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채국 할머니와 딸 주혜진씨, 김현균 수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맹현균 기자 |
김채국(마리아, 77) 할머니는 오늘도 끼니를 걸렀다. 간병하는 딸(주혜진, 51, 가명)이 두유라도 마셔보라고 건네지만 김 할머니는 고개를 돌린다. 입맛도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찾아오는 두통과 메스꺼움에 숟가락을 들지 못한다.
“왜 안 먹어. 나도 새아버지도 엄마 살려 보려고 이렇게 옆에서 열심히 돕고 있는데….” 딸 주씨는 밥을 굶는 김 할머니를 다그친다. 김 할머니는 아프기 전보다 몸무게가 15kg이나 줄어 뼈만 앙상하다.
지난해 가을, 김 할머니는 평소보다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 붓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15년 전 만나 재혼한 남편(김현태, 70)은 청소 하청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오른쪽 어깨가 골절됐다. 부부는 서로에게 부담될까 봐 고통을 참아왔다. 결국, 올해 4월 김 할머니가 쓰러졌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위와 장에 출혈이 심하고 폐에 물이 찼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할머니는 쇠약해진 몸으로 치료를 받다가 뇌에 출혈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병원에 가는 게 무섭다. 병원비 때문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김 할머니와 딸 주씨는 불법체류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십 년을 한국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지만, 남은 게 없다. 240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남편과 새벽에 식당에서 일하는 딸의 수입을 합친 150만 원이 한 달 버는 돈 전부다. 김 할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남편과 딸이 번갈아가며 일을 나간다. 월세와 치료비,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없다. 그마저도 남편이 어깨를 다쳐 수입이 줄었다. 월세로 사는 방도 언제 방을 빼라고 할지 모르기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중국 동포인 김 할머니는 1992년 한국에서 일을 해보겠느냐는 친척의 제안으로 전 남편과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2년 동안 일만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돈을 맡아주겠다던 친척에게 그간 모은 2000만 원을 건넨 것이 실수였다. 친척은 돈을 들고 잠적했다.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할머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남편은 화병에 몸져누웠고, 돈이 없어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친아버지도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못 가고 돌아가셨는데, 엄마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죠….” 딸 주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후견인 / 김현균(요셉피나) 수녀
성바오로병원 사회사업팀장
“김채국 할머니는 한국에서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어르신들의 부양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문제가 집합돼 있습니다. 이 가정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세요.”
※김채국 할머니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11일부터 17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15)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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