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택문학상 수상작>
동인시영아파트*는 이제 없다
조명선
광주리 가득 채워 오가던 그 어디쯤
따뜻했다 행복했다 그러나 가난했다
비워진 연탄 창고엔 살아갈 날 쌓였다
신천 너머 오래된 저, 조붓한 복도 끝
열몇 평 사연들이 논쟁하듯 넘어와
엄마는 할머니 되고 어린 나는 엄마 되고
집집이 분주하게 밟아 올린 햇빛 속
백로 똥 비둘기 똥 비처럼 뿌려지던
젊은 날 전부가 되어 환장하게 그립다
*1969년 준공된 대구 지역 첫 아파트로 건축된 지 50여 년 만에 재건축 사업으로 사라졌다
올해의 발표작
산책 중입니다
뭐 하고 있느냐고 친근하게 묻는다면
오늘 하루 서명하듯 공기가 늘 그랬고
저 건너 모르는 얼굴 중얼대는 것 보는 중
앞사람 뒤통수도 내장도 통과하듯
연분홍 치마 울림이 넘나드는 천변가
회전할 자락 놓치고 오래오래 걷는 중
신작
어쩌다 한글
자꾸자꾸 부푸는
—사랑해, 고마워요
입 달싹 간질간질
웃게 하는 힘센 마법
이런 나
나는 너 좋아
알콩달콩 설렌다
—헐 안물, 아싸 레알
툭 나온 부끄러운 말
달음질로 쫓아가
낯 붉히며 그만 멈춰
이런 나
나는 너 미워
자꾸자꾸 밀어낸다
폭우 내리는 대구 신천
전국에 천변 통행 금한다는 재난 문자
그랬다 또박또박 단박에 건너와선
모른 척 울기 좋은 날 속도에 쓸려 간다
소멸을 꿈꾸는 듯 모든 걸 밀치는 폼
살생의 폭력 같은 첫 행이 뛰어내린다
쉼없이 무릎 꿇는다 신천 물이 질주한다
<대구시조> 2023. 제 27호 발표.