 샹젤리제 극장 실황 이후 두 번째로 녹화되어 DVD로 발매되는 영상이다.
이번 실황 영상에는 소콜로프가 음악에 열중하는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7개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소콜로프의 연주를 담아냈다. 특히나, 재촬영 없이 풀 연주 그대로 녹화하였다. 이번 영상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클래식 전문 프로덕션 Bruno Monsaingeon이 제작하였다.
=== 프로그램 ===
슈베르트
Four Impromptus D899
No.1 in c minor
No.2 in E flat major
No.3 in G flat major
No.4 in A flat major
Three Piano Pieces D946
No.1 in E Flat major
No.2 in E flat major
No.3 in C major
베토벤
Piano Sonata in B flat major, op.106 "함머클라비어 Hammerklavier"
(앙코르)
장-필립 라모
Les tendres plaints
Les tourbnillons
Les cyclopes
La follette
Les sauvages
브람스
Intermezzo in b flat minor op.117 no.2
=== 감상평 === <2016년 11월 20일 고클래식(goclassic.co.kr), skyhigh님>
예전에 신보소식란에 소개했던 2013년 베를린 공연 실황을 담은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DVD 타이틀입니다.
연주곡은 슈베르트이 즉흥곡 D.899의 네곡과 세개의 피아노 소품 D.946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르클라이버 입니다. 앵콜곡도 풍성하게 라모의 5곡과 브람스의 간주곡 2번 입니다. 그가 무대에 나오는 모습은 리히테르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뻣뻣한 자세(?)로 뚜벅, 뚜벅 걸어나오는 분위기가 연주 전부터 카리스마를 느끼게 합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모두 여덟곡인데 네곡만 연주가 되어 선곡에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D.946을 연주하지 말고 한번에 즉흥곡을 다 연주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하여튼 이 네곡은 워낙 유명한 곡이고, 슈베르트의 감성이 잘 드러나있어서 연주 내내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소콜로프는 그 특유의 타건으로 각진 피아노 소리를 통해 슈베르트의 우울하면서도 탐미적인 세계와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슈베르트의 깊은 감수성이 우러나온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소콜로프의 슈베르트가 들리는 거죠.
아, 이 베토벤 소나타 29번은 상당히 개성적인 연주입니다. 제가 듣기에 이것이 평소 듣던 함머르클라비어 소나타인가 하고 느껴질 정도로 악상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단적으로 연주시간만 보아도 소콜로프가 루바토를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연주 시간은 무려 53분 정도입니다. 최근에 나온 부흐빈더의 실황 연주가 약 39분 정도이고, 굴다의 빠른 연주는 37분 정도입니다. 박하우스가 42분 정도고, 브렌델도 44분 정도이니 비교가 바로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콜로프의 3악장은 21분이 훌쩍 넘어갑니다. 사실 강한 타건과 기계같은 테크닉, 단단하고 각진 피아노 소리를 가진 소콜로프는 이 소나타에 최적임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악장부터 느낌이 사뭇 다른게 생각보다 도입부가 강하지 않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시작한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1악장의 다이나믹함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통상 우리가 이 소나타의 1악장에서 느껴왔던 방향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가장 극대화된 것이 3악장 연주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소한 3악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오래전 베토벤이 작곡한 작품이 아니라, 베토벤이 현대에 살면서 엊그저께 작곡한 듯 그 미묘하고 절묘한 템포와 물흐르는 듯한 프레이징은 귀를 의심하게할 정도로 마음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노년의 소콜로프가 바라보는 베토벤의 세계는 그렇게 악보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에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베토벤을 이 시대로 다시 불러와 살게한 것 같습니다.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으나, 천편일률적인 수많은 연주보다 이런 연주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앵콜도 풍성해서 라모의 연주도 본인의 장기가 잘 살아있습니다. 브람스의 간주곡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곡인데, 이번 2번 연주는 그렇게 재미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펙은... 화질이 별로입니다. FHD 대형화면으로 보면 외곽선이 흐릿하고, 색감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좀 적은 화면으로 보면 무난하게 보이지만, 고화질 시대의 높아진 기준을 충족시키기엔 최근 나온 제품치곤,,,,, 부족합니다. 특히 원거리 앵글에서 이런 점이 더 두드러집니다. 뭐 그냥 감상할 수는 있지만 역시 BD 스펙이 아쉬웠습니다. 사운드는 PCM과 DTS를 지원해서 그나마 깨끗한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라이센스로 감상해서 해설지의 한글 번역은 덤이었습니다. 정말 소콜로프는 반드시! 언젠가 내한하여 공연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내지 해설 === <오스월드 보장 Oswald Beaujean / 황진규 번역>
비범한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통찰력 있는 해설
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생애 마지막 두 해였던 1827~28년에 씌어졌다. 당시 그는 서른을 막 넘긴 상태였다. 이들 작품은 대부분 그의 소나타 상당수보다 연주하기 쉽지만 음악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코 무게가 덜하지 않으며, 완성도와 내적 충실함이라는 면에서는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위해 썼던 곡 가운데서도 최상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덜 중요한' 혹은 '사소한' 작품이라는 전통적인 분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 개의 피아노 소품, D946'에 대해서 옳은 것처럼 '즉흥곡, D899'와 'D935'에 대해서도 옳다. 슈만은 이들 즉흥곡 연작이 순서와 성격이라는 면에서 각각 4악장짜리 소나타와 같다는 점을 지적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작곡가 인생의 마지막 해에 작곡된 '세 개의 피아노 소품'은 순전히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절망감과 외로움이라는 요소 때문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요소는 절대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탈출할 수 없는 되풀이되는 절망이라는 비슷한 어조를 지니는 프란츠 리스트의 마지막 곡들마저도 내다보고 있다. 물론 리스트의 경우에는 이들 작품은 정말로 '후기' 작품들이었으며, 이미 일흔을 넘어선 사람의 펜과 감정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슈베르트의 '사소한' 피아노 작품들이 지닌 감정적 무게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며, 이들 곡에 대한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해석은 이 점을 거의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맨 첫머리부터 수정처럼 투명한 아티큘레이션으로,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시적 정취가 깃든 호흡으로 연주되며 이는 매혹적인 긴장감과 더불어 우리를 슈베르트의 세계의 궤도 속으로 끌어 들이며, 여기서는 모든 낭만주의적인 정서와 특히 일체의 감상성이 엄격하게 배제된다. 이 세계에는 위안을 주는 요소는 거의 없으며, 불온함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위협마저도 가득하다.
다단조로 되어있는 첫 번째 즉흥곡은 소콜로프의 손에서 10분에 걸쳐 진행되는 표현주의적 심리극이 된다. 이 심리극은 갑자기 심연을 힐끗 엿보는 것으로 시작하며 몇 번이고 우리 발치의 땅이 입을 벌리게 만든다. 달아날 곳은 없어 보인다. 이따금 거의 조울증에 가까워지는 이런 신경과민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곳도 없으며, 슈베르트의 음악과 그에 대한 소콜로프의 해석에 자신을 거리낌 없이 내맡기며 듣는 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위대한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이들 즉흥곡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었을 다이내믹의 극단을 탐구했다면, '세 개의 피아노 소품'에서는 이런 접근방식을 한층 더 밀고 나간다. 여기서 그는 종종 극단적인 루바토 구사를 통해 화성 진행을 늦추며, 더 일반적으로는 템포 선정이라는 면에서 자기 자신에게 놀라울 만한 자유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순간도 자의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의 목적이 진지한 것임은 그가 슈베르트 자신이 '세 개의 피아노 소품' 중 첫 곡으로 삼았다가 (아마도 전곡이 너무 길어질 것이라는 염려에서) 빼버린 '안단티노 내림가장조'를 삭제하지 않은 데서 특히 잘 드러난다. 그러나 소콜로프는 14분이 넘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지탱하는 긴장감을 유지할 자신이 있기에 이 곡을 포함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극단에도 불구하고 소콜로프의 슈베르트는 완전히 유기적이고 '타당하게' 들린다. 어떤 것도 억지스럽거나 의도적이거나 꾸며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따금 그와 동시에 숨어 있던 내성부가 위협적으로 표면에 떠올라 번뜩이는 것을 허락한다. 또한 그는 가차 없는 저음부 음형을 다듬으면서, 일관되게 그 다음에는 근본적인 분위기를 곧이어 올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밝게 하면서 손상되지 않은 세계가 곧바로 닥쳐올 심연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지극히 희미한 조짐마저 일으킨다. 이 조짐은 굳은 결의와 더불어 슈베르트의 음악에 내재하는 감정적 격변 위에 일상의 모진 빛을 비추는 가혹함으로 화하고 있다. 이는 음악은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소콜로프의 신념을 반영한다. 그의 입이 씰룩거리는 것을 본 사람이나 '네 개의 즉흥곡' 말미에서 터져나오는 박수를, '알레그로 아사이 내림마단조'의 첫머리로 자기 자신을 광포하게 내던지기 전에 방해받는 것은 딱 질색이라는 듯 성마른 태도로 제지하는 모습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 음악이 겉으로는 너무나 고요하며 신체적으로는 태연자약해 보이는 이 연주자의 내면에서 얼마나 들끓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주에 극도의 명확함과 투명함을 부여하며, 감성과 지성 사이에 그리고 감정과 구조 사이에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그 결과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근원적인 면에서 감상성과 무관하다는, 그의 급진적이지만 심오한 시적 선언으로 나온다. 아마도 이는 소콜로프의 해석이 지닌, 많은 청자들이 가장 깊은 직관적 차원에서 분명히 느꼈던 성격인 억압적인 현실성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소콜로프는 이를 베토벤의 가장 기념비적인 소나타이자 본질적으로 괴물 같은 크기를 지닌 데다 동시에 지성과 영혼 양쪽에 도전이 되는 작품으로 잇는다. 산산이 조각난 영혼의 풍경에 대한 이전의 수많은 탐구 가운데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그의 급진적인 슈베르트 해석 뒤에 등장하는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의 첫머리는 놀라우리만치 절제되어 있으며, 소콜로프가 이 대목을 거의 부드럽고 시적인 빛에 담그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자기 동료 대다수와는 달리 이 작품의 오만하기까지 한 영웅적 태도보다는 거의 서정적이기까지 한 근원적 음색에 관심이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음색을 이용해 이 극단적인 우상 파괴적 작품에서 또 다른 측면을 끌어내며, 여기에 섬세함과 가벼움 그리고 음악적 중간색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분명 어느 정도는 전혀 과장되지 않은 속도 때문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것은 전체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소콜로프는 1악장 2주제의 푸가풍 첫머리에 바흐의 푸가가 지닌 자연스런 명료함을 부여함으로써 이 곡의 거인증적인 이미지를 축소하며, 이러한 인상은 마지막 악장의 미친 듯이 복잡한 대위법적 진행의 와중에도 되풀이되고 증폭된다. 겉보기에는 태연자약하게 마지막 푸가가 지닌 무시무시한 원심력을 자신만의 불가사의한 기교적 재능으로 통제하는, 그리고 거의 문자 그대로 자체적으로 대위법적 짜임새가 지닌 무게 아래 내적 파열을 일으킬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악장에서 비정상적으로 빽빽한 음악 소재에 구조적 투명함과 질서정연한 느낌을 부여하는 소콜로프의 능력은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유일무이한 것이다. 다른 어떤 피아니스트도 이 점에서 소콜로프에게 미치지 못하며, 지적인 면에서나 기교적인 면에서나 그렇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소콜로프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악장에서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는, 그리고 거의 22분에 걸쳐 유지해내는 내적 긴장감과 거의 고통스럽기까지 한 격렬함에도 반영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극도의 명료함으로 감상성을 암시하는 어떤 징후도 용납치 않는다.
장-필리프 라모의 건반 작품으로 '함머클라비어'의 뒤를 잇겠다는 발상은 긴 드라마에다 풍자극 하나를 덧붙여 무해한 시시함이라는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콜로프는 이들 작품을 결코 하찮게 다루지 않는다. 자기 동포의 작품들을 '음악의 가장 단단한 토대 중 하나'라 일컬었던 이는 다름 아닌 클로드 드뷔시였으며, 소콜로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느꼈으리라는 것은 전적으로 있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독주회에서 지적으로 까다로운 인물이었던 라모의 작품들을 앙코르로 꾸준히 연주했기 때문이다. 단계적인 악구 진행이나 트릴, 폭넓게 도약하는 음정 등 이들 작품이 내포하는 순전한 기교적 요소에서 그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청각적으로(그리고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 러시아 피아니스트에게 라모의 하프시코드 작품들은 분명 단순한 기분 좋은 지적 연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히려 그는 이 프랑스 작곡가가 '클라브생곡집' 작곡과 관련해 언급한 "열정을 그려라"("peindre les passions")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드러운 불평(Les Tendres Plaintes)'에서건 '회오리바람(Les Tourbillons)'이나 '야만인(Les Sauvages)'에서건, 소콜로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도 설득력 있는 묘사와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소콜로프의 마지막 앙코르는 브람스의 멋진 '간주곡 내림나단조'이다. 너무나 금욕적이어서 접근하기 힘든 후기 피아노 작품에 속하는 이 곡은 일종의 고별사 같은 느낌을 주며, 소콜로프의 해석은 이 점을 명쾌하게 보여주면서 여기에 무한한 시정과 내적 본질을 부여한다. 그는 절대 앙코르를 여섯 개 넘어 연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브람스는 라모보다 더 매혹적이다. 이미 충분히 긴 독주회 프로그램을 들은 사람이라도 이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을 30분 정도는 쉽사리 더 즐길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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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1년 2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박제성 글>
명곡 명연주
슈베르트, 즉흥곡 D899, D935
시적 정취와 가요풍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소품
1827년 12월 D899 출판, 1839년 D935 출판
프란츠 슈베르트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소품 Miniature’이 아닐까 싶다. 이는 슈베르트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약점인 동시에, 역사적인 업적으로 평가할 만한 그 만의 장점이기도 했다. 후대 사람들은 당시 작곡가들 및 이전 작곡가들을 기억할 때 아무래도 짧은 ‘소품’보다는 길이가 긴 ‘대곡’ 위주로 연상하기 마련이다. 슈베르트 역시 대곡을 작곡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소품에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프란츠 리스트가 이에 대해 웅변적으로 역설한 바 있듯이, 그의 생전의 명성은 결코 그의 본질이 담긴 작품 위에 쌓아올린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출판된 슈베르트의 작품은 100여곡 정도로 그의 전작품의 10분의 1 수준 밖에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위대한 걸작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 춤곡과 행진곡과 같은 마이너한 장르에 집중되어 있다.
슈베르트 음악의 구심점 - 즉흥곡
반면 당시 건반음악 작곡의 경향은 소나타와 같은 대곡 중심의 작곡 형태가 점점 쇠퇴할 무렵이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갯수를 비교해 보거나 이후 리스트와 슈만, 브람스, 쇼팽 등등의 피아노 소나타의 숫자를 세어보면 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슈베르트 또한 대곡을 작곡하기 위해 자신의 천재성에 채찍질을 가했지만, 역시 그의 음악의 중심은 음악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어 작곡한 작은 규모의 춤곡과 미뉴엣, 왈츠, 렌틀러, 독일 춤곡, 갤럽 등 이었다. 이것은 그가 사랑했던 가곡 형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소품에서 나타난 훌륭한 완성도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적 감흥을 결합한 슈베르트만의 청초한 매력이야말로 19세기 건반악기 작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선구자적 업적이라고 평가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그 업적의 한 가운데에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여덟 곡의 [즉흥곡]이 오롯이 서 있다.
즉흥곡이라는 용어는 슈베르트가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한 182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의 빈에 이미 등장해 있었다. 빈의 음악적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런 류의 작은 3부 형식으로 된 피아노의 기원은 체코인들에게서 발견된다. 요셉 예리넥(Josef Jelinek)이 빈에서 화려한 기교로 피아노 변주곡의 마술을 갈고 닦고 있을 때, 그보다 젊은 역시 체코의 바츨라프 얀 토마세크(Tomáŝek)는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가벼운 양식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인 얀 바츨라프 보리세크(Vořĺśek)는 1814년 프라하를 떠나 빈으로 오면서 이 ‘즉흥곡’이라는 양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빈 음악애호가 협회에서 지휘를 맡았던 보리세크와 슈베르트는 비슷한 집단에서 활동했고 틀림없이 서로 알고 지냈을 확률이 높다. 보리세크의 [즉흥곡 Op.7](1822년)은 음악적 소재의 측면에서는 아닐지라도 그 시적 고취감과 음악적 구조의 측면에서 슈베르트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곡가의 시적 감흥과 낭만적인 상상력을 음악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낸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의 그 진솔함은 슈베르트의 위대한 독창성의 발로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즉흥곡 D.899
저 숭고한 연가곡 [겨울여행 (겨울 나그네)]가 출판된 해인 1827년 12월 슈베르트의 첫 [즉흥곡 모음인 D.899]가 출판되었을 때, 여기에 즉흥곡이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은 작곡가가 아닌 출판업자인 토비아스 하슬링거(Tobias Haslinger)다. 첫 곡은 소나타 형식이 아니면서도 슈베르트 소나타 악장 특유의 스타일을 자랑한다. 반주 없는 행진곡 리듬이 제시되고,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키는 경과구가 물감이 번지듯 공간을 채색하며 이윽고 앞선 주제의 화려하고도 새로운 발전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유명한 2번 E플랫 장조의 맨 앞과 맨 뒤는 E플랫 장조로서 마치 오른손을 위한 연습곡과 같이 유려한 테크닉과 기나긴 유니즌이 인상적이고, 가운데는 폭발력 높은 B단조로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 복잡하면서도 사연이 많은 듯한 스토리를 거친 뒤 터져나오는 격정적이고도 자기파괴적인 마지막 코다까지의 서사적인 전개구조를 생각해 본다면, 어떤 측면에서는 쇼팽 발라드에 대한 예견이라고도 말할 법하다.
3번은 조금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원래 플랫이 여섯 개가 붙은 G플랫 장조였지만 출판사는 이보다는 덜 부담스럽게 하기 위해 플랫이 하나인 F장조로 조바꿈을 한 채 출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이해적인 관행은 거의 100여 년 동안 이어졌지만, 이제는 원래대로 복원되어 이 서정성 충만한 작품의 진가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4번 A플랫 장조는 벚꽃이 떨어지는 듯 영롱한 하강 스케일의 반복이 펼쳐지는 작품으로서, 테크닉보다는 음색과 뉘앙스의 섬세한 조절을 요구한다.
즉흥곡 D.935
1828년 2월 쇼트 출판사에 보내진 두 번째 [즉흥곡집 D.935]는 출판이 늦어져 1839년에야 이루어졌고, 출판업자인 디아벨리가 프란츠 리스트에게 바치는 헌정본의 형식으로 Op.142의 작품번호를 달고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에 슈베르트는 “이 곡들은 각각 따로 출판되어도 좋고, 하나로 묶어서 출판되어도 좋습니다”라는 설명을 붙였는데, 이렇듯 각 작품의 내용은 훨씬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내적 통일성 또한 한층 높아졌다. 그러한 만큼 로베르트 슈만은 이 작품에 대해 “즉흥곡으로 위장한 네 악장의 소나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첫 F단조는 비장한 첫 부분과 폭풍우 같은 마지막 부분, 잔잔하면서도 완만한 중간 부분의 간결한 3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번 A플랫 장조는 [음악의 순간]의 마지막 곡과 그 모양과 조성이 닮아있는 아름다운 곡이고,
3번 B플랫 장조는 유일한 변주곡 형식이다. 주제는 자신이 작곡한 부수음악 [로자문데]에서 차용한 주제이고 이어 다섯 개의 변주가 화사하게 펼쳐진다.
마지막 4번은 헝가리적 취향이 깔려있는 작품으로서 강렬한 엇박자의 액센트가 마자르적인 역동성과 분위기를 풍겨낸다. 특히 마지막에서 펼쳐지는 건반의 맨 끝에서 맨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폭포와도 같은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이다.
추천음반
가장 먼저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의 서정성과 그 온전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1세대인 에트윈 피셔의 역사적인 녹음(Testament)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의 숨막힐 듯 영롱한 터치와 무균질적인 음향은 이 녹음이 1938년 모노 레코딩임을 잊게끔 한다.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의 진정한 르네상스 시대는 알프레드 브렌델 이후에 펼쳐진다. 그 가운데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Sony)는 이지적인 측면과 비르투오소적인 측면이 결합한 현대적인 해석의 표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빈 사운드의 대표 악기인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투명한 색채감과 유려한 서정성을 강조한 언드라시 쉬프의 녹음(DECCA)도 훌륭하고,
음향과 정서의 새로운 측면을 탐구한 라두 루푸(DECCA)도 연주와 레코딩 모두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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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0년 12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박제성 글>
명곡 명연주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B플랫장조, Op.106
긴 연주시간, 거대한 스케일과 양식을 가진 새로운 피아노 소나타
1819년 3월 완성해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 장조 Op.106은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작품으로서, 1817년 가을부터 첫 스케치가 시작되어 1819년 3월경에 마무리되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을 작곡하는데 베토벤은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을 바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합창 교향곡]의 첫 악장의 윤곽이 잡혔고 [미사 솔렘니스]의 작곡에 착수함과 동시에 여러 건강상의 문제들과 재정적 어려움, 조카인 칼과 관련한 법적 소송 등을 겪고 있었다. 비엔나 근교인 뫼들링(Mödling)에서 머무르던 베토벤은 “현재의 처지에 맞서고자 작곡을 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함머클라비어 – 현대적으로 개량된 피아노
이 작품은 베토벤의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 4번]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피아노 소나타 Op.81a],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Op.96], 피아노 트리오 B플랫 장조(대공의 이름이 부제로 붙은) 등을 헌정받았고, 더 나아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Op.111]과 [미사 솔렘니스] 마지막으로 [대푸가]까지도 헌정받게 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사람도 위대한 음악 작품을 이토록 집중적으로 헌정받은 루돌프 대공만큼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1819년 9월 아르타리아에서 출판될 당시 악보 맨 앞 페이지에 인쇄된 ‘함머클라비어’라는 제목은 어떠한 음악적 혹은 악기적인 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탈리아어로 당시에 현대적으로 개량된 피아노를 뜻하는 피아노 포르테라는 단어를 독일어로 옮긴 것으로서 망치(Hammer)와 건반악기(Klavier)의 혼합명사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는 잭이 현을 잡아뜯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피아노 포르테, 즉 피아노는 햄머가 액션에 의해 현을 때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독일어 대본에 의한 징슈필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음악혼을 도취시켰던 것처럼,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서 독일어를 통해 인쇄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아르타리아 출판사는 베토벤의 의도와 당시의 관행을 절충하여 두 종류의 제목, 즉 하나는 프랑스어판으로서 Grand Sonate pour le piano-forte, 다른 하나는 독일어판으로서 Grosse Sonate für das Hammer-Klavier라는 제목으로 인쇄되었다. 피아노 소나타에 ‘함머클라비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베토벤의 다른 소나타(Op.101과 Op.109)나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의 경우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경우로 비교적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유독 이 제목이 Op.106에 잘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스케일과 내용을 가진 역사적인 피아노 소나타
이 [29번 피아노 소나타]는 하이든으로부터 계승한 양식상의 대원칙, 즉 전통적인 네 개의 악장 구성으로 과감하게 되돌아갔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악장에서 푸가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빈에서는 그다지 특이한 일까지는 아니었다. 또한 각 악장 내부와 악장간의 비율은 하이든의 작품이나 이전까지 베토벤의 소나타와 비교해서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네 개의 악장에 전례 없이 거대하고 확장된 스케일과 내용을 통해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 이 소나타만의 변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길이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길다. 총 연주 시간은 약 45분에서 50분에 육박하는 만큼,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은 물론이려니와 이전에 그가 작곡한 소나타들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강렬한 1악장과 스케르초풍의 2악장, 가장 긴 연주시간을 요하는 아다지오 3악장과 베토벤만의 독창적인 방식에 의한 거대한 마지막 푸가 악장을 일별해 보면, 그의 [교향곡 9번 ‘합창’]과 비슷한 전개 방식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거대한 대위법적 구조와 고도의 비르투오시티, 대범한 하모니와 리듬의 대범함, 각 성부 및 음악 요소의 X-레이적인 명료함으로 새로운 소나타 양식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이 소나타는 연주자에게 초인적인 연주 능력과 광범위한 해석의 지평을 요구하는데, 특히 그 연주 효과와 음악적 환기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런 까닭에 20세기의 초반을 대표하는 대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는 이 작품을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 녹음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위한 장치나 기법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흔적은 악보는 물론이려니와 베토벤의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만큼,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에 필적할 만한 건반악기의 독자적인 음향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베토벤은 이 작품이 제대로 연주되려면 50년이 지나야 한다고 장담했다. 비록 이 작품이 출판되고 50년이 채 안되었을 때 프란츠 리스트가 대중들 앞에서 이 작품을 연주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후일 베토벤으로부터 전통의 봉인을 상징하는 키스를 물려받은 리스트는 자신 역시 파괴적이고 초월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작곡하여 일종의 [함머클라비어]에 대한 관념적 오마쥬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부터 신화적, 영웅적, 형이상학적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그 ‘냉정한 성스러움’의 세계를 보편적으로 인식하는데에 적어도 100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1악장 알레그로
첫악장은 B플랫 장조의 웅장한 화음으로 시작한다. 보다 서정적인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하며 첫 주제와 대조를 이루고, 발전부에 푸게타가 등장한 이후 재현부에서 베토벤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치밀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이후 첫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양손의 가공할 만한 트릴의 행진과 옥타브 연타로 이어진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베토벤 작품에서도 보기 드문 포르티시시모(fff) 패시지가 등장한다.
2악장 스케르초. 아싸이 비바체
짧고 날카로운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짧은 스케르초 악장은 첫 악장 1주제의 변형이 주를 이룬다. 내면적으로 1악장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배치한 듯한 이 2악장은 간결하고 유머러스한 단2도의 하강이 인상적으로서 후일 후기 현악 4중주에서 이러한 기법이 자주 응용된다.
3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아파시오나토 데 콘 몰토 센티멘토
빌헬름 켐프가 “베토벤이 작곡한 가장 장대한 모놀로그”라고 칭송했고 언드라스 쉬프 또한 “서양 음악사의 정점”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 이 아다지오 악장에는 베토벤의 심연의 고독과 삶에 대한 비애가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들의 2악장에서의 화자가 표현하는 그 시리도록 고독하고 절망적인 아름다움의 원류를 바로 이 [함머클라비어]의 3악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악장은 낭만주의의 시작이자 고전주의의 완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4악장 라르고- 푸가: 알레그로 리솔루토
앞 악장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숨을 고르는 듯한 라르고가 제시되고, 이어 견고하고 다채로운 3성 푸가가 동중정(動中靜)의 경지를 표현해내며 극한 대조를 이룬다. 느린 분위기에서 빠르고 장대한 합창으로 이어지는 [9번 교향곡]의 4악장 형식과 쉽게 연관지을 수 있는 이 마지막 악장의 거인과도 같은 웅장한 형식은 [32번 소나타]의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듯 숭고한 마지막 아리에타 악장에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후기 피아노 소나타들의 마지막 악장에서 현세에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희망을 노래 불렀지만, 베토벤은 대위법적 완전체라는 형식 안에서 통렬한 트릴과 강렬한 스트레토, 고양감을 불러일으키는 상승과 하강 스케일 및 환상적인 반음계적 패시지, 전능한 듯 단호한 옥타브 도약 등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전혀 다른 세상을 향해 승화시켜버렸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의 위대함이다.
추천음반
낭만주의 시대의 관습과 스타일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방법에 의한 베토벤 본연의 의도와 악보 자체에 인쇄되어있는 구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여내준 최초의 음반은 아무래도 솔로몬의 연주(Testament)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켐프나 아라우, 제르킨 또한 독일 피아니즘에 의한 훌륭한 ‘함머클라비어’를 보여주었지만, 이 가운데 빌헬름 켐프의 스테레오 녹음(DG)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음악적 디테일과 대범한 컨셉을 추천한다.
연주자의 관점과 해석의 차원에 따라 전혀 상반된 모습을 띄는 이 작품에 있어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의 저 압도적이다 못해 충격을 안겨주는 프라하 실황(Praga)과
강철의 터치로 구조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보여준 에밀 길렐스의 스튜디오 레코딩(DG) 또한 명연 중의 명연으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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