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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딴청 피우는 여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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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청 피우는 여자]
정영운 시집 / 황금알시인선 108 / 도서출판황금알(2015.06.3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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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청 피우는 여자
정영운
굉장히 덥다고 말을 걸자, 이런 날은
발목 늘어진 양말이라도 꿰차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몹시 배도 고프다고 말하자,
더위를 실컷 먹어 입이 깔깔한데
어떻게 밥이 먹히겠냐고 말했다
지끈지끈 머리가 쑤셔온다고 말하자,
두통약 두 알은 벌써 삼켰기 때문에
슬리퍼 뒤축에 밟혀있는 약봉지는
비어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리운 어떤 것도 없다고 말하자,
그렇게 유치한 사탕발림 놀이는 말하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몸 쏙 빠져나간 매미 껍질이 왜 아직
늙은 느티나무에 찰싹 붙어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 여자 벌컥 화를 내었다
훌쩍 떠나간 제 몸 기다리는 게 무슨
죄가 되겠냐고
가망 없는 기다림이 느티나무 둥치에만
걸쳐져 있겠느냐고
하품 하는 사내
정영운
사내 : 꾀죄죄한 몰골에, 빛깔을 짜내 버리고 스스로 세월만 덧입힌 긴 외투를 걸치고
아귀 안 맞는 지퍼가 녹까지 슬어 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벤치 : 이제 사내가 비스듬히 앉아야겠지요
한쪽 팔로 턱을 괼 차례이긴 한데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지 오른쪽 이마를 짚습니다
주변 : 성형외과에서 살금살금 내려온 발자국이 지하도 층계로 사라지고는, 핸드폰 통화음들이
몰려다니며 한풀 꺾인 오후를 닦달하고 있습니다
사내 : 사내의 의지가 개입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표정
이군요
그가 타야 할 평촌행 광역 버스가 저기 오고 있으나 꿈쩍하지 않고 그저 하품만이나 하는
듯하더니 그래도 한마디 지껄이고는 있군요
<‘무력감이야말로 나를 가장 힘 있게 사로잡고 있는 것인지’>*
* 정영문 소설「하품」중에서
젖지 않는 까닭
정영운
멀쑥하게 서서 빈둥거리던 나무들도 깨우고 거무죽죽 녹슨 철 대문 안쪽도 기웃거리고 미끄럼 타는 아이 털모자 뒤꼭지도 건드리며 골목 한켠 눈더미도 녹여가며 조근조근 내리던 비, 무심코 지나던 그것들에게 묻네요
닳고 닳은 연골과 말라비틀어진 근육과 방수 처리된 패딩코트와 물켜기 싫어 꾹 다문 그것들에게 묻네요
왜 젖지 않지요?
낭창낭창
정영운
단단히 말뚝을 박고 줄을 건 다음
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줄을 조율하던
어름사니 권원태는, 줄 위에서 걷기를 반복하며
테스트하고 있던 제자에게 한마디 하였다
“줄이 너무 밭아도 느슨해도 안 된다”
“그래, 낭창낭창하냐?”
낭창낭창 잘 조율된 줄 위에서
남사당패 권원태의 제자인 두 청년은,
사뿐사뿐 걸어 다니다가 때로는 솟구쳤다가
가볍게 착지하면서 깊고 푸른 하늘을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혹은 신명나게 부리면서
어름사니가 되는 신고식을 무사히 치러내었다
오늘은 한 번 네가 나에게 길을 물어라
“서툰 솜씨로 상모 돌리며 가는 네 길도 낭창낭창한가?”
“가끔은 그러한가?”
여름날의 독서
정영운
소나기몰이 나간 구름 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릎에 놓인 책을 덮고 느티나무 잎사귀들의 떨림을 읽었다 우주의 찰나를 힘겹게 건너고 있던 나는 그 일사불란함을 순간 몸부림이라고 해독했으나, 한참을 올려다 보니 왜 그렇게 눈이 부시던지 더는 바라볼 수 없었다 몸부림이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세상의 모든 누추함이 편집된 말간 알갱이들만 쏟아졌다
찰랑거리는 머리와 흰 종아리를 가진 소녀들이 쉼 없이 조잘거리다가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을 떨림의 푸른 그늘, 소나기여 서둘러 오지는 마라 나 그곳에 잘 찾아들었으니 잎사귀들의 한 시절이나 읽고 읽으며 느티나무 밑둥치에ㅔ 종일을 붙박이고 싶다 찰나의 찰나만큼은 나도 눈부시게 건너고 싶다
물의 평화
정영운
나의 근본은 뿌리를 내리지 말라는 것
근根 없이 본本을 지키라는 것
톡톡 쏘아대는 햇빛과
허리 실실 꼬아대는 바람에게도
은근한 눈빛 이상은 보내지 말 것
넘치는 것들 내버려두고
분수를 지키라는 것
혹하다가 뿌리내리고 가지 뻗기 시작하면
정말 큰일
그렇게 되면 나, 물 아니지
비 그친 어둑신한 계곡을
허둥거리며 내려오던 시간은 두려웠고
메꽃 서너 송이 몸 감고 있던
녹슨 철교 밑을 돌아 나오던 시절은
적막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아직 아픔은 모르지
하긴 부러질 가지도 없으니까
곪아터질 뿌리도 없으니까
그러나 내게도 한번은 있겠지?
걷잡을 수 없이 온통 솟구치는 일
그치?
그때 누가
감히 허방 친다 말릴 것이며
아버지
정영운
아버지 허리병 도져 입원하던 날
하늘 끝 한번 바라봤지요
하늘 끝 세상 끝, 말이 그렇지
아무리 그런 게 끝이 있겠나 싶더라고요
내 옹색한 몸에 갇힌 쓸쓸함도
끝이 분명치 않는데 하물며
가로수 은행잎들
때 놓쳐 못 떨어진 은행 몇 알씩을 품고
내친김에 겨울 끝가지 버텨보겠다지만
계절이란 것이 원체가
빗금 치고 바뀌는 게 아니어서요
그래도 숨통은 트여야 하는 거니까
고통만큼은 분명 끝이 있을 거라며
휘적휘적 돌아서는데
움추린 어깨 뒤를 자꾸 파고들대요
건초 같은 아버지 허리뼈
주저않는 소리가
쓸쓸한 저녁
정영운
어린 내가 실타래 속에 양손을 집어넣어
팽팽하게 당기고 있으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부지런히 실패에 실을 돌려 감는 엄마
읍내 술도가 술독이 비었는지 은 웬일로
맨정신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일찍 자리에 드시고
초저녁 싸움까지 잘 마무리하고는 동생들도 잠이 들고
언니는 자기 방에서 수예 숙제하느라 조용하고
모처럼 건 안부 전화 속 통화음들은
황사를 건너는 바람처럼 희미하고
찢어져 너덜대는 벽보처럼 한때의
효도 공약은 공허하네
노모의 기침소리만 깊어가는 저녁
앞마당 산수유은 피었거나 말거나
두통의 시간
정영운
이마에 진을 치고는 습관성으로 빌붙어 사는
게보린 두 알의 진통 효과도 잠시뿐 오늘 공격은
이제 뇌세포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숨 막힐 듯한 어둠과 난방 끊긴 방안
더듬거리며 콘택트렌즈를 찾아 끼고는
곧 자리에 쓰러졌다
온몸은 통증에 갇혀 기진맥진하고
간신히 조리개만이라도 열어 놓았다
렌즈 속을 흐리게 하는 그림들이 보인다
굴렁쇠 굴리던 둑길, 소매 끝으로 묻어나던
콧물과 어머니 이마를 동여맸던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
그날 처음으로 두통은
내 구역을 난타했다
놈들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던
오늘 내 처방전은
제법 감탄할 만하다
오차 없는 콘택트렌즈 속에
내 손때 묻은 굴렁쇠 하나
넣어 놓았으니
오늘의 처방전
정영운
슬픔이란 것도 없는 것들이 제법 서럽도록 발목까지 차오르는 걸 보면 무릎 깨지며 아스팔트 달려온 한낮이 기진맥진한 몰골로 대문 밖을 서성거리나 보다
오후 내내 나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아삭아삭 가볍게 씹히는 새우깡을 먹고 있었는데, 20년 넘게 못 본 그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것도 수상하고 아껴두었던 조니워커 블루를 찾는 손도 그렇고 1.2의 시력이 갑자기 맥을 놓고 앞일이 캄캄하다는 것도 정말 캄캄한 일이고
고장 난 신호등 걸려 있는 로터리 돌아 그에게 갈 수 없는 저녁, 내 어릴 적에 예배당 종지기 되어 빗속에 찢긴 노을을 기워 그에게 한 자락 보아야겠다 저녁 종소리 끝나는 그곳까지 그가 와 있다면 많은 말을 아끼고 가벼운 악수나 나무게 될 빈손이라도 데리고 그가 만약 와 있다면
<오늘 처방전에는, 눅눅하고 아득하게 종소리를 울릴 것. 그리하여 끈질지게 숨어 자라는 내성의 뿌리를 잘라 버릴 것이라고 쓰여 있음.>
연애의 기억
정영운
앙상한 기억의 뼈에 살을 입히네
입김도 불어넣네
혼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먼저 돌아와
낡은 역사에서 나를 기다리네
헤어질 이유들이 숨을 죽이고
머뭇거리며 손을 잡았던 시간들이
발등만 내려다보며 흘러갔네
아무도 떠나지 않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던
무수한 엇갈림의 그대들이 스쳐간
나이테 뭉크러진 긴 나무의자를
기억하네
필름은 끊어먹기를 반복r하지만
지치지 않는 집요한 영사기 하나
가지고 있네
다만, 이 빌어먹을 놈의 장면들이 왜
무슨 무슨 영화와 닮아간다는 것이냐?
혁명 전
정영운
아버지의 수상한 발걸음이
아직 길을 못 내어 먼 자갈길을
숨죽이고 돌고 있을 무렵
힘차게 구른 그네가
쌩쌩 나아가다가
몰려드는 먹구름에 헛발질해
곤두박질쳤을 무렵
근사한 놈팽이 하나
헐레벌떡 삼일로 창고극장
오르고 있을 무렵
어느 해인가
올챙이 몇 마리 잡아다 놓고
그제야 수두로 누운 아이가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참아내던 무렵
고물고물하던 분노들이
핼쑥한 얼굴로 자라나
젖은 장작더미 아래서
기침 참아내며
쓴 웃음을 모의할 무렵
사랑학습 1
정영운
그저 막막함이라고만 말하겠다
그저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뿐이라고 말하겠다
내게 길이 없음을 말했을 때
막막함 혹은 불면증의 그대들이 앞다투어
뜬눈으로 길을 열어 주었다
이제 한달음에 갈 수도 있겠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곳에
몸을 오그려뜨리고 눈도 감으면
등잔불 심지도 돋우지 못하는
대책 없음이여, 완벽하다
침묵 깨우기
정영운
한낮의 무료함에서 빠져나오려는 발버둥의 시작 늘 새롭게 심장 뛰게 하던 샘 셰퍼드도 오늘 비디오엔 엔간히 지쳐 있다 차라리 사랑도 배신도 모르는 창밖 풍경이나 바라보겠다 고도로 절제된 분장을 한 나무와 벤치들 납덩이처럼 웅크린 채 방치돼 있다 다만 도전자처럼 무채색의 적막만이 눈을 부릅뜬 채로.
말라붙은 물감과 캔버스를 챙겨 나 지금 창을 넘겠다 그리고 단숨에 달려올 그를 위해 잊혀진 길목 반듯하게 펼쳐 비질을 해놓고 채도 잃어가는 물감 진하디진하게 풀어 봄강처럼 흐르게 하고 함구하는 모든 것 불러들여 무릎 꿇게 하고 그리고 아직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내 얘기들을 놓아 주어야지
드라이플라워
정영운
한때는 불이었지요
그리고 바람이기도 했고요
부정기적으로 올려지던 고난도의 몸짓은
눈부시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박제되어 우두커니 서 있을까요
심한 탈수증으로
맥박도 호흡도 놓쳐버리고는
늘 경계하던 매너리즘의 끈을
당겨보았으나 그것조차 외면하더군요
그래도 배넷웃음과 체취만은
또렷이 살아있답니다
물 한 모금 남아 있지 않아
곰팡이도 거세당한 황톳빛 옹기의 감옥에서
아직 내가 꽃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젠 갈증도 거의 잊었습니다
하긴 물가에 살던 시절에도
날마다 목이 탔었지요
오로지 욕망의 뿌리만
키우고 있었을까요?
부스러지지 않을 만큼만
더 감량하려고요
뼛속의 수액을 마저 뽑아서라도
향을 깁고 싶어요
물론 해탈인지 뭔지는 내게
가당치도 않은 단어지요
가당치도 않은
뼈의 가벼움
정영운
탄력 잃은 몸의 뼈들을 걸치고
새벽 강을 건넌 적이 잇다
어떻게 비틀거리지 않고
양손에 나눠 쥐고 있던 신발 한 짝
떨어뜨리지 않고
물살을 가로질렀는지 기억할 수 가 없다
쫓기던 새벽의 모진 강바람을
지금껏 증오하지만
그 강의 물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수척해진 뼈에 석회질만 가라앉고
마디마디 골절이 올 때까지
부러진 지팡이 하나
마련하지 못했으나
그 새벽 강을 건넜을 땐
세상에서 제일 홀가분한 새가 되어
뼈들은 어깨에
가벼이 얹혀 있었다
상처에 대한 예의
정영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였다고는 하지만
까마득히 멀어진 그대 앞에
도달할 수는 없지요
지는 해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산책을 끝낸 듯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상처는 깊고 단단하여
아무도 눈치챌 수 없습니다
내성도 생기지 않을
이런 류類의 상처는 빨리 꿰매고
봉합하는 게 상책이겠지만
어떻게 그러겠어요?
아슬아슬하게 이어 왔던 그와의
줄다리기에서 나는 완패했고,
피 흘리면서 얻은 전리품은
이것뿐인데요
이 단단한 상처 길이길이 모셔두고
눈물 빼먹을 겁니다
흔하디흔하다고 식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게 실패한 전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사랑
정영운
신문들이야 볕 안 드는 골방에 쌓아두면 되는 것이고 맨날 그렇고 그런 지지고 볶는 사연쯤이야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라지 뭐
좁은 거실 딱 차지하고는 쑥쑥 자란 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행운목도 어느 날 베란다 한족으로 치워버리고
그동안 부리던 모든 것 손 놓아 버리겠네
이제는 내가 갇히고 말겠네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어거지 사랑 나 그저 포기하겠네
내타고난 이기심이나 탱탱하게 키우고 그동안 한풀 꺾인 냉정함이나 날 세워 갈고 그리고 아무라도 미운 사람은 거침없이 미워하겠네 주먹다짐도 서슴치 않겠네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오후엔 맨다리 내어놓고 해질녘까지 퍼질러 자겠네
그래도 어느 날 사랑이 어른거리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되뇌이겠네
외로움을 읽다
정영운
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고개 넘어 동네로 흩어지고
학교 옆에는 관사로 불리던 우리 집 한 채뿐
텅 빈 교정 넓은 운동장엔 무성하게 잡풀만 자라고
혼자서 하난 공기놀이에 지친 나는 그때,
어둡고 눅눅한 교실에서 만들어진 적막의 알갱이들이
깨진 창문으로 빠져나오는 걸 보았다
소리 없이 빠져나온 그것들은 전방위로 햇살이
내리꽂히는 운동장을 떠돌다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었는데
매미도 울어대고 사마귀와 여치도 동무하자 했으나
나는 그것들을 묵살했고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도
잊은 채 학교 안을 촘촘하게 채워 가는
그 입자 고운 알갱이들이 타전하는 부호들을
더듬더듬 읽어내기 시작했다
개망초를 만나다
정영운
강길을 걷는 내내
너는 내게 잡혀 있다
등에 얹힌 바람이 훼방을 놓았으나
나는 너를 단단히 잡고 있다
철교 건너 저물녘으로 가는 기차도
너를 싣고 가지는 못한다
갑자기 캄캄해지고
천둥이 치기 시작했을 때
비가 쏟아지고 돌아가는 길이
까마득해졌을 때
허둥대고 있던 발목에
네가 채였다
어제도 그제도 만난 적 없는 네가
빗줄기 긁어지는 강길에서
오래 묵혀둔 할머니의
광목 적삼이라도 입은 듯이
눅눅하면서도 편안하게
가슴에 들어와 주다니,
작은 가지들은 심하게 흔들렸으나
붉은 기운으로 절창을 지르고 있던
능소화보다도 더 환한 얼굴이라니,
두 마리 개가 있는 풍경
정영운
하늘 밑 세상은 늘 근사하기도 하지
오늘 또한 지독히도 오늘다웠기 때문에 완벽했지
쓸쓸함의 장치로 두 마리 개를 풀어 놓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갠지스의 소년 뱃사공 산딥은 동료 뱃사공 어른들한테서 손님들 호객 문제로 혼쭐이 나고
침울해진 산딥은 시멘트 벤치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잠자느라 하루를 공쳤다고 산딥은 아버지한테서 된통 얻어맞고
얻어맞은 산딥은 사람들 없는 저쪽 강가 모래밭에 퍼질러 앉아서 목 놓아 울고 있었는데
거기에, 위로하려는 듯 슬픔을 배가시키려는 듯
하루 종일 바라나시를 헤매고 다녔을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두 마리 개를 같다 놓으신 것도
신의 뜻이신가요?
한 마리 개는 산딥 옆에 앉아있고
또 한 마리는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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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시작과 끝을 가르는 무모함을 버릴 때가 왔다.
소극장에 모여앉아 고도를 기다리는 당신들의 오기를 냉소할 때가 왔다.
모사와 표절을 만지작거리는 어리석음을 버릴 때가 왔다.
앙코르와트에 묻힌 치우의 사랑을 훔쳐보는 당신들의 벱새눈을 경멸할 때가 왔다.
델핀이 노을 속에서 만났던 녹색 광선을 덜컥 맞고 싶지는 않다. 거절이다.
머뭇대기만 하다가 이제야 다시 시작하는 걸 이미 들켰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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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운 詩集 [※딴청 피우는 여자※]
[ 발문 ] -
경쾌한 말의 맛과 '정중동靜中動'의 시학詩學'
권 온(문학평론가)
1.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정영운 시인은 1994년 등단한 이후 첫 시집『나와 그의 거리에 대하여』(1997)를 상재한 바 있다. 시력詩歷 20년을 넘어서는 이 중견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딴청 피우는 여자』(2015)를 발간했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정영운이 적잖은 시간 동안 인고와 숙성의 과정을 거쳤음을 간파할 것이다. 시인이 꾹꾹 눌러쓴 알찬 시편詩篇은 그녀의 삶과 다른 말이 아닐 테다. 이제 정영운의 시를 읽으며 당신과 나의 삶을 되돌아볼 차례이다.
2
주우러 가자 새벽빛 물든 덕지 마을로
사락사락 내려앉는 감꽃들 담으러 가자
양재천 영동3교 바람난 패랭이꽃들
흔들어 주러 가자
낮술로 허기 채운 망초꽃들이
훠이훠이 아무나 잡고 허리춤 추는
탄천 둔덕에 가자
몽당연필로 침 발라 익힌 교훈들이
말짱 헛것이어서만이 아니라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빠져나간
너의 가벼움 때문만이 아니라
토막난 기억 하나 손질하기가
지겨워서만이 아니라
환전소 지나 두 번째 골목 끄트머리에
이런 벽보가 붙어 있어서만이 아니라
이런 벽보 : 미인촌(늘씬한 미녀 24시간 대기 과부촌 바로 옆)
당신이 아직 아홉 살이면 공주군 탄천면 덕지 마을로 감꽃 주우러 가자
-「주우러 가자」전문
이 시는 정영운 시인의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병행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공주군 탄천면 덕지 마을’은 시인의 고향으로서 ‘과거’의 한때를 대변하고, ‘양재천 영동3교’는 그녀의 ‘현재’와 관련되는 공간이다. 이 시의 개성은 ‘과거’와 ‘현재’를 향하는 시인의 태도가 유사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시인은 먼저 우리에게 “새벽빛 물든 덕지 마을로/사락사락 내려앉은 감꽃들 담으러 가자” 또는 “공주군 탄천면 덕지 마을로 감꽃 주우러 가자”고 제안한다. ‘덕지 마을’은 정영운의 유년이 전개되었던 ‘기억’ 속의 장소이다. 그녀는 또한 독자에게 “양재천 영동3교 바람난 패랭이꽃들/흔들어 주러 가자/낮술로 허기 채운 망초꽃들이/훠이훠이 아무나 잡고 허리춤 추는/탄천 둔덕에 가자”고 권유한다. ‘양재천 영동3교’ 근방은 시인의 일상생활이 전개되는 장소이다. 과거의 ‘감꽃들’이나 현재의 ‘패랭이꽃들’을 대하는 정영운의 자세는 대동소이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바라보는 ‘너’ 또는 ‘당신’은 ‘아직 아홉 살’에 머물러 있다. 아니 정영운 시인은 여전히 ‘아직 아홉 살’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순수와 순결의 시공時空을 지키려는 그녀의 단호한 언어가 아름답다.
아득한 것들은 내버려두면 되었다
그것을 향해 손을 뻗치지도 말고
깨금발을 딛지도 말고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들을 올려다보며
가끔 아득한 척도 해보자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까마득하게 바라보자
뜬소문이라고만 믿었던 아버지의 스캔들이
육하六何원칙을 맹신했던 동생의 집요함으로
탄로 났을 때, 한없이 무심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속 아득한 곳에서 얄궂게
몸 사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손톱만큼의
가족애마저도 박살이 나고 말았으니
한번 봉인된 사연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얼굴 들이밀어서 될 일이 아니다
아득한 하늘 그 하늘바래기로
떠 있는 감알들아, 아득하거라
하늘바래기인지 까치밥인지 증거하지 말고
그저 아득하거라
-「아득한 것을 위하여」전문
형용사 ‘아득하다’는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이 희미하고 매우 멀다” 또는 “까마득히 오래되다”등의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 시간적이거나 공간적으로 상당한 거리감을 느낄 때 ‘아득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바라보는 사물은 늦가을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나무에 매달린 ‘감(알)들’이다. 감(알)들을 올려다보며 정영운이 제안하는 바는 간단하다. “그것을 향해 손을 뻗치지도 말고/깨금발을 딛지도 말고” “가끔 아득한 척도 해보자” “까마득하게 바라보자”는 것. 감(알)들은 “손에 잡힐 듯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녀는 다만 “(그저)아득하거라”라는 주문 아닌 주문呪文을 외울 뿐이다.
정영운 시인이 ‘아득한 것’에 집착하게 된 까닭은 ‘아버지’와 관련된다. ‘육하원칙’이라는 객관성을 추구하는 동생의 집요함으로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의 마음속 아득한 곳’어디에도 ‘손톱만큼의 가족애’가 남아있지 않았다는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영운 시인은 우리에게 때로는 묻어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음을, 봉인되어야 할 사연이 존재함을 역설한다. 그녀가 ‘감(알)들’을 바라보면서 독자들에게 건네는 발언인 “하늘바래기인지 까치밥인지 증거하지 말고/그저 아득하거라”가 은은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이러한 시적 어법을 ‘정중동靜中動의 시학詩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허리병 도져 입원하던 날
하늘 끝 한번 바라봤지요
하늘 끝 세상 끝, 말이 그렇지
아무리 그런 게 끝이 있겠나 싶더라고요
내 옹색한 몸에 갇힌 쓸쓸함도
끝이 분명치 않은데 하물며
가로수 은행나무들
때 놓쳐 못 떨어진 은행 몇 알씩을 품고
내친김에 겨울 끝까지 버텨보겠다지만
계절이란 것도 원체가
빗금 치고 바뀌는 게 아니어서요
그래도 숨통은 트여야 하는 거니까
고통만큼은 분명 끝이 있을 거라며
휘적휘적 돌아서는데
움츠린 어깨 뒤를 자꾸 파고들대요
건초 같은 아버지 허리뼈
주저앉는 소리가
-「아버지」전문
정영운은 앞의 시에서 ‘아득한 것’으로서의 ‘아버지’를 제시한 바 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 아버지는 가닿을 수 없는 아련한 대상이 될 테고, 이 시에는 스러져가는 아버지를 향한 딸의 안타까운 심경이 가득하다.
아버지가 입원하던 날, “아버지의 허리뼈/주저앉는ㄴ 소리”를 들으며 시의 화자 ‘나’가 바라본 것은 ‘하늘 끝’ 또는 ‘세상 끝’이었다. 시인이 선택한 명사 ‘끝’이 가리키는 조마조마함과 아슬아슬함은 예고된 ‘천붕天崩’의 상황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겪을 고통의 끝을 상상하는 일뿐이다. 이는 죽어가는 부모를 가진 모든 자식의 숙명이기도 하다.
신문들이야 볕 안 드는 골방에 쌓아두면 되는 것이고 맨날 그렇고 그런 지지고 볶는 사연쯤이야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 치고 하라지 뭐
좁은 거실 딱 차지하고는 쑥쑥 자란 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행운목도 어느 날 베란다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그동안 부리던 모든 것 손 놓아 버리겠네
이제는 내가 갇히고 말겠네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어거지 사랑 나 그거 포기하겠네
내 타고난 이기심이나 탱탱하게 키우고 그동안 한풀 꺾인 냉정함이나 날 세워 갈고 그리고 아무라도 미운 사람은 거침없이 미워하겠네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겠네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오후엔 맨다리 내어놓고 해질녘까지 퍼질러 자겠네
그래도 어느 날 사랑이 어른거리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되뇌이겠네
―「사랑」전문
‘사랑’이라는 테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다수의 예술가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 자명하다. 이 시의 화자 ‘나’는 지금껏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어거지 사랑” 곧 ‘이타적 사랑’에 전념해왔다. 이 작품은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제 ‘나’는 ‘신문들’이나 ‘사연’ 또는 ‘행운목’같은 ‘그동안 부리던 모든 것들’과 작별을 시도한다.
‘나’의 새로운 사랑은 ‘이기심’이나 ‘냉정함’을 주장하고, ‘미움’과 ‘주먹다짐’도 불사한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회전하는 사랑, 곧 ‘이기적 사랑’을 실천하겠노라는 ‘나’의 결의가 단호하다. “한없이 늘어지고 싶”고, “퍼질러 자”고 싶은 욕망은 비굴한 억지 사랑을 거부하는 ‘나’의 확고한 의지이다.
정영운의 시「사랑」의 강점은 “그래도 어느 날 사랑이 어른거리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되뇌이겠네”라는 마지막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사랑’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시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함중아의 노래「내게도 사랑이」를 듣고만 싶은 순간이다.
한낮에도 내내 어두컴컴했던, 막다른 골목길 이끼 낀 담벼락에서 쏟아지던 저물녘의 비루함 같은 폐가처럼 조용하던 외딴집 문간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따라 숨죽여 흔들리던 맨드라미 꽃잎들의 외로움 같은
누구는 이곳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한꺼번에 목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지만 이별만을 목전에 둔 삐딱한 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독이려니
비루함과 외로움과 넌덜머리가 나게 닳아빠진 지금에 와서는 결코 사랑이라고 호명할 수 없는 것들을 버려두고 차표에 찍힌 시간만을 기다리네 한 가지만이 허락되는 거룩한 장소에서 오로지 나만을 싣고 갈 이별을 기다리네
-「간이역」전문
정영운 시인은 이 시의 1연에서 ‘일반 역과는 달리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을 가리키는 ‘간이역’의 속성을 형용사 ‘같은(같다)’을 활용하여 섬세하게 묘사한다.
2연에서 시인은 ‘간이역’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제시한다. 그녀에 따르면 ‘누구’는 ‘이곳’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한꺼번에 목격”하지만, ‘삐딱한 자들’에게는 ‘이별’만이 허락될 뿐이다.
3연은 2연의 구체화인데 ‘그때’의 ‘사랑’은 ‘지금’은 ‘이별’일 뿐이다. ‘사랑’이 ‘이별’로 바뀔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까닭은 시의 화자 ‘나’의 변화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비루함과 외로움과 넌덜머리”의 파도 속에서 “닳아빠진” ‘나’는 감히 ‘사랑’을 운위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영운 시인은 ‘간이역’을 이별을 기다리는 ‘거룩한 장소’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암시하는 힘이 가득하다.
물이 오른 나무마다
목이 탄다고 엄살이니
물이 오른 꽃잎들까지
가슴이 탄다고 아우성이니
봄비는 엉겁결에 뛰어내리는 수밖에
기상대의 예보를 무시할 수밖에
우산도 없이 터덜거리다가
길 건너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서는
더 젖을 게 없다는 듯
봄비의 시선을 닫아버리는 저 사내
저 사내처럼 봄비가 버거운
횡단보도 바로 옆 포장마차 아저씨는
이미 망친 장사를 접을까 말까
샛노란 꽃 흐드러진 산수유를 비껴서
먹장하늘을 올려다보는 중
비에 갇혀 있던
등마루 연립 쌍둥이 엄마가
두부 한 모 사려고 롯데마트를 들렀을 때
602번 버스에서 내린 몇몇 사람은
오르막 보건소 길을 무심히 지나
각자의 골목으로 흩어지고
점심을 거르며
건성건성 뛰어내리던
봄비는 지금
비릿한 봄기운의 농도를
잘 맞추어 가며
봄꽃들의 완벽한 한때를 위해
천지사방을 말갛게 씻어 내리는 중
-「봄비 오는 거리」전문
정영운 시인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시「딴청 피는 여자」에서 ‘~(하)자~(했)다’라는 특유의 어법을 과시했고, 언어를 다루는 남다른 감각을 담담하게 표출했다. 이에 덧붙여 그녀의 또 다른 시「봄비 오는 거리」를 읽는 독자들은 말의 맛을 경쾌하게 살리는 시인의 섬세한 언어 운용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될 것이다. ‘봄비’를 의인화한 점이 돋보이는 1연은 ‘반복’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살린 사례이다. 현대시에서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단어나 어구, 구절의 반복인데 이 작품은 이를 능동적으로 반영했다. 가령 1연 5행~1연 6행은 ‘~수밖에’를 반복하면서 함축과 여운을 남기는 종결을 선택함으로써 이 시를 읽는 이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이 시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봄비 오는 거리’를 형상화하는데, 2연의 “~접을까 말까” 나 “~올려다보는 중”은 말의 결을 유쾌하게 성장시키는 묘구妙句이다. 또한 3연의 ‘등마루 연립’이나 ‘롯데마트’, ‘602번 버스’나 ‘보건소 길’ 등은 대상의 구체성과 사물의 실감을 극적으로 포착한 절묘한 어휘이다. 더불어 우리는 4연에서 부사 ‘지금’과 ‘~내리는 중’이라는 표현이 지향하는 현재진행 어법이 시 본연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다. 요컨대 이 시는 ‘봄비 오는 거리’와 ‘봄꽃들의 완벽한 한때’를 유려한 문체로 다듬은 가편佳篇이다.
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고개 넘어 동네로 흩어지고
학교 옆에는 관사로 불리던 우리 집 한 채뿐
텅 빈 교정 넓은 운동장엔 무성하게 잡풀만 자라고
혼자서 하는 공기놀이에 지친 나는 그때
어둡고 눅눅한 교실에서 만들어진 적막의 알갱이들이
깨진 창문으로 빠져나오는 걸 보았다
소리 없이 빠져나온 그것들은 전방위로 햇살이
내리꽂히는 운동장을 떠돌다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었는데
매미도 울어대고 사마귀와 여치도 동무하자 했으나
나는 그것들을 묵살했고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도
잊은 채 학교 안을 촘촘하게 채워 가는
그 입자 고운 알갱이들이 타전하는 부호들을
더듬더듬 읽어내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읽다」전문
시의 기본 숙성 중 하나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 또는 지금의 형식’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유년幼年을 다루는 이 시 역시 기억의 재생을 다루는데 특이한 것은 그 배경이 ‘학교’ ‘관사’ ‘운동장’ ‘교실’등 ‘학교’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가장 문제적인 대목으로는 2연의 “나는 그때/어둡고 눅눅한 교실에서 만들어진 적막의 알갱이들이/깨진 창문으로 빠져나오는 걸 보았다”와 3연의 “학교 안을 촘촘하게 채워가는/그 입자 고운 알갱이들이 타전하는 부호들을/더듬더듬 읽어내기 시작했다”를 꼽을 수 있겠다. ‘적막’이나 ‘외로움’의 정황을, 어떤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실제 또는 하나의 물질로서 다루는 방식이 돋보인다.
이 시의 제목은 ‘외로움을 읽다’인데, 우리는 시의 화자 ‘나’가 적막의 알갱이들을 읽어내는 행위가 이내 쓰는 행위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읽기’가 ‘쓰기’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외로움을 기록하려는 순가, 비로소 시는 탄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 후드득
꽃잎들, 후드득
슬픔 저도 덩달아 후드득
비 내리는 삼거리 주유소
오색 깃발들은 발끝까지 젖어 울고
깃발 아래 벚나무 한 그루
꽃잎들 아낌없이 풀어서라도
궂은 비 막아 보겠다고 나섰는데
세상에 부질없는 한 역사가
부질없이 흩어지고 있다
괜스레 나는
거칠고 주름진 손등을
흐려진 눈으로 닦아보다가
조금만 울기로 했다
세월이 부려 놓은
등창의 몸부림에 기대
그러기로 했다
-「후드득」전문
시의 화자 ‘나’는 비 내리는 삼거리 주유소에 있다. ‘나’는 오색 깃발 아래 위치한 벚꽃나무 한 그루에 주목한다. ‘궂은 비’를 맞은 ‘꽃잎들’이 떨어질 때, ‘나’는 ‘슬픔’의 감정을 체감한다. 2연의 “세상에 부질없는 한 역사가/부질없이 흩어지고 있다”나 3연의 “괜시레 나는/거칠고 주름진 손등을/흐려진 눈으로 닦아보다가/조금만 울기로 했다”는 ‘나’의 슬픔을 강조한 표현이 된다.
‘나’는 벚꽃의 낙화라는 현상 속에서, 아름다움의 소멸을 목도하면서 ‘시간’ 또는 ‘세월’의 속절없는 경과經過를 성찰하고 있다. 꽃잎의 낙화에서 스스로의 슬픔 또는 우울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사물 또는 대상을 자아와 동일화하고 일체화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일화 또는 일체화가 가장 시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대목이 1연이다. ‘비’와 ‘꽃잎들’과 ‘슬픔’이 부사 ‘후드득’과 결합하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이 부분은 “비가 온다/오누나/오는 비는 올지라도/한 닷새 왔으면 좋지”로 시작되는 김소월의 시「왕십리往十里」를 연상시킨다.
정영운 시인의 시「후드득」은 시의 음악 또는 시의 리듬은 물론이거니와 시와 노래의 상관성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작품이다. 곧 이 시는 작자인 정영운 시인이 순간의 예술로서의 시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우리가 살핀 정영운 시인의 시에는 과거와 현재, 기억과 일상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이번 시집에서 그녀가 다룬 시적 테마는 무척 광범위했으니, 아버지, 사랑, 이별, 외로움,슬픔 등을 다룬 작품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섬세한 언어 운용 능력은 말의 결을 경쾌하게 살리는 데 일조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에게 시에 있어서의 음악 또는 리듬에 관한 타고난 감각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외로움을 읽고 쓰는 행위가 바로 시작詩作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런 까닭에 아득한 것을 존중하는 정영운의 은은한 시적 어법을 ‘정중동의 시학’으로 규정하는 일도 불가능한 미션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아름답고 치열한 시적 탐구가 더욱 넓고 깊은 문학적 성취로 귀결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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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질문을 내던지고 있다. 그는 알아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은 것처럼 무수히 떠다니는 소식 또는 풍문에 대하여 배후를 캐듯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이곳으로 왔으며, 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듣고 싶어한다. 이런 질문이 하나하나의 작품 속에 오롯이 빛을 발하듯 살아나 있다. “이때 누군가는/ 또다시 완결편이라는 빌미를 붙여 써내려간/ 붙일 수 없는 편지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저녁밥을 거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아픈 한때를 기억하는 자기 자신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는 “내 쓸쓸함의 목록들 ; 아이, 은행잎, 저어새, 버려진 풍경, 먼 기억”이라는 자기 존재를 극명하게 살펴보는 그 이미지들 속에서도 정영운 시인만이 지닌 소중한 단서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 이수익(시인)
정영운 시인의 시에는 과거와 현재, 기억과 일상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이번 시집에서 그녀가 다룬 시작 태마는 무척 광범위했으니, 아버지, 사랑, 이별, 외로움, 슬픔 등을 다룬 작품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섬세한 언어 운용 능력은 말의 결을 경쾌하게 살리는 데 일조랬다. 또한 그녀는 우리에게 시에 있어서의 음악 또는 리듬에 관한 타고난 감각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외로움을 읽고 쓰는 행위가 바로 시작詩作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런 까닭에 아득한 것을 존중하는 정영운의 은은한 시적 어법을 ‘정동중의 시학’으로 규정하는 일도 불가능한 미션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아름답고 치열한 시적 탐구가 더욱 넓고 깊은 문학적 성취로 귀결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 권온(문학평론가)
정영운의 시편들은 빛과 어둠을 자유자재로 교환하면서 애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팽팽한 긴장이 시집『딴청 피우는 여자』를 받치고 있다. 시라는 것이 “줄이 너무 밭아도 느슨해도 안 된다”(<낭창낭창>)라고 한 것처럼, 더 나아가 “바하늘바래기인지 까치밥인지 증거하지 말고/ 그저 아득하”(<아득한 것을 위하여>)길 바라는 여백의 간격은 긴장과 적요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항하는 두 극아 만들어낸 진공 안에서 그는 소리를 사냥한다. “화살나무 코르크날개 바스라지는 소리/ 살풀이 끝낸 마름 숲이 칼바람 내려놓고/ 허리춤 가득 햇빛 채우는 소리”(<아직은 겨울>)를 보면, 소리l를 듣고 읽고 시의 날개를 펴는 장면이다.
“한가지만이 허락되는 거룩한 장소에서 오로지 나만을 싣고 갈 이별을 기다리”(간이역>)면서, 그의 딴청은 계속된다.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정지용)’하는 시학과 그의 딴청은 맥락을 같이 한다. 딴청의 내면에 분출하는 생리(‘세상의 모든 누추함이 편집된’(<여름날의 독서>)를 압복壓伏하는, 정영운 시인의 서늘한 시법(‘말간 알갱이들’. 앞의 시)은 시의 위의威儀로 빛난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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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운 시인∥
∙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 공주에서 성장하였다.
∙ 공주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 1994년『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시집『나와 그의 거리에 대하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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