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 숲속에서 총을 쏜다. 맞은 놈이 떨어진다. 그것을 주우려고 사냥꾼이 뛰어간다,
두 자나 되는 개미집에 장화가 걸려 개미집을 부수고 개미와 알을 멀리 흩날려버린다 하자.
그 개미 가운데 최대의 철학자 개미라도 그 검고 거대한 무서운 물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빨간 불꽃에 이어 굉장한 소리가 났는가 싶더니 갑자기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그들의 집 속에 뛰어든 사냥꾼의 장화를.
죽음도 삶도 영원도 이와 같다. 즉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큰 조직을 가진 자에게는 극히 단순한 일인 것이다.
하루살이는 한 여름 날 아침 9시에 태어나 저녁 5시에 죽는다. 이 벌레가 어찌 밤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적과 흑/스탕달‒
개미 장화 사냥꾼 총 밤 등의 이미지가 사실 묘사에서 신비스런 분위기마저 일으킨다.
스탕달은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 인간 지성의 한계를 묘사했다.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정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참 지식 말이다.
조금만 슬기롭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처럼 말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라고.
왜 그는 이런 말을 했으며, 다량의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소크라테스의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겸양스런 척 하면서도 내면에선 교만한 지식을 뽐내는 경우가 많다.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고 하며 자신은 불가지론자라고 사양의 태도를 취했던 칼 세이건은
왜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면 안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과학이 아니니까요" 라고 답했다.
나는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이런 대답이 우습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모른다고 하면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단정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대답해 보라. 진화론이 과학인가? 전혀 아니다. 무신론이 과학인가? 아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싶지 않고 안 계셨으면 좋겠다는 반역적 심리가
이를 악물고 진실을 거부하면서 고수하는 그들의 신앙이다. 모른다는 자가 왜 아는 듯 얘기하는가?
아시는가? 무신론자들은 사실 자기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신적 존재라는 것,
창조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가 우주 생성시에 그 자리에 있어봤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표리부동한 주장이다. 우리는 파리나 모기 한 마리가 방에서 윙윙거려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 하나님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소크라테스의 자세나 스탕달의 표현이 더 인간적이라고 본다.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말하지 말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신이 더 정직한 것이다.
인간은 거대한 장화를 뒤집어 쓴 개미처럼 우주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인지
창조인지 아닌지 자신의 지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
광야에 컵 하나가 떨어져 있다. 그 컵이 자기가 무엇인지, 무슨 용도인지, 어떻게 광야에 있게 됐는지,
누가 자기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지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컵을 만든 자만이 컵의 기원과 용도와 목적을 컵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아니면, 그리고 믿음이 아니면 인간 이상의 진리의 실상을 볼 수 없는 것이다(히브리서11:1).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님께서 인간 이상의 진실을 가르쳐 주신 성경의 내용을 믿는다.
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분의 창조와 그분의 구속과 그분의 재림과 그분의 사랑을 믿는다.
어떻게? 성경으로 믿고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2023. 5. 16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성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