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찌어다 평강이 있을찌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 - 히 13:15에서 바울이 말한 '찬미의 제사'가 바로 '입술의 열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게 할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일이란 '평강'에 관한 것이다. 이 '평강'이란 완전한 평화로서..
먼저는 유대인의 포로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관계되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으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파될 복음을 통하여 온 인류 중 택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평안의 복음이 이방에게도 퍼질 것을 '먼 데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드러내었다..
[렘 29: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 예레미야가 제시하고 있는 충고는 바벨론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곧, 집을 짓고 열매를 심으며 포로지에서 정착하라는 권고이다. 에스겔서에서도 암시되고 있다시피, 그들에게는 정착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또한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공동체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어쨋든 정착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권면은 포로기가 2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선언하였던 낙관적인 선지자들의 말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유다 땅이 아닌 포로지에서라 하더라도 정착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했고 성전과 희생 제사가 없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고 - 성경에서 '열매'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선악간의 결과들을 표현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 나무는 그 나무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그 구체적 결실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물론이 열매는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내적변화에 의해 외적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적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회개란 죄에 대한 단순한 외적 고백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격적 변화, 곧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들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돌들로도...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종교적 특권이나 혈연적 계보나 의식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유대인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와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이유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패역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요구하는 진정한 회개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려고 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칼날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첫인간 아담을 흙에서 취하셨다(창 2:7). 그렇기 때문에 빈 들이나 강 가의 돌들을 통하여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삼으실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을 가리킨다. 렌스키와 슈어만은 이 '돌들'이 바로 이방인들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주권적 권능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된 회개이다. 우리의 구원은 외적조건에 있지 않고 진정한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에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에게는 바로 삶에의 결단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인내하시면서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벧후 3: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