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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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일치를 사랑하시는 당신을
흠숭하며 감사드립니다.
일치의 끈이신 성령을 보내주시어
저희가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친교와 일치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소서.
미움이나 복수의 그림자가
당신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갈라놓지 않도록
저희 안에 사랑을 더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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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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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모든 교육자가 주님께서 주신 교육자의 길을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성실히 걸어갈 수 있도록 풍성한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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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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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루카 11, 15 – 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15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24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 야곱의 우물 묵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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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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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부르는 교만
산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서로 멀어집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서로 가까워지고 그 밑에는 맑은 계곡물도 흐르고 물고기도 삽니다.
서로 높아지려한다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고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치하는 모습은 바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겸손의 모습임을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서로 교만하게 만들어 갈라지게 하는 것이 그의 평생 직무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또 서로서로의 일치도 깨어놓았습니다.
한 번은 늦은 저녁 시간에 청년들의 회합실로 들어갔습니다. 여름 캠프를 위해 열심히 회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들어가 앉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어떤 단체장이 청년회장과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회장은 그 청년 단체장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습니다. 그러니 청년 회장도 그 단체장에게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것에서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가 임종 직전에 꼭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가 맡고 있는 단체가 분열되어 갈라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갈라져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서로 갈라짐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이지 말씀해 주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심지어는 마귀들까지도 서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마귀가 일치하는 것은 자신들의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바로 인간을 죄짓게 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놓으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이 잃은 하늘나라의 행복을 얻는 것을 못견뎌하고 그래서 인간을 죄짓게 하여 자신들의 원수인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많은 단체장을 나무랐습니다. 그 단체장은 저에게 실망을 하였을 테지만 저는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질서 때문에 공동체가 하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막내라 집에서 항상 부모님께 “그래도 형은 형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야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 회장 대신 그 부속된 단체장의 말을 더 들어준다면 청년회가 엉망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공동체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가장 큰 공동체로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공동체 안에 질서가 잘 잡혀져있고 그 질서를 존중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베드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사도들, 또 72제자 등으로 질서 잡힌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단 둘이 있어도 둘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지 서로 자신이 높다고 주장하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치의 모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큰 분이실까요? 만약 아버지가 더 크신 분이라고 대답했다면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한 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같아지려고 또 높아지려고 한다면 둘은 한 몸이 될 수 없고 하느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자꾸 낮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당신과 똑같이 높여주셔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낮아짐’입니다. 높이 있는 물일수록 서로 갈라집니다. 즉, 계곡물은 많은 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금 낮아져 시냇물이 되면 벌써 많이 하나가 되고 또 더 낮아져 강이 되면 더더욱 하나가 됩니다. 물론 가장 낮은 바다로 들어가면 모두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예를 보면 알 것입니다. 인간의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탑을 높이 쌓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어놓아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전 삼용 신부님의 사이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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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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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가장 아름답고 바른 질서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인간 본성을 다시 그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셨을 때, 여러 가지 다른 좋은 은혜들과 함께 성령을 풍부히 베풀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자기 스스로 평화롭고도 안전하게 그 은혜들을 소유하고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때를 미리 정하시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날에" 즉 구세주의 날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하고 예언자 요엘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자비와 해방의 때가 이르러 외아드님께서 육신을 취하시어 성경 말씀대로 여인에게서 태어나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다시 보내 주시어 그 성령을 새로워진 자연의 첫 열매로 그리스도께서 맨 먼저 받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증언해 줍니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이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실 때 성령을 받으시는 것은 사람으로서 성령을 받으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이시므로 사람이 되시기 전에도 심지어 모든 세대에 앞서 계셨지만, 사람이 되신 후 아버지께서 그를 보시고 "너는 내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세대에 앞서 당신에게서 태어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오늘 낳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 안에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실 때 만물을 당신 안에 담으십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당신이 지니고 계신 성령을 당신 아들에게 다시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 안에서 우리들도 성령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드님께서는 성령을 받으실 때 당신 자신을 위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이미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또 먼저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시어 당신 안에 만물을 담으실 때 그것을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기 위해 성령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판단하고 성서의 증언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 성령을 받으신 것이 아니고 당신 안에서 우리를 위해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은총의 선물은 역시 그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흘러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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